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16일 토요일

wneswkcic24-2

혹세(惑世) 광신서냐? 현세(現世) 예언서냐!
반미(反美)는 열광하고 친미(親美)는 분노하리라!

이 책을 읽기전 세계 정치와 경제를 논하지 말라!
유대 세계 통치전략은 충격전율할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1. 유대인에게 정복당한 미국 경제
또다시 세계는 새로운 전쟁의 소용돌이로 돌입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끔찍한 제3차 대전으로 비화될지도 모른다. 이 비극적 상황은 유대 광신도 또는 극단적 시오니스트들 때문에 빚어지고 있다. 일찍이 일본은 유대인이 부른 피의 욕망에 의해 가공할 도쿄 대규모 폭격,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공격을 체험했다. 원자폭탄 유대인 개발자들은 이 유대의 '지옥폭탄'을 비백인계에 시험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오늘날 미합중국의 주인은 누구인가. 필그림 파터스의 후예인가, 아니면 현재 미국 경제를 장악하고 돈줄을 한손에 거머쥔 유대인인가.
유대인은 미국에서 극장, TV, 금융 등 합법적 산업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으며 오히려 비합법적 범죄 활동 분야에서는 더욱 활발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들은 포르노, 총기류 밀매, 주류 등의 산업에 관여한다. 시그램을 소유한 프론프먼 집안, 센리를 소유한 로젠슈틸 집안은 미국의 주류 사업을 대표한다.
《유대인은 살아야 된다》의 저자 사뮤엘 로스는 쓰고 있다.
"내가 아는 유대인 친구는 4천 명 종업원을 거느리고 있다. 그런데 사업을 망칠 수 없다면서 회사 직원으로 유대인은 한 사람도 고용하지 않는다."

2. 콜럼버스 함대에서 시작된 유대인의 아메리카 정복
1492년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에서 시작된 신대륙 정복. 가톨릭의 에스파냐인과 프로테스탄트의 앵글로색슨인이 한 일로 알려져 있지만 그것은 표면적 사실에 불과하다.
그때까지 에스파냐는 유대상인의 최대 근거지였다. 그 한 해 전 에스파냐에서는 그라나다 함락 직후 유대인 추방령이 내려졌다. 그러자 유대인 일부는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고, 일부는 에스파냐를 떠나 터키며 포르투갈로 숨어들었다. 어떤 자들은 네덜란드까지 도망쳐 가기도 했다. 이 와중에 유대인은 콜럼버스 함대를 편성, 신대륙에 건너가 새로운 약속의 땅을 찾고자 몸부림쳤다. 어머니로부터 유대인 피를 이어받은 콜럼버스뿐 아니라 통역 외과의사 내과의사 등 함대 주요 승무원은 거의 모두 유대인이었다. 그 뒤 유대인들은 신대륙으로 속속 건너가 제당 공장, 흑인 노예 무역을 장악해 거부를 쌓았다. 뉴욕은 유대 상인의 낙원이 되었고, 유대인 지도자들은 마침내 "뉴욕은 새 예루살렘이다!"라고 큰소리쳤다.

3. 왜? 유대는 인류사상 끊임없이 분쟁을 일으키는가?
첫째, 유대인은 그들이 기생하고 있는 숙주와의 사이에 화해를 가져본 일이 한번도 없었다.
둘째, 어떤 국가도 유대인의 영구 추방에 성공한 적이 없었다.
유대인은 기생민족이다. 유대는 문명 사회를 방랑하면서 기성 사회 가운데서 자기들이 안정을 얻을 수 있는 곳을 찾는다. 다른 민족을 희생물로 삼아 주거를 정하고 번영할 곳을 찜한다. 다른 민족의 노고에 의존하지 않고는 전혀 살아갈 수 없는 민족이 유대다. 그들은 기생하는 숙주의 번영을 강탈함으로써만 생존 가능하다.
1948년 창설한 국가 이스라엘. 이 나라는 세계 여러 나라 유대인 은행가들이 보내온 수억 달러에 이르는 무기 원조로 세워졌다. 평화롭고 선량한 아랍인들로부터 그들 삶의 터전인 마을과 토지를 돈과 무력으로 빼앗은 결과였다. 세계사에서 유일하게 인공적으로 수립된 유대국가인 셈이다.
그러면 숙주 국가는 아무것도 없는 그들을 어째서 받아들이는 걸까? 바로 그들의 교활한 지혜 때문이다. 그들은 적국에 대한 정보며 가상적국의 기밀, 때로는 광대나 마술사로 변신해, 오락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거류가 허락되면 그 촉수를 숙주 민족 깊숙이 꽂고 피를 빠는 것이다.
대규모 역사왜곡을 단행하고 몇 천 년에 걸쳐 도서를 불살라 버렸는데도 유대인들은 자신의 악행에 대한 기록을 모조리 소멸시키지 못했다. 우리는 그들 유대인의 역사를 알고 있다.
① 바빌로니아는 위대한 문명을 이룩했지만 대규모 유대인 공동체의 숙주가 되어 끝내 멸망하고 말았다.
② 고대 이집트는 위대한 문명과 문화 유산을 남겼지만 역시 대규모 유대인의 숙주가 되어 붕괴되고 말았다.
③ 로마 역시 고대에 이미 찬란한 문명을 건설한 위대한 제국이었지만 그들도 유대인의 숙주가 되어 파괴되고 말았다.
④ 대영제국도 세계를 지배하는 위대한 제국이었으나 유대인 공동체의 숙주가 된 나머지 수십 년 동안 쇠락의 길을 밟아왔다.
이상의 예들은 인류역사를 통하여 나타난 단순한 우연의 일치일까. 우연이든 필연이든 오늘날 미합중국에 대규모 유대인 공동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한번 유대인들이 비유대인 국가의 지배권을 잡으면 그 국가를 파괴시키고 마는 것은 대체 어찌된 까닭일까.

4. 유대문명은 역사상 존재하지 않는다
유대인의 기원은 수수께끼에 싸여 있다. 그들은 그 민족의 기원이 신비에 싸이고 분명치 않은데도 조금도 거리낌이 없다. 다만 자신들은 신에 의해 선택된 민족이라는 말만 내세운다. "모든 역사는 유대인의 역사다"라고 주장하는 두브노 같은 역사학자도 있지만, 유대문화란 본디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는 중국으로부터 종이와 인쇄 기술, 그리스에서는 예술과 철학, 로마로부터 법률을 계승했다. 그런데 유대로부터는 무엇을 얻었는가. 유대인은 5천 년에 걸쳐 다른 나라의 역사에 거듭 나타나지만 자신들의 나라를 세운 일도 없고, 그럴 의지도 없었다. 이 지구상에 유대인과 같은 비참한 문명의 기록을 가진 민족은 없다. 아프리카의 피그미족도 독자적인 문명을 발전시키고 있다.

5. 유대의 지구 통치 최종 전략 <시온의정서>
인류가 당면한 가장 큰 비극 중 하나는 유대인에 의한 미국의 부패다. 미국은 오랜동안 인류가 평화스럽고 자유롭게 살고 싶어하는 소망의 상징이 되어 왔다. 그런데 미국 역사는 지금 유대인에 의해 여러 차례 조작된 전쟁과 금융 공황으로 말미암아 나락으로 떨어지려 하고 있다. 미국 국민이 유대인에 대항하여 만든 방어 수단이며 장치는 모조리 무너져 버렸다.
이미 로스차일드는 영란은행을 통해 초강대국 대영제국의 심장부를 점거했다. 그리고 지금은 유일 초강대국으로 등장하는 미국의 심장마저도 그 대리인 쿤 롭을 통해 장악해 버렸다.
참고로 <시온의정서>를 간추려 보자.
① 우리 유대가 국가체제 속에 '자유주의'의 맹독을 주입한 뒤 정치적인 커다란 변화가 왔다. 이로 인해 오늘날 어느 비유대인 국가든지 운명적으로 괴혈병에 걸려 있는 까닭에, 우리는 단지 비유대인 국가의 최후 임종이 빨리 오기만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② 우리 유대가 세계 지배권을 장악한 때, 우리 동족은 유일한 신을 숭배하는 우리 유대교 외에는 어떤 종교의 존재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들은 다른 종교를 모두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③ 우리 유대가 소란과 반항의 씨를 깊게 뿌린 비유대인 국가에 질서를 세우는 데는 불가침적 권위를 보이는 가학 수단을 잡는 것 말고는 없다. 만약 우리들 정권을 배격하는 자가 나올 때에는, 우리는 무기를 가지고 우리들의 왕정에 반항하는 자를 용서없이 처단한다.
④ 우리 유대들은 원칙적으로 모든 중요한 국정상의 지위에서 자유주의를 몰아낸다. 우리들은 절대적 전제권을 행사한다. 우리들이 확립한 세계 질서를 파괴하는 듯한 비유대인을 용서없이 희생물로 제공하는 것은 우리들의 의무이다.
유대 <시온의정서>가 오늘의 세계 실상처럼, 섬뜩하리만치 사실성을 가지고 우리들에게 다가오는 시대는 없었다. 우리나라에 대한 미국 보수파들의 외교에 유대인들이 어떤 이해관계로 깊숙이 개입되어 있는지, 우리는 짐작만 할 뿐 속수무책이다.

6. '불가능은 없다'고 외치는 유대인의 세계정복 전략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힘은 금융이다. 금융=파이낸스는 가장 좋은 도박이다. 국제금융 과두권력이 만들어낸 세계경제 시스템이 현재와 같은 카지노 자본주의다. 도박에 모험을 걸면 실제적 생활감각이 마비되듯 카지노 자본주의 아래서 현실경제는 점점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현실경제의 쇠락, 이에 반해 금융투기에 의한 이익의 급상승. 이것은 고리대금 이론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과거 고리대금은 강한 규제의 틀에 묶여 있었고 사회 전반의 따가운 멸시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최근 30년을 보자. 고리대금은 어느새 세계경제의 주류가 되어 있다. 정말 놀랍고 믿을 수 없는 사태다. 결국 고리대금은 전 세계 현실경제 위에서 수탈과 흡혈로 무한히 비대화해 가는 시스템이 되고 말았다.
이것이 국경 없는 경제, 글로벌 자본주의, 세계화, 규제의 철폐, 자유무역 자유시장 원리의 관철이라고 하는 선전 문구의 정체다. 먼저 미국이, 다음은 영국, 유럽 대륙, 중남미, 호주, 뉴질랜드, 일본, 구소련, 마지막으로 아시아 전 지역이 IMF로 그 제물이 되고 있다.
'나의 사전에 불가능이란 말은 없다.' 이것은 나폴레옹의 말이다. 지금 초단위로 진화해 가는 초하이테크 과학기술을 장비한 서구 유대악마주의 권력은 '우리들의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고 미소짓고 있다.

7. 멀린즈 교수의 지적과 예측이 적중하는 충격전율할 현실
2001년 9월 11일 뉴욕 세계무역센터 건물이 주도면밀한 계획에 의해 공격을 받자, 음모가들은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세계에 대한 새로운 전쟁을 부추기기 시작했다. 이 전쟁은 오히려 대 테러 전쟁이라 불리면서, 지구상의 모든 국가들을 그 예정된 희생자로 삼고 있다. 이 계획은 이미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표면상 굴복시켰다. 음모가들은 또한 미국인의 모든 부(富)와 힘을 활용하여, 이제는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그리고 이슬람교를 믿는 국가들에 대항하여 큰소리치며 압박해 들어가고 있다.
그들이 진정으로 노리는 것은 석유를 강점하여 얻는 이익을 포함, 아랍의 중동 유전지대를 장악하여 국제연합의 위임 아래 두는 것이다. 음모자들의 목표는 전 세계의 부를 거머쥐는 것이다. 그 목표를 이루기 전까지는 어떠한 것도 그들을 만족시키지 못할 것이며, 또한 그들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유스터스 멀린즈 교수는 《연방준비은행의 비밀(The Secrets of the Federal Reserve)》과 《세계 질서(The World Order)》 및 그 밖의 여러 책들에서 저들의 세계 통치 전략에 관한 상세한 자료를 제시하고 있다. 그 책들에서 제시된 바와 같이 유대의 전략은 세계 곳곳에서 하나하나 현실화되어 가고 있다. 무섭게 다가오는 이 전율할 현실, 그것이 곧 유대의 세계 통치전략이 아닌가.



