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16일 토요일

wneswkcic24-2

혹세(惑世) 광신서냐? 현세(現世) 예언서냐!
반미(反美)는 열광하고 친미(親美)는 분노하리라!

이 책을 읽기전 세계 정치와 경제를 논하지 말라!
유대 세계 통치전략은 충격전율할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1. 유대인에게 정복당한 미국 경제
또다시 세계는 새로운 전쟁의 소용돌이로 돌입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끔찍한 제3차 대전으로 비화될지도 모른다. 이 비극적 상황은 유대 광신도 또는 극단적 시오니스트들 때문에 빚어지고 있다. 일찍이 일본은 유대인이 부른 피의 욕망에 의해 가공할 도쿄 대규모 폭격,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공격을 체험했다. 원자폭탄 유대인 개발자들은 이 유대의 '지옥폭탄'을 비백인계에 시험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오늘날 미합중국의 주인은 누구인가. 필그림 파터스의 후예인가, 아니면 현재 미국 경제를 장악하고 돈줄을 한손에 거머쥔 유대인인가.
유대인은 미국에서 극장, TV, 금융 등 합법적 산업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으며 오히려 비합법적 범죄 활동 분야에서는 더욱 활발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들은 포르노, 총기류 밀매, 주류 등의 산업에 관여한다. 시그램을 소유한 프론프먼 집안, 센리를 소유한 로젠슈틸 집안은 미국의 주류 사업을 대표한다.
《유대인은 살아야 된다》의 저자 사뮤엘 로스는 쓰고 있다.
"내가 아는 유대인 친구는 4천 명 종업원을 거느리고 있다. 그런데 사업을 망칠 수 없다면서 회사 직원으로 유대인은 한 사람도 고용하지 않는다."

2. 콜럼버스 함대에서 시작된 유대인의 아메리카 정복
1492년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에서 시작된 신대륙 정복. 가톨릭의 에스파냐인과 프로테스탄트의 앵글로색슨인이 한 일로 알려져 있지만 그것은 표면적 사실에 불과하다.
그때까지 에스파냐는 유대상인의 최대 근거지였다. 그 한 해 전 에스파냐에서는 그라나다 함락 직후 유대인 추방령이 내려졌다. 그러자 유대인 일부는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고, 일부는 에스파냐를 떠나 터키며 포르투갈로 숨어들었다. 어떤 자들은 네덜란드까지 도망쳐 가기도 했다. 이 와중에 유대인은 콜럼버스 함대를 편성, 신대륙에 건너가 새로운 약속의 땅을 찾고자 몸부림쳤다. 어머니로부터 유대인 피를 이어받은 콜럼버스뿐 아니라 통역 외과의사 내과의사 등 함대 주요 승무원은 거의 모두 유대인이었다. 그 뒤 유대인들은 신대륙으로 속속 건너가 제당 공장, 흑인 노예 무역을 장악해 거부를 쌓았다. 뉴욕은 유대 상인의 낙원이 되었고, 유대인 지도자들은 마침내 "뉴욕은 새 예루살렘이다!"라고 큰소리쳤다.

3. 왜? 유대는 인류사상 끊임없이 분쟁을 일으키는가?
첫째, 유대인은 그들이 기생하고 있는 숙주와의 사이에 화해를 가져본 일이 한번도 없었다.
둘째, 어떤 국가도 유대인의 영구 추방에 성공한 적이 없었다.
유대인은 기생민족이다. 유대는 문명 사회를 방랑하면서 기성 사회 가운데서 자기들이 안정을 얻을 수 있는 곳을 찾는다. 다른 민족을 희생물로 삼아 주거를 정하고 번영할 곳을 찜한다. 다른 민족의 노고에 의존하지 않고는 전혀 살아갈 수 없는 민족이 유대다. 그들은 기생하는 숙주의 번영을 강탈함으로써만 생존 가능하다.
1948년 창설한 국가 이스라엘. 이 나라는 세계 여러 나라 유대인 은행가들이 보내온 수억 달러에 이르는 무기 원조로 세워졌다. 평화롭고 선량한 아랍인들로부터 그들 삶의 터전인 마을과 토지를 돈과 무력으로 빼앗은 결과였다. 세계사에서 유일하게 인공적으로 수립된 유대국가인 셈이다.
그러면 숙주 국가는 아무것도 없는 그들을 어째서 받아들이는 걸까? 바로 그들의 교활한 지혜 때문이다. 그들은 적국에 대한 정보며 가상적국의 기밀, 때로는 광대나 마술사로 변신해, 오락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거류가 허락되면 그 촉수를 숙주 민족 깊숙이 꽂고 피를 빠는 것이다.
대규모 역사왜곡을 단행하고 몇 천 년에 걸쳐 도서를 불살라 버렸는데도 유대인들은 자신의 악행에 대한 기록을 모조리 소멸시키지 못했다. 우리는 그들 유대인의 역사를 알고 있다.
① 바빌로니아는 위대한 문명을 이룩했지만 대규모 유대인 공동체의 숙주가 되어 끝내 멸망하고 말았다.
② 고대 이집트는 위대한 문명과 문화 유산을 남겼지만 역시 대규모 유대인의 숙주가 되어 붕괴되고 말았다.
③ 로마 역시 고대에 이미 찬란한 문명을 건설한 위대한 제국이었지만 그들도 유대인의 숙주가 되어 파괴되고 말았다.
④ 대영제국도 세계를 지배하는 위대한 제국이었으나 유대인 공동체의 숙주가 된 나머지 수십 년 동안 쇠락의 길을 밟아왔다.
이상의 예들은 인류역사를 통하여 나타난 단순한 우연의 일치일까. 우연이든 필연이든 오늘날 미합중국에 대규모 유대인 공동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한번 유대인들이 비유대인 국가의 지배권을 잡으면 그 국가를 파괴시키고 마는 것은 대체 어찌된 까닭일까.

4. 유대문명은 역사상 존재하지 않는다
유대인의 기원은 수수께끼에 싸여 있다. 그들은 그 민족의 기원이 신비에 싸이고 분명치 않은데도 조금도 거리낌이 없다. 다만 자신들은 신에 의해 선택된 민족이라는 말만 내세운다. "모든 역사는 유대인의 역사다"라고 주장하는 두브노 같은 역사학자도 있지만, 유대문화란 본디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는 중국으로부터 종이와 인쇄 기술, 그리스에서는 예술과 철학, 로마로부터 법률을 계승했다. 그런데 유대로부터는 무엇을 얻었는가. 유대인은 5천 년에 걸쳐 다른 나라의 역사에 거듭 나타나지만 자신들의 나라를 세운 일도 없고, 그럴 의지도 없었다. 이 지구상에 유대인과 같은 비참한 문명의 기록을 가진 민족은 없다. 아프리카의 피그미족도 독자적인 문명을 발전시키고 있다.

5. 유대의 지구 통치 최종 전략 <시온의정서>
인류가 당면한 가장 큰 비극 중 하나는 유대인에 의한 미국의 부패다. 미국은 오랜동안 인류가 평화스럽고 자유롭게 살고 싶어하는 소망의 상징이 되어 왔다. 그런데 미국 역사는 지금 유대인에 의해 여러 차례 조작된 전쟁과 금융 공황으로 말미암아 나락으로 떨어지려 하고 있다. 미국 국민이 유대인에 대항하여 만든 방어 수단이며 장치는 모조리 무너져 버렸다.
이미 로스차일드는 영란은행을 통해 초강대국 대영제국의 심장부를 점거했다. 그리고 지금은 유일 초강대국으로 등장하는 미국의 심장마저도 그 대리인 쿤 롭을 통해 장악해 버렸다.
참고로 <시온의정서>를 간추려 보자.
① 우리 유대가 국가체제 속에 '자유주의'의 맹독을 주입한 뒤 정치적인 커다란 변화가 왔다. 이로 인해 오늘날 어느 비유대인 국가든지 운명적으로 괴혈병에 걸려 있는 까닭에, 우리는 단지 비유대인 국가의 최후 임종이 빨리 오기만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② 우리 유대가 세계 지배권을 장악한 때, 우리 동족은 유일한 신을 숭배하는 우리 유대교 외에는 어떤 종교의 존재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들은 다른 종교를 모두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③ 우리 유대가 소란과 반항의 씨를 깊게 뿌린 비유대인 국가에 질서를 세우는 데는 불가침적 권위를 보이는 가학 수단을 잡는 것 말고는 없다. 만약 우리들 정권을 배격하는 자가 나올 때에는, 우리는 무기를 가지고 우리들의 왕정에 반항하는 자를 용서없이 처단한다.
④ 우리 유대들은 원칙적으로 모든 중요한 국정상의 지위에서 자유주의를 몰아낸다. 우리들은 절대적 전제권을 행사한다. 우리들이 확립한 세계 질서를 파괴하는 듯한 비유대인을 용서없이 희생물로 제공하는 것은 우리들의 의무이다.
유대 <시온의정서>가 오늘의 세계 실상처럼, 섬뜩하리만치 사실성을 가지고 우리들에게 다가오는 시대는 없었다. 우리나라에 대한 미국 보수파들의 외교에 유대인들이 어떤 이해관계로 깊숙이 개입되어 있는지, 우리는 짐작만 할 뿐 속수무책이다.

