2009년 5월 16일 토요일

wneswkcic24-4

국가안전부 조직 관계 자료들


국가안전부 조직구조 개황 Ver. 1.1

국가안전부 조직 관련 자료

홍콩 쟁명 지 관련 기사

"花木奄映的間諜總部" 『爭鳴』 1997年 3月
"中共的情治及外事硏究機構" , 『爭鳴』, 1996年 9月
“中共間諜秘密,” 『爭鳴』, 1997年 1月

위 내용들은 FAS 국가안전부 조직 내용의 원 소스로 세부사항에서 모순점이 보이고 일부 사실과 상충되는 점이 있어 그냥 참고용으로만 사용 (단 부서 구성의 기본적 개념은 어느 정도 아래 냉요과 통하는 바가 있음)

국가안전부 조직 체제에 관해서는 대만의 정보 보안 관계 공식 기관에서 펴 낸 자료들이
비교적 신뢰성 있으며-단 항상 그렇듯이 비교적이라는 데 주의- 주로 이 들 내용의 변천
을 통해 파악

국 순서/호수 局序 국명局稱
담당업무 主管業務

1국 第一局 기요국 機要局
암호 기밀 통신 密碼、機要通訊

2국 第二局 국제정보국 國際情報局
국제전략정보수집 國際戰略性情報之蒐集

3국 第三局 정경과기국 政經情報局
각국정경과기정보수집 各國政、經、科技情報之蒐集 (경제과기 정보국)

4국 第四局 대항오국 台港澳局
대만 홍콩 마카오 지역 정보공작 對台港澳地區的情報工作

5국 第五局 정보분석통보국 情報分析通報局
정보분석통보 수집 지도 정보 연구 情報分析通報、蒐情指導、情報研究( Requirement, reports & reserch)

6국 第六局 업무지도국業務指導局
각 지역 국가안전국,청에 대한 업무지도 對所轄各省級廳、局之業務指導

7국 第七局 반간첩정찰국 反間諜情報局
방첩 정보 수집反間諜情報之蒐集

8국 第八局 반간첩정찰국 反間諜偵察局
외국간첩의 감시 추적 수사 체포外國間諜之跟監、偵察、逮捕等

9국 第九局 내보정찰국 內保偵察局
섭외단위 방첩 국내 반체제 조직 및 국내 외국 기관의 감시 통제 涉外單位的防諜,以及境內反動組織及外國機構之監控

10국 第十局 외보정찰국 外保偵察局
재외 중국 기관 인사. 유학생 감시 통제 해외 반정부 조직 활동 수사 駐外機構人員及留學生之監控,以及境外反動組織活動之偵察

11국 第十一局 정보자료중심 情報資料中心
정보자료 분류 관리 보존 情報資料分類歸檔

12국 第十二局 사회조사국 社會調t査局
사회정세 조사 社會情勢調査

13국 第十三局 기술정찰국 技術偵察局
서신 전화 뉴스 방송 TV등의 방첩 보안 검사 郵電、新聞、廣播、電視等之反間檢査

14국 第十四局 종합게획국 綜合計畫局
정보거점 설립의 종합계획 設立情報據點之綜合計畫業務

15국 第十五局 종합정보분석국 綜合情報分析局
정보의 종합분석 판단 綜合情報之分析、判判

16국 第十六局 영상정보국 影像情報局
세계 각 지 정 경 군사 영상정보 활동. 위성정보 판독 포함世界各國政、經、軍等影像情報工作,包括衛星情報硏讀

17국 第十七局 양화기업국 兩化企業局
부 소속 기업 공사 사업 단위 관리 管理該部所屬的企業、公司等事業單位

資料來源:杜陵,中共公安制度研究,(台北:中央警官學校,民國76年12月),頁102

Source:중공공안제도 연구 ( 1987 . 대만 중앙경관학교 ), 國家安全與危機管理機制, 蘇進强(대만신세기재단 21차 포럼)에서 재인용


1국 기요국 机要局
밀호 통신 및 관련 업무 주관 主管密碼通訊及相關管理


2국 국제정보국 國際情報局
국제전략정보수집 主管國際戰略情報搜集

3국 정경정보국政經情報局
각국정경과기정보수집 主管各國政經科技情報搜集

4국 대항오국 台港澳局
대만 홍콩 마카오 담당 지구 정보공작 主管該地區情報工作

5국 정보분석통보국 情報分析通報局
정보분석통보,정보수집지도 主管情報分析通報 搜集情報指導

6국 업무지도국 業務指導局
각 지역 국안국.청 업무 지도 主管對所轄各省級廳局的業務指導

7국 반간첩정보국 反間諜情報局
방첩정보수집 반간첩 정보의 수집 主管反間諜情報搜集


8국 반간첩정찰국 反間諜偵察局
외국 첩보원 감시,수사,체포 해외의 중국 민주화 인사 감시 및 공작 主管外國間諜的跟監 偵査 逮捕等

9국 대내보방정찰국(내보정찰국) 對內保防偵察局 (內保偵察局)
섭외단위 방첩, 국내반정부조직 감시 조사 主管涉外單 防諜 , 監控境內反動組織及外國機構

10국 대외보방정찰국/외보정찰국 對外保防偵察局 (外保偵察局)
재외공관,조직 보안 유학생 감시 해외반정부 조직 감시 主管駐外機構人員及留學生監控 偵查境外反動組織活動

11국 정보자료중심국 情報資料中心局
문서 정보 자료 수집.관리 문서자료의 수집.관리 主管文書情報資料的搜集和管理

12국 사회조사국 社會調査局
민의.일반사회동향 동태 조사 管民意調査及一般性社會調 査

13국 기정과기국 技偵科技局
기술 정찰.과기기자재관리 연구 개발 主管偵技科技器材的管理 、 硏發

14국 기술정찰국 技術偵察局
우편검사.전화도청 통신감시 管郵件檢査與電信偵控

15국 종합정보분석국 綜合情報分析局
종합적 정보 분석,판연 主管綜合情報的分析 、 判判

16국 영상정보국 影像情報局
각 국 정치 경제 군사 관계 각종영상정보 담당 위성사진 포함 主管各國 政 經 軍等影像情報 ,包括衛星情報判讀

17국 (양화)기업국 (兩化)企業局
부 예하 소속 기업 공사 등 사업 단위 관리 主管該部所屬企業 、 公司等事業位

그 외 행정지원 기관 부서로

판공청 辦公廳
정치부 政治部
조직선전부 組織宣傳部
교육배훈부 敎育培訓部
인사국 人事局
노간부국 老幹部局
감찰심계국 監察審計局
중합계획국 綜合計畫局
행정관리국 行政管理局

같은 부문들이 있음等機關黨委與行政支援部門

Source: 中共對臺工作組織體系槪論 (1996년. 법무부 조사국); 駐 港軍事情報官易人 太子黨 頂替 太子黨" 中國時代 1998.10서 재인용; 第三章 各國國家安全制度比較 , 國家安全槪論
, 國立中興大學校 軍訓敎課


1국 구미정보국 歐美情報局
유럽 미주 대양주 지역 정보 수집

2국 동구정보국 東歐情報局
러시아 동유럽 지역 정보 수집 (CIS 및 중앙 아시아 지역 포함)

3국 아비정보국 亞非情報局
아시아.아프리카 지역 정보 수집

4국 대항오국 台港澳局
대만 홍콩 마카오 지역 정보수집

5국 정보분석통보국 情報分析通報局
정보 분석 통보 및 정보 수집 지도·,정보연구(분석도 포함?)

6국 과기정보국 科技情報局
과학·기술 정보의 수집·연구(분석?) 및 통신공작/활동 지휘

7국 반간첩정보국 反間諜情報局
반간첩정보의 수집

8국 반간첩정찰국 反間諜偵察局
외국간첩의 추적 정찰·체포

9국 기술정찰국 技術偵察局
우편물 검사 및 통신정찰 (위성 Tv 검사 보안조치도 포함?)

10국 대(외보)방정찰국 對(外保)防偵察局
해외 중국 공관 안전공작 담당(유학생 및 반중국 세력 감시 활동 병행)

11국 정보자료중심국 情報資料中心局
문서자료의 수집·연구·관리(중국현대국제관계연구원)

12국 사회조사국 社會調査局
사회 단체 연락 및 민의(民意) 동태 등 일반성 사회 조사

13국 기정과기국 技術偵察局
과학 기자재 관리·연구

14국 밀호.통신국 密碼.通訊局
암호·통신활동 담당

15국 대항오연구국 台港澳 硏究局
대만·홍콩·마카오 지역 정보 분석. 연구 조사

16국 계산기 관리국 計算機 管理局
부 내부 전산망 관리, 전산망의 외부 침입 방지 및 사이버 넷 정보 분석

17국 양화기업국 兩化企業局
국안부 소속 기업 및 사업 관리 담당

Source: 中共對臺工作組織體系槪論(2004년 수정 2판) pp 134~135 이 내용은 중국의 정보 보안 체제 , 국가정보론 (2002 년 박영사); 세계의 정보기관 2. 중국 국가안전부주간동아 299호 의 원 소스



우선 맨 처음 제시된 1987년판 중국공안제도에 나온 내용을 1996년 중국대대만공작조직체계개론( 이하 개론 96으로 지칭)을 비교하자면 전자에는 14국이 종합계획국으로 나와 있는 데 반해 후자에는 14국이 기술정찰국으로 나와 있는 것만
제외한다면 내용이 일치합니다. 이 양자의 간격이 약 10년 간 이라는걸 생각할 ? 이 내용들이 그렇게 변화가 없었다는 것은 그 만큼 여기에 관련된 자료가 없었다거나 혹은 이 국가안전부 조직 구조가 그리 큰 변화 없이-물론 하부 부서 단위로 가면 다를 수도 있?지만 적어도 국 급 수준에서는- 그대로 유지되었다는 걸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들 내용을 중국대대만공작조직체계개론 99년 수정 1판에 나온 내용들과 비교하면 현저히 변화가 있는 것이 보입니다. 아마도 그 기간동안에 입수되지 못?던 자료가 새로 입수되어 이전에는 부족하거나 잘못된 내용을 정정했거나 혹은 이 시기 동안 중국 내부에서 있었던 변화를 반영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중국은 아직도 인치가 강하고 특정 분야에 있어서 정책 담당자나 집행자들이 장기간 재임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이는 정책의 지속성의 유지나 전문성 축적 일관성을 유지하는 데 효울성을 보입니다. 이는 정책 기획이나 집행이 상당히 인물을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걸 의미하고 역으로 장기 재임해온 특정 인물이 물러나고 새로운 인물이 부임했을 때 역시 그러한 점을 반영한 변화가 발생할 소지가 그만큼 크다는 걸 의마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국가안전부를 본다면 85년부터 부장으로 재임해왔던 지아 춘 왕이 98년 공안부장으로 영전-KGB가 내무성에 비해 우위와 영향력을 가?던 소련과는 달리 중국에서는 공안부가 국가안전부보다 서열상 상위에 있으며 공안부장이 국가안전부장보다 보다 높은 지위와 영향력을 가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례로 지금 국가안전부장 쉬 융위에는 중앙위원인 반면 공안부장인 조우영캉은 국무위원이며 동시에 정치국 위원입니다- 한 후 쉬융위에가 그 후임으로 취임했다는 것이 그 이후 국가안전부 조직 기수 개편과 어떠한 관계가 있는 지 꽤 관심이 가는 사항입니다 (물론 이러한 인적 교체가 조직 구조 개편의 유일한 동인은 아니겠지만 인치가 강한 중국의 특성상 이러한 요소 또 한 조직구조 개편에 반영되지 않았나 하고 여겨집니다 )

제도 87년과 개론 96을 개론 99년과 비교할 때 일단 확연히 눈에 띄는 것은 해외 정보 부문에서 변화가 보입니다. 전자들에서는 국제 정보국이 전략 정보를 정경과기국이 경제과학 기술 정보를 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던 데 반하여 후자에서는 해외 정보(아마도 전략 정치 정보로 여겨짐)는 각 지역별 부서들이 분담하고 있고 과학 기술 정보-아마 산업 정보도 포함?-는 과기정보국이 담당한 체제로 나타나 있습니다. 일단 후자가 보다 최근의 내용을 담고 있고 그간의 변화된 상황을 반영했을 것으로 보이며 여기에는 그 간의 국 내외 적 변화와 중국의 국제적 위상 제고 국가 목표 달성을 위한 정보 소요의 확대 등이 반영되지 않았나 하고 보입니다. 또 한 후자의 체제에서 보이는 지역별 부서 구성이 군사 정보부문인 총참모부 2부의 지역별 구성과 같다는 것도 흥미를 끕니다.