소생이 이 지구 전체를 놓고 보드라도 유대인이 아니드라도 이 지구 행성은 앞전에 언급 해 준대로 갑니다

즉 지구촌 인간들손에 자의든 타의든 그것을 결정할 권한과 권능이 없습니다



그것이 지구촌 인간들이 가진한계입니다 그저 절대적인 신에 대한 노예나 종에 불과하지요 깨닫지못한 지구촌의 모든 인간들이나 삼라만상 생명체도 마찬가지이고 그리고 신은 오로지 깨닫는 종만을 보호주시고 지금 깨닫지않는 인간들은 선과 악이라는 명분은 이들의 인간 세게의 다소 안정적인 질서를 위한 명분용이지



어차피 이 지구도 미국도 멸망하거나 새로운 지구촌의 강자자리를 내어주게될것입니다 더욱이 위에 언급한대로 아이러니한 유대인과의 관계도 그러하지만



어차피 지구가 이왕 여기까지 달려왔는데 세계 정복은 가능해지며 유대인들이 구상하는대로 갑니다



어떻게보면 굳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유대인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면 오히려 지구의 발전을 위해서 징검다리 역활을 해 온셈이지요 유대인들이 어느 제국이든 국가든 흥하게도해주고 동시에 망하게도 한 촉매제 우치에 서있기에 그러므로 일반 인간들 눈에는 비판할수도있고 칭찬할수도 있으나



소생이 보기로는 인류 문명 발전에 촉매제 역활을 하였다라는점 그 촉매제도 아무나 어느 민족의 종이나 할수있는일이 아니기에 그만큼 다른 민족의 종보다도 깨어나기에 그렇게 앞서가는 노력이 그러한 유대인들 역시 지금 미국을 흥하게도 해 주었지만 유대인들은 현명하기에



이제는 새로운 제국 아니면 국가를 모색하고있는것인지도 모른다 참으로 자랑스러운 유대인 민족이다라는것이다 이것이 소생의 판단이다 그렇다면 남북한민족은 인류에 무엇을 기여했나 중국의 한족들은 인류를 위해서 무엇을 기여했나



유대인을 비판할 자격도없는 국가나 민족들이 자신들의 부족함을 보지못하는 모습에 국가나 개인이나 민족이나 항상 깨어있는 국가나 민족이나 개인이 이 인류를 주도해가고 그 자리를 지구 행성을 총 관할할수있는 특권이 부여되는것이다



그래서 대륙연합 구도 구성은 불가피하게 형성되지않으면 아니되기에 이 부분에 얼마나 미국의 세계 패권화 전략에 간단명료하게 핵펀치를 한방 날려보냈다



그동안의 미국의 세계 패권화 군사 전략 전술을 일거에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렸으니 그 다음 제2탄은 대기중이다 역시 미국에게 아니면 중국 아니면 일본에게 동시에 한방먹이는것이될지도 모른다 그들이 어더한 선택을 하는냐에 달려잇다



독일도 진정으로 유럽연합과 화해를 이제는 해야할것이다 그것이 독일이 살아남는길이다 앙금은 해결되지않으면 물론 미국이야 좋아하겠지만 전체를 놓고보아서 유럽연합과 독일이 앙금을 풀고 동반협력자로 가야할것이다 유럽연합과 독일이 서로 잘못하여 세계전쟁이 난것이고 둘이 못난서 그덕으로 미국이 이익을 창출한것이고 독일이 진정으로 사과를 하였다면 유럽연합과 대룩연합에 편승되어야 한다



그래서 미국의 역활은 다하였다고 판단되면 그들은 미국을 등지기에 왜냐하면 미래 역사는 미국보다도 더 강대한 제국을 선택해야만하기에 그래서 그러한 방향이 시온의정서처럼 아니드라도 인류는 그렇게 갈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지고있기에 그러하다 이는 인간들이 인류가 싫어하든 좋아하든 그러한 선택의 여지에 상관없이 진행되어간다라는 사실이다



세게 정복의 주인자리는 누가되든간에 될것이지만 강대국도 깨닫지못하면 영원한 제국은 이루지못합니다



그래서 대륙연합과 미국을 비롯한 일부 친미 국가와 한판 붙으라고 그렇게 인류를 망치기를 좋아하는 미국 그리고 유대인들 그리고 지구촌 사람들 다 그들이 깨달음을 게을리한 죄로 지구제국에 대한 최후의 승자를 가리고자하는것이고 그리고 그렇게 하지않아도 그들이 자발적으로 하게되어있으니



이 지구가 때가때인만큼 미국은 하늘의 명을 거역하고 추락해갈것입니다 이미 그 징조를 파악해습니다



미국을 서서히 압박해갈것이니 세계 주인자리는 천명을 전해주면 그렇게되어갑니다



절대적인 신은 존재하오니 그들이 믿든말든 역시 절대적인 신은 개의치않습니다 교화나오라 절에 다녀라 성당에 다녀라 고리타분한 논리는 다 그들의 탐욕을 채우는 논리의 주장에 불과하고 결론은 모든것은 자신의 내면에 답이 있습니다 누구에게 어느곳에 있는것이 아니라



그래서 이 대한민국 소생이 두눈으로 똑똑히 보앗기에 미국의 태도 역시 보앗고 앞으로 지켜보는 시간도 얼마남지않았습니다



다 지구촌 강대국들도 절대적인 신의 노예 국가들에 불과한 존재들이다라는것입니다 허상들이지요 시긴과 공간이 지나가면 아시게될것이며 위에 언급한 문명 국가들의 사례를 보시면 잘 알것입니다



영원한 제국이 이제는 탄생하는날도 멀지않았으니 그동안 제국들을 발판으로 삼아서 신의 국가를 만들게될것입니다 하늘의 국가 하늘의 군대 하늘의 국민으로 이루어진 제국이 탄생될것입니다 그것을 향해서 지금 지구촌 국가들은 봉사해주고 있고 그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유이다



알겠나 지구촌 제군들아! 아무리 미국이 강대국이든 저들눈에는 강대국으로 보일뿐이지 소생눈에는 단지 차이만나지 강대국은 아니다라는것이다



진정한 강대국은 위에 언급한 하늘의 국가가 진정한 초강대국이고 제국이다 그저 지구촌 쓰레기부담만 축내는 허상의 존재들이다



소생이 육신으로 500년을 1000년을 살아도 그대들의 모습은 그러한것을 천명이 정해지면 지구촌 행성은 큰획을 긋게되는것이다 그리고 무한정으로 봉사에 충실하라고 지구촌 사람들은 달려갈것이다 열심히들 달려오시기를 바랍니다



소생을 만날려면 지금과 같은 그대들의 습성으로는 만나기가 힘들것이다



지구촌의 대소사 일은 어느 정도 다 마무리되엇으니 내년의 만남을 이루고나서는 지구촌 사람들 맘대로 해도 소생은 상관하지않을것이다 60년의 미래일을 내년에 결정하면 육신으로 살날만 태평성대의 삶을 살고자한다



그런데 미국은 하기야 미국 국가도 어쩔수없는 국가의 운명이라면 별도리가 없으나 대한민국 국가 정도야


http://ko.wikipedia.org/

지구촌 국가들의 그동안 100년동안 무엇이 변화해왓는지 토론을 하고 싶습니다

세계 1,2 차대전을 경험한 지구촌의 행성에서 가장 큰 변화를 가지고 온것은

1,핵무기 개발과 다량 보유,

2,인구가 40억명증가,그리고

3,급속도로 군사 무기 최첨단화및 무기 군사력 보유가 증가했고 동시에 보유한 지구촌의 무기 군사력이 잠재파괴력도 세계 1,2차 대전을 치루고도남는 무기 보유잠재되고있다라는 사실

4,그리고 지구촌이 닫혀있는 그리고 국가권력의 특권 연대 세력들이 이제는 세계인들이 연결할수있는 정보통신망 구축과 확대라는 문명기술로 세계의 여론은 구심점을 찿게되었다라는 사실

5,그래서 지하조직세력들이나 각 국가의 정보기관들이 인터넷 정보망을 통해서 세계 어디서든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라는점

6,지구촌 국가의 권력이 그동안은 자신들의 통제력속에서 자신들 국가의 권력이 창출되었다면 이제는 지구촌 국가들이 외부적 국가 권력에 의해서 창출되고 있다라는점 이는 경제 영역의 세계화로 권력의 세계적 대이동이 지금 진행하고 있다라는점

7,세계 국가는 유럽연합이 탄생한것은 인류100년사에서 가장 상징적이고 두드러진 약진하고 있다라는점을 보여준 사례이다
그래서 대륙연합 국가들의 형성은 앞으로 가속화될것이다 그래서 그동안 국가와 국가간의 국경선의 안보 개념에서 집단 안보 대륙체제의 개념으로 전화되고 있는것이 인류사 100년동안 새로운 안보 경험을 하고 있다라는 사실이다

8.우주 산업의 발달이 어느때보다도 전성기를 맞이하고있다라는 사실 무엇보다도 우주산업에 미래 국가의 운명이 달려있고 동시에 지구촌 인류가 걸어온 국가 유형보다도 다른 우주 방식 시스템의 국가 유형이 창출될것이다

9.미국의 급속도로 성장과 더불어서 안정적으로 100년동안 성장해온것도 인류사에 한 국가의 특징이다 무론 다른 국가들도 상대적으로 성장해왔지만 지구촌195개 국가중에 명실상부하게 안정적으로 그러면서 세계패권화에 경제 식민지화에 군사 대국화에 타 국가보다도 두드러진 발전의 모습을 보여온 국가는 단연코 미국이다라는 사실임 100년사중에 또 하나의 큰특징이다

10.인류는 어느때보다도 유능한 세계 각 국가의 인재를 확보하려고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어느 국가든 유능한 인재를 확보하고 있다라는 사실 참으로 인류 역사에 이러한 인재의 확보 교륭에 열을 올리는일이 없었는데 지금 지구촌은 그것이 진행되고 있다라는 사실 즉 미래의 인재가지 확보하지않고서는 자국의 안전과 안보를 장담할수가 없기에 말이다

11.지구행성은 어느 때보다도 지구행성안에 활발한 산업화 거의 절정기에 이르게된것은 중국의 거대한 불랙홀로 인하여 지구의 온난화는 미국과 더불어서 가속화해서 지구의 행성 자정능력이 상실화가고 있다라는점 지구의 환경보존이 세계 각 국가의 보존보다도 더 시급한 과제다라는 사실을 이제서야 세계인들이 공감한점 더욱이 미국 엘고어 전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라는 사실은 세계 평화의 의미가 군사적 충돌의 의한 방지차원의 노벨 평화상을 수여해왔든점과 달리 이제는 그보다도 더 시급한 지구행성 자체에 대한 보존의 위협성이 인지하였기에 노벨 평화상의 성격이 달라졌다라는점이다

12,인터넷으로 세계 정세를 소생이 분석한 자료들을 통해서 전세계가 공유하고 있다라는 사실과 더불어서 세계 분포된 각 국가의 정보요원들의 역활과 활동들이 축소되거나 분석에 집중화되고 있다라는 사실 그동안 세계 각 국가 정보요원들은 아날로그 방식의 정보수집 첩보 활동을 해왔기에 그만큼 많은 인력과 비용을 지불해야만했고 그리고 국가와 국가간의 중간 정보 보로커들의 농간으로 국가와 국가간의 오해와 불신 불행을 자초해왔는데 그러한것들이 인터넷 정보 통신발달로 디지털 정보 시대로 투명화되고 인력과 비용절감을 지구촌 국가들에게 혜택을 받고있다라는점
그만큼 특정한 정보가 특정 권력 세력들에게 독점화 권력화 된것을 세계인들이 모두 공유함으로서 인류의 발전을 앞당겨가는데 진일보한 과정임에는 틀림없다

일단 소생이 현재 여기가지 생각해보았습니다 지구촌 행성인류가 100년동안 가장 크게 진보해온 점을 나열해보았습니다 다른 의견이있다면 토론 해 주시면 감사합니다


아래 세계 정보기관들이 상대적인 논리에 전 세계인들이 이제는 정보맨이고 정보 요원이다 문제는 정보의 가치가 무엇을 추구해 가는가라는것이다

세계 정보맨들이 이제는 지구 행성을 위해서 공동관심사를 논의해야만 하는 싯점에 이르게된것이다 더 이상 정보맨들의 비밀 정보는 그들의 정치권력을 누리기위한 정보이지 소생의 눈에는 그러한 정보는 앞으로 이 지구가 맞이해야하는 관점에서 보면 그러한 정보는 쓰레기 정보에 불과하고

진정한 세계적인 정보는 바로 지구 행성에 대한 난제들을 풀어낼수있는 대안을 찿아내는것이 상생하는 정보만이 살아있는 정보가 될것이고 또한 투명화 될것이다

지금도 나름대로 세계 각 국가들은 그러한 자국의 이익을 위한 정보첩보 수집활동을 하고 있지만 이제는 일본 내각조사실에서 정보분석이 무엇보다도 중요함을 즉 수집에서 분석으로 정보의 영역의 중요성이 확대되고 중요시 되고 있다

다른 국가에서도 정보 분석을 최고의 정보 요직중에 꽃이라고 할수가 있지요 정보 분석은 타고난 재주가 아니면 분석 해 내기란 쉬운일이 아니지요

세계 정세를 분석하고 통찰하고 선견지명으로 다른 국가들보다도 앞선 정보가 준비를 할수있는 기회가 하늘에서 주어지기에 그만큼 정보의 세계 평균화 현상도 지금 일어나고 있지만 그럴수록 앞선 준비할수있는 정보의 가치만큼 중요한것이 없다 왜냐하면 그것이 자국의 이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수밖에 없기때문이기에

소생도 그래서 공식적인 직책의 정보맨은 아니지만 깨달음의 수행자로서 전세계 국가들의 정보 동향을 체크하고 있으니 깨닫지않은 정보맨하고 깨달음을 통달한 정보맨이 이 세상사를 바라보는 눈은 다르게보이는것입니다