6. '불가능은 없다'고 외치는 유대인의 세계정복 전략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힘은 금융이다. 금융=파이낸스는 가장 좋은 도박이다. 국제금융 과두권력이 만들어낸 세계경제 시스템이 현재와 같은 카지노 자본주의다. 도박에 모험을 걸면 실제적 생활감각이 마비되듯 카지노 자본주의 아래서 현실경제는 점점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현실경제의 쇠락, 이에 반해 금융투기에 의한 이익의 급상승. 이것은 고리대금 이론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과거 고리대금은 강한 규제의 틀에 묶여 있었고 사회 전반의 따가운 멸시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최근 30년을 보자. 고리대금은 어느새 세계경제의 주류가 되어 있다. 정말 놀랍고 믿을 수 없는 사태다. 결국 고리대금은 전 세계 현실경제 위에서 수탈과 흡혈로 무한히 비대화해 가는 시스템이 되고 말았다.
이것이 국경 없는 경제, 글로벌 자본주의, 세계화, 규제의 철폐, 자유무역 자유시장 원리의 관철이라고 하는 선전 문구의 정체다. 먼저 미국이, 다음은 영국, 유럽 대륙, 중남미, 호주, 뉴질랜드, 일본, 구소련, 마지막으로 아시아 전 지역이 IMF로 그 제물이 되고 있다.
'나의 사전에 불가능이란 말은 없다.' 이것은 나폴레옹의 말이다. 지금 초단위로 진화해 가는 초하이테크 과학기술을 장비한 서구 유대악마주의 권력은 '우리들의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고 미소짓고 있다.

7. 멀린즈 교수의 지적과 예측이 적중하는 충격전율할 현실
2001년 9월 11일 뉴욕 세계무역센터 건물이 주도면밀한 계획에 의해 공격을 받자, 음모가들은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세계에 대한 새로운 전쟁을 부추기기 시작했다. 이 전쟁은 오히려 대 테러 전쟁이라 불리면서, 지구상의 모든 국가들을 그 예정된 희생자로 삼고 있다. 이 계획은 이미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표면상 굴복시켰다. 음모가들은 또한 미국인의 모든 부(富)와 힘을 활용하여, 이제는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그리고 이슬람교를 믿는 국가들에 대항하여 큰소리치며 압박해 들어가고 있다.
그들이 진정으로 노리는 것은 석유를 강점하여 얻는 이익을 포함, 아랍의 중동 유전지대를 장악하여 국제연합의 위임 아래 두는 것이다. 음모자들의 목표는 전 세계의 부를 거머쥐는 것이다. 그 목표를 이루기 전까지는 어떠한 것도 그들을 만족시키지 못할 것이며, 또한 그들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유스터스 멀린즈 교수는 《연방준비은행의 비밀(The Secrets of the Federal Reserve)》과 《세계 질서(The World Order)》 및 그 밖의 여러 책들에서 저들의 세계 통치 전략에 관한 상세한 자료를 제시하고 있다. 그 책들에서 제시된 바와 같이 유대의 전략은 세계 곳곳에서 하나하나 현실화되어 가고 있다. 무섭게 다가오는 이 전율할 현실, 그것이 곧 유대의 세계 통치전략이 아닌가.



소생이 이 지구 전체를 놓고 보드라도 유대인이 아니드라도 이 지구 행성은 앞전에 언급 해 준대로 갑니다

즉 지구촌 인간들손에 자의든 타의든 그것을 결정할 권한과 권능이 없습니다



그것이 지구촌 인간들이 가진한계입니다 그저 절대적인 신에 대한 노예나 종에 불과하지요 깨닫지못한 지구촌의 모든 인간들이나 삼라만상 생명체도 마찬가지이고 그리고 신은 오로지 깨닫는 종만을 보호주시고 지금 깨닫지않는 인간들은 선과 악이라는 명분은 이들의 인간 세게의 다소 안정적인 질서를 위한 명분용이지



어차피 이 지구도 미국도 멸망하거나 새로운 지구촌의 강자자리를 내어주게될것입니다 더욱이 위에 언급한대로 아이러니한 유대인과의 관계도 그러하지만



어차피 지구가 이왕 여기까지 달려왔는데 세계 정복은 가능해지며 유대인들이 구상하는대로 갑니다



어떻게보면 굳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유대인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면 오히려 지구의 발전을 위해서 징검다리 역활을 해 온셈이지요 유대인들이 어느 제국이든 국가든 흥하게도해주고 동시에 망하게도 한 촉매제 우치에 서있기에 그러므로 일반 인간들 눈에는 비판할수도있고 칭찬할수도 있으나



소생이 보기로는 인류 문명 발전에 촉매제 역활을 하였다라는점 그 촉매제도 아무나 어느 민족의 종이나 할수있는일이 아니기에 그만큼 다른 민족의 종보다도 깨어나기에 그렇게 앞서가는 노력이 그러한 유대인들 역시 지금 미국을 흥하게도 해 주었지만 유대인들은 현명하기에



이제는 새로운 제국 아니면 국가를 모색하고있는것인지도 모른다 참으로 자랑스러운 유대인 민족이다라는것이다 이것이 소생의 판단이다 그렇다면 남북한민족은 인류에 무엇을 기여했나 중국의 한족들은 인류를 위해서 무엇을 기여했나



유대인을 비판할 자격도없는 국가나 민족들이 자신들의 부족함을 보지못하는 모습에 국가나 개인이나 민족이나 항상 깨어있는 국가나 민족이나 개인이 이 인류를 주도해가고 그 자리를 지구 행성을 총 관할할수있는 특권이 부여되는것이다



그래서 대륙연합 구도 구성은 불가피하게 형성되지않으면 아니되기에 이 부분에 얼마나 미국의 세계 패권화 전략에 간단명료하게 핵펀치를 한방 날려보냈다



그동안의 미국의 세계 패권화 군사 전략 전술을 일거에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렸으니 그 다음 제2탄은 대기중이다 역시 미국에게 아니면 중국 아니면 일본에게 동시에 한방먹이는것이될지도 모른다 그들이 어더한 선택을 하는냐에 달려잇다



독일도 진정으로 유럽연합과 화해를 이제는 해야할것이다 그것이 독일이 살아남는길이다 앙금은 해결되지않으면 물론 미국이야 좋아하겠지만 전체를 놓고보아서 유럽연합과 독일이 앙금을 풀고 동반협력자로 가야할것이다 유럽연합과 독일이 서로 잘못하여 세계전쟁이 난것이고 둘이 못난서 그덕으로 미국이 이익을 창출한것이고 독일이 진정으로 사과를 하였다면 유럽연합과 대룩연합에 편승되어야 한다



그래서 미국의 역활은 다하였다고 판단되면 그들은 미국을 등지기에 왜냐하면 미래 역사는 미국보다도 더 강대한 제국을 선택해야만하기에 그래서 그러한 방향이 시온의정서처럼 아니드라도 인류는 그렇게 갈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지고있기에 그러하다 이는 인간들이 인류가 싫어하든 좋아하든 그러한 선택의 여지에 상관없이 진행되어간다라는 사실이다



세게 정복의 주인자리는 누가되든간에 될것이지만 강대국도 깨닫지못하면 영원한 제국은 이루지못합니다



그래서 대륙연합과 미국을 비롯한 일부 친미 국가와 한판 붙으라고 그렇게 인류를 망치기를 좋아하는 미국 그리고 유대인들 그리고 지구촌 사람들 다 그들이 깨달음을 게을리한 죄로 지구제국에 대한 최후의 승자를 가리고자하는것이고 그리고 그렇게 하지않아도 그들이 자발적으로 하게되어있으니



이 지구가 때가때인만큼 미국은 하늘의 명을 거역하고 추락해갈것입니다 이미 그 징조를 파악해습니다



미국을 서서히 압박해갈것이니 세계 주인자리는 천명을 전해주면 그렇게되어갑니다



절대적인 신은 존재하오니 그들이 믿든말든 역시 절대적인 신은 개의치않습니다 교화나오라 절에 다녀라 성당에 다녀라 고리타분한 논리는 다 그들의 탐욕을 채우는 논리의 주장에 불과하고 결론은 모든것은 자신의 내면에 답이 있습니다 누구에게 어느곳에 있는것이 아니라