그 외 대항오국이나 정보분석 통보국 반간첩 정보 반간첩 정찰국 기술정찰국 사회 조사국 같은 기본 부서들은 기본적으로 기구가 유지되고 있는 걸로 보입니다. 아마도 이 부서들은 정보활동의 기본적 목표(대항오 같은 경우는 대만 공작이라는 임무가 국가적 정보목표로 게속 유지되고 있으며 ) 혹은 정보 과정상의 기본 역할 부문( 정보분석통보국 같은 경우는 Intelligence cycle에서의 정보 소요 전달 지시및 정보 평가 보고 전달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보임) 이나 국가안전부의 기본적 기능과 권한에 관련되는 부문이라서 그 역할과 임무가 지속성을 띠고 이쓴 것으로 여겨집니다

다만 이와 관련해서 전자들에서는 국내 섭외 단위및 국내 외국 기구 방첩과 국내 반체제 조직 인사를 담당하는 것으로 나오는 대내보방정찰국( 내보국)이 있는 데 후자에는 이러한 내보국에 해당하는 부서가 안 보인다는 게 조금 의아스럽더군요. 국내 섭외 단위 및 국내 외국 기관 인사에 대한 감시 수사는 반간첩 부분으로 이관?다고 가장할 수 있더라도 그 외의 다른 국내 반체제 대책 국가안전 위해 행위들에 대한 대처가 보이지 않는다는 게 조금 어색한 느낌이 듭니다. 반간첩 분야가 이러한 바를 다 흡수한 것인지- 이경우 반간첩 부문의 권한과 역할이 매우 증대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확실한 건 모르?습니다. (국가안전법에 규정된 국가 안전 위해 행위및 이 분야에서의 국가안전부의 권한은 중국국가안전법 및 국가안전법 시행 세칙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그 외로는 양자가 대체로 그래도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데- 위에 언급한 부서 변경으로 일부 부서가 호수를 바꾸어서 재배치된 게 있지만 그 명칭과 기능들은 대체로 존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14국으로 나오는 기술정찰국이 9국이 된거라든 지 , 1국 암호 통신 기밀을 취급하는 부서가 1국으로 나온 게 14국으로 표기되는 것과 같이- 15국에서 확연히 차이를 보입니다. 전자에서는 이 부서가 정보의 종합 분석 연구를 담당하는 종합정보 분석국으로 나오는 데 후자에서는 15국이 대항오 연구국으로 나옵니다. 이 건 대만 정보 관계자들의 발언과 이와 관련된 보도를 종합하면 15국은 대항오 연구국일 가능성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입니다 ( 해당 기사들에 대해서 여기를 참고) 다만 이렇게 보면 국가안전부 조직 구조에서 최종적인 정보 생산 판단을 담당하는 기능이 보이지 않아 역시 의문점을 던져줍니다. 이 경우 11국 정보자료중심국(중국현대국제관계연구원)이나 5국( 정보분석통보국)이 이러한 역할( 전체는 아니더라도 일부만이라도)이 맡고 있을 걸로 보이지만 자세한 건 역시 미정입니다. ( 일부 주장들에 따르면 11국 현대국제관계연구원이 국가안전부의 정보 분석 생산 기구로써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하는 데 역시 확실치 않습니다)

16국과 같은 경우는 전자에는 영상정보국으로 나오고 후자에는 컴퓨터 네트워크를 담당하는 전자 계산기 관리국으로 나오는 데 관련 보도나 일부 정황을 볼 때 후자의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뒤에 기술)

일단 이렇게 대충 내용을 정리해보았는 데 역시 알 지 없는 게 정보기관의 내부 조직이라 확실치는 않습니다. 다만 몇몇 단편적인 자료나 보도에서 이러한 내용을(일부나마) 입증 혹은 반박하는 부분 조각을 찾아 그 일부를 검증(이라고 이름붙이기도 미약하지만)하거나 혹은 이와 다른 내용에서 내용의 수정이나 혹은 조직의 개편을 암시하는 부분들을 찾아 보려고 삽질 할 뿐이죠

이런 내용들의 파편을 보면

우선 15국이 대항오 연구국이라는 건 위에 언급한 대만 정보 보안 관계자들의 증언에서 어느 정도 확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4국 같은 경우는 이 부서의 2003년도 신규인원 모짐 공고를 보면

공고는 여기를 참고


지원 대상을 공학전공자로 한정하고 또 한 모집분야를 전자 공학 통신 공학 마이크로 웨이브 무선전신 컴퓨터 관계로
규정하고 있는 것을 보아 해당 부서가 기술 계열 특히 통신 분야를 담당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이는 필요조건은 되어도 충분조건은 되지 못합니다. 기술 관계 부서라도 도 감청 등기술 정찰이나 첩보 장비 연구 개발에 종사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16국 같은 경우는 다음의 정황과 보도들을 볼 때 컴퓨터 전산 관계 부서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입니다

(적어도 2002년 기준으로는 )

우선 2001년 당시 중국 정보산업 협회 정보 보안 전문위원회 ( 中国信息协会信息安全专业委员会대략 정도로 )임원 명단을 보면

책임자인 주임에 국가정보화 센터国家信息中心 주임인 李正男이라는 인물이 있고 그 외 임원들 중 부주임으로 류롱핑刘容平이라는 인물이 있는 데 이 인물의 직책을 보니 국가안전부 정보화 센터 총공정사 国家安全部信息中心 总工로 나와 있던 데요. 업무 관계나 이 일의 성격으로 볼 때 정보 전산 쪽에 근무하는 것으로 보이며 정보 보안 분야에서 국가안전부를 대표해서 나온 걸로 여겨집니다.

그런데 그 이후 2002년 3월에 과학기술부 주최로 열린 국가정보보안기술입법심포지엄(国家信息安全技术立法研讨会)
관련 소식을 보니 참석자들에 대한 언급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더군요

회의주요 참석자로는 공안부 과기위원회 주임리 룬산 국가안전부 제16국 국장조리 류롱핑 신식산업부 정책법규사 부처장 양샤오 아 해관총서 과기사 부처장 류쩡칭 .....

会议主要参加人员有国家公安部科技委员会主任李润森、国家安全部第十六局局长助理刘容平、信息产业部政策法规司副处长杨少丽、海关总署科技司处长刘政清... ( 이하 략)

라는 기사에서 위에 언급한 류롱핑이 국가안전부 16국 국장 조리로 등장하더군요 물론 동명이인일 가능성도 배제하긴 어렵겠지만 관련 업무가 정보 전산 전문 분야라는 걸 볼 때 아무래도 동일인물이라고 생각하는 게 자연스럽지 않나 여겨집니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할 때 16국이 정보 전산 보안 관련 업무와 관계 있는 부서로 추산되고 이는 위에 언급된 바와 같이 16국이 전자 계산기 관리국이라는 내용과 맞아 떨어집니다

또 한 2004년 9월에 개최된 정보자원 개발 이용 고위 포럼信息资源开发利用高层论坛 관계 보도를 보면 참석자 명단에 다음과 같이 나와 있습니다 출처 중국 정보 산업 협회 전자 정부 전문 위원회

지아 즈 贾 智 국가안전부 정보센터 처장国家安全部信息中心处长
쩡취엔 陈正川 국가안전부 정보센터 연구원国家安全部信息中心研究员
류롱핑 刘容平 국가안전부 정보센터 국장조리国家安全部信息中心局长助理

이로써 미루어 볼때 이 류롱핑이라는 인물이 계속 국가안전부 전자 컴퓨터 국 국장조리로 재직하며 국가안전부 정보 센터国家安全部信息中心 를 관할하고 있다고 보여지고 아마 이 정보센터는 전자 컴퓨터 국 산하에 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 단 이 부서가 게속 호수가 16국인지 혹은 이름이 계속 유지되고 있는 지는 불학실함. 임무는 그대로라도 호수나 명칭이 바뀌고 업무가 확대되었을 가능성도 있음)

한 편 10국에 대하여 살펴 보자면

1999년에 나온 중국 방송 관계 법령 중 국가광파전영전시총국, 공안부, 국가안전부《임의적 역외 위성텔레비전방송 수신 및 중계 행위를 엄단하는 것에 대한 통지》(國家廣播電影電視總局公安部國家安全部《關于堅決査處擅自接收轉播境外衛星電視的通知》)를 보면 위성 방송 수신 중계 단속에 대한 각 업무분담을 이렇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1. 국가는 위성텔레비전방송의 지상수신시설(이하 위성지상수신시설이라 한다)의 생산, 수입, 판매, 설치 및 사용에 대하여 허가제를 시행한다. 라디오텔레비전행정부문은 위성지상수신시설의 관리부문으로 공안및 국가안전부문과 함께 위성지상수신시설의 관리를 책임진다. 라디오텔레비전행정부문은 위성지상수신시설 설립의 허가를 책임짐과 아울러 정보산업, 공상(工商), 세관 등과 협조하여 각자의 직능에 따라 위성지상수신시설의 생산, 판매, 수입, 설치 및 사용 등의 상황에 대하여 검사하며 공안부문은 이에 항거하거나 관리부문의 공무 집행을 저해하는 위법사안을 처리하는 것을 책임지며 관리부문에 협조하여 위성지상수신시설에 대한 기술적인 검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국가안전부문은 위성지상수신시설의 기술 및 성능에 대한 검사와 심의를 책임지고 기술안전검사를 함과 아울러 필요에 따라 기술적인 방지조치를 취한다.

一、国家对卫星电视广播地面接收设施(以下简称卫星地面接收设施)的生产、进口、销售、安装和使用实行许可制度。广播电视行政部门是卫星地面接收设施的归口管理部门,会同公安、国家安全部门负责卫星地面接收设施的管理工作。广播电视行政部门负责审批卫星地面接收设施的设立,并协调信息产业、工商、海关等管理部门按各自职能组织对卫星地面接收设施的生产、销售、进口、安装、使用等情况进行检查;公安部门负责查处抗拒、阻碍管理部门依法执行公务的违法犯罪行为,协助管理部门对卫星地面接收设施进行技术检查;国家安全部门负责检验审核卫星地面接收设施的技术性能,进行技术安全检查,并视需要采取必要的技术防范措施。

그리고 이 통지의 말미에 해당 업무를 수행하는 각 기관들의 담당 부서들에 대해서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각 지역의 정리정돈 상황에 대해서는 국가광파전영전시총국 사회사,공안부3국, 국가안전부10국에 각각 보고토록 한다"
各地清理整顿工作情况,请分别上报国家广播电影电视总局社会司、公安部三局、国家安全部十局。

1999年4月1日

해당 법령 내용은 방송위 방송조사 자료 2002-1호 중국방송법에서 발췌

이를 보면 공안부 3국의 경우 치안관리국이고 국가안전부는 기술 보안 검사를 담당하는 것으로 나와 있는 데 이 부서가
10국이라는 말은 10국이 기술 보안 검사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이러한 기술 보안 검사는 위에서 언급한 국가안전부 조직구조에 따르면 기술 정찰국의 임무인 데 이를 10국이 담당하고 있다는 것은 (위에서는 9국으로 나타났던 ) 기술정찰국이 10국이 되었을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 구조 개편이 이루어지거나 신설부서가 만들어지면서 이루어지면서 호수가 하나 밀렸다던 지 같은 내부 조정이 있지 않았나 봅니다. 이와 관련된 건지 모르?지만 2000년 말 국안부 15국장 대만 방문 관련 일부 언론 보도를 보면 국안부 9국이 대대만 공작단위라고 보도하여 내부조정 가능성을 암사히고 있으나 역시 확실한 것은 모르?습니다)

"중공국안부 15국은 대 대만연구단위 9국은 대대만 행동단위 중공군 측의 총참 2부는 대 대만 첩보단위
3부는 대 대만 전신단위로 지목되었다". 심층보도: 이 중공 특무두목들이 대만에 왔었는가? 인민보 2000년 12월 3일

据指出,中共国安部15局为对台研究单位,9局为对台行动单位,中共军方总参谋部2部为对台谍报单位,3部为对台电讯单位 内幕报导:哪些中共特务头子来过台湾?人民报 2000年12月3日


이외에 다른 개편 사항을 보자면 국가안전부 내에 대테러국이 새로 신설된 것으로 보입니다

국가안전부내에 대테러국이 설립되었다는 걸 보여주는 보도들로는

중국 국가안전부 대테러국 국장 리웨이는 홍콩 상보와의 인터뷰에서 근래에 중국인 중국기럽들의 출국 해외 진출이 갈수록 빈번해짐에 따라 해외에서 중국인이 테러 공격을 받을 위험 역시 늘어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中国国家安全部反恐局局长李伟,在接受香港商报专访时指出,这些年,随着中国人、中国公司走出去参与国际交往越来越频繁,中国人在海外遭受恐怖袭击的风险也会加大

전력을 다해 재외 노동자를 보호 중국은 테러와 타협하지 않기로 결의 , 환구시보 2004년 6월 14일 全力保护海外工人 中国决不向恐怖妥协, 《环球时报》 2004年06月14日