그래서 정보맨도 깨달음의 수행을 게을리해서는 아니됩니다 과연 대한민국 정보맨들은 충실히 하였는가 묻고 싶고 위에 미국 정보맨들이 대한민국 대선의 개입에 대해서 얼마나 미연에 방지하도록 노력해왔는지 미국 백악관에다가 위의 이번 대선에 개입한 자료들을 보냈습니다 다른 나라보고 인권이라고 말할자격도 없지만 지금 대한민국 정보맨의 역활은 충실히 다하고잇지않다고 소생의 판단이 섭니다

미국을 설득할수있는 세계를 설득할수있는 정보맨이 세게 최고의 정보맨이지 그만큼 정보맨들의 생각하고 있는 가치와 철학 인류관의 소양 의식이 결여된 가운데에 종속적인 정보맨은 정보맨의 역활을 하지못합니다

세계 정보맨이 한자리에 모여서 지구촌의 문제를 공동사항을 논의하고 대책을 세우는 지구촌의 정보 기관의 연합 그룹을 구축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일단 대륙연합 그룹차원에서 다자간 정보 연합 그룹을 구축해서 상생할수있는 모습들을 보여주시기를 기대합니다

미국의 CIA 지구촌 정보 틀어쥔 ‘비밀공작’ 본산

냉전시대에 탄생 후 세계 곳곳 분쟁 개입 … 미 본토 테러 감지 못해 명성에 흠집

테러리스트들의 미 본토 공격이라는 최악의 참사를 당한 미국의 상원 정보위는 최근 중앙정보국(CIA), 연방수사국(FBI) 등 정보·수사기관이 이번 테러사건을 왜 예견하지 못했는지를 가리기 위한 청문회를 곧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미 언론도 뉴욕과 워싱턴에서 동시다발 연쇄테러를 일으킨 범인들이 미국에서 항공학교를 다니는 등 수년 간 범행을 준비해 온 사실이 드러남에 따라 구멍뚫린 미국의 허술한 정보·보안망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이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인은 이번 최악의 참사를 당하고서도 총론적으로 정권을 비판하는 것보다 각 정보·보안기관에 더 책임을 묻고 있다. 사건 발생 1주일 만에 CNN 방송과 USA 투데이지(紙)가 갤럽에 의뢰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응답자들은 △연방항공청(FAA) 78% △CIA 59% △FBI 52% 순서로 책임 소재를 지적했다. 항공기 납치가 대참사의 직접적 원인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연방항공청에 1차적 책임을 지운 것이다. 또 응답자들은 이번 테러가 2∼5년 간 준비한 결과라는 점에서 부시(34%)보다는 클린턴(45%) 쪽에 더 많은 책임을 지웠다.
그러나 정보·보안기관에 대한 책임론을 곧바로 제기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정치인들은 CIA 권한 강화론을 제기한다. 상원 정보위 리처드 셸비 의원(공화·앨라배마)은 한 인터뷰에서 “테러에 대한 전쟁에서 적을 공습목표로 삼는 것과 암살단을 이용해 살해를 시도하는 것은 별 차이가 없다. 외국의 적을 암살하고 비밀 공작원을 고용할 수 있도록 더 자유로운 재량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제임스 울시 전 CIA 국장도 “부시 행정부가 정보기관활동에 일대 혁신을 시도하고 있다”고 전했으며 포드 행정부에서 CIA 국장을 지낸 조지 부시 전 대통령도 “규제를 걷어내고 정보기관의 자율성을 높이는 방안이 절실하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포드 대통령 시절인 1970년대 중반 의회 청문회에서 CIA가 쿠바의 국가원수인 피델 카스트로에 대한 암살을 기도한 사실이 밝혀진 것을 계기로 대통령 행정명령으로 금지한 이른바 ‘더러운 전쟁’(암살공작)을 25년 만에 공식적으로 재개할 태세인 것이다. 이와 관련해 뉴욕타임스와 CBS 방송이 공동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65%가 CIA의 외국 테러리스트 암살공작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러운 전쟁’을 수행할 만반의 준비태세를 다진 CIA에서 일하길 희망하는 지원자도 쇄도하고 있다.

일본군 진주만 공습이 실질적 탄생 배경

뉴욕포스트지(9월19일자)에 따르면, 테러사건 이전엔 1주일 평균 600명 정도의 지원자가 CIA의 문을 두드렸으나, 그 후 1주일 간 몰린 지원자는 3000여 명에 달한다는 것. CIA측에 따르면 정보분석가나 컴퓨터 전문가 외에도 목숨을 걸어야 하는 비밀공작 스파이로 일하길 원하는 지원자도 이전보다 배로 늘었다는 것이다. 또 지원자 중 상당수는 아랍어나 이슬람권 언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CIA 지원자가 급격히 늘어난 것은 물론 테러참사로 인해 고취된 미국인의‘애국주의 물결’ 때문이다.
미국 언론들은 테러리스트가 뉴욕과 워싱턴을 공격했을 때 처음 ‘America under attack’이라는 제목과 함께 ‘진주만의 악몽’을 떠올렸다. 과거의 일이지만 당시 일본군의 진주만 기습은 미국에 일대 충격을 주었다. 이 사건은 국가정보의 원활하고 적절한 평가·보고체계가 국가안보에 얼마나 사활적 역할을 하는지 미국 정부가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1941년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개입하기 전 이미 미국은 상당한 수준의 암호해독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당시 미국 수뇌부는 암호전문을 해독함으로써 일본측 기습계획을 사전에 파악하였지만, 일본군이 구체적으로 어느 지역을 기습 공격할 것인지는 파악하지 못하였다. 미국측 정보부서가 마지막으로 입수한 일본군 암호전문은 1941년 12월7일 이른 시각 워싱턴에 접수되었는데, 전문 내용은 기습공격을 그날 오후 1시에 시작한다고만 했을 뿐 어느 지역인지 명기하지 않은 것이었다. 당시 미국 수뇌부는 일본군의 기습 목표가 필리핀이나 동남아일 것이라 예측하였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런 정보가 정작 하와이 주둔 미군에게는 적절한 시각에 전달조차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는 관료주의의 병폐와 통신기술상의 제약 등 여러 가지 배경이 작용한 결과였지만, 아무튼 미국의 정보 역사상 최악의 실패 사례로 기록된 이 사건은 전후 CIA 설립을 주장한 사람에게 중요한 논거가 되었다. CIA의 탄생 배경에는 정보활동의 체계화를 통해 다시는 진주만 사건 같은 치욕을 겪지 않겠다는 의지가 배었던 것이다.
CIA의 전신은 제2차 세계대전중 창설한 합참 산하 OSS(Office of Strategic Service)다. 그러나 전시 비밀공작과 비정규전, 조사 및 분석을 임무로 한 OSS 활동은 일본이 항복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해체를 지시한 트루먼 대통령에 의해 종지부를 찍었다. OSS가 맡은 정보수집 기능은 전쟁부 및 육군으로, 조사·분석 기능은 국무부로 이관되었다. 비밀공작 활동은 전면 중단했다. 그러나 이 조치는 행정부 내 여러 당사자의 불만을 샀다. 또 정보담당 부서 사이에 충분히 조율하지도, 제대로 분석하지도 않은 정보보고가 대통령에까지 올라가는 일도 자주 일어났다. 그리고 무엇보다 냉전이 시작되면서 국가안보를 위한 정보체계를 확립해야 할 필요성은 점점 커졌다.

트루먼 대통령은 이에 1946년 1월 CIG (Central Intelligence Group) 신설을 지시했다. CIG는 국무부·전쟁부·해군의 최고 수뇌들로 구성된 CIA(Central Intelligence Authority)의 지휘를 받아 국가정보 활동의 통합·조정 기능을 맡았다. 그리고 CIG는 1947년 미 의회에서 국가안전보장법(National Security Act)이 통과되면서 오늘날의 CIA(Central Intelligence Agency)로 새롭게 태어났다. 이로써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법률적 근거를 가진 국가정보기관으로 탄생한 CIA는 1949년 중앙정보국법(Central Intelligence Agency Act)에 의해 더욱 확고한 법적 기반을 갖게 되고 이른바 NIEs(National Intelligence Estimates)의 생산을 시작했다.

트루먼 대통령은 훗날 회고록에서 CIA를 탄생시킨 것을 후회했다. 트루먼은 자신이 구술한 자서전에서 “자유롭고 민주주의적인 정부와 CIA의 비밀주의는 조화하기 어렵다. CIA는 막대한 예산을 쓰면서도 비밀이라는 이유로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모른 채 감시와 통제 바깥에 있다”고 CIA를 강력히 비판했다. 그러나 그의 집권 시절 이미 CIA는 비밀공작 활동을 시작했고, 1952년 암호해독 및 개발을 전문으로 하는 NSA(National Security Agency)의 창설을 승인하기도 했다.

94년 예산 30억 불, 직원 수 1만5천 명
CIA의 전체 규모는 구체적으로 드러난 적이 없지만, 예산과 관련한 한 비밀공작 활동의 빈도와 범위에 따라 해마다 상당한 변동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980년대에는 전체 정보예산의 상당 부분이 CIA 몫이었다. 왜냐하면 이 시기에 CIA는 니카라과, 앙골라,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대규모 비밀공작 활동 등 다수의 비밀공작을 벌였기 때문이다. 1986년 CIA 예산은 28억 달러 정도로 추산되었다. 1994년도 예산은 30억 달러, 직원 수는 1만5000명선으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4000명에 달하는 계약직과 파트타임 근로자를 제외하고도 2만2000명선에 이른다는 주장도 있다. CIA 본부는 워싱턴 D.C. 근교인 버지니아주 랭글리(Langley)의 포토맥 강가에 있으며, CIA 국장이 수장(首長)을 겸하는 DCI(Director of Central Intelligence)는 본부 7층 집무실 외에 백악관 옆 구행정건물에도 전용 사무실이 있다.

CIA 조직체계의 핵심은 관리부(DDA)·첩보부(DDI)·공작부(DDO)·과학기술부(DDS&T) 등 4개 부서다. DDA는 인력·예산·보안·의료 서비스·해외 병참지원 등 행정 및 관리를 맡는 부서다. CIA의 부서 중 최대 규모인 DDI는 정보를 분석하고 최종 생산해 내는 부서다. 1952년에 설립했으며 카터 행정부 시절 국가해외평가센터(NFAC)로 이름을 바꿨다가 훗날 윌리엄 케이시 국장이 원래 이름으로 환원했다. DDI는 무기통제 정보·수집 소요 및 평가·기획 및 관리·생산평가 등 4개 특수 스태프를 거느렸으며, 당면정보 생산·지구적 사안·영상분석·정보자원·리더십 분석·과학 및 무기연구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 및 전 세계를 5개 지역으로 나누어 담당하는 부서들을 배치했다. DDS&T는 기초 및 응용과학 연구 개발·기술정보 수집시스템의 설계 및 운용·과학기술 정보의 최종 생산 등을 담당한다. 이곳에는 연구개발·연구 엔지니어링·해외방송정보서비스·신호정보(SIGINT) 공작·기술 서비스·국립사진판독센터 등의 부서를 배치했다.

공작부(DDO)는 비밀수집·방첩·비밀공작을 담당하는 공작부서다. CIA라고 하면 일반인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 공작부지만, 인력과 배당하는 자원 면에서는 다른 부서보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편이다. 첩보기관으로서 CIA는 그동안 신비롭고 전지전능한 이미지를 쌓아왔고, 이는 외부인으로 하여금 실제로 CIA가 관여하지 않은 일까지 CIA의 탓으로 돌리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 CIA 업무의 상당 부분은 공개자료 속에서 의미 있는 정보를 추려내는 단조롭고 지루한 일이다.