그래서 이 대한민국 소생이 두눈으로 똑똑히 보앗기에 미국의 태도 역시 보앗고 앞으로 지켜보는 시간도 얼마남지않았습니다



다 지구촌 강대국들도 절대적인 신의 노예 국가들에 불과한 존재들이다라는것입니다 허상들이지요 시긴과 공간이 지나가면 아시게될것이며 위에 언급한 문명 국가들의 사례를 보시면 잘 알것입니다



영원한 제국이 이제는 탄생하는날도 멀지않았으니 그동안 제국들을 발판으로 삼아서 신의 국가를 만들게될것입니다 하늘의 국가 하늘의 군대 하늘의 국민으로 이루어진 제국이 탄생될것입니다 그것을 향해서 지금 지구촌 국가들은 봉사해주고 있고 그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유이다



알겠나 지구촌 제군들아! 아무리 미국이 강대국이든 저들눈에는 강대국으로 보일뿐이지 소생눈에는 단지 차이만나지 강대국은 아니다라는것이다



진정한 강대국은 위에 언급한 하늘의 국가가 진정한 초강대국이고 제국이다 그저 지구촌 쓰레기부담만 축내는 허상의 존재들이다



소생이 육신으로 500년을 1000년을 살아도 그대들의 모습은 그러한것을 천명이 정해지면 지구촌 행성은 큰획을 긋게되는것이다 그리고 무한정으로 봉사에 충실하라고 지구촌 사람들은 달려갈것이다 열심히들 달려오시기를 바랍니다



소생을 만날려면 지금과 같은 그대들의 습성으로는 만나기가 힘들것이다



지구촌의 대소사 일은 어느 정도 다 마무리되엇으니 내년의 만남을 이루고나서는 지구촌 사람들 맘대로 해도 소생은 상관하지않을것이다 60년의 미래일을 내년에 결정하면 육신으로 살날만 태평성대의 삶을 살고자한다



그런데 미국은 하기야 미국 국가도 어쩔수없는 국가의 운명이라면 별도리가 없으나 대한민국 국가 정도야


http://ko.wikipedia.org/

지구촌 국가들의 그동안 100년동안 무엇이 변화해왓는지 토론을 하고 싶습니다

세계 1,2 차대전을 경험한 지구촌의 행성에서 가장 큰 변화를 가지고 온것은

1,핵무기 개발과 다량 보유,

2,인구가 40억명증가,그리고

3,급속도로 군사 무기 최첨단화및 무기 군사력 보유가 증가했고 동시에 보유한 지구촌의 무기 군사력이 잠재파괴력도 세계 1,2차 대전을 치루고도남는 무기 보유잠재되고있다라는 사실

4,그리고 지구촌이 닫혀있는 그리고 국가권력의 특권 연대 세력들이 이제는 세계인들이 연결할수있는 정보통신망 구축과 확대라는 문명기술로 세계의 여론은 구심점을 찿게되었다라는 사실

5,그래서 지하조직세력들이나 각 국가의 정보기관들이 인터넷 정보망을 통해서 세계 어디서든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라는점

6,지구촌 국가의 권력이 그동안은 자신들의 통제력속에서 자신들 국가의 권력이 창출되었다면 이제는 지구촌 국가들이 외부적 국가 권력에 의해서 창출되고 있다라는점 이는 경제 영역의 세계화로 권력의 세계적 대이동이 지금 진행하고 있다라는점

7,세계 국가는 유럽연합이 탄생한것은 인류100년사에서 가장 상징적이고 두드러진 약진하고 있다라는점을 보여준 사례이다
그래서 대륙연합 국가들의 형성은 앞으로 가속화될것이다 그래서 그동안 국가와 국가간의 국경선의 안보 개념에서 집단 안보 대륙체제의 개념으로 전화되고 있는것이 인류사 100년동안 새로운 안보 경험을 하고 있다라는 사실이다

8.우주 산업의 발달이 어느때보다도 전성기를 맞이하고있다라는 사실 무엇보다도 우주산업에 미래 국가의 운명이 달려있고 동시에 지구촌 인류가 걸어온 국가 유형보다도 다른 우주 방식 시스템의 국가 유형이 창출될것이다

9.미국의 급속도로 성장과 더불어서 안정적으로 100년동안 성장해온것도 인류사에 한 국가의 특징이다 무론 다른 국가들도 상대적으로 성장해왔지만 지구촌195개 국가중에 명실상부하게 안정적으로 그러면서 세계패권화에 경제 식민지화에 군사 대국화에 타 국가보다도 두드러진 발전의 모습을 보여온 국가는 단연코 미국이다라는 사실임 100년사중에 또 하나의 큰특징이다

10.인류는 어느때보다도 유능한 세계 각 국가의 인재를 확보하려고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어느 국가든 유능한 인재를 확보하고 있다라는 사실 참으로 인류 역사에 이러한 인재의 확보 교륭에 열을 올리는일이 없었는데 지금 지구촌은 그것이 진행되고 있다라는 사실 즉 미래의 인재가지 확보하지않고서는 자국의 안전과 안보를 장담할수가 없기에 말이다

11.지구행성은 어느 때보다도 지구행성안에 활발한 산업화 거의 절정기에 이르게된것은 중국의 거대한 불랙홀로 인하여 지구의 온난화는 미국과 더불어서 가속화해서 지구의 행성 자정능력이 상실화가고 있다라는점 지구의 환경보존이 세계 각 국가의 보존보다도 더 시급한 과제다라는 사실을 이제서야 세계인들이 공감한점 더욱이 미국 엘고어 전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라는 사실은 세계 평화의 의미가 군사적 충돌의 의한 방지차원의 노벨 평화상을 수여해왔든점과 달리 이제는 그보다도 더 시급한 지구행성 자체에 대한 보존의 위협성이 인지하였기에 노벨 평화상의 성격이 달라졌다라는점이다

12,인터넷으로 세계 정세를 소생이 분석한 자료들을 통해서 전세계가 공유하고 있다라는 사실과 더불어서 세계 분포된 각 국가의 정보요원들의 역활과 활동들이 축소되거나 분석에 집중화되고 있다라는 사실 그동안 세계 각 국가 정보요원들은 아날로그 방식의 정보수집 첩보 활동을 해왔기에 그만큼 많은 인력과 비용을 지불해야만했고 그리고 국가와 국가간의 중간 정보 보로커들의 농간으로 국가와 국가간의 오해와 불신 불행을 자초해왔는데 그러한것들이 인터넷 정보 통신발달로 디지털 정보 시대로 투명화되고 인력과 비용절감을 지구촌 국가들에게 혜택을 받고있다라는점
그만큼 특정한 정보가 특정 권력 세력들에게 독점화 권력화 된것을 세계인들이 모두 공유함으로서 인류의 발전을 앞당겨가는데 진일보한 과정임에는 틀림없다

일단 소생이 현재 여기가지 생각해보았습니다 지구촌 행성인류가 100년동안 가장 크게 진보해온 점을 나열해보았습니다 다른 의견이있다면 토론 해 주시면 감사합니다


아래 세계 정보기관들이 상대적인 논리에 전 세계인들이 이제는 정보맨이고 정보 요원이다 문제는 정보의 가치가 무엇을 추구해 가는가라는것이다

세계 정보맨들이 이제는 지구 행성을 위해서 공동관심사를 논의해야만 하는 싯점에 이르게된것이다 더 이상 정보맨들의 비밀 정보는 그들의 정치권력을 누리기위한 정보이지 소생의 눈에는 그러한 정보는 앞으로 이 지구가 맞이해야하는 관점에서 보면 그러한 정보는 쓰레기 정보에 불과하고

진정한 세계적인 정보는 바로 지구 행성에 대한 난제들을 풀어낼수있는 대안을 찿아내는것이 상생하는 정보만이 살아있는 정보가 될것이고 또한 투명화 될것이다

지금도 나름대로 세계 각 국가들은 그러한 자국의 이익을 위한 정보첩보 수집활동을 하고 있지만 이제는 일본 내각조사실에서 정보분석이 무엇보다도 중요함을 즉 수집에서 분석으로 정보의 영역의 중요성이 확대되고 중요시 되고 있다

다른 국가에서도 정보 분석을 최고의 정보 요직중에 꽃이라고 할수가 있지요 정보 분석은 타고난 재주가 아니면 분석 해 내기란 쉬운일이 아니지요

세계 정세를 분석하고 통찰하고 선견지명으로 다른 국가들보다도 앞선 정보가 준비를 할수있는 기회가 하늘에서 주어지기에 그만큼 정보의 세계 평균화 현상도 지금 일어나고 있지만 그럴수록 앞선 준비할수있는 정보의 가치만큼 중요한것이 없다 왜냐하면 그것이 자국의 이익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수밖에 없기때문이기에