중국국가안전부 대테러국장 국가대테러 판공실 부주임 겸 중국현대국제관계연구원 대테러 연구센터 주임 리웨이는 어제 상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사건관련 정황과 아프간 현재 정세를 결합하여 근거하건 데 9월 아프간은 대선을 치룰 예정이고 아프간정부는 현재 정국주도력이 비교적 약한 상황으로 북부에는 지방군벌무장세력들이 세력을 잡고 있고 남부에는 알 카에다와 탈리반 잔당들이 활동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권위자들: 동 투르키스탄 분자들이 사건 유발 배제 못해 , 상보 2004.6.11

國家安全部反恐局局長、國家反恐辦副主任兼中國現代國際關繫研究院反恐怖研究中心主任李偉,昨天在接受商報獨家采訪時指出,根據事件的相關情況並結合阿富汗當前的形勢,9月份阿富汗將進行總統大選,阿富汗政府目前對局勢的控制是比較薄弱的,其北部仍是地方軍閥武裝在控制,南部仍有基地組織和塔利班殘餘在活動. 權威:不排除東突發動 商报 2004 6.11

들이 있습니다. 환구시보가 중국 관영언론인 인민일보 계열지이고 또 아래 상보 보도 역시 추측이나 풍문이 아닌 당사자와의 직접 인터뷰에 기반하고 있어 그 직책명이나 기관들을 정확하게 적고 - 중국 언론들도 보통 관행상 연구소라고 예전의 체제를 적는 편이 많은 데 현대국제관계연구소가 승격된 현대국제관계 연구원이라는 표현을 정확히 쓰고 있다는 데 주목- 있다는 것을 볼 때 이 보도들은 비교적 신뢰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이며 국가안전부에 대테러국이 설립된 것으로 보입니다

대 테러국의 설립시기는 불분명하지만 혹시 이 부서의 설립이 다른 부서들의 호수 변경 와 같은 내부 구조 개편 조정과
관련이 있지 않을 까라는 생각도 들지만 역시 확실한 건 알 수 없습니다

대 테러국 관계해서 흥미로운 점 중 하나가 이 대테러 국장을 중국현대국제관계연구원 대테러 연구센터 주임을 겸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대 테러 연구센터에 대해서는 여기를 참고

저런 내용을 볼 때 이 대테러 연구센터는 주로 대테러 방면에서의 이론 및 사례 연구 조사에 집중한 듯한 느낌이 듭니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게 이 대테러 연구센터가 이러한 조사 연구를 넘어서 실제 각종 현장 활동 공작을 통해
얻어진 작전상의 정보도 취급 이를 분석하느냐라는 점입니다

만약 그렇다고 하면 대 테러연구 센터는 대 테러국의 분석 연구 부문으로 작용하여 CIA 테러 대책 센터의 테러 분석실과 비슷한 역할을 하지 않을 까 싶고 CIA에서와 같이 대테러국 산하에 테러 정보 분석 부문외에 다른 부문 테러 정보 수집이나 현장 활동 집행 부분들이 있지 않을 까 싶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현대 국제관계연구소가 사실상 국가 안전부의 분석 정보 생산 부문으로써 기능한다는 주장이 어느 정도 타당성 있게 보입니다

이와 관련된 주장을 보면

스가누마 管沼 -한층 더 주목 해야 할 것은 최근, 국가안전부의 분석부문이 충실해졌다는 것입니다. 국가안전전부의 분석부문은 현대국제관계연구소라고 해서, 동복아시아의 안전보장에 관한 심포지엄 등에는 그 곳의 연구원이 중국대표로써 잘 참석합니다 최근까지 부장(대신)을 맡았던 가춘왕이 CIA를 모델로 기구개혁을 한 성과라고 말해지고 있습니다


하루나春名- CIA의 분석부문은 포토맥 강반의 하바드라고 불리울 정도로 우수한 학자가 많이 있어 정도가 높은 분석을 행하고 있으니까요


스가누마 管沼 -거기에 필적하는 분석능력을 갖추는 데 성공하여 가춘왕은 공안부장으로 영전되었습니다...

스가누마 미츠히로 管沼光弘 하루나 미키오春名幹男 대담 첩보열국 닛폰 쇼군 諸君 2002.68

여기서 나온 스가누마 미츠히로는 전 일본 공안조사청 조사 제2부장( 해외 정보 책임자)이고
하루나 미키오는 교도통신 논설 부위원장이며 정보 첩보 관계에 조예가 깊은 저널러스트로 해
당 분야 관련 기사 저서들을 다수 저술하고 또 한 이 분야에 폭?은 인맥을 가진 인물입니다.

해당 인물들의 이력으로 봐서 영 아닌 소릴 할 인물들이 아니라 어느 정도 수용할 만 하지만 중국 같은 경우는
워낙 알려진 게 없으니 딱히 이렇다 할 만한 건 못 되더군요



그리고 국가안전부 조직 구조 관련 자료 중 상당히 초기에 본 건데- 본지가 10년을 훨씬 넘었지만 아직 그 출처를
파악하지 못하는 내용이 있는 데

여기에 따르면

1국 비밀정보 수집
2국 공개정보 수집
3국 대만 홍콩 마카오 국
4국 기술정찰/조사국
5국 방첩정보/반간첩정보국
6국 방첩조사/반간첩정찰국
7국 정보분석(통보?) 국
8국 공개자료정보국 ( 정보자료 중심? 현대국제관계연구소?)
9국 해외조직보안/외보정찰국
10국 미상

그 외

판공청
행정관리국
인사국
대외협력국(외사국) 등이 있음

출처; 세계의 정보기관들 중국 편 ( 최명호 편, 대왕사)

이 내용을 위에 언급한 쟁명지 기사에 나온 내용과 비교하면 꽤 잼나는 양상이 보입니다

그 내용을 보면

1국-국내국
국내에서 해외 정보 공작 공작 파견자 물색 각종 유학생 기업인 등 출국자 대상 .
해외서 귀국한 중국 공작원 접대 (인사국과는 별도로 정보 수집 Agent 물색)

2국-국외국
해외 정보수집 정보원 해외 파견 . 각 종 커버 활용 외교관은 물론이고 각종 기업 은행 금융 업체
언론사 명의 . 해외 정보 공작 지휘

3국- 항오대 국
홍콩 마카오 대만 지역 정보 공작 활동

4국 -기술국
각종 기술 연구 장비 개발 (기술 정찰도 담당?)

5국-지방정보국
각 성 시 국가안전부.청 업무 활동 지도

6국-반간첩국
방첩 중국내 외국기관 외국인 감시 및 반체제 조직과의 연계 감시 조사

7국-통보국
각종 정보 자료 종합 취합하여 비교검증을 거쳐 정보 소요자.정책결정자들에게 전달.
특정 정보 전달 여부 판단

8국-연구국
현대국제관계연구소 정보 분석 생산

9국-빈책반반정찰국
외국 정보기관의 국안부 및 재외 중국 공관에 대한 접근 침투 방지 보안
감시 추적. 해외 유학생 및 해외 반체제 조직 감시 단속

10국-과기정보국
경제 과학기술 정보 수집

11국-전자계산기국
국안부 내 컴퓨터 망 관리 컴퓨터 체계 보안. 관련 정보 기술 수집 연구

그 외 외사국 판공청 정치부 인사교육국 감찰심계국 기관당위 등이 있다

"花木奄映的間諜總部" 『爭鳴』 1997年 3月

이라고 나와 있는 데 아마도 내용으로 보면 초기 조직으로 예상됩니다.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국내국의 성격이 조금 애매하고 여기에 대한 진술이 일부 상충된다는 것이나 위의 자료들처럼 기술국이나 방첩국이 분화되어 나타나지 않았다는 게- 기술 정찰/기정과기, 반간첩 정보/반간첩 정보 식으로- 나타나지 않았다는 게 보이지만 다른 내용과 비교하면 나름대로는 참고는 됩니다

이를 보면 수집국으로는 국외국과 과기정보국을 언급하고 있어 정치정보와 경제과기정보 부서가 별도로 있는 양상이 보여지며 항오대/대항오 국의 존재를 보여주고 있으며 반간첩의 경우에는 정보/정찰의 분화가 보여지지 않기는 하지만 부서 배열의 기본은 상당히 세계의 정보기관 중국 편에 나온 것과 일치하는 모습이 보여집니다.

전자에서 정보분석국을 정보분석 통보국으로 가정하고 또 공개자료정보국을 개론 96, 99년판에 나온 내용에 비추어 현대국제관계 연구소로 상정한다면 양자는 상당히 일치하는 모습을 보이며 개론에 나타난 내용들과 비교하면 기본 부서 편성의 틀에서는 합치하는 점이 보인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특히 쟁명에 나타난 내용에 지역정보국이 나온다는 건 개론 96년판에 업무지도국이 나온다는 걸 볼 때 꽤 흥미롭습니다.

이런 비교를 통해 세계의 정보기관 중국 편에 실린 내용을 살펴보면 그 이후에 나온 자료에 나타나고 있는 국가안전부 조직의 기본이 나타나 있다는 점에서 초기 자료 치고는 상당히 신뢰할 만한 것으로 여겨지는 데 한 가지 아쉬운 건 이 걸 본지 20년에 거의 육박하는 지금에 와서도원 출처는 모르?습니다

이 내용이 나온 저 세계의 첩보기관에 보면 해당 조직도의 출처가 나온 책이 나오긴 하는 데 거기 나온 책
北京私書箱一號 1980년이라고 출처를 밝히고 있는 게 문제입니다. 국가안전부는 1983년에 만들어 졌는 데
1980년에 나온 책에 어떻게 그 조직에 관한 내용이 실릴 수 있는 지... (먼 예언서냐)

혹시나 만약 국가안전부가 창설된 게 좀 더 일찍이고 다만 공식적으로 발표한 시기가 1983년이라면 저기 나온 내용들이 80년에 나온 책에도 기릴 수 있징낳을 까 하는 정말 억지 아닌 억지 기대를 가지고 문제의 그 책을 찾아보긴 ?는 데 위에 나온 저 내용들은 없더군요

내각정보조사실 관계 항목 몇 가지

일본 국회 참의원 내각 위원회 의사록 2004년 11월(参議院 内閣委員会平成十六年十一月四日) 부분발췌

내각정보조사실 차장 이시사키 신이치(伊佐敷眞一) 내각관방 장관 호소다 히로유키(細田博之) 국회 답변

정부 참고인(伊佐敷眞一)
현재의 우리 나라의 정보 체제에 대해서는, 몇개의 부서에 분산되어 있습니다. 그 중 하나로 내가 현재 속하고 있는 내각 관방의 내각 정보 조사실이 있습니다.그 외 , 외무성, 방위청, 경찰청, 공안 조사청, 합계 다섯 개의 성청이 정보에 관계하고 있습니다. 각각의 목적에 따라 설치되어 있는 것이고, 각각의 임무에 따라 정보를 수집해 분석을 하고 있습니다.
내각 정보 조사실은, 이러한 복수의 성청이 모아 분석한 정보를 집약해서, 정부 수뇌에게 제공한다는 임무를 가지고 있습니다.이 관계 성청 간의 제휴를 원활히 하기 위해서, 몇 개의 회의도 설치되고 있습니다. 개요, 이상과 같은 체제로 현재는 정보의 수집, 분석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정부 참고인(伊佐敷眞一)
....조직적으로 말씀드리면, 총무 부문, 이것은 어떠한 조직에도 있는 것입니다만, 인사라든지 예산이라든지, 그런 것을 담당하고 있습니다.그리고 국내 부문, 이것은 국내의 정세에 대한 정보의 수집, 분석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국제 부문, 이것은 대외 정보입니다. 경제부문, 경제 관계로, 특히 중요한 것을 취급하도록 하는 , 그러한 것을 취급하는 부문으로서 있습니다.그리고 마지막으로 정보집약센터, 이것은 여러 가지 정보를 적확, 신속히 모아서, 이것을 즉시 정부의 수뇌에게 올리는 것으로, 긴급사태의 초동 태세, 신속한 초동 태세의 확립에 공헌하기 위해서 설치되고 있는 부문입니다 이 부문을 합계해서 엄밀하게는 1백65명입니다.이 중 내각 정보 조사실 채용의 사람이 73명, 그 이외의 사람은 관계 성청로부터의 출향입니다만, 중심이 된 것을을 말씀드리면, 경찰청이 42명, 공안 조사청이 15명, 방위청이 9명, 내각부가 7명, 해상보안청이 6명, 외무성이 3명, 이하 2명내지 한명의 성청이 몇 개 있습니다.
政府参考人(伊佐敷眞一) 