카스트로 제거 작전 ‘대표적 실패 사례’
CIA를 중심으로 한 미국의 정보기관이 냉전 이래 수행해 온 비밀공작(Covert Operation)의 성공과 실패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사례가 알려졌다. CIA가 성공 예로 제시하는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유럽의 반공산주의 세력에 대한 자금 지원 및 마셜 플랜 막후 지원.
△소련 블록의 내부적 이완을 목표로 수행한 자유유럽 라디오(Radio Free Europe) 및 자유 라디오(Radio Liberty) 활동.
△냉전중 소련 블록에 서방세계의 서적 및 잡지를 밀반입함으로써 공산권 주민에게 서방문화 및 소비에트 체제에 대한 비판의식을 주입.
△라틴 아메리카에 소련 영향력이 침투하는 것을 성공적으로 저지. 대표적 예로 1963~73년까지 칠레 내정에 개입해 사회주의자인 아옌데의 집권을 방해했고, 1970년 끝내 아옌데가 집권에 성공하자 1973년 피노체트의 군부 쿠데타를 지원해 성공.
△1954년 과테말라의 좌익 민선정부인 아르벤츠 정권을 전복한 아르마스 대령의 쿠데타 지원.
△1953년 이란에서 민족주의 정권인 모사데크 정권을 전복하고 권좌에서 축출당한 팔레비왕이 재집권하는 데 성공.
△1953년 필리핀에서 훅스(Huks) 게릴라 진압을 위해 막사이사이 집권을 지원.
△63년 베트남의 쿠데타를 이용해 고딘 디엠 암살. 또 베트남에서 베트공 조직 붕괴를 목표로 한 악명 높은 ‘피닉스 작전’을 수행했는데, 작전의 총책임자는 훗날 CIA 국장을 역임한 윌리엄 콜비.
△80년대 아프간 반군에 스팅어미사일 등 군사·경제적으로 지원하여 소련이 아프간 전쟁을 지속하는 데 대해 회의감이 들게 함.
그러나 이러한 성공 사례 뒤에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실패 사례가 있다. 대표적 실패 사례가 61년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를 제거할 목적으로 수행한 피그스만 공격이었다. 이 작전은 아이젠하워 행정부가 승인하고 케네디 행정부하에서 실행했는데, 1400명의 침공군 중 100여 명의 사상자를 낸 끝에 대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이 사건으로 미국의 대외적 위신은 크게 실추했고, CIA에 대한 여론 또한 최악으로 떨어졌다. 피그스만에서 참사가 일어났는데도 CIA는 카스트로 정권 타도를 위한 비밀공작을 계속했다. 카스트로 암살 공작을 시도하는 한편‘몽구스(Mongoose) 작전’이란 공작명으로 전복공작을 전개했다.
이외에 CIA 실패 사례로는 58년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 정권 전복기도, 아프리카의 앙골라 내전 개입 등이 있다. CIA는 해외에서 반공주의를 내건 반군세력을 지원한다면서 오히려 그들을 곤경에 몰아넣은 경우도 종종 있었다. 심지어는 미-소 데탕트 기간중에도 대소 비밀공작 활동을 벌임으로써 냉전이 더 심화하기도 했다.
그러나 탈냉전이라는 새로운 상황은 국가안보 개념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다. 냉전 시절의 전통적 국가안보 개념이 군사적 측면에 큰 비중을 두었다면, 탈냉전 이후에는 경제·기술·생태·사회 안보 등의 중요성이 새롭게 부각했다. 냉전 종식과 함께 비밀공작의 빈도와 범위는 대폭 감소했다. 반면 방첩 부문은 탈냉전 이후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었고, DCI는 여러 정보기관들이 연합해 기구를 새로 구성하는 방법으로 방첩, 대테러, 대마약, 비확산 등의 문제에 대응하고 있다.


< 정리·김 당 기자 / 자료제공·국가정보연구회 > dangk@donga.com 주간 동아 제304 호 기사


이스라엘의 모사드
작은 조직 막강 정보력 ‘살아 있는 전설’
1200명 요원 지구촌 레이더 역할… 정보수집·분석·암살 등 조직마다 세계적 명성

"기만에 의하여 전쟁을 수행한다”(By way of deception, thou shalt do war). 손자병법을 연상케 하는 이 구절은 이스라엘의 전설적인 국가 정보기관 모사드의 모토다.

이스라엘의 정보공동체는 해외정보를 담당하는 모사드, 국내보안을 담당하는 신베트, 군사정보를 담당하는 아만, 외무부 산하의 정치기획·조사센터, 내무부 산하의 경찰 등으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정보공동체를 조정하는 기관으로는 최고정보조정위원회(Va’adat Rashei Hasherutim)가 있다. 여기에는 각 정보기관의 책임자와 총리의 정보·군사·정치·대테러대책 고문이 참석한다. 의장은 모사드 부장이 맡고 있다.

모사드의 정식 명칭은 ‘ha Mossad le Modiin ule Tafkidim Meyuhadim’으로 정보 및 특수임무 연구소로 번역할 수 있다. 모사드는 이스라엘의 정보·보안체계에서 해외정보를 담당하며, 주로 인간정보(Humint)와 비밀공작(Covert Action), 대테러활동(Counterterro rism) 등의 임무를 수행한다. 본부는 텔아비브에 위치하고 있으며, 요원 수는 1980년대 후반의 평가에 의하면 1500∼2000명이었으나 최근의 자료는 1200명이라 평가하고 있다. 한편 전직 모사드 요원이었던 빅터 오스트로브스키는 전 세계적으로 모사드가 고용한 에이전트는 3만5000명이며 이 가운데 2만 명은 활동중이고 1만5000명은 활동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비밀스런 모사드의 조직과 관련된 자료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미국 CIA가 1977년에 작성한 이스라엘 정보기관에 대한 보고서다. 이 자료는 원래 극비자료였으나 79년 이란 회교혁명으로 테헤란 주재 미 대사관이 점거되었을 때 외부로 유출되어 알려졌다. 이 자료에 의하면 모사드는 작전기획조정국, 수집국, 정치활동연락국, 인력·재정·병참·보안국, 훈련국, 분석국, 기술공작국, 기술국의 8개국(局)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치활동연락국과 수집국은 공동으로 북·중·남미 등 8개의 지역과(課)를 운영했고, 이스라엘 대사관의 모사드 요원들은 첩보수집국과 정치활동연락국에서 파견나온 요원들로 구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확한 조직규모 아직도 베일에 가려

다른 하나는 전직 모사드 요원이었던 오스트로브스키가 1990년에 밝힌 모사드 조직표이다. 이 조직표에 모사드는 작전을 담당하는 부서와 지원을 담당하는 부서로 나누어져 있다. 하지만 모두 몇 개의 국이 있는 지는 이 도표만 가지고는 확인하기 어렵다. 이를테면 미국과학자연합(FAS)은 모사드가 8개국으로 이뤄졌다고 하지만 이름은 5개만 밝혔을 뿐이다.

먼저 모사드의 작전부서에는 수집국과 정치활동연락국, 심리전국(LAP)국 등의 부서로 구성되어 있다. 수집국은 가장 규모가 큰 부서로 해외첩보수집을 담당한다. 수집국은 A·B·C의 3개실을 가지고 있으며, 각 실은 지역과와 해외지부를 관리한다. 정치활동연락국은 우호국의 정보기관과 정보교환업무를 담당하며, 외교관계가 없는 국가와의 접촉 및 연락업무를 수행한다. 심리전국은 모사드의 심리전, 선전, 기만작전을 담당하고 있다. 모사드의 작전부서 중 챠프리림(Tsafririm)은 전 세계에 있는 유대인과의 연락을 담당한다.

야할로민(Yahalomin)과는 특별통신부대로 이스라엘의 적대국에서 활동하는 첩자들과 통신을 담당하고 있다. 네비오트(Neviot)는 정해진 목표물에 대한 도청 등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부서다. 그리고 모사드 내부보안을 담당하는 부서로 APM이 있다.

지원부서 중 가장 중요한 곳은 분석국이다. 수집된 첩보를 정보화하는 역할을 담당하며 구체적으로 일일보고서, 주간동향보고서, 월간보고서 등을 제작한다. 연구국은 14개의 지역과와 핵담당과로 구성되어 있다. 기술국은 모사드의 작전을 지원하기 위한 최첨단의 기술과 장비를 개발하는 업무를 담당한다. 이밖에 모사드의 비밀공작을 담당하는 독립부서인 메차다(Metsada)는 암살, 사보타주, 준군사적 활동을 수행하는 핵심부서다. 특히 메차다 휘하에는 암살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키돈(Kidon)과가 활동하고 있다.

히브리어로 위 혹은 정상을 의미하는 알(Al)은 미국 내에서 비밀리에 첩보활동을 벌이는 모사드의 특수부서다. 오스트로브스키에 따르면 모사드 내에서도 알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 만큼 조직 자체도 독립적이라고 한다. 3명의 카트사(Katsas:정보관)를 포함한 24∼27명의 현장요원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73년 10월 전쟁 예측 못해 ‘명성 흠집’

이스라엘의 가장 유명한 첩보원인 엘리 코헨(Elie Cohen)의 첩보활동은 전형적인 제3국 우회침투를 통한 첩보수집 사례를 보여준다. 이집트 태생의 유대인인 코헨은 1951년 비밀리에 이스라엘에서 정보원 및 사보타주 훈련을 받았다. 훈련을 마친 후 모사드 정식 요원이 된 코헨은 카밀 아민 타베스라는 레바논 이주 시리아인으로 위장해 먼저 아르헨티나의 시리아인 공동체에서 활동했다. 코헨은 그곳에서 나중에 시리아 대통령이 된 아르헨티나 주재 시리아 무관 아민 엘-하페즈 장군 등 저명 인사들과 접촉해 이들의 소개장을 갖고 62년 시리아로 잠입했다.

시리아에서 코헨은 고위층과의 교류를 통해 막대한 정보를 입수했다. 코헨이 획득한 정보에는 소련고문단이 작성한 이스라엘 공격계획, 소련이 시리아에 제공한 무기 사진, 골란고원의 시리아군 배치도 등이 포함되었는데 특히 골란고원 시리아군 배치도는 67년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군이 승리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그러나 코헨은 그 전인 65년 시리아 방첩부대에 체포되어 다머스커스 순교자광장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이밖에 이집트에 영국군 장교로 위장 잠입해 이집트 미사일 개발계획 및 배치도 등을 수집해 보고한 볼프강 로츠, 레바논 베이루트에 사는 7명의 자녀를 둔 유대인 주부로 암호명 ‘진주’라는 모사드 요원으로 활동한 ‘중동의 마타하리’ 슐라미트 키사크-코헨 등이 전설적인 모사드 첩보요원으로 손꼽힌다.

모사드 비밀공작의 대표적 사례는 아돌프 아이히만 납치공작이다. 아이히만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독일의 친위대 장교로 유대인 학살에 깊이 관여했지만 종전 후 신분을 감추고 잠적해 전범재판을 피한 인물. 모사드는 그가 아르헨티나에 산다는 첩보를 입수한 뒤 약 3년 간의 추적 끝에 60년 5월 마침내 그를 납치해 아르헨티나 독립 150주년 축하사절단이 타고 온 비행기로 이스라엘로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 아이히만은 이스라엘 법정에서 유죄평결을 받고 62년 5월 처형되었다. 이 공작은 당시 신생조직이던 모사드의 역량과 나치즘에 대한 이스라엘 정부의 단호한 의지를 전 세계에 과시한 것이었다. 이밖에 72년 뮌헨올림픽에서 ‘검은 9월단’이 이스라엘 육상선수들을 사살한 데 대한 보복암살은 모사드의 대표적인 암살공작으로 꼽힌다.

이스라엘 정보활동의 가장 큰 실패 사례는 73년 10월 전쟁을 예측하지 못한 것이다. 그로 인해 이스라엘은 이집트와 시리아에게서 전략적인 기습을 받아 패전 위기에 직면했다. 반격에 나선 이스라엘은 미국의 전폭적인 병참 및 정보지원 아래 최종 승리를 거두긴 했지만 이때까지 무적의 이스라엘군과 세계 최고의 정보기관 모사드라는 이미지는 크게 훼손되었다. 이로 인해 전후에 위원회를 구성해 문제점을 규명했지만, 이는 첩보 부족 탓이 아니라 첩보 해석을 둘러싼 정보공동체 내의 갈등-대립 탓이 컸다. 즉 총리 직속기구인 모사드와 군정기구인 아만의 판단 및 의견 대립으로 정부가 아무런 대응조처를 취하지 못한 상태에서 전쟁을 맞이한 것이다.

이와 같은 총리와 정보공동체 사이의 상호불신과 갈등은 이스라엘 정보공동체 위기의 핵심 원인이다.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이스라엘 정보기관들 또한 점차 베일을 벗고 양지로 나오고 있다. 공식적으로 모사드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던 이스라엘 정부가 전례를 깨고 모사드 국장 임명 사실을 공개하고 지난해 7월 최초로 언론에 공채광고를 내고 신입요원 모집에 나선 것 등이 이를 반영한다. 또 이스라엘은 미군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기술정보(Techint) 수집능력을 강화하는 데 힘쓰고 있다. 작지만 세계에서 가장 민첩한 정보기관 모사드의 변신이 기대된다.



< 정리·김 당 기자 / 자료 제공·국가정보연구회 > dangk@donga.com 주간동아 제298 호 기사



영국의 M15, M16
'92년 전통' 코드넘버 007의 산실

국내 방첩은 M15, 해외 활동은 M16로 분담… 세계를 무대로 국가안보 첨병 역할

코드넘버 007의 영국 첩보원 제임스 본드가 소속된 기관이 바로 흔히 MI6으로 알려진 비밀정보국(Secret Intelli-gence Service)이다. 영국의 경우도 미국처럼 국내 방첩은 이른바 MI5로 더 알려진 보안국(Security Service)이 맡고 있으며, 해외정보활동은 비밀정보국(SIS)이 담당하는 식으로 분리되어 있다. MI5와 MI6의 기원은 19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대영제국 국방위원회(Committee on Imperial Defence)의 건의에 따라 비밀첩보부(Secret Service Bureau)가 설립되었다. 창설 당시 버논 켈(Vernon Kell) 대령과 맨스필드 커밍(Mansfield Cumming) 대령이 각각 육군과와 해군과의 지휘를 맡았다. 이후 조직 개편에 따라 편제가 국내과와 국외과로 변경되면서 켈 대령은 국내과, 커밍 대령은 국외과를 담당한다.