소생도 그래서 공식적인 직책의 정보맨은 아니지만 깨달음의 수행자로서 전세계 국가들의 정보 동향을 체크하고 있으니 깨닫지않은 정보맨하고 깨달음을 통달한 정보맨이 이 세상사를 바라보는 눈은 다르게보이는것입니다

그래서 정보맨도 깨달음의 수행을 게을리해서는 아니됩니다 과연 대한민국 정보맨들은 충실히 하였는가 묻고 싶고 위에 미국 정보맨들이 대한민국 대선의 개입에 대해서 얼마나 미연에 방지하도록 노력해왔는지 미국 백악관에다가 위의 이번 대선에 개입한 자료들을 보냈습니다 다른 나라보고 인권이라고 말할자격도 없지만 지금 대한민국 정보맨의 역활은 충실히 다하고잇지않다고 소생의 판단이 섭니다

미국을 설득할수있는 세계를 설득할수있는 정보맨이 세게 최고의 정보맨이지 그만큼 정보맨들의 생각하고 있는 가치와 철학 인류관의 소양 의식이 결여된 가운데에 종속적인 정보맨은 정보맨의 역활을 하지못합니다

세계 정보맨이 한자리에 모여서 지구촌의 문제를 공동사항을 논의하고 대책을 세우는 지구촌의 정보 기관의 연합 그룹을 구축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일단 대륙연합 그룹차원에서 다자간 정보 연합 그룹을 구축해서 상생할수있는 모습들을 보여주시기를 기대합니다

미국의 CIA 지구촌 정보 틀어쥔 ‘비밀공작’ 본산

냉전시대에 탄생 후 세계 곳곳 분쟁 개입 … 미 본토 테러 감지 못해 명성에 흠집

테러리스트들의 미 본토 공격이라는 최악의 참사를 당한 미국의 상원 정보위는 최근 중앙정보국(CIA), 연방수사국(FBI) 등 정보·수사기관이 이번 테러사건을 왜 예견하지 못했는지를 가리기 위한 청문회를 곧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미 언론도 뉴욕과 워싱턴에서 동시다발 연쇄테러를 일으킨 범인들이 미국에서 항공학교를 다니는 등 수년 간 범행을 준비해 온 사실이 드러남에 따라 구멍뚫린 미국의 허술한 정보·보안망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이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인은 이번 최악의 참사를 당하고서도 총론적으로 정권을 비판하는 것보다 각 정보·보안기관에 더 책임을 묻고 있다. 사건 발생 1주일 만에 CNN 방송과 USA 투데이지(紙)가 갤럽에 의뢰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응답자들은 △연방항공청(FAA) 78% △CIA 59% △FBI 52% 순서로 책임 소재를 지적했다. 항공기 납치가 대참사의 직접적 원인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연방항공청에 1차적 책임을 지운 것이다. 또 응답자들은 이번 테러가 2∼5년 간 준비한 결과라는 점에서 부시(34%)보다는 클린턴(45%) 쪽에 더 많은 책임을 지웠다.
그러나 정보·보안기관에 대한 책임론을 곧바로 제기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정치인들은 CIA 권한 강화론을 제기한다. 상원 정보위 리처드 셸비 의원(공화·앨라배마)은 한 인터뷰에서 “테러에 대한 전쟁에서 적을 공습목표로 삼는 것과 암살단을 이용해 살해를 시도하는 것은 별 차이가 없다. 외국의 적을 암살하고 비밀 공작원을 고용할 수 있도록 더 자유로운 재량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제임스 울시 전 CIA 국장도 “부시 행정부가 정보기관활동에 일대 혁신을 시도하고 있다”고 전했으며 포드 행정부에서 CIA 국장을 지낸 조지 부시 전 대통령도 “규제를 걷어내고 정보기관의 자율성을 높이는 방안이 절실하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포드 대통령 시절인 1970년대 중반 의회 청문회에서 CIA가 쿠바의 국가원수인 피델 카스트로에 대한 암살을 기도한 사실이 밝혀진 것을 계기로 대통령 행정명령으로 금지한 이른바 ‘더러운 전쟁’(암살공작)을 25년 만에 공식적으로 재개할 태세인 것이다. 이와 관련해 뉴욕타임스와 CBS 방송이 공동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65%가 CIA의 외국 테러리스트 암살공작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러운 전쟁’을 수행할 만반의 준비태세를 다진 CIA에서 일하길 희망하는 지원자도 쇄도하고 있다.

일본군 진주만 공습이 실질적 탄생 배경

뉴욕포스트지(9월19일자)에 따르면, 테러사건 이전엔 1주일 평균 600명 정도의 지원자가 CIA의 문을 두드렸으나, 그 후 1주일 간 몰린 지원자는 3000여 명에 달한다는 것. CIA측에 따르면 정보분석가나 컴퓨터 전문가 외에도 목숨을 걸어야 하는 비밀공작 스파이로 일하길 원하는 지원자도 이전보다 배로 늘었다는 것이다. 또 지원자 중 상당수는 아랍어나 이슬람권 언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CIA 지원자가 급격히 늘어난 것은 물론 테러참사로 인해 고취된 미국인의‘애국주의 물결’ 때문이다.
미국 언론들은 테러리스트가 뉴욕과 워싱턴을 공격했을 때 처음 ‘America under attack’이라는 제목과 함께 ‘진주만의 악몽’을 떠올렸다. 과거의 일이지만 당시 일본군의 진주만 기습은 미국에 일대 충격을 주었다. 이 사건은 국가정보의 원활하고 적절한 평가·보고체계가 국가안보에 얼마나 사활적 역할을 하는지 미국 정부가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1941년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개입하기 전 이미 미국은 상당한 수준의 암호해독 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당시 미국 수뇌부는 암호전문을 해독함으로써 일본측 기습계획을 사전에 파악하였지만, 일본군이 구체적으로 어느 지역을 기습 공격할 것인지는 파악하지 못하였다. 미국측 정보부서가 마지막으로 입수한 일본군 암호전문은 1941년 12월7일 이른 시각 워싱턴에 접수되었는데, 전문 내용은 기습공격을 그날 오후 1시에 시작한다고만 했을 뿐 어느 지역인지 명기하지 않은 것이었다. 당시 미국 수뇌부는 일본군의 기습 목표가 필리핀이나 동남아일 것이라 예측하였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런 정보가 정작 하와이 주둔 미군에게는 적절한 시각에 전달조차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는 관료주의의 병폐와 통신기술상의 제약 등 여러 가지 배경이 작용한 결과였지만, 아무튼 미국의 정보 역사상 최악의 실패 사례로 기록된 이 사건은 전후 CIA 설립을 주장한 사람에게 중요한 논거가 되었다. CIA의 탄생 배경에는 정보활동의 체계화를 통해 다시는 진주만 사건 같은 치욕을 겪지 않겠다는 의지가 배었던 것이다.
CIA의 전신은 제2차 세계대전중 창설한 합참 산하 OSS(Office of Strategic Service)다. 그러나 전시 비밀공작과 비정규전, 조사 및 분석을 임무로 한 OSS 활동은 일본이 항복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해체를 지시한 트루먼 대통령에 의해 종지부를 찍었다. OSS가 맡은 정보수집 기능은 전쟁부 및 육군으로, 조사·분석 기능은 국무부로 이관되었다. 비밀공작 활동은 전면 중단했다. 그러나 이 조치는 행정부 내 여러 당사자의 불만을 샀다. 또 정보담당 부서 사이에 충분히 조율하지도, 제대로 분석하지도 않은 정보보고가 대통령에까지 올라가는 일도 자주 일어났다. 그리고 무엇보다 냉전이 시작되면서 국가안보를 위한 정보체계를 확립해야 할 필요성은 점점 커졌다.

트루먼 대통령은 이에 1946년 1월 CIG (Central Intelligence Group) 신설을 지시했다. CIG는 국무부·전쟁부·해군의 최고 수뇌들로 구성된 CIA(Central Intelligence Authority)의 지휘를 받아 국가정보 활동의 통합·조정 기능을 맡았다. 그리고 CIG는 1947년 미 의회에서 국가안전보장법(National Security Act)이 통과되면서 오늘날의 CIA(Central Intelligence Agency)로 새롭게 태어났다. 이로써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법률적 근거를 가진 국가정보기관으로 탄생한 CIA는 1949년 중앙정보국법(Central Intelligence Agency Act)에 의해 더욱 확고한 법적 기반을 갖게 되고 이른바 NIEs(National Intelligence Estimates)의 생산을 시작했다.

트루먼 대통령은 훗날 회고록에서 CIA를 탄생시킨 것을 후회했다. 트루먼은 자신이 구술한 자서전에서 “자유롭고 민주주의적인 정부와 CIA의 비밀주의는 조화하기 어렵다. CIA는 막대한 예산을 쓰면서도 비밀이라는 이유로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모른 채 감시와 통제 바깥에 있다”고 CIA를 강력히 비판했다. 그러나 그의 집권 시절 이미 CIA는 비밀공작 활동을 시작했고, 1952년 암호해독 및 개발을 전문으로 하는 NSA(National Security Agency)의 창설을 승인하기도 했다.