現在の職員は、先ほど約百六十名と申し上げましたが、厳密には百六十五名でございます。このうち内閣情報調査室採用の者が七十三名、それ以外の者は関係省庁からの出向でございますが、重立ったところを申し上げますと、警察庁が四十二名、公安調査庁が十五名、防衛庁が九名、内閣府が七名、海上保安庁が六名、外務省が三名、以下二名ないし一名の省庁が幾つかございます。

국무 대신(호소다 히로유키)
위원이 지적대로, 매우 국제 정세도 어려워지고 있고, 테러 활동이 격렬해지고 있는 일도 사실입니다. 9·11의 사건, 테러의 이후, 각의 결정등에 의해 한층 더 이 테러 방지책의 강화라는 것을 정부 부내에서도 결정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후도, 지금 논의가 있었던 것과 같은 내각 정보 조사실의 정원의 대폭 증가라든지, 정보 수집 위성의 도입 및 이것에 수반하는 내각 위성 정보 센터의 설치라든지, 혹은 신관저 정비에 수반하는 내각 정보집약센터의 속보 기능의 발본적 강화 등등을 실시해 오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의 체제로 꽤 진행되었다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가 일어났을 때에 쫙 모여서 , 위기관리에 임하는 내각 정보집약센터, 신관저 내 에 모이고 대책을 강구하는, 이것은 매우, 요즈음의 인질 사건이라든지 수해, 지진 재해, 그렇게 말한 것이라도 각각의 분야에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상당 충실했다고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단지, 위원 말씀하신 것 같이 ,그런 것이 일어나서는 안 되고 , 옴 진리교에서도, 옴 진리교의 지하철 사린이 일어나고 나서 맹렬한 체제로 했다고 하는 것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일어나지 말야야 된다고 하는 생각이 기본이므로, 그렇게 말하다는 점에서는 향후, 외교면 혹은 방위면, 치안면이라고 하는 정보를 위지와 수집하면서 분석하지 않으면 않되며, 그것을 위한 전체의 기능의 충실 강화, 이것도 필요하므로, 부단한 검토를 행하고 싶습니다

国務大臣(細田博之) 
委員が御指摘のとおり、非常に国際情勢も厳しくなっておりますし、テロ活動が激しくなっておることも事実でございます。九・一一の事件、テロの後も、閣議決定等により更なるこのテロ防止策の強化というものを政府部内でも決定をいたしておるわけでございますけれども、その後も、今御議論のありましたような内閣情報調査室の定員の大幅増とか、情報収集衛星の導入及びこれに伴う内閣衛星情報センターの設置とか、あるいは新官邸整備に伴う内閣情報集約センターの速報機能の抜本的強化等々を行ってきておるわけでございます。
今の体制でかなり進んだなというのは、何かが起こったときにぱっと集まって、危機管理の内閣情報集約センター、新官邸の中で集まって対策を講ずる、これは非常に、昨今の人質事件とか水害、震災、そういったものでもそれぞれの分野でやっておりますけれども、これは相当充実したということは事実でございます。
ただ、委員おっしゃいますように、これは起こしちゃいけないんで、オウム真理教でも、オウム真理教の地下鉄サリンが起こってから猛烈な体制でやったということはありますけれども、あれを起こしちゃいけないという考え方が基本でございますので、そういった面では今後、外交面あるいは防衛面、治安面という情報をきちっと収集しながら分析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し、そのための全体の機能の充実強化、これも必要でございますので、不断の検討を行ってまいりたいと思います 

2005년 4월 8일 중의원 안전보장 위원회 회의록 발췌

정부측 참고인 이시사키 신이치伊佐敷政府参考人(내각정보조사실 차장)답변 내용

현재의 내각정보관은 정례의 보고로써도 총리에 매주 1회 브리핑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정례의 보고 이외에도
중요한 정보나 시급을 요하는 정보가 있을 경우에는 24시간 체제로 총리에 수시보고 하는 게 당연합니다
보고의 내용은 내각의 중요시책에 관한 정보전반에 걸쳐있쳐 있지만 그 중심은 외교 안전보장 관계의 정보에 있습니다
내각정보조사실이 자체적으로 행하는 정보조사 활동의 성과 외에 각 성청에서 집약된 정보의 분석결과들도 보고되고
있습니다.  

現在、内閣情報官は、定例の報告といたしまして、総理に毎週一回ブリーフィングを実施しております。定例の報告以外にも、重要な情報や急を要する情報があります場合には、二十四時間体制で総理に随時速報しているところでございます。報告の内容は、内閣の重要施策に関する情報全般にわたりますけれども、その中心は外交、安全保障関係の情報でございます。内閣情報調査室がみずから行った情報調査活動の成果のほか、各省庁から集約した情報の分析結果等も報告してございます。

문. 총리한테 보고할 ? 대략 몇 분이나 걸립니까?

답 내각정보관의 정례 브리핑은 대개 20~30분 정도입니다内閣情報官の定例ブリーフは、おおむね二十分から三十分でございます。

문 주에 한 번 20분으로부터 30분으로, 어떤 정보가 이야기되고 있는 것인지 , 게다가 전체중에서 외교 정보는 그 일부라고 하는 이야기였으므로, 몹시 걱정스럽게 생각합니다. 지금 정확히 각 성청로부터 올라 오는 정보라고 하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만, 내가 알기로는, 물론 지금 이야기가 있던 것처럼 긴급, 임시라도 개최된다고 하겠지만, 관방장관이 주재하는 내각 정보 회의는 1년에 2회, 그 하부가 된다고 할까 라는 사무의 관방 부장관이 주재 하시는 합동 정보 회의가 매월이라고 하는 식으로 듣고 하고 있습니다만, 그러한 인식으로 좋을까요.일찌기 참가를 하신 분에게 비공식적으로 이야기를 물으면, 저 것은 (단순한) 대면이라고 말하는, 이런 이야기도 있었습니다만, 여기에 대해 조금 듣고 싶습니다


답 내각 정보 회의는 연 2회 개최되고 있습니다. 합동 정보 회의는 격주로 열리고 있으므로, 2주간에 1회 열리고 있습니다.합동 정보 회의는, 지적하신대로, 관방 사무부장관이 주재하는 한 관계 부처 국장 클래스의 회합입니다.

<질문의 의도는 메주 1회 한 번 2,30분의 정보보고로 충분한 정보가 보고 될 수 있느냐 또 한 정보 활동의 기획 조정 및 각 성청간의 정보연락을 위해서 내각정보회의 ( 관방장관 주재 사무차관급 인원으로 구성) 그 하부의 실무기구로써 합동정보회의( 사무 담당 관방부장관 주재. 각 국장급 인원)이 있긴 하지만 그 회의 빈도 수가 적고 또 내용에서도 충분한 정보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는 지 의심스럽고 이에 대해 염려가 간다는 내용이었는 데 답변은 그 냥 양 회의의 정기개최 빈도만 언급하는 걸로 끝냈으니 ..(이미 질문자가 알고 있는 내용)
이거야 말로 관료적 답변이라는 게 어떤 건가를 보여주는 실례. >

문 각 성청로부터의 정보의 집약에 대해서는, 본회의서 혼다 의원의 질문에 대해서 호소다 관방장관이, 「각 부처가 수집한 정보 중 중요한 것은, 내각정보조사실을 통해서 신속히 내각 하에 집약되어 종합적인 평가, 분석을 실시하는 구조가 이미 구축되고 있는 중」, 이와 같이 답변을 받고 있습니다만, 이 내각 정보 조사실이라는 것, 꽤 각 성청의 출향자 분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만, 대략의 인원수, 구성을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답.  내각정보조사실은, 2005년(헤이세이17년) 4월 1일 현재, 약 1백70명의 체제입니다. 구성은, 내조 고유의 직원이 약 70명, 경찰청으로부터의 출향 파견자가 약 40명, 공안 조사청으로부터의 출향 파견자가 약 20명, 방위청으로부터의 출향 파견자가 약 10명, 그 외 외무성, 총무성, 소방청, 해상보안청, 재무성, 경제 산업성등으로부터 약간 명을 받아 들이고 있습니다 (참고 2004년 답변 1백65명.이 중 내각 정보 조사실 채용의 인원이 73명, 그 이외는 관계 성청로부터의 출향. 경찰청이 42명, 공안 조사청이 15명, 방위청이 9명, 내각부가 7명, 해상보안청이 6명, 외무성이 3명, 이하 몇 개 성청에서 2명내지 한명 ) - 공조와 방위청 출향자 증가


문. 지금 말씀하신 내각 정보 조사실이라고 하는 것이 각 성청로부터 정보를 모으는 권한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법적인 근거가 있는 것입니까.

답. 내각 관방 내각 정보 조사실로부터 관계 성청에 대해서 정보 제공을 요구하는 것에 따라서, 법적인 권한으로서 명확하게 규정한 것은 없습니다만, 내각의 최고 의사결정 방식인 각의 결정에 의해, 각 성청은 긴급사태가 발생할 우려가 있는 정보등을 파악했을 경우에는 내각 정보 조사실에 즉시 보고하는 것으로 되고 있습니다.
또, 이른바 정보 커뮤니티라고 칭해지는 정보 성청 사이에 있어서는, 방금전 선생님이 지적하신 내각 정보 회의나 합동 정보 회의의 장등을 통해서 긴밀한 연락을 유지하고 있어서, 필요한 정보는 내각 하에 집약되어 정부로서의 대책에 반영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内閣官房内閣情報調査室から関係省庁に対して情報提供を求めることにつきましては、法的な権限として明確に規定したものはございませんが、内閣の最高意思決定方式であります閣議決定により、各省庁は緊急事態が発生するおそれのある情報等を把握した場合には内閣情報調査室に直ちに報告することとされております。また、いわゆる情報コミュニティーと言われる情報省庁間におきましては、先ほど先生御指摘の内閣情報会議や合同情報会議の場等を通じまして緊密な連絡を保っておりまして、必要な情報は内閣のもとに集約され、政府としての対策に反映されているものと考えております

문... 앞 부분 전략... 내각으로서는, 일단 이 정보 회의, 합동 정보 회의의 멤버가 대개 정보 커뮤니티라고 하는 구성이라고 하는 이해해도 좋을까요.

답 선생님이 지적하신 대로, 내각 정보 회의, 합동 정보 회의의 구성 멤버를 정보 커뮤니티의 멤버라고 하는 식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물론, 필요에 따라 그 이외의 성청로부터의 참가를 요구하는 것도 있으며, 그러한 사례도 사실 있습니다


일본 해외 정보전문 수집 부대 신설
http://www.east-asia.org/admin/import!Downld.asp?tblName=ref&ID=159 http://www.sejong.org/institute/korea/Publications/ns/ns/ns0902/ns0902-a4.pdf

방위청은 자위대의 해외파견 시의 정보수집을 강화하기 위하여 육상자위대에 중앙정보대 (약 600명)을 신설할 방침이다. 문헌중심의 정보수집 방식에서 벗어나 직접 해외의 요인을 만나 탐문하는 전문대원을 처음으로 신설한다. 이 부대는 내년도계산요구에 반영할 방침이다. 또 한 육자의 해외파견대기요원으로 상시 2600명을 지정할 제도도 신설할 방침으로, 이에 따라 해외파견 태세가 대폭적으로 강화된다.
내년도말을 목표로 편성될 방침인 중앙정보대는 . 국.내외의 지리 정보담당의 중앙지리대 (도쿄도 다치가와시)와 외국군의 정보등 을 담당하는 중앙자료대 ( 신주쿠 구)를 통합하여 정보처리를 효율화한다. 그 외 이 부대에 파견국에 요인등에 정보를 탐문하는 전문부대(10명)을 4팀으로 새로 편성한다. 해외서의 정보수집전문부대를 편성하는 것은 이 번이 처음이다 . 캄보디아 국제연합평화유지활동 이래, 자위대는 파견의 실시요령 등에서 부대의 안전에 관련되는 정보수집을 의무지워지게 되어 이를 국제연합 산하의 각국파견부대에 의존하였다. 그러나 이라크 파견에는 국제연합에 해당하는 상부기관이 없어, 독자의 정보수집을 압박받게 되었다. 이러한 경험에서 해외파견시 지역정세를 파악하는 전문부대를 창설하게 되었다
그러나 육상자위대가 파견되어 있는 이라크 남부의 사마와에는, 각 부족간의 이해대립이 있는데다가 각양각색의 반미세력이 수도방면으로 향하는길목이기도 하다.( 陸自が派遣されているイラク南部サマワでは、部族間の利害対立があるうえ、様々な反米勢力が首都方面へ向かう通り道ともなっている) "박격포를 쏘아대는 범인상 등을 둘러싸고 확실한 정보원을 찾는 것은 곤란"( 육자간부)이라는 것처럼 실제의 정보활동에는 곤란도 따를 것으로 보인다.