1916년 국내과와 국외과는 군사정보국의 일부로 편입되면서 각각 MI5와 MI6라는 명칭을 부여 받았다. Military Intelligence의 약어인 MI가 붙은 것은 이 기관들이 설립 초창기에는 군조직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이외에도 MI8(암호해독), MI11(심리전공작) 등이 있었지만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다. 전쟁이 끝난 후 1921년 국외과는 외무성 관할로 옮겼고 이때 비밀정보국(SIS)으로 개편된다. 한편 MI5는 1931년 아일랜드 테러분자와 무정부주의자들을 제외하고 영국의 안보에 위협이 되는 모든 사안들을 담당하면서 현재의 정식 명칭인 보안국(SS)으로 거듭난다.

소련 간첩망에 침투당해 망신살 경험

보안국(MI5)은 영국정부의 기관임에도 최근까지 법적 지위가 부여되지 않은 것은 물론, 존재 자체가 인정되지 않았다. MI5는 법령에 의해 창설되지 않았으며 관습법에 의해 인정되지도 않았다. MI5의 존재는 1989년에 이르러서야 보안국법(Security Service Act)이 제정되면서 공식적으로 인정되었다. 이 법에서는 MI5의 역할을 “첩보공작 활동, 테러, 사보타주의 위협, 외국 첩보요원의 활동에 따른 위협, 정치·산업·폭력적 수단을 동원하여 의회민주주의를 전복 또는 훼손하려는 행동에 따른 위협 등에서 국가안보를 보호”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MI5는 원래 영국에서 활동하는 외국 첩보기관에 대한 방첩이 주임무였으며 초기에는 특히 독일 스파이의 침투를 추적·색출하는 역할에 초점을 두었다. 그 결과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이전 영국 내에서 암약한 12명의 독일 첩자를 체포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하였다. 1차 대전 이후 한동안은 주로 볼셰비즘으로 무장한 공산주의자에 의한 사회전복 기도의 추적과 색출 및 검거에 역점을 두다가, 1930년대 말에 이르러 다시 독일의 첩보공작 가능성에 눈을 돌리게 된다. MI5는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이후에도 혁혁한 성과를 올린다. MI5는 전쟁중 16명의 독일인과 2명의 스페인인을 간첩으로 체포했으며 그 외에도 많은 수의 독일 첩자들을 전향시켜 독일에 대한 기만전술로 역이용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다시 소련 첩자의 색출이 주임무가 되어 상당수의 스파이들을 검거하기도 했으나, 후일 알려진 바와 같이 MI5는 MI6와 함께 이른바 케임브리지 링(Cambridge Ring)이라는 소련 고정 간첩망에 의해 철저히 침투·유린당하기도 했다. 케임브리지 링은 30년대 케임브리지 대학 재학 당시 공산주의 사상에 경도된 일단의 학생들이 소련에 의해 첩자로 충원되어 MI5와 MI6의 고위직에 이를 때까지 지속적으로 소련을 위해 첩보활동을 전개한 간첩망으로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킴 필비다. 필비는 검거 직전 베이루트에서 소련으로 피신해 88년 죽을 때까지 소련에서 살았다. 소련은 필비의 공로를 인정해 생전에 최대한의 예우를 해주었으며, 죽은 후에는 KGB의 영웅을 주제로 한 우표 시리즈에 필비를 넣기도 했다. 어쨌든 이로 인해 MI5는 냉전 시기 대소 첩보전에서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며 신뢰도를 떨어뜨렸을 뿐 아니라 영국 정보기관과 많은 정보를 공유한 미국 정보기관과의 협조체제에도 손상을 입었다.

이와 같이 MI5는 과거에는 주로 적성국가들의 간첩침투에 대한 방첩활동에 역량을 집중해 왔지만 최근 들어서는 테러리즘, 마약, 불법이민, 조직범죄 등 과거 경찰이 담당한 영역까지도 활동의 범위를 넓혔다. 아울러 MI5는 북아일랜드 문제와 관련한 활동에 상당한 자원을 투여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그 외에도 웨일스나 스코틀랜드의 극단적 민족주의자들에 대한 정보활동도 수행한다고 한다. 이처럼 MI5의 활동영역이 넓어지면서 MI5와 경찰간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예컨대 원래 북아일랜드 문제를 담당해 온 스코틀랜드 야드(Scotland Yard)의 수사관들은 MI5가 무능력하고 서투르다고 비난하곤 한다.

1993년 MI5가 발간한 소책자 ‘보안국’(The Security Service)에 의하면 MI5의 기능은 크게 △테러 방지 △방첩 △국가전복기도 방지 △방호 보안(protective security) △보안 정보활동의 다섯 가지다. 이런 기능 속에는 대(對) 정보활동과 방첩공작 수행, 민감한 첩보에 접근할 수 있는 모든 직원의 보안심사 감독, 파괴 활동 가능성이 있는 분자들의 국내 활동과 조직들에 대한 감시가 포함된다. 보안국은 대 태업활동과 외교적 임무를 수행하는 인원들을 포함하여 외국의 거류민과 방문객의 감시와 통제에 대한 책임도 맡고 있다.

MI5는 공개적 활동, MI6는 아직 베일 속

MI5는 1850명의 풀타임 요원을 고용하고 있으며, 총 여섯 개의 처(處)로 편성되어 있다. A처(정보자원 및 운용), B처(참모실, 행정 및 재정), 그리고 S처(지원근무, 등록, 컴퓨터 센터 및 훈련실)가 행정 및 평가를 담당하는 부서들이다. MI5의 기본 임무를 수행하는 부서는 C처(방호 보안), F처(국내 전복), K처(방첩)이며, 이 처들은 다시 과(課)로 세분된다. 1997~98년 예산편성에 따르면 MI5 가용자원의 편성비율은 △북아일랜드 관련 테러활동 업무(25%) △국제 테러활동(15.5%) △방첩 업무(12%) △방호 보안(7.5%) △중대범죄(2.5%) △무기 확산(2%) 등이다.

냉전이 끝나자 MI5도 과거의 비밀성을 탈피하기 시작해 1991년에는 최초의 여성 국장으로 화제를 불러일으킨 스텔라 리밍턴 여사(Dame Stella Rimmington)의 임명을 언론에 보도하기도 했다. 두 아이의 어머니기도 한 리밍턴 여사는 냉전의 그림자에서 MI5를 이끌어 내어 처음으로 활동을 양성화하기 시작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리밍턴 국장의 뒤를 이어 1996년 부임한 스티븐 랜더(Stephen Lander) 국장은 1975년부터 MI5에 근무한 케임브리지 박사(사학 전공) 출신으로 북아일랜드 문제에 특히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MI5가 공식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국장의 신원과 사진까지 언론에 보도할 정도로 냉전 이후 공개적 활동을 전개한 반면, 첩보원 007 시리즈의 소재가 된 MI6는 아직 베일에 싸인 기관이다. 1994년 제정된 정보국법(Intelligence Services Act)에 의하면 MI6의 역할은 “영국의 국토 바깥에 있는 인물들의 행동과 의도에 대한 정보를 수집·제공하며, 국방 및 외교정책과 관련된 국가 안보이익 증진, 영국의 경제적 이익 추구, 범죄 방지 및 탐지와 관련된 기타 업무를 수행”하는 데 있다고 한다. 이 법안의 제정으로 의회 내 MI6의 지출·행정·정책을 감독하는 정보보안위원회(Intelligence and Security Committee)를 설치했다.

MI6도 MI5와 마찬가지로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전에는 독일이 주된 첩보활동 대상이었으나,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나 그 후에는 러시아에서 볼셰비키가 권력을 장악하는 것을 막기 위해 멘셰비키를 지원하는 공작을 수행하는 등 소련을 대상으로 하는 첩보활동에 점차 주력한다. 이러한 공작활동을 수행한 첩보원 중에는 우리에게 유명 작가로 잘 알려진 서머싯 몸과 대니얼 데포 등이 있다. 그러나 소련에서의 공작활동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MI6의 신뢰도가 크게 실추되었고, 또 소련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다른 지역에서의 정보수집활동이 지나치게 위축되어 결국 1935년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침공, 독일의 라인란트 점령, 1938년과 39년 독일에 의한 체코슬로바키아와 폴란드 침공 등 주변국의 움직임을 제대로 감지하지 못했다.

영국 거주한 외국인 주포섭 대상

하지만 MI6는 2차 대전의 발발과 함께 제 기능을 발휘하기 시작하여 특히 암호해독에서 큰 성공을 거두어 영국뿐 아니라 다른 연합국들에게도 독일과 이탈리아의 군사력 및 이들의 의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기도 했다. MI6는 2차 대전이 끝나기 전인 1944년 여름에 대(對) 소련 부서를 신설하면서 본격적으로 냉전시대 첩보전의 막을 연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대로 MI6는 소련 첩자인 킴 필비 등이 이미 침투하여 MI6의 많은 활동들이 사전에 소련에 노출되어 실패로 돌아가기도 했다.

냉전이 종식되고 공산권의 몰락으로 적성국가가 사라짐으로써 MI6의 활동은 크게 위축되었다. 과거 소련의 위협에 초점을 맞춘 기능은 대폭 감축되어 구소련 지역에 대한 공작활동은 약 3분의 2가 줄어들었다. 그러나 러시아 정보 당국이 런던에서의 정보활동을 활성화한 것으로 알려진 96년에는 MI6 활동이 다시 되살아나는 기미를 보이면서 그해 5월 영국과 러시아가 각각 4명씩의 외교관을 추방 및 맞추방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MI6의 업무 영역에 변화가 일어났음은 또 다른 사건에서도 알 수 있다. 냉전 이후 MI6는 유령회사를 설립하여 프랑스의 브레스트 해군기지에서 일하는 기술자에게서 잠수함 추적 기술을 빼내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이제 MI6는 ‘제트기류’(Jet Stream)라는 공작명하에 서유럽 내 친선우호국을 대상으로도 공작활동을 수행하였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직원들에게 ‘회사’(The Company)로 통하듯 MI6도 내부에서는 ‘상사’(The Firm)로 통한다. 이 ‘상사’의 본부는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에게는 ‘레고랜드’(Legoland)라고 알려진 런던의 복스홀 크로스(Vauxhall Cross) 85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은 약 2300여 명(1994년 3월 현재)으로 추산되나 인원과 예산이 과거에 비하면 감소 추세에 있다. 99년 로빈 쿡 외무장관은 원래 중동 전문가인 데이비드 스페딩(David Spedding)의 후임으로 리처드 디어러브(Richard B. Dearlove)를 책임자로 임명했다. 94~99년에 국장으로 일한 데이비드경은 지난 6월 폐암으로 사망했다.

MI6는 초대 국장인 맨스필드 커밍의 성(姓)에서 머리글자를 따 ‘C’라고 부르는 국장이 지휘하고 있다. MI6는 조직의 우두머리인 국장 아래 일상적 활동을 감독하는 본부장을 두었으며, 본부장 밑에는 네 개의 처와 해외작전을 감독하는 통제단이 있다. 4개 처는 인사·행정처, 특수지원처, 방첩·보안처, 그리고 정보수집 소요의 결정과 정보보고서 작성의 책임을 맡은 소요 및 생산처로 나뉘었다. MI6의 해외공작은 7명의 통제관의 감독하에 있다. 통제관은 영국에 거주하다 귀국하는 외국인 중 본국 귀환시 영국을 위한 공작원으로 활동할 수 있는 인물을 식별하여 포섭하는 책임을 맡고 있다.


< 정리·김 당 기자 / 자료제공·국가정보연구회 > dangk@donga.com 주간동아 제 304 호


일본의 내각 정보 조사실
경제전쟁 ‘거미줄 정보망’ 가동

전 세계 산업정보 ‘일거수 일투족’ 수집 분석… 자금 지원 민간연구기관이 중추 역할

태평양전쟁기까지 일본의 국가 정보체계는 군(軍) 정보기관과 경찰이 중추적 역할을 맡고 현지의 정보원들을 광범하게 활용하는 인간정보(humint) 네트워크가 주축이었다. 1881년 정예요원 349명으로 출범해 대본영 휘하 육군성 소속기구로 활동을 개시한 헌병대와 참모본부 휘하의 특무부대 그리고 내무성의 특별고등경찰(특고)이라는 민간인 사찰기구 등이다. 특히 친일 정보원을 통한 정탐과 매수를 주요 수단으로 한 일본의 인간정보 네트워크는 만주국 수립 및 중국 침공 전후 헌병대를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확장되었다. 또 만주 주둔 관동군은 특히 현지 정보 수집능력이 탁월해 각종 침략주의적 공작활동의 중심이 되었다.

예를 들어 1928년 만주 펑톈(심양)역(驛)에서의 장작림(張作霖) 폭사사건은 관동군 대좌 카와모토 타이사쿠가 주도했고, 31년 펑톈 교외에서 일어난 유조구(柳條溝) 사건도 관동군 작전참모인 이시하라 중좌를 중심으로 치밀하게 사전에 모의한 사건이었다. 관동군은 유조구에서의 열차 폭파사건을 중국인의 소행이라고 뒤집어씌워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특무기관원들이 주도해 청나라 마지막 황제 푸이를 괴뢰 만주국의 황제로 옹립하는 공작을 수행했다. 또 화북 분리공작, 내몽고 자치정부 수립공작, 왕조명 정부와 같은 중국 내 괴뢰정권 수립 공작은 일본 본토의 특무부대와 현지 관동군이나 화북 주둔군의 특무부대가 주도한 것이다.