94년 예산 30억 불, 직원 수 1만5천 명
CIA의 전체 규모는 구체적으로 드러난 적이 없지만, 예산과 관련한 한 비밀공작 활동의 빈도와 범위에 따라 해마다 상당한 변동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980년대에는 전체 정보예산의 상당 부분이 CIA 몫이었다. 왜냐하면 이 시기에 CIA는 니카라과, 앙골라,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대규모 비밀공작 활동 등 다수의 비밀공작을 벌였기 때문이다. 1986년 CIA 예산은 28억 달러 정도로 추산되었다. 1994년도 예산은 30억 달러, 직원 수는 1만5000명선으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4000명에 달하는 계약직과 파트타임 근로자를 제외하고도 2만2000명선에 이른다는 주장도 있다. CIA 본부는 워싱턴 D.C. 근교인 버지니아주 랭글리(Langley)의 포토맥 강가에 있으며, CIA 국장이 수장(首長)을 겸하는 DCI(Director of Central Intelligence)는 본부 7층 집무실 외에 백악관 옆 구행정건물에도 전용 사무실이 있다.

CIA 조직체계의 핵심은 관리부(DDA)·첩보부(DDI)·공작부(DDO)·과학기술부(DDS&T) 등 4개 부서다. DDA는 인력·예산·보안·의료 서비스·해외 병참지원 등 행정 및 관리를 맡는 부서다. CIA의 부서 중 최대 규모인 DDI는 정보를 분석하고 최종 생산해 내는 부서다. 1952년에 설립했으며 카터 행정부 시절 국가해외평가센터(NFAC)로 이름을 바꿨다가 훗날 윌리엄 케이시 국장이 원래 이름으로 환원했다. DDI는 무기통제 정보·수집 소요 및 평가·기획 및 관리·생산평가 등 4개 특수 스태프를 거느렸으며, 당면정보 생산·지구적 사안·영상분석·정보자원·리더십 분석·과학 및 무기연구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 및 전 세계를 5개 지역으로 나누어 담당하는 부서들을 배치했다. DDS&T는 기초 및 응용과학 연구 개발·기술정보 수집시스템의 설계 및 운용·과학기술 정보의 최종 생산 등을 담당한다. 이곳에는 연구개발·연구 엔지니어링·해외방송정보서비스·신호정보(SIGINT) 공작·기술 서비스·국립사진판독센터 등의 부서를 배치했다.

공작부(DDO)는 비밀수집·방첩·비밀공작을 담당하는 공작부서다. CIA라고 하면 일반인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 공작부지만, 인력과 배당하는 자원 면에서는 다른 부서보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편이다. 첩보기관으로서 CIA는 그동안 신비롭고 전지전능한 이미지를 쌓아왔고, 이는 외부인으로 하여금 실제로 CIA가 관여하지 않은 일까지 CIA의 탓으로 돌리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 CIA 업무의 상당 부분은 공개자료 속에서 의미 있는 정보를 추려내는 단조롭고 지루한 일이다.

카스트로 제거 작전 ‘대표적 실패 사례’
CIA를 중심으로 한 미국의 정보기관이 냉전 이래 수행해 온 비밀공작(Covert Operation)의 성공과 실패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사례가 알려졌다. CIA가 성공 예로 제시하는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유럽의 반공산주의 세력에 대한 자금 지원 및 마셜 플랜 막후 지원.
△소련 블록의 내부적 이완을 목표로 수행한 자유유럽 라디오(Radio Free Europe) 및 자유 라디오(Radio Liberty) 활동.
△냉전중 소련 블록에 서방세계의 서적 및 잡지를 밀반입함으로써 공산권 주민에게 서방문화 및 소비에트 체제에 대한 비판의식을 주입.
△라틴 아메리카에 소련 영향력이 침투하는 것을 성공적으로 저지. 대표적 예로 1963~73년까지 칠레 내정에 개입해 사회주의자인 아옌데의 집권을 방해했고, 1970년 끝내 아옌데가 집권에 성공하자 1973년 피노체트의 군부 쿠데타를 지원해 성공.
△1954년 과테말라의 좌익 민선정부인 아르벤츠 정권을 전복한 아르마스 대령의 쿠데타 지원.
△1953년 이란에서 민족주의 정권인 모사데크 정권을 전복하고 권좌에서 축출당한 팔레비왕이 재집권하는 데 성공.
△1953년 필리핀에서 훅스(Huks) 게릴라 진압을 위해 막사이사이 집권을 지원.
△63년 베트남의 쿠데타를 이용해 고딘 디엠 암살. 또 베트남에서 베트공 조직 붕괴를 목표로 한 악명 높은 ‘피닉스 작전’을 수행했는데, 작전의 총책임자는 훗날 CIA 국장을 역임한 윌리엄 콜비.
△80년대 아프간 반군에 스팅어미사일 등 군사·경제적으로 지원하여 소련이 아프간 전쟁을 지속하는 데 대해 회의감이 들게 함.
그러나 이러한 성공 사례 뒤에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실패 사례가 있다. 대표적 실패 사례가 61년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를 제거할 목적으로 수행한 피그스만 공격이었다. 이 작전은 아이젠하워 행정부가 승인하고 케네디 행정부하에서 실행했는데, 1400명의 침공군 중 100여 명의 사상자를 낸 끝에 대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이 사건으로 미국의 대외적 위신은 크게 실추했고, CIA에 대한 여론 또한 최악으로 떨어졌다. 피그스만에서 참사가 일어났는데도 CIA는 카스트로 정권 타도를 위한 비밀공작을 계속했다. 카스트로 암살 공작을 시도하는 한편‘몽구스(Mongoose) 작전’이란 공작명으로 전복공작을 전개했다.
이외에 CIA 실패 사례로는 58년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 정권 전복기도, 아프리카의 앙골라 내전 개입 등이 있다. CIA는 해외에서 반공주의를 내건 반군세력을 지원한다면서 오히려 그들을 곤경에 몰아넣은 경우도 종종 있었다. 심지어는 미-소 데탕트 기간중에도 대소 비밀공작 활동을 벌임으로써 냉전이 더 심화하기도 했다.
그러나 탈냉전이라는 새로운 상황은 국가안보 개념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다. 냉전 시절의 전통적 국가안보 개념이 군사적 측면에 큰 비중을 두었다면, 탈냉전 이후에는 경제·기술·생태·사회 안보 등의 중요성이 새롭게 부각했다. 냉전 종식과 함께 비밀공작의 빈도와 범위는 대폭 감소했다. 반면 방첩 부문은 탈냉전 이후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었고, DCI는 여러 정보기관들이 연합해 기구를 새로 구성하는 방법으로 방첩, 대테러, 대마약, 비확산 등의 문제에 대응하고 있다.


< 정리·김 당 기자 / 자료제공·국가정보연구회 > dangk@donga.com 주간 동아 제304 호 기사


이스라엘의 모사드
작은 조직 막강 정보력 ‘살아 있는 전설’
1200명 요원 지구촌 레이더 역할… 정보수집·분석·암살 등 조직마다 세계적 명성

"기만에 의하여 전쟁을 수행한다”(By way of deception, thou shalt do war). 손자병법을 연상케 하는 이 구절은 이스라엘의 전설적인 국가 정보기관 모사드의 모토다.

이스라엘의 정보공동체는 해외정보를 담당하는 모사드, 국내보안을 담당하는 신베트, 군사정보를 담당하는 아만, 외무부 산하의 정치기획·조사센터, 내무부 산하의 경찰 등으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정보공동체를 조정하는 기관으로는 최고정보조정위원회(Va’adat Rashei Hasherutim)가 있다. 여기에는 각 정보기관의 책임자와 총리의 정보·군사·정치·대테러대책 고문이 참석한다. 의장은 모사드 부장이 맡고 있다.