또 한 07년도를 목표로 국제긴급원조부대의 대기요원에 추가하여, 육자에 지역별로 5개의 방면대중 2개 부대에서 , 각기 1300명을 대기요원으로 지정하는 제도를 제정한다. 이들은 정기적으로 예방주사를 맞는 등 돌연의 해외파병에 대비할 테세를 갖추게 된다. 현재 방위청은 국제긴급원조부대에 대하여 자위관 약 250명을 대기요원으로 지정하였으나, 올해 인도네시아의 쓰나미 피해의 재해파견과 이라크 파견이 겹쳐서 요원이 부족하게 되었다고 판단했다
대기의 규모를 2600명으로 한 것은 약 600명이 파견된 이라크보다도 더 대규모 지원에도 대응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출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한다. 2개의 방면대서 대원이 대기되는 것은 2개의 대규모 국제활동이 겹칠 ?에 대응하기 위해서이다. 작년말 각의에서 결정된 자위대의 기본을 규정하는 방위계획의 대강에서는 국제공헌이 임무로써 강조되어 대기테세 등의 강화가 울려퍼지고 있다 (2005年08月25日, 朝日新聞 )

내용을 보니 대략 PKO및 해외 파병에 대비하여 현지 지역 정세를 파악하는 부대를 신설한다는 거군요. 뭐 PKO 활동이든 재해구호 든 해외에 파병을 하기에 앞서 현지 정세나 정황을 파악하고 여기에 대한 대책을 수립하고 만약의 돌발사태에 대응하는 것은 원론상으로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긴 하지만 웬지 찜찜한 느낌이 드는 거는 어쩔 수 없군요

현재로써는 자세한 내용이 밝혀지지 않지만 일단 기사에 나온 것을 바탕으로 몇 마디 덧붙여 봅니다

일단 저 부대의 기반이 될 중앙지리대는 국내외 활동에 대비하여 일본 및 세계 각지의 지도 지리 지형 측지 정보의 수집 지도 제작, 관리를 담당하던 곳이고 특히 국내 업무에 관해서는 관내 경비 지지를 작성하던 곳입니다. 이러한 지형 측지에 대한 정보는 위성 정보 화상 판독의 기반을 이루는 바 위성 화상 판독 업무와도 관여되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또 한 저 부대가 담당?던 경비 지지 작성을 보면 이는 과거 치안 출동이나 국내 비상사태 발생을 대비하여 작성하던 것으로 여기에는 해당 지역의 지세 지형 입지 및 주요 시설물 위치 이동 보급로 우회로 등 그 외 부대 작전 전개에 필요한 각종 지리적 사항등이 망라되어 있습니다. 또 한 이 지지에는 이러한 자연 물리적 지리 사항 뿐 아니라 비상 사태에 대비하여 해당 지역 내 도시 및 마을 규모 주민 거주 상황 , 정치적 성향 , 여론 동태 등과 같은 주변 지역 내 전체적인 자연 사회 조건도 포함되어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해당 지역내 요주의 인물 불순분자 분포 , 활동 상황 빈도 조직 여부 등과 같은 사항까지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이러한 업무가 대략 PKO작전이나 지금 해외 파병지에서 활동 특히 이라크 상황과 관련지어 보시면 어떤 내용이 될 지 참 관심이 갑니다)

또 하나의 기반이 될 중앙자료대라는 곳은 국 내외 군사 관계 각종 언론 보도 간행물 서적 넷 등 각종 공개 자료를 수집 정리 번역하고 이를 분석하는 곳입니다. 해외 파견과 관련하여 보면 이 중앙자료대 정보가 바탕으로 하여 일단 파견 지역에 있어 기본적 개관과 일반 정보를 제공하고 이를 바탕으로 보다 구체적인 정보 수집이 지정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니다. 또 한 이 중앙자료대는 유사시에는 문건 자료들을 수집 분석할 뿐만 아니라 포로 심문 정보 청취 까지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이러한 기능이 해외 파병 시에 현지에서 어떻게 작용할 것인지도 주목됩니다.

그 외에도 또 주목되는 점으로는 현지 요인들에 대한 면담 청취를 통해 정보를 수집하는 부대를 신설한다는 점입니다. 해외 요인이라고 하면 우선은 해당국 안보 외교 관계 고위 관계자들로시작하겠지만 실제로 현지에 파견되어 활동에 들어가면 실무 종사자 활동 지역내 관계자들과도 접촉 탐문할 것으로 생각되며 그 범위는 더욱 확장될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중앙지리대가 가진 경비 지지 작성 업무나 중앙 조사대의 심문 조사 업무 기능과 관련지어 생각할 때 그 업무는 보다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생각됩니다. 위의 기사에서 언급되었지만 박격포 공격을 하고 내?는 범인이나 현지 무장세력들에 대한 정보조사는 결국 현지내에 인적 정보 자원, 협력자를 운용이 요구되고 따라서 장기적으로 볼 ? 이러한 현지 탐문 조사 활동은 본격적인 HUMINT 활동으로 확장될 수 있다고 여겨집니다.

이러한 바로 보듯이 신설되는 저 부대는 여태컷 문헌 및 2차적 조사 혹은 기술적 방법에 의한 정보 활동에서 벗어나 직접적이고 보다 실전적인 정보 활동에 종사할 것으로 생각되며 이는 최근 몇 년간에 전개된 자위대의 실전적 운용 및 배치 태세 강화- 대표적으로 통합 운용 체제의 설립 및 전비 태세 강화를 들 수 있습니다-와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보이며 최근 강조되고 있는 정보 수집 분석 강화도 이러한 실전적 활동을 지원하고 여기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전개 발전되고 있는 한 징표로 여겨집니다.

이 외에도 이러한 실전적 적용 및 현장 지원 태세에 초점을 맞추고 정보 역량을 확대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몇 가지 사례를 들어봅니다

2003년도 기준으로 방위청 정보본부의 화상부를 화상 지리부로 확대 개편한 데 이어 2004년에는 화상 지리부에 공간정보업무 개념을 도입하였습니다. 平成16年度防衛力整備と予算の概要


이는 워성 및 항공 사진 분석에 지리정보를 추가하여 분석 능력을 강화하려는 시도이면서 동시에 이 공간 정보Geospatial Intelligene라는 용어로 봐서 화상 지리 정보를 융?한 GISINT (Geospatial Intelligene) 개념을 도입한 걸로 보여집니다

종전의 위성. 항공 사진들의 화상 정보나 혹은 지리 측지 정보가 해당 대상을 중심으로 한 수집 분석이었던 것에 반하여 이 GISINT는 화상 정보 와 지리 정보를 바탕으로 그외 다양한 정보원에서 나온 관심 지역내의 공 시간적 특질 그 외 환경 기후 같은 요소들를 융합하여 관심 대상에 대한 정보를 종합적 측면에서 생산하며 특히 사용자의 의도와 그 특정 행동에 있어 촛점을 맞추어서 이를 극대화하고 특정 활동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형태로 그러한 특성에 맞춘 정보를 생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서 종전에는 위성 사진으로 적 부대가 있다는 걸 판독하고 이들의 의도와 능력을 파악하는 식이었다면 이 GISINT에서 그 적 부대 뿐 아니라 그 해당 공간에 있어 지형 지세 고도 거리 그리고 다른 적 전력, 혹은 아군 전력과의 거리 위치같은 다른 대상들과의 관계 이들 모두가 대상이 되며 이를 종합적으로 계량.분석하고 또 한 그외 해당 지역내의 기후 기온 습도 같은 다른 환경적 요소 그리고 해당 대상의 운동 이동 같은 시간적 특질들까지 모두 고려하여 적에 대한 목표 조준 공격에 최적화된 상태로 재단된-예를 들어 각도의 변화 3차원 렌더링 시계열적 분석 및 시뮬레이션과 같은 방식을 통하여- 시각적 정보로 표현 제공하여 그러한 행동을 가능케 하는 데 촛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GISINT에 대한 개념적 설명에 대해서는 여기를 참고. 사실 저도 잘 모릅니다. 그냥 이런 게 있더라 하는 수준만 아는 정도이니 혹시 잘 아시는 분 계시면 지적 부탁드립니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GISINT는 정보의 실전적 활용의 차원에서 특히 특정 의도 방향을 지원하기 위한 성격을 띄고 있습니다. 따라서 화상 지리부에 GISINT개념이 도입되었다는 것은 정보 역량의 실전적 활용의 한 예로 보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 정보본부 창설 당시 화상부문의 모체가 되었던 101측량대대가 중앙지리대 소속이었다는 게 중앙정보대에 대한 화상 시각 정보 지원과 어떻게 연결될 지 무척 관심이 갑니다)참고1


(1)情報収集・分析体制の強化

○情報本部における空間情報業務実施態勢の整備
○衛星画像の解析技術の高度化を図るため、情報本部画像・地理部に研究担当部門を新設【新規】
○情報本部の要員の増強(緊急・動態部、画像・地理部、電波部等)
○情報収集器材・装置の充実
平成16年度防衛力整備と予算の概要


또 한 전파정보 수집에 있어서도 사실상 내조 직속의 정보본부 전파부 와는 별도로 자위대 자체의 정보 수집 역량을
강화하고 있는 것도 역시 실전적 지원 적용에 촛점을 맞춘 정보 역량 강화의 한 표지로 보입니다 참고2


일본, 동지나해 전파탐지 증설 중국정보의 수집을 강화 産經新聞 2004. 11. 5.

방위청 검토, 군함이나 항공기 감시

방위청은, 항공자위대가 교신정보나 전자정보를 탐지하기 위한 지상전파측정장치의 정비계획을 추진하고 있는데, 2008년도의 운용개시를 목표로 하고 있는 오키나와縣 宮古島에 추가하여, 남서방면에 또 1개소 더 설치함이 불가피하다고판단, 후보지 선정을 검토하고 있음이 4일, 밝혀졌다. 최근, 동지나해의 일본의 배타적경제수역(EEZ) 부근에서의 중국에 의한 가스유전개발, 중국군 함정이나 항공기의 활발한 활동 등의 움직임을 접하고, 중국정보의 수집 태세를 강화하겠다는 저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남서방면에서는, 항공기의 항적 등을 잡을 수 있는 공군자위대의 레이더 부대가 이미, 鹿児島県의 沖永良部島, 沖縄県의 久米島, 宮古島 등에 전개되어 있다. 그런데 전파측정장치에 의한 교신정보나 전자정보 등은, 福岡縣 背振山(공군자위대)이나 鹿児島県 県喜界島(정보본부)에서 수집하고 있을 뿐으로, 「태세강화가 과제」(방위청 간부)로 되어왔다. 방위청에서는, 내년도 예산에서 전파측정장치 시스템설계 등으로 약 1.5억엔을 요구, 2008년도말의 운용개시를 목표로 하고 있는 宮古島 이외에, 이미 1개소 더 설치할 계획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對소련, 對러시아로부터의 정보수집의 중점을 두어 온 공군자위대는, 전국 28개소에 있는 레이더 사이트 중에 주로 북부 항공방면부대인 稚內, 根室, 奥尻(北海道)의 3곳에서 항공기의 항적추적과 전파측정장치에 의한 정보수집을 행해왔다. 전파측정장치 시설에 배소되어 있는 대원은, 주로 러시아어 전문으로, 러시아군의 교신정보나 러시아기의 전자정보를 24시간 태세로 경계 감시하고 있다. 그러나, 냉전구조의 붕괴나 센가쿠열도에 대한 중국의 영유권 주장, 대만해협의 긴장, 또한 최신의 동지나해의 일본의 EEZ부근에서의 중국에 의한 가스유전개발이나 중국군의 함정이나 잠수함, 항공기의 활발한 움직임 등을 접하고, 방위청에서는 「앞으로는 중국정보의 수집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강하고, 背振山、宮古에 이어 「거점」의 필요성이 높아져, 후보지 검토 준비를 추진하고 있다. 방위청에서는, 福江島、下甑島, 沖永良部島、久米島라는 현재 공군자위대의 레디어 사이트가 있는 4개 기지를 후보지로 하고 있지만, 커버 범위를 서로 보안하는 효율적인 배치 등에서 福江島와 下甑島가 유력시되어, 연초부터 유력시되어 본격적인 검토에 들어간다.
이를 두고, 공군자위대도 자위관의 어학교육을 전문으로 행하고 있는 육상자위대의 小平학교(東京都小平市)에 대원을 파견하여, 앞으로 중점적으로 중국어 전문관의 양성을 행할 준비를 추진하고 있다.