이처럼 대륙 침략과정에서 인간정보 수집능력에 탁월한 수완을 발휘한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는 암호해독전(cryptological warfare) 능력의 부족 때문에 미국에 완패하는 경험을 하였다. 태평양전쟁중 독일이 제공한 암호화기(enigma machine)의 코드가 연합국측 정보원을 통해 유출되어 일본의 중요한 군사정보 통신망은 미군에 완전히 노출되었다. 이를테면 미드웨이 결전을 앞두고 일본 해군의 암호전문 정보가 유출되어 미 해군은 함대 결전을 충분히 예상하고 준비할 수 있었으며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은 주력 항모 4척과 항공기 300대를 잃는 타격을 입었다.

당시 미국의 니미츠 제독은 미드웨이 해전 직전에 일본 해군이 송신하는 특정목표 코드인 ‘AF’가 알류샨인지, 하와이인지 또는 미드웨이인지를 알기 위해 미드웨이 부대장에게 식수 부족 내용을 송신하라고 하였다. 일본 본국에서 미드웨이를 AF라는 암호명으로 지칭하면서 미드웨이에 식수가 부족하다는 정보를 일본 해군으로 송신하는 것을 미군이 중간에 암호를 해독하여 미 해군은 일본의 공격목표가 미드웨이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태평양전쟁에서 암호해독전의 실패로 쓴맛을 본 일본은 전후 민간부문의 해외 산업정보 수집능력으로 수출입국에 성공하고 경제대국으로 부활할 수 있었다. 당시 인간정보 네트워크의 핵심역량은 나가노정보학교 출신 요원과 만철(滿鐵) 조사부 요원들. 특히 일본 군부가 정보요원을 양성하기 위해 전쟁 전에 세운 나가노학교 출신들은 전후에 일본 민간기업에 취직해 정부와 민간기업간 해외정보 공유의 핵심적 고리역할을 했다.

한편 일본 대륙침략의 발판이 된 국책회사인 만주철도주식회사(만철)의 조사부 또한 전후에 일본의 해외투자 및 무역에 관한 높은 수준의 조사활동을 통해 일본을 부흥시키는 데 큰 공헌을 했다. 현재 일본의 아시아경제연구소와 유사한 기능을 수행한 만철 조사부는 만주와 중국 그리고 동남아까지의 국제정세, 현지 경제 및 법 관행 조사뿐만 아니라 역사·문화·지리를 학술적으로 총괄하는 사실상의 종합연구기관. 1907년 중국 다롄에 본사를 두고 도쿄대학 출신 등 총 4500여 명의 우수한 인력을 보유한 만철은 향후 하얼빈·지린·베이징 등에 지사를 두면서 첩보활동에까지 조사 활동을 확장해 결국 관동군 작전참모인 이시하라 칸지를 통해 일본군의 만주 통치를 뒷받침하는 두뇌역할을 했다. 현재 일본의 노무라총합연구소(NRI), 미츠비시총합연구소 같은 민간 대기업의 연구기관이 해외 경제동향 및 정세분석의 중추역할을 하는 것은 과거 만철 조사부가 닦은 역량과 무관하지 않다.

태평양전쟁 암호해독 실패로 쓴맛

패전 후 일본은 국가 정보기관의 역할이 축소되고 군사안보보다는 경제 중심의 대외관계에 무게를 두면서 민간 연구기관과 현지에 파견되어 있는 종합상사의 상사원들이 수집하는 경제 및 산업정보가 통산성 등과 공유되는 채널을 발전시켰다. 이때 나가노정보학교 출신 요원과 만철 조사부 요원들은 민간기업에 취업해 자신들이 갈고 닦아온 해외정보 수집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이들은 또한 정부와 민간기업간 정보 공유의 고리 역할을 하면서 해외 상사원들이 사실상 정부의 정보요원 역할을 하는 일본의 독특한 해외정보 수집체계를 형성하는 데 공헌했다. 이를테면 일본의 대기업 간부들은 정기적으로 통산성 등의 관료들과 회동하면서 중요한 해외 산업정보를 공유한다. 또 종합상사 간부들은 족의원(族議員)이나 자민당 파벌영수와 같은 유력 정치인에게 고급 해외정보를 제공하는 비공식 정보 네트워크를 통해 정치적 후견세력과 협력하고 있다. 종합상사들은 전 지구적인 정보 수집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는데, 예를 들어 미츠이그룹은 런던에서 나이로비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에 185개의 현지 사무소를 운용하면서 산업정보 수집의 첨병 역할을 했다. 놀라운 점은 미츠이의 본국 본부에는 석유화학·통신·항공 등 모든 사업분야를 망라하여 관련된 방대한 해외정보를 관리하는 중앙컴퓨터시스템이 1957년부터 운용되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고도로 발전된 해외 경제정보 수집·분석·공유체계가 전후 일본의 급속한 부흥과 경제대국의 성공에 결정적으로 공헌하였다고 평가하여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전후 일본의 정보기관은 국가 정보기관 성격을 띠는 내각정보조사실과 군사정보기관으로 통합막료회의 직속기관인 정보본부 그리고 국내 치안 유지를 위해 설치한 공안조사청으로 대별된다. 내각조사실은 1952년 8월 총리부 설치령으로 내각 관방장관 산하에 창설되었고, 57년 국가 정보 수집의 중심기관으로 재발족되어 미국 CIA의 요구를 반영해 공산권 동태 정보 수집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76년 12월 현재의 내각정보조사실로 명칭을 바꾸고 기능이 확대되었다. 공안조사청 또한 52년 한국전쟁중 일본 내 좌익단체의 활동을 통제하기 위한 파괴활동방지법 및 공안조사청법에 근거해 법무성 외청으로 설치되어 2000여 명의 요원으로 대내 정보활동을 시작했다. 그후 공안조사청은 탈냉전 후 96년 조직 개편으로 구공산권 정보 및 국내 이념세력에 대한 정보수집 대신 주로 해외정보 수집과 국내 광신도 종교집단 감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일본 국가정보체계의 중심기구인 내각정보조사실(약칭 내조실)은 2001년 정부 조직 개편으로 실장을 내각정보관으로 하고 내각조사관이라는 명칭은 내각참사관으로 바꾸었으나 내부 조직은 이전과 같이 7개 부, 1개 센터로 구성되어 있다. 내조실이 공식적으로 표방하는 임무는 총리대신의 중요 정책 수행을 위한 정보의 수집·분석·제공·전파와 관련해 각 성(省)·청(廳)과의 연락·조정 업무를 담당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각 부서의 임무를 보면 총무부는 외곽단체인 정세연구회를 관리하고 인사·후생·교육훈련과 주요 정보 분석 및 연락·조정의 기능을 수행한다. 국내1·2부는 각각 국내정보와 국내 언론을 담당하면서 국민출판협회 등 외곽단체를 운용한다. 국내1부는 내각의 중요정책 수립을 위한 국내정보 수집 및 분석을 담당한다. 특히 국내2부는 내각의 주요 정책에 대한 국민 여론의 동향 조사와 신문·방송·잡지의 논조를 분석하는 업무를 수행한다. 이에 반해 국제1부는 내각의 해외정보 수집·분석의 창구로서 동남아조사회·세계경제조사회 등 외곽단체를 운용하는 해외정보 담당 부서다. 국제2부는 해외 매스컴의 논조를 분석하고 내외정세조사회와 통신사 등의 협력을 받는 해외언론 담당 부서다. 경제부는 국내외 경제 관련 연구·조사를 담당하고 자료부는 민주주의연구회를 통해 정보자료·존안관리와 전산화한 정보 및 마이크로 필름을 관리한다. 이밖에 96년 4월에 신설한 내각정보집약센터에는 국토청·경찰청·방위청·외무성 요원 150여 명이 편성되어 있다.

이처럼 내조실은 풍부한 자금을 무기로 주로 외곽 민간 연구기관을 활용해 정보수집 및 분석·평가를 시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위해 내조실은 약 25개에 달하는 외곽단체의 인건비·사업비 등 예산을 부담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특기할 것은 일본방송협회·세계정경조사회·국제문제연구회 등 다수의 외곽단체마다 적지 않은 수의 지원요원을 운용하면서 전 세계를 대상으로 공개된 정보를 체계적으로 수집·분석한다는 점이다. 내조실과 직간접으로 연결된 것으로 추정되는 단체들 중에는 내조실과 깊이 관련된 단체도 있고, 내조실 출신 인물이 아마쿠다리(낙하산 인사)로 임명되면서 인맥을 통해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있다. 예를 들어 대표적인 외곽단체인 세계정경조사회의 이사장은 내조실·경찰청·공안조사청 근무 경험자를 임용하고 회장은 명예직이며 이사장이 주로 운영을 관장한다.

내각정보조사실의 중앙 조정·통제 기능이 강화되면서 각 성·청의 해외업무를 담당하는 정보수집 부서가 분석한 정보도 내조실이 종합·관리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외무성과 경제산업성(통산성)에서 취합하는 것들이다. 외무성의 정보 부서인 국제정보국의 국제정보과·분석1과·분석2과는 각각 국제정세에 대한 정보 수집·분석 및 관리 기능을 수행한다. 일종의 ‘허가받은 스파이’인 대사관 정무과 소속 외교관이나 영사들은 주재국 정세에 대한 정보 수집업무를 주로 담당한다. 특기할 것은 일본은 대사관과 현지 특파원들이 긴밀한 협조체제를 유지하였는데 한국 내에서도 주한 일본 대사가 언론사 특파원들과 주례 회동을 하면서 고급 정세정보를 교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취재 명분으로 자유롭게 정보를 수집하는 일본 언론의 특파원들은 시노하라 기자가 한국에서 군사정보를 취재하다 94년 간첩혐의로 구속사태까지 빚을 정도로 적극적이다.

관방장관 예하 7개부 1개 센터 구성

결국 내조실은 일본 국가정보체계의 중심기관이라 볼 수 있고 그 조직과 다른 성·청과의 관계는 ‘표’와 같다. 도쿄 치요다구의 나가타초에 있는 내각부의 대신관방은 내조실을 비롯하여 내각총무관실·내각관방부장관보·내각광보실로 이뤄져 있고 내각심의관 7명과 내각참사관 39명은 특별히 태스크포스팀으로 편성되어 현안 정책과제가 있을 경우 총무관실·광보실·내조실에 탄력적으로 투입해 임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전후 일본 정보기구의 특징은 45년 이전의 군 정보기관 중심의 국가 정보체계는 해체하고, 미국의 CIA와 같은 통합된 국가 정보기관은 설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최근 일본은 내각조사실, 공안조사청, 정보본부, 외무성 국제정보국 등 정보기구에 대한 조정·통제 기능 강화를 위해 행정개혁의 일환으로 내각 관방장관실 밑에 내조실(내각정보관이 지휘)의 설치를 추진했다(일본 정부는 행정개혁의 일환으로 2001년 1월6일부터 지금까지의 1부 22성·청 체제를 1부 12성·청으로 축소하면서 총리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도록 했다. 즉 총리부·경제기획청·오키나와개발청을 내각부로 통합하고 방위청과 국가공안위원회를 내각부의 직할기관으로 하면서 내각 관방의 지원을 받는 총리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내각부 관방장관 예하의 내각정보관에 의한 국가정보의 중앙조정·통제 기능이 강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 정리·김 당 기자 / 자료제공·국가정보연구회 > dangk@donga.com 주간동아 제302 호






중국 국가 안전부
첨단 기술정보 사냥꾼 ‘만만디 스파이’
수십 년 간 치밀한 활동 핵무기·미사일 기술도 ‘쓱싹’… 17개 공작국 지구촌 정보 손금 보듯
중국의 대표적 정보기관은 국가안전부(MSS : 국안부)다. 국안부는 1983년 6월 공공안전부(공안부) 내의 기존 방첩단위(1∼4국)와 건국 초기부터 당내의 내사 및 내부 안전을 담당한 중앙조사부(中央調査部)의 일부 기능 및 군 총참모부의 일부 인력을 통합해 ‘국가 안전 및 반간첩 공작을 영도·관리하며,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 및 조국통일의 대업을 보위·촉진’시킬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국안부의 설립은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의 채택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으며, 주요 목적은 중국의 대외개방으로 인한 외국인의 입국 및 내국인의 출국이 폭발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좀더 조직적으로 간첩·방첩활동을 전개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국안부 조직은 설립 초기에는 9개 공작국과 4개의 직할 지원기관으로 구성되었으나, 개혁·개방의 추진으로 인한 대외접촉의 증가 및 컴퓨터·정보통신·위성·무인항공기(UAV) 등 첨단기술을 이용한 첩보활동 증가에 대처하기 위해 업무 범위와 조직이 크게 확대되었다.