모사드의 정식 명칭은 ‘ha Mossad le Modiin ule Tafkidim Meyuhadim’으로 정보 및 특수임무 연구소로 번역할 수 있다. 모사드는 이스라엘의 정보·보안체계에서 해외정보를 담당하며, 주로 인간정보(Humint)와 비밀공작(Covert Action), 대테러활동(Counterterro rism) 등의 임무를 수행한다. 본부는 텔아비브에 위치하고 있으며, 요원 수는 1980년대 후반의 평가에 의하면 1500∼2000명이었으나 최근의 자료는 1200명이라 평가하고 있다. 한편 전직 모사드 요원이었던 빅터 오스트로브스키는 전 세계적으로 모사드가 고용한 에이전트는 3만5000명이며 이 가운데 2만 명은 활동중이고 1만5000명은 활동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비밀스런 모사드의 조직과 관련된 자료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미국 CIA가 1977년에 작성한 이스라엘 정보기관에 대한 보고서다. 이 자료는 원래 극비자료였으나 79년 이란 회교혁명으로 테헤란 주재 미 대사관이 점거되었을 때 외부로 유출되어 알려졌다. 이 자료에 의하면 모사드는 작전기획조정국, 수집국, 정치활동연락국, 인력·재정·병참·보안국, 훈련국, 분석국, 기술공작국, 기술국의 8개국(局)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치활동연락국과 수집국은 공동으로 북·중·남미 등 8개의 지역과(課)를 운영했고, 이스라엘 대사관의 모사드 요원들은 첩보수집국과 정치활동연락국에서 파견나온 요원들로 구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확한 조직규모 아직도 베일에 가려

다른 하나는 전직 모사드 요원이었던 오스트로브스키가 1990년에 밝힌 모사드 조직표이다. 이 조직표에 모사드는 작전을 담당하는 부서와 지원을 담당하는 부서로 나누어져 있다. 하지만 모두 몇 개의 국이 있는 지는 이 도표만 가지고는 확인하기 어렵다. 이를테면 미국과학자연합(FAS)은 모사드가 8개국으로 이뤄졌다고 하지만 이름은 5개만 밝혔을 뿐이다.

먼저 모사드의 작전부서에는 수집국과 정치활동연락국, 심리전국(LAP)국 등의 부서로 구성되어 있다. 수집국은 가장 규모가 큰 부서로 해외첩보수집을 담당한다. 수집국은 A·B·C의 3개실을 가지고 있으며, 각 실은 지역과와 해외지부를 관리한다. 정치활동연락국은 우호국의 정보기관과 정보교환업무를 담당하며, 외교관계가 없는 국가와의 접촉 및 연락업무를 수행한다. 심리전국은 모사드의 심리전, 선전, 기만작전을 담당하고 있다. 모사드의 작전부서 중 챠프리림(Tsafririm)은 전 세계에 있는 유대인과의 연락을 담당한다.

야할로민(Yahalomin)과는 특별통신부대로 이스라엘의 적대국에서 활동하는 첩자들과 통신을 담당하고 있다. 네비오트(Neviot)는 정해진 목표물에 대한 도청 등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부서다. 그리고 모사드 내부보안을 담당하는 부서로 APM이 있다.

지원부서 중 가장 중요한 곳은 분석국이다. 수집된 첩보를 정보화하는 역할을 담당하며 구체적으로 일일보고서, 주간동향보고서, 월간보고서 등을 제작한다. 연구국은 14개의 지역과와 핵담당과로 구성되어 있다. 기술국은 모사드의 작전을 지원하기 위한 최첨단의 기술과 장비를 개발하는 업무를 담당한다. 이밖에 모사드의 비밀공작을 담당하는 독립부서인 메차다(Metsada)는 암살, 사보타주, 준군사적 활동을 수행하는 핵심부서다. 특히 메차다 휘하에는 암살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키돈(Kidon)과가 활동하고 있다.

히브리어로 위 혹은 정상을 의미하는 알(Al)은 미국 내에서 비밀리에 첩보활동을 벌이는 모사드의 특수부서다. 오스트로브스키에 따르면 모사드 내에서도 알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 만큼 조직 자체도 독립적이라고 한다. 3명의 카트사(Katsas:정보관)를 포함한 24∼27명의 현장요원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73년 10월 전쟁 예측 못해 ‘명성 흠집’

이스라엘의 가장 유명한 첩보원인 엘리 코헨(Elie Cohen)의 첩보활동은 전형적인 제3국 우회침투를 통한 첩보수집 사례를 보여준다. 이집트 태생의 유대인인 코헨은 1951년 비밀리에 이스라엘에서 정보원 및 사보타주 훈련을 받았다. 훈련을 마친 후 모사드 정식 요원이 된 코헨은 카밀 아민 타베스라는 레바논 이주 시리아인으로 위장해 먼저 아르헨티나의 시리아인 공동체에서 활동했다. 코헨은 그곳에서 나중에 시리아 대통령이 된 아르헨티나 주재 시리아 무관 아민 엘-하페즈 장군 등 저명 인사들과 접촉해 이들의 소개장을 갖고 62년 시리아로 잠입했다.

시리아에서 코헨은 고위층과의 교류를 통해 막대한 정보를 입수했다. 코헨이 획득한 정보에는 소련고문단이 작성한 이스라엘 공격계획, 소련이 시리아에 제공한 무기 사진, 골란고원의 시리아군 배치도 등이 포함되었는데 특히 골란고원 시리아군 배치도는 67년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군이 승리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그러나 코헨은 그 전인 65년 시리아 방첩부대에 체포되어 다머스커스 순교자광장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이밖에 이집트에 영국군 장교로 위장 잠입해 이집트 미사일 개발계획 및 배치도 등을 수집해 보고한 볼프강 로츠, 레바논 베이루트에 사는 7명의 자녀를 둔 유대인 주부로 암호명 ‘진주’라는 모사드 요원으로 활동한 ‘중동의 마타하리’ 슐라미트 키사크-코헨 등이 전설적인 모사드 첩보요원으로 손꼽힌다.

모사드 비밀공작의 대표적 사례는 아돌프 아이히만 납치공작이다. 아이히만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독일의 친위대 장교로 유대인 학살에 깊이 관여했지만 종전 후 신분을 감추고 잠적해 전범재판을 피한 인물. 모사드는 그가 아르헨티나에 산다는 첩보를 입수한 뒤 약 3년 간의 추적 끝에 60년 5월 마침내 그를 납치해 아르헨티나 독립 150주년 축하사절단이 타고 온 비행기로 이스라엘로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 아이히만은 이스라엘 법정에서 유죄평결을 받고 62년 5월 처형되었다. 이 공작은 당시 신생조직이던 모사드의 역량과 나치즘에 대한 이스라엘 정부의 단호한 의지를 전 세계에 과시한 것이었다. 이밖에 72년 뮌헨올림픽에서 ‘검은 9월단’이 이스라엘 육상선수들을 사살한 데 대한 보복암살은 모사드의 대표적인 암살공작으로 꼽힌다.

이스라엘 정보활동의 가장 큰 실패 사례는 73년 10월 전쟁을 예측하지 못한 것이다. 그로 인해 이스라엘은 이집트와 시리아에게서 전략적인 기습을 받아 패전 위기에 직면했다. 반격에 나선 이스라엘은 미국의 전폭적인 병참 및 정보지원 아래 최종 승리를 거두긴 했지만 이때까지 무적의 이스라엘군과 세계 최고의 정보기관 모사드라는 이미지는 크게 훼손되었다. 이로 인해 전후에 위원회를 구성해 문제점을 규명했지만, 이는 첩보 부족 탓이 아니라 첩보 해석을 둘러싼 정보공동체 내의 갈등-대립 탓이 컸다. 즉 총리 직속기구인 모사드와 군정기구인 아만의 판단 및 의견 대립으로 정부가 아무런 대응조처를 취하지 못한 상태에서 전쟁을 맞이한 것이다.

이와 같은 총리와 정보공동체 사이의 상호불신과 갈등은 이스라엘 정보공동체 위기의 핵심 원인이다.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이스라엘 정보기관들 또한 점차 베일을 벗고 양지로 나오고 있다. 공식적으로 모사드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던 이스라엘 정부가 전례를 깨고 모사드 국장 임명 사실을 공개하고 지난해 7월 최초로 언론에 공채광고를 내고 신입요원 모집에 나선 것 등이 이를 반영한다. 또 이스라엘은 미군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기술정보(Techint) 수집능력을 강화하는 데 힘쓰고 있다. 작지만 세계에서 가장 민첩한 정보기관 모사드의 변신이 기대된다.



< 정리·김 당 기자 / 자료 제공·국가정보연구회 > dangk@donga.com 주간동아 제298 호 기사



영국의 M15, M16
'92년 전통' 코드넘버 007의 산실

국내 방첩은 M15, 해외 활동은 M16로 분담… 세계를 무대로 국가안보 첨병 역할

코드넘버 007의 영국 첩보원 제임스 본드가 소속된 기관이 바로 흔히 MI6으로 알려진 비밀정보국(Secret Intelli-gence Service)이다. 영국의 경우도 미국처럼 국내 방첩은 이른바 MI5로 더 알려진 보안국(Security Service)이 맡고 있으며, 해외정보활동은 비밀정보국(SIS)이 담당하는 식으로 분리되어 있다. MI5와 MI6의 기원은 19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대영제국 국방위원회(Committee on Imperial Defence)의 건의에 따라 비밀첩보부(Secret Service Bureau)가 설립되었다. 창설 당시 버논 켈(Vernon Kell) 대령과 맨스필드 커밍(Mansfield Cumming) 대령이 각각 육군과와 해군과의 지휘를 맡았다. 이후 조직 개편에 따라 편제가 국내과와 국외과로 변경되면서 켈 대령은 국내과, 커밍 대령은 국외과를 담당한다.