또 한 방위청은 자위대의 실전적 운용 능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협의체적 성격이 강한 통합막료회의를 폐지하고 종전까지 각 자위대가 개별적으로 하던 실전 배치 활동 계획 .운용을 일원화시켜, 보다 강한 통제력을 지닌 통합막료감부를 설치하여 3군 자위대의 실전 운용 및 통합 부대 편성 .지휘에 관한 권한을 부여할 계획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2007년말을 목표로 진행중인 이러한 지휘 운용 체제 개편안에 따라서 기존의 군사 정보 체계도 당연히 여기에 맞는 방향이 개편이 진행 중입니다. 그 주요한 내용을 보면 현재 통막 하에 있는 정보본부는 장관 직속으로 개편되어 보다 광범위한 차원에서 정보를 수집 분석하여 이를 장관에 직보 하도록 하였으며 실전 운용 지원에 있어서는 기존의 긴급 동태부를 폐지하고 대신 통합정보부를 신설하여 실전 작전 부대에 대한 정보지원을 강화할 예정입니다





2005년 방위백서

이 통합정보부는 통합막료감부의 설치에 따른 통합운용에 대한 정보기능을 강화한다는 목적으로 해당 분야의 정보를 정리 통합하여 설치되는 것으로 작전 및 현장 활동에 대한 정보 지원을 담당할 것으로 보이며 사실상 통합막료감부의 정보부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보입니다.(현재 발표된 통합막료감부의 예정 직제는 총무부 방위계획부 운용부 지휘통신시스템부 등이 있으며 정보기능을 담당하는 부서는 보이지 않습니다. 따라서 통합정보부가 통합막료감부의 정보부로 기능할 것으로 판단. 통함막료감부 조직과 그에 따른 자위대 기구 개편에 대해서는 참고
 

각 막료감부도 운?과 등 개편 各幕も運用課など改編

설치법의 개정으로 새로 설치되는 통합막료감부는 통합막료장, 막료부장 하에 총무부가 총무과와 인사교육과를, 운용부는 운용1과와 2과를 , 방위계획부가 방위과와 계획과를, 지휘통신 시스템 부가 기획과와 운용과를 거느리는 4부 8개과와 수석법무관. 보도관, 수석후방보급관의 3관으로 구성된다. 부속기관인 통막학교는 종전과 같다
設置法の改正で新たに設置される統幕監部は、統合幕僚長、同副長の下に総務部が総務課と人事教育課、運用部が運用1課と同2課、防衛計画部が防衛課と計画課、指揮通信システム部が企画課と運用課の4部8課と、首席法務官、報道官、首席後方補給官の3官で編成、人員は約500人の組織となる。付置機関の統合幕僚学校はこれまでと同じ。

각 부의 소장사무는 총무부가 통막감부의 예산 직원의 인사 통합교육을, 운용부는 육 해 공 자위대의 행동 통합훈련 등
방위부는 통합운용의 차원에서 방위력정비의 지침을 지휘통신시스템 부는 통합운용을 위한 지통 시스템의 지침을 취급
한다

各部の所掌事務は総務部が統幕監部の予算、職員の人事、統合教育など。運用部が陸、海、空自衛隊の行動、統合訓練など。防衛部が統合運用の見地からの防衛力整備の指針など。指揮通信システム部が統合運用のための同システム整備の指針などを取り扱う。
これまで統幕の組織だった情報本部は長官直轄となり、従来の編成より約95人増員され約2270人体制となる。また、情本に新設される統合情報部(110人)は情本のほか統幕監部の情報機能を担い、自衛隊の運用を直接支援するための情報の収集・整理などを行う。

이제까지 통막의 조직이었던 정보본부는 장관직할 기관으로 변경되어 종래의 편제보다 95명이 늘어나서 약 2270명 체제가 된다. 또 한 정보본부에 신설되는 통합정보부(약110명)은 정보본부 외에 통합막료감부의 정보기능을 담당하여, 자위대의 운용을 직접지원하기 위한 정보의 수집.정리등을 수행한다.

한 편 통합막료감부의 설치로 육해공 각 막료감부의 조직도 일부 개편된다
육상막료감부는 조사부와 방위부 운용과를 폐지하고, 새로 운용지원 .정보부로써 조사과를 정보과, 운용과를 운용지원과로 바뀌는 것을 시작으로 , 감리부의 법무과를 법무관 , 인사부 인계과의 예비자위관반을 예비자위관실로 , 장비부의 수송과는 장비계획과의 수송실로 각각 개편된다

해상막료감부는 조사부를 폐지하고, 방위부의 운용과와 통합하여 운용지원. 정보부를 신설, 종전의 조사부조사과를 정보과, 방위부의 운용과를 운영지원.훈련과로 각각 개편. 기술부의 기술1과와 기술 2과를 기술과로 하는 것 외에 관리부의 감사과가 수석회계감사관이 된다.

항공막료감부는 조사부를 폐지하고 방위부의 운용과와 통합하여 운용지원. 정보부를 신설하여 종전의 조사부 조사과를 정보과로 방위부 운용과를 운용지원.훈련과로 각각 개편. 총무부의 법무과는 수석법무관, 장비부의 조달과는 조달실로 기술부의 기술 1과와 2과를 기술과로 통합한다.

一方、統幕監部の設置で陸海空各幕の組織も一部改編される。
陸幕は調査部と防衛部運用課を廃止し、新たに運用支援・情報部とし、調査課を情報課、運用課を運用支援課とするのをはじめ、監理部の法務課を法務官、人事部人計課の予備自衛官班を予備自衛官室に、装備部の輸送課は装備計画課の輸送室にそれぞれ改編される。
海幕は調査部を廃止し、防衛部の指揮通信課と合わせて指揮通信・情報部を新設、防衛部の運用課を運用支援・訓練課、装備部の装備課と需品課で装備・需品課、技術部の技術1課と同技術2課で技術課とするほか、管理部の監査課が首席会計監査官となる。
空幕は、調査部を廃止し、防衛部の運用課と合わせた運用支援・情報部を新設、これまでの調査部調査課を情報課、防衛部運用課を運用支援・訓練課にそれぞれ改編。総務部の法務課は首席法務官、装備部の調達課は同調達室、技術部の技術1課と技術2課は合わせて同技術課とする。
朝雲 7월
)

현재 알려진 통합 정보부의 예정 편성을 보면 인원은 약 110명 정도이고 산하에 국내정보를 담당하는 정보1과, 해외 정보 수집 분석을 담당하는 정보2과를 둘 예정이며 정보분부가 수집하는 화상 전파 정보 중 작전 전술 부대 운용에 관련되는 내용을 통합막료장에게 전달 보고하여 현장작전을 지원할 것으로 여집니다.

여기서 일본 정보부는 내각조사실에서 좀더 현장형 언제든지 일본의 군사행동에 대한 실전에 준하는 대기상태의 정보 수집과 분석에 그 정확성을 기하고자 후쿠다 내각에서 서두에 언급한대로 보강한점은 그러한 기준에서 방향이 맞추어가고 있는것같다

그 이유는 앞으로 모든 전쟁은 초반에 전쟁의 승패가 좌우되기에 전쟁에 대한 준비는 2등이라는것이 없다 오로지 선제 주도권을 잡는것이 미래 전쟁에서 중요한 키포인트이기에 그러기 위해서는 사전에 정확한 정확한 분석만큼 중요한것이 없다 전쟁의 시작에서 전쟁 끝마무리하는것까지 정보 분석이 마무리가 되어야 전쟁에서 승리하는것을 전쟁 프로그램 메뉴얼을

각 국가 나름대로 준비들은 하고잇지만 일본은 그러한점은 준비된 국가의 정보 패턴을 유지하고 잇다

그러한점은 다른 국가들에서 배워야 할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정보 분석을 바탕으로 가상의 전쟁 시뮬레이션을 하는것은 기본이고 전쟁 사후 처리하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점령한 영토를 수습하고 안정화 궤도에 이르기까지 그림은 나와 있어야 하는것을

미국의 이라크전은 그것이 부족하여 곤혹을 치루고있지만

한반도 대운하가 국가안보에 어더한 영향을 미치나?



군사적으로 보아도 득보다는 실이 많음을 .........



거의 일본이 한반도 남북한 점령을 쉽게하도록 길을 만들어주는것은 않인지



경제적 타당성은 전혀없다 그돈으로 차라리 다른용도로 얼마든지 지금 전국 국토균형개발용도로 사용되어야함을 재량권남발로 국가가 혼란스러우면 이승만 정권 말기처럼 당하게될것이다



그리고 왜 한반도대운하에 안그래도 국가 재정에 허덕이고 서민들의 삶의 고통이 크고 더욱이 세계 경제와 어렵고 고물가에 고유가에 막대한 국고를 개발 토목공사에 사용하려고 하는지



물론 건설업자들과 이와관련한 정치 세력들이 공사대금을 착복하고 국가의 국채를 남발하여 정치권 됫돈이 생기는것은 불보듯 뻔한것이고



대운하해서 대한민국 국가 경제에 얼마나 이익을 가져다 주는가라는것이다



그리고 한번 파괴된 자연환경을 이명박 당선자와 그들 세력이 목숨걸고 책임질것인지



지금 청계천에 사용되는 수도요금 그것 다 국민의 혈세로 지금 낭비되고 있는 사실은 아는가?



그저 업적 위주의 남기려는 오만의 국가 정책은 고려되어야 하고 물론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수도권 이전에 대한 이쓔로 5년간 사회 갈등을 야기한 사례를 보드라도 이번에는 대운하를 가지고 판박이식 또 국가 혼란을



국가안보와 지질학적 한반도 대지진시에 과연 그 대운하 정책이 적합한것이라고 생각하는지



계룡산 수도가 500백년이고 이미 서울 한양의 운은 다해가지만 수도를 계룡산으로 옮기는것도 한반도 지진 상황으로 향후 미래도시를 준비하기위해서 수도를 옮기는것이 제일 우선의 목적이다



전라도 충청도를 죽이는것이다 계룡산 수도가 끝나면 경상도에 수도가 생기기에 자연은 함부로 손대다가는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움을 알고 행해야 할것이다



지금 한반도 지진 사태가나면 서울경기권은 내진설계도 미약한데다가 아비지옥의 세상이 될것이다 더욱이 도시 가스로 집중된 서울 수도권 폭탄과 함께 살아가는 서울 수도권 도시에



한반도도 지진 사태가 일어나면 대재앙시에 피해갈수가 없다 영향을 받게되어있다



소생의 선몽에서 지구의 지각판이 변동하기 시작하면 V대재앙시에 타격을 받게되어있다



이것이 발생하는 시기도 그리 길지가 않다 그러니 함부로 국가 영토를 손대지말라 지금도 도로 건설한다고 국토가 얼마나 훼손되어있는지 아는가?



절대로 그 상황을 지금 대운하 설계도를 보면 대한민국에게 화를 크게 키우게 만드는 것임을 소생은 말해주고 싶다



지금 자연적인 요인이나 그리고 정세적인 요인이나 그렇게 함부로 대한민국 국토를 손대다가는 정치 생명이 끝날것이다



더욱이 생산적인 국책 투자가 아니라 더욱이 서민 경제와도 직결되지않은 국가 정책을 국가안보에 도움되지않는 대운하 정책은 더더욱이 국토를 당선자 맘대로 하다가는 국민의 저항을 받아야 할것이다



그대들은 5년을 임시로 위임한것이지 그러므로 대한민국 국토는 그대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앞으로 다가오는 사태를 알지도 못하면서 설치다가는 건설업체도 용서해주지않을것이다



대한민국 국가 정책을 이명박 당선자 세력들은 명심해야 할것은 과반도 않인 30%지지를 받고 당선되었다라는 사실을 기억하기를 바란다 절대적 국민의 지지가 아니라



인수위원회도 이점을 명심하고 처신해야 할것이다


佛紀 2552年 戊子年 法王太陽法語
< 千年佛陽 >

太陽升天 應當月落 千年佛陽 破地獄 破黑暗


이휘소 박사님에 대한 의문사 과거 진상조사단을 발족하라



이 의문사 죽음이 30년이 다 되어가지만 미국의 공작활동에 이휘소박사는 고국에서 죽어야만한 그당시의 미국의 공작 활동을 과거 진상차원에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미국 국무부 소속들이 대한민국에서 간첩 활동을 하는것을 막는 대한민국 국가 보안법안을 상정안을 내어서 미국의 대한민국내 간첩 활동을 차단해야 할것이다 그동안 수십년동안 대한민국에서 미국 간첩들의 대한민국 공작활동을 하고도 방치한 대한민국 정치 세력들은 국가 안보기관들은 무엇을 해왔는가?



이휘소박사님의 명예 회복과 세계 물리학계에서 의문사 죽음을 반드시 밝혀야 한다



대한민국 국가 정부차원에서 지금부터라도 진상조사를 해야 할것이다 그것이 국가가 국민에게 봉사해야만하는 의무이고 책무이고 사명이기에 미국도 이와 관련한 극비 문서건이 해제된것으로 아는데 미국의 지시에 ..............