1990년대 말 현재 국안부는 17개 공작(工作)국과 10여 개의 행정지원국으로 편성되었다. 1∼3국은 지역국으로 해당 지역의 정보수집을 담당하며, 4국은 대만·홍콩·마카오를 별도 관리한다. 5국은 정보 분석의 통보와 정보 수집을 지도·연구하며, 6국은 과학·기술 정보의 수집·연구 및 통신공작을 지휘한다. 6국은 다수의 자연과학 전공자를 충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7국과 8국은 반간첩(방첩) 단위로 반간첩 정보의 수집 및 외국간첩의 정찰·체포를 맡고 있고, 해외의 중국 민주화 인사에 대한 감시 및 공작을 담당한다. 9국은 우편물 검사 및 통신정찰, 10국은 해외 중국 대사관·영사관의 안전공작을 담당한다(일부 자료에 따르면 10국은 해외 중국 대사관 및 영사관 보호 업무와 병행해 유학생 및 반중국 세력의 활동을 감시한다).

문서자료의 수집·연구·관리를 맡는 11국은 대외적으로 ‘중국현대국제관계연구소’(中國現代國際關係硏究所, CICIR)로 알려졌는데, 동 연구소의 대외 학술활동으로 인해 외국에도 잘 알려져 있다. 이밖에 12국은 사회 민의(民意) 및 동태 조사, 13국은 과학 기자재 관리·연구, 14국은 암호·통신공작을 담당한다. 15국은 대만·홍콩·마카오 연구국으로, 4국과 업무 영역이 중첩되는 것으로 보인다. 16국은 국안부 내부 전산망의 안전 관리, 전산망의 외부 침입 방지 및 관련 정보 분석단위로 추정된다. 17국은 ‘청안총공사’(淸安總公司) 같은 국안부 소속 기업 및 사업의 관리를 담당한다.

85년 정보처장 美 망명 ‘호된 신고식’

이에 비해 공안부(公安部, MPS)는 공공치안을 담당하는 주무 부서로, 일반 경찰기관의 업무 외에도 국경수비, 출입국 관리, 소방 및 산불예방, 민간항공, 산아제한, 기술정찰 등 다양한 기능을 담당한다. 특히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각종 소요진압 및 치안유지에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는 ‘무경’(武警:人民武裝警察)도 공안부 소속이다. 공안부는 당 중앙군사위의 지휘하에 현재 약 150만 명으로 추산하는 무경을 관리·운영한다.

신화사(新華社, NCNA)는 중국의 소식을 대외에 전파하고, 외국의 소식을 국내에 보도하는 일반적 통신사의 기능 외에 전 세계 각지의 소식을 수집·번역·요약·분석하여 중국의 고위급 지도자를 포함한 관계 부처에 수시 보고한다. 더욱이 신화사는 국안부 등 정보기관 요원의 해외 파견 때 신분을 은폐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신화사는 당 중앙선전부의 지휘·감독을 받으며, 신화사 사장은 인민일보(人民日報) 사장과 마찬가지로 국무원 부장(장관)급에 해당한다. 국내 31개 지부, 국외 107개 지국을 운영하며, 고용 인원은 1만 명이 넘는다. 특히 신화사 홍콩 지국은 97년 7월 홍콩의 중국 반환 이전 중국 정부의 홍콩대표부로서 통일전선공작을 수행하였으나, 홍콩이 중국의 1개 특별행정구로 설정된 현재도 과거와 같은 정보기능을 수행해야 하느냐는 문제를 안고 있다.

중국의 당·정·군 정보체계는 방대한 조직을 통해 다양한 정보목표를 수행하는데 ‘첨단기술 획득’은 중국의 4개 현대화, ‘대(對) 대만 공작’은 중국의 통일문제와 직결된 주요 업무분야다. 특히 미국 의회 및 반중국 성향 단체들은 중국의 미국 내 첨단기술 불법 획득에 대해 다양한 사례를 제시해 왔는데, 미국 내 중국의 정보활동에 대해 가장 광범위하고 심각하게 문제를 제기한 자료는 99년 5월 미 의회의 위원회가 발표한 이른바 ‘콕스(Cox) 보고서’다. 주요 내용은 중국이 자국의 군사·정보능력의 향상을 위해 핵무기·미사일·항공우주 기술 같은 미국의 다양한 군사기술을 수십 년 간 불법적으로 획득했으며, 미국 정부의 방만한 기술 수출통제정책이 이같은 중국의 스파이 활동을 쉽게 했다는 것이다.

국안부는 설립 초기인 85년 4월에 발생한 정보처장(과장급) 유강성(兪强聲)의 미국 망명 사건으로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유강성의 망명으로 미국 내 중국 첩보조직의 일부가 노출되었는데, 중국계 미 중앙정보국(CIA) 요원 김무태(金無怠) 검거사건이 대표적 사례다. 미국명이 래리인 진(金)은 지난 50년대에 국안부의 전신인 중앙조사부가 미국에 파견한 이른바 ‘심저어’(深低魚: 장기간첩)로 CIA에서 장기간 근무하다 85년 유강성 망명사건을 계기로 미 연방수사국(FBI)에 의해 간첩혐의로 체포되었다. 유강성 망명사건을 계기로 주요 보직자에 대한 문책인사가 단행된 것을 말할 것도 없고, 같은 해 9월에는 당시 47세의 가춘왕(賈春旺)이 국안부장에 전격 임명되었다. 덩샤오핑의 신임이 컸던 그는 98년 3월 공안부장으로 전보될 때까지 무려 12년 이상을 국안부장으로 재직했다.

이밖에도 97년에는 로스 알라모스 국립실험실에 근무하는 대만계 미국인 피터 리(Peter Lee)가 연구소 근무중 소형 핵탄두의 폭발실험 정보 및 대잠전(對潛戰) 관련 비밀자료를 2회에 걸쳐 중국에 전달한 혐의로 체포되어 유죄를 선고 받았다. 또 99년 초에는 역시 대만계 미국인으로 같은 실험실에 근무한 이문화(李文和, Wen Ho Lee)가 연구원 재직중 핵탄두 설계, 미사일 및 기타 군사기밀정보를 다량 유출한 혐의로 체포되어 중국의 대미 기술 획득 공작의 대표적인 사례로 집중포화를 받았다. 그러나 이 사건은 중국의 첩보활동(혐의)과 첩보결과(중국 핵무기 현대화)의 연계를 입증하지 못한 채 현재 증거 불충분으로 종결단계에 있다.

對 대만 공작은 총체적 국가공작

중국 정보당국의 첨단기술 획득 활동에 비해 대(對) 대만 공작은 중국통일의 문제로서 중국의 정보활동 중 가장 역사가 깊고 포괄적이며 철저한 업무분야다. 또 사안의 중요성으로 인해 당·정·군 지도부에서 민간 직능대표단을 동원하며, 적어도 정보수집 차원에서는 모든 영역을 망라하는 총체적 국가공작이다. 대 대만 공작의 최고지도기관은 ‘중앙대대공작영도소조’(中央對臺工作領導小組)로서 조장(江澤民), 부조장(錢其琛), 비서장(통전부장 王兆國) 외 4명의 위원(해협회<海協會> 회장 王道涵, 군 부총참모장 熊光楷, 국안부장 許永躍, 중앙대대판공실<中央對臺辦公室> 주임 겸 국무원 대대판공실 주임 陳雲林)으로 구성되어 있다.

‘양안(兩岸)관계’를 연구하는 대만의 주요 전문가들은 중국의 대 대만 공작을 ‘협상, 교류, 3통(通商·通航·通郵), 무력위협 및 선전’의 5개 분야에 대한 전면적 차원에서 파악한다. 이를테면 양안 교류분야는 87년 대만인의 대륙 방문 허용 및 91년 대만의 계엄해제 이후 급속한 증가를 이뤘다. 그러나 대만측은 중국의 정보단위가 양안교류 확대를 십분 활용해 국안부의 경우 ‘현대국제관계연구소’, 군 정보기관인 총참 2부는 ‘중국국제전략학회’의 학술교류 등을 통해 대만의 동태를 파악하는 것으로 판단한다. 또 3통의 확대는 중국 정보요원의 대만 침투를 좀더 쉽게 해주는 측면이 있는데, 예를 들어 군 총참 3부의 기업단위인‘개리공사’(凱利公司)는 대만 기업과의 정상적인 상업활동을 이용한다고 보고 있다. 대만에서는 이런 상업활동을 통한 정보공작이 중국과 대만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후 더욱 확대되었고, 2008년 올림픽 개최로 인한 중국의 국제적 위상과 경제적 활동 제고는 대만에 대한 압력을 가중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 정리:김 당 기자 / 자료 제공:국가정보연구회 > dangk@donga.com 주간동아 299 호 기사.

정보 분야

20 세기 말, 동서 냉전 체제의 붕괴이후 전세계의 정치-경제 질서의
개편과 동시에 군사력의 판도도 바뀌었으며, 이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정보 기관의 세계에도 커다란 지각 변동이 일어났다.
바로, 동구권 정보기관의 해체와 축소 개편과 정보 기관의 주임무 대상의
변화이다.
그로부터 10 년이 지난 지금, 전세계 정보 기관들은 적국의 군사, 정보 분야
에 관한 정보 수집에서 경제, 테러, 민족, 문화 등에 이르는 전 방위 정보
수집으로 목표를 선회하였다.
이는 21 세기에는 지금과 같은, 국가들만이 세계 질서의 요소가 되는 것이
아니라 MNC, NGO, IGO 등까지도 하나의 요소(factor)로써 작용하는
패러다임이 전개될 것이며, 이 때의 경쟁 요소가 경제, 문화, 사회, 인종, 환경 등의
low factor 들이 지금 중요시되는 high factor 과 거의 동격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동구권의 정보기관들이 그들 국가의 정치, 관료 조직의 불안정에 따라
힘을 잃음에 따라 최근의 각 국가별 정보기관의 순위(?)가 주로 서방 국가의
기관을 중심으로 매겨지고 있다.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이스라엘 과 중국이 세계 정보 기관들 중에서
일류에 속한다(중국의 경우에는 SIGENT, IMINT 능력은 조금 떨어지지만
화교들이 지닌 역량의 이용, 그들 자체의 정보인력 운용의 노하우가
그러한 핸디캡을 메우고 있다. 중국의 정보 수집능력은 우리가 아는 이상으로
미국도 경계할 정도라고 한다)

정보가 힘이라는 말은 진부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틀리지 않은 말이다.
앞으로 세계의 힘의 흐름은 신자유주의에 따른 변화로 말미암아 자본의
집중뿐만이 아니라 정보의 집중까지 일어날 전망이다.
21 세기에는 자본의 투입-정보 획득-이윤 창출-자본의 투입으로 이어지는
순환에 따라 정보 능력의 양극화가 심화될 전망이다.
이러한 추세에서 세계의 정보 기관들을 모두 짚어보는 것은 그 정보의 부족으로
인한 내용의 부실함과 비효율적인 것으로 판단되어 미, 영, 프, 일, 중등의
주요국가 들의 기관만을 논하고자 한다.
(러시아의 경우에는 근 10 여 년간 지속된 사회적 불안정과 FSB, GRU, MVD 등이
관료화, 비대화 한 문제로 인하여 과거와 같은 능력을 보전하고 있지 못하며,
이들 기관들은 주로 HUMINT 쪽에서 강점을 지니고 있어, 앞으로 그 중요성이
더욱 부각될 SIGENT, ELINT, IMINT 등의 분야는 다른 국가들이 앞선다고
여겨졌기에 러시아는 여기서 제외하였다.)

A. 미국

미국의 정보 기관은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에 모두 있지만,
미국 정보 기관들이 실제로는 행정부 위주의 운영 방식이기에 행정부의 기관들을
위주로 논하게 되었다. 행정부 중 가장 막강한 정보 수집 능력을 지닌 기구들로는
국방성, 국무성, 중앙 정보국, 법무성으로 판단된다.
그 중에서도 중앙 정보국의 경우에는 미 정보능력이 결집되는 기구로
말이 필요 없을 정도의 정보 능력을 지니고 있다.
중앙 정보국장은 미 정보 협의체의 의장이며, 중앙 정보 지도국장을 겸임한다.
그리고, DIA, NRO, NIMA, DARO, NSA, 각 군 정보국, 국무성의 INR,
법무성의 FBI, DEA, ATF 등의 기관들의 정보를 취합-분석하여
안보 특별 보좌관과 대통령에게 보고하여 정책 결정에 도움을 주며,
국가 안보 회의에 참석하여 국가 중대사 결정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미국의 주요 기관들은 다음과 같다.

* Central Intelligence Agency
2 차 대전중의 OSS 의 맥을 이어받은 CIA 는 1947 년 국가 안전 보장법의
제창으로 창설되었다.
본부는 버지니아주 랭글리에 있으며 약 20,000 명의 직원이 있다.
CIA 의 내부 조직은 국장, 부국장 아래 운영 부장이 산하의 각 처들을 지휘한다.
처는 정보처, 공작처, 과학 기술처, 행정처로 나뉘어 있다.(차장보가 지휘)

정보처는 각 지역별 분석실로 나뉘어 있으며 정치, 경제, 지리, 전략 문제를
연구하는 기능 분석실로 국제 문제 연구실, 영상 분석실, 과학 및 무기 연구실,
첩보 자료실과 함께 지역별 분석실이 있다.
기능 분석실중 국제 문제 연구실은 마약, 테러, 무기 거래, 정치 불안, 경제, 지리
및 기타 국제 문제에 대한 분석서를 생산한다.
영상 분석실은 국립 사진 해석 센터에서 분리되어 1961 년에 창설된 것으로
이 곳의 분석관은 위성 및 항공 사진을 분석, 첩보를 추출하고 해외의 동향을
파악, 분석서를 생산한다.
과학 및 무기 연구실은 과학 정보실과 무기 연구실을 종합-설립하였다.
이 곳은 각종 신무기와 무기 체계를 연구-분석하는 곳이다.
리더쉽 분석실과 첩보 자료실은 중앙 자료소를 1986 년에 분리, 설립한 곳이다.