1916년 국내과와 국외과는 군사정보국의 일부로 편입되면서 각각 MI5와 MI6라는 명칭을 부여 받았다. Military Intelligence의 약어인 MI가 붙은 것은 이 기관들이 설립 초창기에는 군조직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이외에도 MI8(암호해독), MI11(심리전공작) 등이 있었지만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다. 전쟁이 끝난 후 1921년 국외과는 외무성 관할로 옮겼고 이때 비밀정보국(SIS)으로 개편된다. 한편 MI5는 1931년 아일랜드 테러분자와 무정부주의자들을 제외하고 영국의 안보에 위협이 되는 모든 사안들을 담당하면서 현재의 정식 명칭인 보안국(SS)으로 거듭난다.

소련 간첩망에 침투당해 망신살 경험

보안국(MI5)은 영국정부의 기관임에도 최근까지 법적 지위가 부여되지 않은 것은 물론, 존재 자체가 인정되지 않았다. MI5는 법령에 의해 창설되지 않았으며 관습법에 의해 인정되지도 않았다. MI5의 존재는 1989년에 이르러서야 보안국법(Security Service Act)이 제정되면서 공식적으로 인정되었다. 이 법에서는 MI5의 역할을 “첩보공작 활동, 테러, 사보타주의 위협, 외국 첩보요원의 활동에 따른 위협, 정치·산업·폭력적 수단을 동원하여 의회민주주의를 전복 또는 훼손하려는 행동에 따른 위협 등에서 국가안보를 보호”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MI5는 원래 영국에서 활동하는 외국 첩보기관에 대한 방첩이 주임무였으며 초기에는 특히 독일 스파이의 침투를 추적·색출하는 역할에 초점을 두었다. 그 결과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이전 영국 내에서 암약한 12명의 독일 첩자를 체포하는 성과를 올리기도 하였다. 1차 대전 이후 한동안은 주로 볼셰비즘으로 무장한 공산주의자에 의한 사회전복 기도의 추적과 색출 및 검거에 역점을 두다가, 1930년대 말에 이르러 다시 독일의 첩보공작 가능성에 눈을 돌리게 된다. MI5는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이후에도 혁혁한 성과를 올린다. MI5는 전쟁중 16명의 독일인과 2명의 스페인인을 간첩으로 체포했으며 그 외에도 많은 수의 독일 첩자들을 전향시켜 독일에 대한 기만전술로 역이용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다시 소련 첩자의 색출이 주임무가 되어 상당수의 스파이들을 검거하기도 했으나, 후일 알려진 바와 같이 MI5는 MI6와 함께 이른바 케임브리지 링(Cambridge Ring)이라는 소련 고정 간첩망에 의해 철저히 침투·유린당하기도 했다. 케임브리지 링은 30년대 케임브리지 대학 재학 당시 공산주의 사상에 경도된 일단의 학생들이 소련에 의해 첩자로 충원되어 MI5와 MI6의 고위직에 이를 때까지 지속적으로 소련을 위해 첩보활동을 전개한 간첩망으로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킴 필비다. 필비는 검거 직전 베이루트에서 소련으로 피신해 88년 죽을 때까지 소련에서 살았다. 소련은 필비의 공로를 인정해 생전에 최대한의 예우를 해주었으며, 죽은 후에는 KGB의 영웅을 주제로 한 우표 시리즈에 필비를 넣기도 했다. 어쨌든 이로 인해 MI5는 냉전 시기 대소 첩보전에서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며 신뢰도를 떨어뜨렸을 뿐 아니라 영국 정보기관과 많은 정보를 공유한 미국 정보기관과의 협조체제에도 손상을 입었다.

이와 같이 MI5는 과거에는 주로 적성국가들의 간첩침투에 대한 방첩활동에 역량을 집중해 왔지만 최근 들어서는 테러리즘, 마약, 불법이민, 조직범죄 등 과거 경찰이 담당한 영역까지도 활동의 범위를 넓혔다. 아울러 MI5는 북아일랜드 문제와 관련한 활동에 상당한 자원을 투여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그 외에도 웨일스나 스코틀랜드의 극단적 민족주의자들에 대한 정보활동도 수행한다고 한다. 이처럼 MI5의 활동영역이 넓어지면서 MI5와 경찰간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예컨대 원래 북아일랜드 문제를 담당해 온 스코틀랜드 야드(Scotland Yard)의 수사관들은 MI5가 무능력하고 서투르다고 비난하곤 한다.

1993년 MI5가 발간한 소책자 ‘보안국’(The Security Service)에 의하면 MI5의 기능은 크게 △테러 방지 △방첩 △국가전복기도 방지 △방호 보안(protective security) △보안 정보활동의 다섯 가지다. 이런 기능 속에는 대(對) 정보활동과 방첩공작 수행, 민감한 첩보에 접근할 수 있는 모든 직원의 보안심사 감독, 파괴 활동 가능성이 있는 분자들의 국내 활동과 조직들에 대한 감시가 포함된다. 보안국은 대 태업활동과 외교적 임무를 수행하는 인원들을 포함하여 외국의 거류민과 방문객의 감시와 통제에 대한 책임도 맡고 있다.

MI5는 공개적 활동, MI6는 아직 베일 속

MI5는 1850명의 풀타임 요원을 고용하고 있으며, 총 여섯 개의 처(處)로 편성되어 있다. A처(정보자원 및 운용), B처(참모실, 행정 및 재정), 그리고 S처(지원근무, 등록, 컴퓨터 센터 및 훈련실)가 행정 및 평가를 담당하는 부서들이다. MI5의 기본 임무를 수행하는 부서는 C처(방호 보안), F처(국내 전복), K처(방첩)이며, 이 처들은 다시 과(課)로 세분된다. 1997~98년 예산편성에 따르면 MI5 가용자원의 편성비율은 △북아일랜드 관련 테러활동 업무(25%) △국제 테러활동(15.5%) △방첩 업무(12%) △방호 보안(7.5%) △중대범죄(2.5%) △무기 확산(2%) 등이다.

냉전이 끝나자 MI5도 과거의 비밀성을 탈피하기 시작해 1991년에는 최초의 여성 국장으로 화제를 불러일으킨 스텔라 리밍턴 여사(Dame Stella Rimmington)의 임명을 언론에 보도하기도 했다. 두 아이의 어머니기도 한 리밍턴 여사는 냉전의 그림자에서 MI5를 이끌어 내어 처음으로 활동을 양성화하기 시작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리밍턴 국장의 뒤를 이어 1996년 부임한 스티븐 랜더(Stephen Lander) 국장은 1975년부터 MI5에 근무한 케임브리지 박사(사학 전공) 출신으로 북아일랜드 문제에 특히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MI5가 공식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국장의 신원과 사진까지 언론에 보도할 정도로 냉전 이후 공개적 활동을 전개한 반면, 첩보원 007 시리즈의 소재가 된 MI6는 아직 베일에 싸인 기관이다. 1994년 제정된 정보국법(Intelligence Services Act)에 의하면 MI6의 역할은 “영국의 국토 바깥에 있는 인물들의 행동과 의도에 대한 정보를 수집·제공하며, 국방 및 외교정책과 관련된 국가 안보이익 증진, 영국의 경제적 이익 추구, 범죄 방지 및 탐지와 관련된 기타 업무를 수행”하는 데 있다고 한다. 이 법안의 제정으로 의회 내 MI6의 지출·행정·정책을 감독하는 정보보안위원회(Intelligence and Security Committee)를 설치했다.

MI6도 MI5와 마찬가지로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전에는 독일이 주된 첩보활동 대상이었으나,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나 그 후에는 러시아에서 볼셰비키가 권력을 장악하는 것을 막기 위해 멘셰비키를 지원하는 공작을 수행하는 등 소련을 대상으로 하는 첩보활동에 점차 주력한다. 이러한 공작활동을 수행한 첩보원 중에는 우리에게 유명 작가로 잘 알려진 서머싯 몸과 대니얼 데포 등이 있다. 그러나 소련에서의 공작활동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MI6의 신뢰도가 크게 실추되었고, 또 소련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다른 지역에서의 정보수집활동이 지나치게 위축되어 결국 1935년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침공, 독일의 라인란트 점령, 1938년과 39년 독일에 의한 체코슬로바키아와 폴란드 침공 등 주변국의 움직임을 제대로 감지하지 못했다.