이름 :
이휘소


출생 :
1935년 1월 1일


사망 :
1977년 6월 16일


출신지 :
서울특별시


직업 :
물리학자


학력 :
펜실베니아대학교대학원


경력 :
1974년 서울대학교에 대한 국제개발처 교육차관 타당성 조사단 일원
1972년 페르미가속기연구소 이론물리학 연구부장, 시카고대학 교수


수상 :
2006년 한국과학기술한림원 2005년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 헌정






이휘소박사의 의문사




이휘소(미국명 Benjamin Lee)는 1935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경기고 2학년(1952년)때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 서울대 화공과에 수석으로 입학해 재학중인 54년 미국으로 갔다. 도미후 물리학으로 전환한 이휘소는 56년 마이애미대학 물리과를 졸업하고 58년 피츠버그대학에서 석사학위를 60년엔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박사는 약관 28세에 펜실베이니아대학의 정교수가 되었다. 65년 뉴욕 주립대학으로 옮긴 이 박사는 74년부터 사고를 당할때까지 시카고대학 이론물리부장을 맡아 왔는데, 당대 핵물리학의 최고 이론가로 인정받았다.
이 박사는 아직까지도 과학계에서 한국인중 유일하게 노벨상을 받을 수 있었던 사람으로 꼽힌다. 그의 교통사고사가 의문사로까지 일컬어지고 있는 것은 그가 박정희의 핵개발 강행과 미국의 저지공작이 첨예화된 시점에서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박정희는 이휘소 박사의 사후 68일 만인 1977년 8월 24일 이박사에게 국민훈장 동백장을 추서했다. 추서이유는 "우리나라 과학기술발전에 진력" 했다는 것이다. 연구생활 20년을 줄곧 미국에서 활동한 이박사가 '우리나라'를 위해 '진력'했다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당시의 사고 개요 (미국 경찰청이 보관중인 당시 사고 기록임)
●사고발생 시간: 1977년 6월 16일 오후 1시 22분
●경찰 구조대(케워니시의 SHEFFIELD RESCUE) 도착시간: 1시 38분
●가해자
이름: 존로서(LEWIS. JR JOHN LOTHER, 35년 7월 27일생, 운전면허번호 261-50-1680)
주소: 아이오와주 데스모이니스(DES MOINES)시 501-7
직업: 아이오와주 포리스트 애비뉴 116에 주소를 둔 회사(TRANSOL CO.) 운전수
●가해차: 74년에 만들어진 대형트럭(CA213HP103431, 모델 FREIGHTLINER)
●피해차: 이휘소박사(35년 1월 1일생, 일리노이주 글린엘렌시 쉐필드레인 251)는 75년에 만들어진 다트(DART) 승용차를 몰다 변을 당했다.
이 박사 차는 운전석과 앞 트렁크가 완전히 부서져 복구비 2천 8백 달러에 상당하는 피해를 입었다.
●사고당시 동승자: 부인 마리안느(42세)와 아들 죠푸리(14세), 딸 아이렌(12세)이었다.
*이들은 당시 잠을 자고 있던 상태였으며, 사고후 이박사, 가해자와 함께 케워니 시립병원으로 옮겨졌다.

다음은 당시 충돌의 순간이다.
"...세계 최대 입자가속기가 있는 페르미연구소에서 서쪽으로 약 2백 Km 떨어진 일리노이주의 80번 고속도로. 길은 한산했지만, 안개가 끼고 노면이 젖어 있었다. 시속 88Km 속도로 달리던 대형 트럭이 갑자기 소리를 냈다. 그러나 운전사는 타이어 펑크를 알아채지 못했다.
차가 오른쪽으로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운전사는 바로잡으려 했고, 트럭은 다시 왼쪽으로 미끄러졌다. 중앙분리대를 넘었고, 서쪽으로 달려오던 승용차와 충돌했다. 이휘소는(달려오는 트럭을 피하려고) 최대한 오른쪽으로 피하려 했다고 동승한 죠푸리가 진술했다.(여기서 함께 동승했던 부인 마리안느는 바퀴였다고 주장한 바 있다.) 트럭 바로 뒤에서 차를 몰았던 목격자 반리스는 이렇게 진술했다. (사고트럭은 머리부분인 견인차와 몸퉁부분인 부수차 두덩이었다.) 견인차가 오른쪽으로 구부러지고 부수차는 왼쪽으로 틀어졌다. 트럭은 중앙분리대를 넘어갔다. 트럭은 승용차와 충돌하는 순간 왼쪽으로 꺾여졌다. 사고트럭 목격자의 차는 약 55마일 속도로 비바람을 가르며 달리고 있었다........"


●사고현장의 중앙 분리대
동행 2차선, 서행 2차선인 현장 고속도로의 중앙분리대는 양쪽 차선을 합한 것만한 4차선 정도(약 20미터)로 한가운데 깊이가 170Cm, 그곳으로부터 양쪽 차선으로 완만하게 경사진 중앙분리대는 잔디와 잡초로 우거져 있다.


●사고현장에서의 특이점
첫째, 분리대를 넘기 시작한 지점과 충돌지점이 직선 21미터 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왜 그렇게 큰 각도로 핸들을 꺾은 것일까?
둘째, 분리대가 20미터 정도 되는데도 왜 사고 대피지역인 분리대를 따라 달리다 멈추지 않고, 사고가 당연시되는 서쪽 차선으로 올라섰을까?
셋째, 서쪽 차선으로 넘어섰다 하더라도 왜 하필이면 길 가장자리로까지 피한 이박사 차와 충돌했을까? (최고깊이 170Cm의 중앙분리대를 넘는 과정에서 속도가 당연히 감소하였을 것이다.)


●사고현장에 관한 두가지 견해
●단순사고사
누군가가 살인을 음모했다면 그토록 '명중'이 어려운 곳을 선택했겠는가에서 출발한다. 즉 도로구조가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승용차를 가늠해 살인하기엔 적당치 않다는 것이다. 같은 차선의 뒤에서 혹은 다른 주택가나 간선도로에서 얼마든지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텐데 성공률이 극히 적은 그곳을 선택했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서로 맞은편에서 달리는데 길고 긴 고속도로에서 언제 어디에서 이박사 차가 다가오는지를 가해자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등이다.

●살인목적
누군가가 이박사를 살인할 목적을 가졌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가장 '대중적인' 교통사고로 가장 좋은 곳은 가장 의심받지 않는곳(성공률이 적어 보이는 곳)인데, 그 현장이 바로 그렇다는 것이다. 또 사고현장과 약도를 볼 때 트럭운전수가 충분히 충돌사고를 방지할 수 있었을텐데, '기어이' 충돌한 점이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운전중인 가해자가 이박사 차를 발견하는 것은 이박사를 추적해온 제 3의 인물로부터 무전등으로 충분히 정보제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단순 교통사고사에 대한 의문점
첫째, 박정희가 미국의 감시를 받으면서도 핵개발과 관련한 도움을 받으려고 이박사와 비밀접촉, 귀국을 종용했으며, 이 박사도 '결심'을 하고 있었다는 주장이다.
둘째, 사고자체에 대한 의문이다. 즉 사고를 알린 로이터통신의 보도가 "일리노이주 남부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것이 전부였고, 그후 누구도 상보를 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과연 교통사고가 있었는가에서부터 의문을 가질 수 있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미국 고속도로는 중앙분리대가 4차선 정도나 되는데도 "맞은 편에서 달려오던 바퀴가 하나 빠WU 이박사 차 앞을 때렸다."(동승한 부인 마리안느의 주장-과학동아-91.6)
"바퀴가 빠진 트럭이 중앙선을 침범해 당했다."(78년 당시 최형섭 과기처 장관의 국회 답변)
는 등의 불확실하거나 불가능해 보이는 이야기들만이 오가고 있다.


●박순희(고 이휘소박사의 어머니) 여사와의 인터뷰 내용('말', 1993년 11월호)
-박대통령이 이박사의 아들에게 선물을 보내고 이박사의 아들이 박대통령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냈다는 사실은 확인된 것입니다. 박대통령과 이박사 간에 직접 편지를 주고 받진 않았습니까?
"주고 받았지요"
-그 사실을 어머니께선 어떻게 알고 계신가요. 국가원수와 핵물리학자 간의 서신왕래는 극히 비밀스러웠을텐데요.?
"사고나기 1,2년전 이박사가 나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그 속에 그가 박대통령에게 보낸 답신의 사본을 동봉했더군요. 편지지 2장으로 영어와 한글을 섞어 썼는데, 내용은 '지금은 아직 귀국할 단계가 아닙니다.'였지요. 나에게 '이 편지는 역사적인 것이니 어머니 혼자만 간직하시고 절대 비밀을 지켜주십시오.' 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사본을 아직 간직하고 계십니까?
"식구들에게도 비밀로 하고 내 책상서랍에 깊이 넣어 두었는데 이사다니면서 분실해 버려 안타깝게 생각해 왔습니다."
-비밀이 탄로날 위험이 있을텐데 왜 이 박사가 어머니에게 사본을 보냈을까요?
"그인 나에게만은 뭐든지 알려줬으니까요."
-그렇다면 한국의 핵개발 문제와 관련한 언질도 있었습니까?
"내가 물리에 대해선 문외한이니까 딱히 그에 대해 이야기는 없었습니다만..... 한가지 알 수 없는 대목이....." (약간의 부연을 붙이자면 이휘소박사가 동경대학에 강의하러 갔을 때 박여사는 동경에서 아들을 만났다 한다. 그 자리에서 정치적인 이야기가 오간 끝에 이박사가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고 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밑도 끝도 없이 이러는 거예요.
'어머니 내가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나는 애국잡니다.' 그말이 내 기억속에 아직 또렷한데, 무슨 뜻으로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지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그이가 나에게 어떤 암시를 줬는데, 내가 모르지 않았나 싶어요. 그때 왜 그 말이 무슨말인지 추궁하지 않았는지 후회스럽습니다."
-사고 나기전에 이박사가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않았습니까?
"73년 동경에서 만날 즈음엔 굉장히 조심스러워 하더군요. 내가 왜 가까운 곳까지 왔으면서 한국에 오지 않느냐고 했더니 '갈 사정이 못된다'면서 나더러 동경으로 오라더군요. 74년 서울에 왔을때에도 호텔에서 자지 않고 미 8군 영내의 미 대사관저에서 잤습니다.


●강주상 교수의 '바퀴론'
이휘소 박사의 제자였던 고려대 강주상 교수는 이박사의 죽음과 관련 한가지의 판단과 두가지의 사실로 의문사에 대해 반론을 제기했다.
판단은 이 박사가 핵개발과 직접 관련이 없는 순수 이론물리학자였고, 박정희의 핵개발에 대해 비판적이었기 때문에 박정희의 핵개발을 도우려다가 죽었다는 주장은 틀리다는 것이다.
두가지 사실은 첫째는 박정희가 이 박사를 스카우트하기 위해 친서를 보낸 사실이 없음을 부인 마리안느를 통해 확인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사고 직후 스스로 사고현장에 가본 한 목격자로서의 이런 증언이다.
"맞은 편에서 오는 대형트럭의 바퀴 한 개가 떨어져 나와 중앙 분리 잔디를 건너서 일행의 차를 덮쳤다. 이 바퀴는 앞 창 유리를 지탱하는 운전석쪽의 철제 창틀에 부딪쳤고, 창틀은 운전사인 이박사의 뇌를 강타하였다."
강주상 교수는 이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주장을 했다.
"고속도로에서 시속 120킬로미터로 질주하는 차량을 반대쪽 방향에서 비슷한 속도로 달려오면서 고의로 바퀴 한 개를 떨어져 나가게 하여 상대방 차를 어떻게 명중시킬 수 있겠는가?
아무리 불순한 의도로 누가 일부러 일으킨 사건이라도 그 성공확률은 극히 희박하다. 결국 불행하고도 우연한 단순사고로 보는 것이 옳다고 본다."

⇒ 강주상 교수의 이런 주장은 당시 미국 경찰청이 보관중인 사고기록과 현저히 다르고, 편지 교신여부는 이박사의 어머니 증언이 결정적이다.


●이동원(박정희 시대 외무부장관과 국회 외무위원 역임)
이동원씨는 92년 10월 회고록 '대통령을 그리며'(고려원)를 발간했다. 그는 이 책에서 핵물리학자 이휘소박사의 교통사고가 박정희의 핵개발 강행과 이를 저지하기 위한 미국의 방해공작 사이에서 빚어진 것이라고 적었다.

다음은 1993년 6월 '말'지와의 인터뷰 내용이다.
-증거가 있나?
"단순사고 인지 살해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내게도 확실한 물증은 없다. 그러나 사고당시의 정황으로 볼 때 나는 의문사쪽으로 생각한다."
-확실한 물증이 없다면 어떤 흔적이라도 있는가?
"흔적은 있다. 미국이 핵개발에 대해 상당한 압력을 가했는데도 박대통령은 핵개발을 위해 그 분야와 관련된 해외 한국인 학자들을 스카우트하는 공작을 했다. 이 공작에는 많은 자금이 동원됐는데, 원자력분야에서 이름만 대면 다 아는 분들도 다 그렇게 해서 들어왔다. 이박사는 그 분들보다도 더 박정희의 표적이 됐는데, 미국의 기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들어오지 못했다."
-박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이박사와 관련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나?
"없다. 하지만 나는 당시 박정권 권부 깊숙한 부분과 관련이 있었기 때문에 직접 안들어도 돌아가는 사정을 알 수 있었다.