공작처는 비밀 첩보 수집과 CA(covered activity)를 수행하는 부서이다.
공작처 구성은 각 지역별 담당과와 외국 정보과, 기획-평가과, 방첩과, D 과,
비밀 활동과로 되어 있으며 각 과는 다음과 같다.
외국 정보과는 첩보의 출처와 정보의 확인 및 신빙성의 확인을 맡고 있는 곳으로
비밀 수집 요구 사항을 심사하고, 지역 분과의 프로젝트, 예산 및 비밀 전신 상태를
검토한다.
기획 평가과는 공작처의 총무부 역할을 맡는 곳으로 공무 집행과 예산 업무를
맡고 있으며, 타부서가 원하지 않는 영역에 대해서 본가와 같은 역할을 한다.
방첩과는 이름 그대로 모든 외국정보-보안 기관에 관한 첩보를 수집-분석하고
적대 기구에의 침투, 변절자에 대한 데마고그, 적 침투 예방등의 임무를 수행한다.
D 과는 타 정부 기관의 협조를 받아 비밀 도청 장치와 통신 정보 활동을
맡고 있다.
비밀 활동과는 지역과와의 협조 하에 비밀 공작 계획을 발전시키고 그 계획의
수행가능성을 평가한다. 이 비밀 활동에는 선전, 선무, 사보타지, 납치, 암살,
전복 공작등을 포함하며, 이들의 직접 행동대로는 SAS(special activity service)가
있다(이들은 주로 미 특수전 부대 요원들이나 전직 특수부대원 출신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육상과, 해상과, 항공과, 지원과로 나뉘어져 있다. 최근에는
산업 스파이 조직인 NOCS 를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과학 기술처는 1962 년에 창설되어 현재 8,000 명 이상의 인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과학 기술처는 개발 공작과, 신호 정보 공작과, 연구 개발과,
기술 지원과 및 해외 방송 청취과로 구성되어 있다.
개발 공학과는 kh-11 영상 위성과 같은 중요 기술을 이용한 첩보 수집 시스템
개발에 관여하고 있다.(이에는 시스템의 총체적인 기술에 대한 지원을 한다)
여기서 개발에 관여하는 시스템으로는 레이저 통신, 디지탈 영상처리,
동시자료 수집과 처리, 전자 공학 등이 있다.
신호 정보 공작과는 최대의 능률을 가지고 수집과 분석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정교한 장비의 개발, 운용 및 유지한다.
(이 과는 NSA 의 협조를 받아 미국내 여러곳의 비밀 청취소를 운영하고 있다.)
연구 개발과는 통신, 센서, 반도체, 인공 지능, 영상 해석, DB 관리, 고속 전산화
분야의 연구를 해왔다.
기술 지원과는 예전에는 공작처의 기술 지원과 였다.
이들에 의해 지원되는 기술은 비밀 서법, 도청장치, 비밀 카메라, 암호조립과
해역장치, 비디오 및 영상 기법 등이 있다.
해외 방송 청취과는 해외방송을 청취, 기록, 번역, 분석 및 보고서를 작성하여
정부의 타 기관에 보내주는 역할을 한다.

행정처는 9 개 실, 과로 구성되어 다양한 행정 업무를 수행한다.
이에는 통신실, 보안과, 보급과, 경리실, 의무실, 인사과, 교육과, 컴퓨터실,
정보 지원과가 있다.

* National Security Agency

미 국가 안보국은 처음에는 그 존재에 대해 부정을 해왔으나, 두 사람의 변절자에
의해 그 존재가 노출되었다. 원래는 AFSA 였던 것이 1952 년 10 월
트루만 대통령에 의해 NSA 로 그 조직과 인원들이 전환되었다.
미 국가 안보국은 조직상으로는 국방성 소속으로 INSCOM 의 사령관이
겸임하며, 중장 계급의 현역 군인이 그 장을 맡는다.
현재 국가 안보국은 석사급 이상의 인원들로 주로 구성되어 있으며,
20,000 명 이상의 직원이 포트 미드의 사령부에서 활동중이다.
그 조직은 국장아래 국장 참모, 감찰관, 부국장, 자문, 법무관이 있으며,
부국장의 지휘아래 계획-자원실, 기획-정책실, 신호정보 작전실, 연구 공학실,
첩보 보안실, 시설/병참실, 행정실, 전기통신/컴퓨터실이 있다.
이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분과들이 신호정보 작전실, 첩보 보안실, 연구 공학실
이라고 알려져 있다.
신호 정보 작전실은 집행 참모부와 우주 공간및 미사일 감청을 포함하여
지리적으로 상이한 지역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처리하는 책임을 맡고있는
3 개 분과로 구성되어 있다(A분과는 동구권, B 분과는 아시아, G 분과는
3 세계등의 여타 국가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다.)
첩보 보안실은 통신 과 암호, 신호들에 대한 첩보 보안을 책임지고 있다.
연구 공학실은 도청 공작, 암호 해독 및 미국의 암호를 안전하게 보존하는데
필요한 기술과 용구를 개발할 책임을 맡고 있다.

NSA 가 최근에 다시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은 바로 에셜런으로 불리는
범세계적인 도-감청망 때문으로 이 감청망은 앵글로 색슨 국가들(구 영연방 국가와
미국)이 1 급 국가, 친미적인 국가가 2 급 국가로 참여하여 세계의 모든 통신을
감청하였다는 것으로 특히, 우방이던 나토 국가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NSA 는 그 직원들로 주로 수학자와 언어 전문가들을 채용하고 있으며
국가 기관들 중에서 가장 고 학력자가 많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연간 예산은 약 300 억불로 추정되기도 하였다.

* National Reconnaissance Office

국가 정찰처는 국가전략에 필요한 모든 정찰 임무를 수행한다.
특히, 위성 첩보와 전략 정찰기에 의한 정보 수집을 그 임무로 하고 있다.
이들에 대해서는 정보가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최초로 노출된 것도
1973 년 상원의 위원회 보고서의 실수 때문이었다.
이들은 미국의 모든 정찰 위성과 감시 위성을 통괄-관리하는 임무와
전략 정찰기의 운용에 관여하고 있다.

* Defence Intelligence Agency

국방 정보국은 과거에 그 역할을 하던 J-2(합참 정보참모)를 대신하여 생긴
부처이다. 국방 정보국장은 합참 의장을 통해서만 국방 장관에게 보고한다.
국방 정보국은 군 정보국들간의 의견을 조율하고 정보 생산에 대한
모든 견해를 조정하며, 국방 무관 시스템을 관리하고, 수요 정보공급을
충족할 의무를 띄고 있다.
그 조직은 국장, 부국장 아래에 운영 부장이 지휘하는 공작/기획/훈련부와
해외 정보부가 있으며, 그 아래에 각각 수집 관리처, 국방 정보 대학,
기획-정책처, 훈련처, 무관-공작처 와 판단처, 과학-기술정보처, 연구처,
영상 개발처등이 있고 운영 부장 직속으로 대외 관계부, 지원-시스템부,
합참 지원부가 있다.
국방 정보국은 그 자체에서 공작을 하기보다는, 주로 각 군에 있는 정보국들과
육군 보안 사령부의 공작과 작전등을 총괄 관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현재 DIA 는 직원 6,000 여명과 4 억 5 천만 불의 예산을 가지고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 군 정보기구

미국은 각 군별로 다양한 정보 수집-공작 기구를 지니고 있다.

육군의 경우에는 참모 차장 예하에 정보 공동체를 운영하고 있으며,
육군 정보국 외에도 보안 사령부가 있고, 별도로 정보 공작 분견대를
운영하고 있다.
육군 정보국의 경우에는 국방성에 위치하고 있으며, 육군의 대정보 생산과
3 개의 주요 정보생산 센터 활동을 전반 관리하는 책임을 지고 있다.
각국의 동향을 파악하는 곳은 바로 정보 및 위협 분석 센터가 있다.
(이 곳에서 각 지역과 국가별정보-첩보를 수집하는 임무를 맡는다.)
이 곳보다 덜 알려져 있으면서도 매우 중요한 임무를 맡는 곳이
바로 INSCOM(보안 사령부)이다.
버지니아 주 포트 벨보아에 위치한 정보 지원 행동대(ISA)도 이 곳 소속이다.
INSCOM 은 NSA 와 함께 에셜런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고 의심된다.
INSCOM 의 부대중에서 우리와 가장 연관이 깊은 부대로는
501 정보 여단과 그 예하의 4 개 대대가 있으며, 이들은 우리나라의 극비
정보 부대들과도 연관을 가지고 연합으로 작전을 수행한다.
미군의 정보부대들의 더러운 손의 역할을 하는 곳이 바로 ISA 로써,
BSI, SEASPRAY 와 함께 가장 베일에 샇인 부대이다.
인원은 대략 200 여명으로 추정되며, 주로 민간인으로 위장하여 활동을 한다.

해군의 경우에는 그 유명한 ONI                  가 있다.
미 해군은 그 작전 권역이 전세계인 만큼 그 정보 활동의 범위도 일반국가와는
다른 범위를 지닌다. ONI                  는 각 정보 부대들이 수집하고 공작하는 것을
감독하는 일종의 감독기구이다. 해군 정보국장 예하에는 현용정보부장,
해외연락부장, 기획 및 정책부장, 특별계획부장, 대정보부장, 선전부장,
과학기술부장, 조정부장, 분석부장, 합동국가정보개발부장, 공작지원부장
등이 있으며 이들은 광범위한 정보 영역의 임무를 수행한다.
정보국장 예하에는 해군정보 사령관과 해군 보안단 사령관을 차장으로
두고 있다. 해군 정보 사령부 예하에 주목할 만한 부대가 있는데,
바로 168 TF 라고 불리는 특수 임무 부대로 해군의 실질적인 공작 부대이다.
해군 보안단 사령부 예하에는 해군 보안단(NSGC)이 있는데, 현재
한국의 평택에도 그 파견대가 존재하고 있다. 이들은 주로 신호 정보와
통신 보안에 관여한다.

공군의 경우에는 정보 참모실의 조정-지휘하에 공군 정보국, 공군 전자
보안 사령부, 공군 기술 응용센터, 특수 수사대 등이 활동한다.
이 중에서 주목할 만한 것이 공군 정보국과 특수 수사대이다.
공군 정보국의 경우에는 직원 약 2,200 명을 가지고 있는데, 이들 중에서
실제의 인간 정보임무를 수행하는 것은 포트 벨보아의 특별활동 관리센터이다.
이 곳에는 인간 정보를 주로 수행하는 일명 "괴짜 부대"리고 불리던
1127 부대가 있는데, 이들은 특수 정보 임무를 수행하는 전문가 집단이다.

이러한 각 군의 정보 기관이외에도 각 통합군 별로 정부 참모 또는 기구를
두고 있으며, 이 시스템은 각각 독립된 것처럼 활동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상의 사실들로 미루어 미군은 각 정보 기관들을 특정 지역에 통합 관리하고
있으며, 그 위치는 포트 벨보아, 포트 미드등에 군 정보대가 밀집해 있는 것으로
보이며, 주로 버지니아 주와 메릴 랜드주에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미군은 이들 외에도 정보 부대들을 파견시켜 우방과 적국을 가리지 않고
정보 수집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며, 이들의 존재가 이미 깊숙이 들어온
우리 나라 의 입장에서는 그리 쉽게 생각할 것은 아니다.
(특히, 최근에 들어서는 군사 정보 등에 대한 것보다도 경제-정치적인
정보의 수집과 공작에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 각 성 정보기구

중앙 정보국의 정보 능력과도 맞먹는다고 평가되는 국무성 정보 조사국은
주로 국가 정보 판단과 특별 국가 정보 판단과 같은 공동 정보생산에
관여하는 것 이외에도 주요 공개 소스와 외교 루트를 통한 정보 수집을 담당한다.
이들 중에서도 정보 연락실은 타 정보기관과의 연계에 대한 일을 맡으며,
최근에 들어서는 세계 문제-테러 분석실과 경제 분석실이 그 비중이 커지고 있다.

그 다음으로 많은 준 사법기구를 지닌 법무성의 기관들 중에서도
최근에 그 문제가 심각해져 가는 마약문제와 자금 세탁 문제를 담당하는
DEA 가 그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과거와는 달리 마약 문제는 이미 국가의 체제를 위협하는 경우도 생기며
또한 조직 범죄와 인신 매매, 자금 세탁 등과도 관련이 있기에
CIA, NSA, NRO 등과의 연계 활동을 펴고 국경에 대한 활동뿐만이 아니라
전세계의 마약 조직의 활동 지역을 상대로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다.
(DEA 가 최근 들어 활발하게 움직이는 지역으로는 러시아, 중동, 동남 아시아,
중남미 등이라고 하며 앞으로는 FBI 와 함께 그 활동 범위를 넓혀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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