●1977년 6월 30일 국회경과위에서 신민당 고흥문의원의 제기 내용
당시 고흥문의원은 이박사의 사고기사를 보고 어떤 직감이 왔었다고 회고했다.
"이휘소씨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기사를 보았을 적에, 이박사가 노벨물리학상이 가까이 접근하고 있는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핵이론에 가장 귀중한 존재로 있었다는 점에서 본 위원은 여러 가지 지금 우리나라 사태로 보아서 상당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단순한 교통사고가 아니지 않느냐, 우리나라가 핵을 개발하게 될 경우 어쩌면 제일 먼저 필요로 하는 사람이 바로 이박사가 아니냐, 여기에 어떤 흑막이 게재되어 있지 않느냐..."(국회 속기록 인용)

고 위원의 질문에 최형섭 당시 과학기술처 장관의 답변은 "바퀴빠진 트레일러에 받쳐 죽었다는 보고를 받았다."는 것 이외에 한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하지만 이후 최장관은 의미심장한 답변을 하였다.
"이박사를 포함하여 세계적으로 이름이 날 만한 학자는 거의 미국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이 사람들에 대해서 현지에서 무슨 보호를 한다든가 이러한 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마는 저희들하고 긴밀한 연락을 해서 거기에 있으면서 저희들을 도와주는 사람과 또 한국에 나와서 저희들을 도와주는 이러한 두 그룹으로 나뉘어 저희들과 긴밀한 협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원자력분야에 있어서도 여러 최신 지식의 축적과 공급에 비교적 긴밀한 연락 아래 피차간에 협조를 하고 있습니다." (-국회 속기록 인용-)


●1977년 7월 5일 '조선일보' 보도 내용
"....벤자민 리가 '자동차 사고로 죽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상보가 없다..... 며칠전 국회에서 단순한 교통사고냐는 질문이 마침내 나왔다. 1968년 미국시민이 되었으나 4년전 고국을 다녀간 뒤부터 '이제부터는 조국을 위해서 일할때'라고 입
버릇처럼 되뇌이었으며 그가 내년 4월 귀국할 것으로 국내 학계에 알려져 있었던 것이다.
소립자 이론이라지만 그것은 최근 연구 진척중이고 그가 도달한 이론에선 핵물리학 관리쯤은 이미 마스터한지 오래라는 것, 순수한 이론 물리학자였던 미국의 오펜하이머가 사실상 2차대전중 원폭제조의 지도자였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그의 능력이 어떤 것인가는 쉽게 알 수 있다. 재미 2백 50명의 과학자들을 위해서라도 우발사고인지 분명해져야 한다."


●이휘소박사-박정희간의 교신
이휘소 박사의 유일한 제자이자, 고대 물리학과 강주상 교수는 "한가지 기억나느 바는 5년전 자녀들이 우표수집에 한창 취미가 있을 때 선생님께서는 그들로 하여금 박정희 대통령께 편지를 올려 한국우표를 선물로 받았고......" ('재미과학협회보' 제 6권 1호, 1977년 7월)

이러한 사실은 이박사가 서울의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 중에 "대통령이 어떻게 두 아이의 취미를 아셨는지 아들에겐 한국우표들을, 딸에겐 전통무용책을 선물로 주셨다."는 내용이 있다.

또다른 증언으로는 '소설 이휘소'의 저자인 공석하씨가 1986년 박근혜씨로부터 들었다는 진술이 있다.
"당시 성북동 집으로 찾아가서 평소 박대통령이 이휘소씨를 알고 지냈느냐고 물었지요. 대답은 '아버님은 이박사를 알고 있었다. 아버지의 메모록에 이박사의 이름이 적혀 있기도 했다.'는 것이었어요." (박근혜씨가 소장하고 있는 '청와대 메모'는 언론에 일부가 보도된 '청와대 일기'와는 다른 것으로 박대통령이 자필로 그때그때의 생각을 적은 것이라고 한다.)


●오원철(당시 제 2경제수석 비서관, 핵개발 2인자로 알려져 있음)
박정희 대통령이 주도하는 핵개발 사업의 책임자는 박대통령 스스로가 맡았고, 실무를 총괄 조정한 사람은 청와대 제 2 경제수석 비서관인 오원철씨였다. 오씨는 원래 경제기획원 관공차관 이었는데 박정희의 특명으로 청와대에 들어갔다.

다음은 오원철씨와의 인터뷰 내용이다.(1993년 6월 '말'지)
-70년대에 박대통령이 방위산업을 육성하면서 총괄 실무책임을 맡겼다는데.
"내가 그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당시 핵개발이 방위산업의 핵심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핵이 아니었다. 그런 얘기를 요새 왜 자꾸 하는지 모르겠다. 북한의 핵개발이 문제되고 있는 지금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은 국익에 반대된다."
-핵물리학자 이휘소 박사를 알고 지냈나.
"난 모른다. 그런 사람, 전혀 모른다."
-핵개발이 한창때였던 70년대 중반에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던 유명한 핵물리학자인데 방위산업 총책임자가 모른다면.
"아! 그분은 핵이론쪽이었다. 핵연료인 플루토늄, 우라늄보다도 더 작은 미립자, 소립자를 연구한 사람으로만 알고 있었다."
-박대통령과 이박사간에 어떤 접촉이 있었는가.
"난 모른다. 이건 노코멘트가 아니라 모르는 거다."


●그렇다면 박정희시대에 핵개발 사실과 그 정도는 어느정도였을까?
과거 김영삼 대통령 시절 11대 국회 당시 경제과학위원회에 참여했던 흥사덕의원이 에너지 연구소장을 상대로 한 질문이다.

-지금부터는 내가 국회의원 홍사덕이가 아니라 이 나라의 최고통치자라고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내가 묻는 말에 간명하게 대답해 주십시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2년안에 히로시마급 원폭 두 개가 꼭 필요합니다. 얼마를 밀어드리면 가능하겠습니까?
"2억 달러 정도면 됩니다."
-기술적인 문제는 없나요?
"전혀 없습니다."

더 이상은 당시 천영성 위원장의 제지로 진행되지 못하였지만, 당시 홍사덕 의원은 박정희 시절 핵개발 사실 및 프로젝트가 상당수준까지 진행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박사의 교통사고 3일 후인 77년 6월 19일 '뉴욕타임스'에 보도된 미 CIA의 청와대 도청방법
"...70년 중반께 미국 관리들은 한국 국내 정치문제뿐 아니라 한국이 북한 공산주의자들과 어떤 비밀거래를 할는지도 모른다는 우려에서 청와대를 전자도청할 장기계획을 세웠다. 여기엔 무선 전신전파방식이 사용됐는데, 도청의 대상이 되는 방안에 사전에 어떤 장치를 할 필요가 없었다. 무선전파를 그 방쪽으로 비춰 서서히 이동시키면 진동하는 소리나 잡음에 부딪칠 경우 그것을 포착, 그대로 송신신키는 것이다. 이 전파는 전파 발사장소와 도청대상간에 장애물이 있어도 관계없으며, 벽과 유리를 통과한다......"


●"청와대에서 있었던 핵개발에 대한 논의내용을 미국측이 우리 정부측에 들이대면서 핵개발 포기를 종용한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런 내용을 도청 아닌 방법으로 어떻게 알아냈겠습니까."(1992. 4. '월간조선' -박정희의 큰딸 박근혜씨의 증언 내용중)


●카터의 주한미군 철군정책은 3단계로 나뉜다. 즉 구상기(74.12 - 77.3), 결정기(77.3 - 78.4), 수정폐기기(78. 4 - 80)로 구분할 수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시기구분이 박정희가 핵개발을 구상, 결정하고 전두환 정권이 등장하면서 그것을 폐기하는 3단계와 시기적으로 거의 일치한다는 것이다.


●박정희의 핵개발 의사
1975년 6월 12일자 '워싱턴포스트'와의 회견에서 박정희는
"한국은 핵무기를 개발할 능력을 갖추고 있으나, 지금을 개발을 하고 있지 않다. 만일 미국이 핵우산을 걷어가면 한국은 핵무기를 개발하게 될 것이다."


●1977년 5월 17일 '뉴욕타임즈'
"포드재단의 최근 연구보고서는 한국이 핵탄제조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이에 대응하여 핵확산방지를 위해 카터 대통령이 집중적인 운동을 전개할 것이다."


●1977년 5월 22일 박정희가 청와대 공보비서관 선우련씨에게 한 말,
"이번에 하바브(미국무차관)가 오면 핵을 가져 가겠다고 으름장을 놓을텐데 가져 가겠다면 가져 가라지, 그들이 철수하고 나면 우리가 개발할 생각이오."


●1977년 6월 10일 미하원 외교위 비밀청문회
하비브 국무차관과 브라운 합참의장은 한국에 배치한 전술 핵무기도 지상군과 함께 4-5년 안에 철수할 것이라고 철군정책을 재차 확인했다. 이 비공개회의에서는 한국이 독자적으로 핵무기를 갖출 능력이 있는가의 여부에 대한 논의가 주의제였다. 미국이 무길르 철수하면 한국은 자위를 위해 핵무기를 개발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한 박동진 외무부장관 발언에 대한 진의와 농도에 대한 토론도 있었다.


●1977년 6월 15일 한국 월성에서 캐나다와 영국 기술을 도입하여 건술하려는 한국의 두 번째 원자력발전소(월성 1호기)가 착공식을 가졌다.

이와 관련한 조선일보의 기사(1977년 6월 16일자)

'한국 핵무기 개발 가능성, 미서 우려표시'
"....정통한 외교 소식통에 의하면 미국무성과 국방성 당국은 미국의 핵무길 철수 계획에 자극을 받아 한국이 핵무기에 대한 새로운 꿈을 실현시킬 것인가 가능성 여부를 세밀히 관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소식통은 하비브 국무차관과 브라운 합참의장이 지난 철군협의차 서울을 방뭄했을 때 이 같은 우려가 한국측에 전달되었으며, 한국에 대한 미 핵우산의 보호를 다짐했다고 말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신문들은 최근 한국의 핵무기 제조 가능
성 여부에 대해 계속 원론의 '경계'를 환기시키면서 '한국정부는 공식적으로 핵무기 개발 계획이 없다고 밝히고 있지만 이 정책은 변할 수 있는 것이며, 일부 한국 과학자들은 정부에 핵무기 개발을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주장했다.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티너'는 '뉴욕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에 이어 15일 한국의 핵무기 개발 가능성을 다루면서 한국은 재정적 능력의 부족, 기술자의 부족, 원전규모의 핵무기 개발 연구 기술의 미흡으로 문제가 있지만
선적과정이나 암시장에서 행방불명된 플루토늄의 탈취, 핵원자로에서 남는 연료를 재처리해서 플루토늄을 얻는 방안의 두가지 가능성을 지적했다."


●이휘소가 사고를 당할 당시의 CIA 국장은 부시 전 대통령이었다. 부시의 CIA에 대해 백악관과 국무성, 국방성 관리들은 '정치적 예언의 정확도'에 D학점을 줬지만, '고도로 기술적인 군사정보 능력'에 있어서는 A학점을 주었다.('타임', 75.6.20) 예나 지금이나 핵확산방지는 CIA의 3대 임무중 하나로 알려질 정도로 중대한 것이다.
그즈음 핵정보에 대한 CIA의 열성은 대단한 것이었다. 74년 3억5천만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심해탐색선을 만들어 핵정보 수집에 나섰던 예는 그 열성을 잘 보여준다. CIA는 소련 핵잠수함이 68년 태평양에서 침몰, 바다밑으로 가라앉았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소련의 핵암호, 핵전략계획을 얻기위해 심해탐색선 글로마익스플로러를 극비리에 만들어 침몰 잠수함의 일부를 인양하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뒤늦게 이 사실이 알려지자 일부 의원들은 막대한 비밀경비에 대한 지적을 했다.
그리고 당시 CIA는 약 7백만명의 내외 사찰명단을 갖고 있었는데, 그중 미국내 사찰 대상자는 11만 5천명이었다. 또 CIA는 겉봉을 뜯지 않은 채 중요 사찰대상자의 우편물을 검사해 왔다. CIA가 만약에 있었을지도 모르는 박정희-이휘소간 비밀교신 혹은 비밀간접접촉을 체크해 그 내용을 알아내고자 했다면 그것은 식은 죽 먹기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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