영국 거주한 외국인 주포섭 대상

하지만 MI6는 2차 대전의 발발과 함께 제 기능을 발휘하기 시작하여 특히 암호해독에서 큰 성공을 거두어 영국뿐 아니라 다른 연합국들에게도 독일과 이탈리아의 군사력 및 이들의 의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기도 했다. MI6는 2차 대전이 끝나기 전인 1944년 여름에 대(對) 소련 부서를 신설하면서 본격적으로 냉전시대 첩보전의 막을 연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대로 MI6는 소련 첩자인 킴 필비 등이 이미 침투하여 MI6의 많은 활동들이 사전에 소련에 노출되어 실패로 돌아가기도 했다.

냉전이 종식되고 공산권의 몰락으로 적성국가가 사라짐으로써 MI6의 활동은 크게 위축되었다. 과거 소련의 위협에 초점을 맞춘 기능은 대폭 감축되어 구소련 지역에 대한 공작활동은 약 3분의 2가 줄어들었다. 그러나 러시아 정보 당국이 런던에서의 정보활동을 활성화한 것으로 알려진 96년에는 MI6 활동이 다시 되살아나는 기미를 보이면서 그해 5월 영국과 러시아가 각각 4명씩의 외교관을 추방 및 맞추방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MI6의 업무 영역에 변화가 일어났음은 또 다른 사건에서도 알 수 있다. 냉전 이후 MI6는 유령회사를 설립하여 프랑스의 브레스트 해군기지에서 일하는 기술자에게서 잠수함 추적 기술을 빼내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이제 MI6는 ‘제트기류’(Jet Stream)라는 공작명하에 서유럽 내 친선우호국을 대상으로도 공작활동을 수행하였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직원들에게 ‘회사’(The Company)로 통하듯 MI6도 내부에서는 ‘상사’(The Firm)로 통한다. 이 ‘상사’의 본부는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에게는 ‘레고랜드’(Legoland)라고 알려진 런던의 복스홀 크로스(Vauxhall Cross) 85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은 약 2300여 명(1994년 3월 현재)으로 추산되나 인원과 예산이 과거에 비하면 감소 추세에 있다. 99년 로빈 쿡 외무장관은 원래 중동 전문가인 데이비드 스페딩(David Spedding)의 후임으로 리처드 디어러브(Richard B. Dearlove)를 책임자로 임명했다. 94~99년에 국장으로 일한 데이비드경은 지난 6월 폐암으로 사망했다.

MI6는 초대 국장인 맨스필드 커밍의 성(姓)에서 머리글자를 따 ‘C’라고 부르는 국장이 지휘하고 있다. MI6는 조직의 우두머리인 국장 아래 일상적 활동을 감독하는 본부장을 두었으며, 본부장 밑에는 네 개의 처와 해외작전을 감독하는 통제단이 있다. 4개 처는 인사·행정처, 특수지원처, 방첩·보안처, 그리고 정보수집 소요의 결정과 정보보고서 작성의 책임을 맡은 소요 및 생산처로 나뉘었다. MI6의 해외공작은 7명의 통제관의 감독하에 있다. 통제관은 영국에 거주하다 귀국하는 외국인 중 본국 귀환시 영국을 위한 공작원으로 활동할 수 있는 인물을 식별하여 포섭하는 책임을 맡고 있다.


< 정리·김 당 기자 / 자료제공·국가정보연구회 > dangk@donga.com 주간동아 제 304 호


일본의 내각 정보 조사실
경제전쟁 ‘거미줄 정보망’ 가동

전 세계 산업정보 ‘일거수 일투족’ 수집 분석… 자금 지원 민간연구기관이 중추 역할

태평양전쟁기까지 일본의 국가 정보체계는 군(軍) 정보기관과 경찰이 중추적 역할을 맡고 현지의 정보원들을 광범하게 활용하는 인간정보(humint) 네트워크가 주축이었다. 1881년 정예요원 349명으로 출범해 대본영 휘하 육군성 소속기구로 활동을 개시한 헌병대와 참모본부 휘하의 특무부대 그리고 내무성의 특별고등경찰(특고)이라는 민간인 사찰기구 등이다. 특히 친일 정보원을 통한 정탐과 매수를 주요 수단으로 한 일본의 인간정보 네트워크는 만주국 수립 및 중국 침공 전후 헌병대를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확장되었다. 또 만주 주둔 관동군은 특히 현지 정보 수집능력이 탁월해 각종 침략주의적 공작활동의 중심이 되었다.

예를 들어 1928년 만주 펑톈(심양)역(驛)에서의 장작림(張作霖) 폭사사건은 관동군 대좌 카와모토 타이사쿠가 주도했고, 31년 펑톈 교외에서 일어난 유조구(柳條溝) 사건도 관동군 작전참모인 이시하라 중좌를 중심으로 치밀하게 사전에 모의한 사건이었다. 관동군은 유조구에서의 열차 폭파사건을 중국인의 소행이라고 뒤집어씌워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특무기관원들이 주도해 청나라 마지막 황제 푸이를 괴뢰 만주국의 황제로 옹립하는 공작을 수행했다. 또 화북 분리공작, 내몽고 자치정부 수립공작, 왕조명 정부와 같은 중국 내 괴뢰정권 수립 공작은 일본 본토의 특무부대와 현지 관동군이나 화북 주둔군의 특무부대가 주도한 것이다.

이처럼 대륙 침략과정에서 인간정보 수집능력에 탁월한 수완을 발휘한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는 암호해독전(cryptological warfare) 능력의 부족 때문에 미국에 완패하는 경험을 하였다. 태평양전쟁중 독일이 제공한 암호화기(enigma machine)의 코드가 연합국측 정보원을 통해 유출되어 일본의 중요한 군사정보 통신망은 미군에 완전히 노출되었다. 이를테면 미드웨이 결전을 앞두고 일본 해군의 암호전문 정보가 유출되어 미 해군은 함대 결전을 충분히 예상하고 준비할 수 있었으며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은 주력 항모 4척과 항공기 300대를 잃는 타격을 입었다.

당시 미국의 니미츠 제독은 미드웨이 해전 직전에 일본 해군이 송신하는 특정목표 코드인 ‘AF’가 알류샨인지, 하와이인지 또는 미드웨이인지를 알기 위해 미드웨이 부대장에게 식수 부족 내용을 송신하라고 하였다. 일본 본국에서 미드웨이를 AF라는 암호명으로 지칭하면서 미드웨이에 식수가 부족하다는 정보를 일본 해군으로 송신하는 것을 미군이 중간에 암호를 해독하여 미 해군은 일본의 공격목표가 미드웨이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태평양전쟁에서 암호해독전의 실패로 쓴맛을 본 일본은 전후 민간부문의 해외 산업정보 수집능력으로 수출입국에 성공하고 경제대국으로 부활할 수 있었다. 당시 인간정보 네트워크의 핵심역량은 나가노정보학교 출신 요원과 만철(滿鐵) 조사부 요원들. 특히 일본 군부가 정보요원을 양성하기 위해 전쟁 전에 세운 나가노학교 출신들은 전후에 일본 민간기업에 취직해 정부와 민간기업간 해외정보 공유의 핵심적 고리역할을 했다.

한편 일본 대륙침략의 발판이 된 국책회사인 만주철도주식회사(만철)의 조사부 또한 전후에 일본의 해외투자 및 무역에 관한 높은 수준의 조사활동을 통해 일본을 부흥시키는 데 큰 공헌을 했다. 현재 일본의 아시아경제연구소와 유사한 기능을 수행한 만철 조사부는 만주와 중국 그리고 동남아까지의 국제정세, 현지 경제 및 법 관행 조사뿐만 아니라 역사·문화·지리를 학술적으로 총괄하는 사실상의 종합연구기관. 1907년 중국 다롄에 본사를 두고 도쿄대학 출신 등 총 4500여 명의 우수한 인력을 보유한 만철은 향후 하얼빈·지린·베이징 등에 지사를 두면서 첩보활동에까지 조사 활동을 확장해 결국 관동군 작전참모인 이시하라 칸지를 통해 일본군의 만주 통치를 뒷받침하는 두뇌역할을 했다. 현재 일본의 노무라총합연구소(NRI), 미츠비시총합연구소 같은 민간 대기업의 연구기관이 해외 경제동향 및 정세분석의 중추역할을 하는 것은 과거 만철 조사부가 닦은 역량과 무관하지 않다.

태평양전쟁 암호해독 실패로 쓴맛

패전 후 일본은 국가 정보기관의 역할이 축소되고 군사안보보다는 경제 중심의 대외관계에 무게를 두면서 민간 연구기관과 현지에 파견되어 있는 종합상사의 상사원들이 수집하는 경제 및 산업정보가 통산성 등과 공유되는 채널을 발전시켰다. 이때 나가노정보학교 출신 요원과 만철 조사부 요원들은 민간기업에 취업해 자신들이 갈고 닦아온 해외정보 수집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이들은 또한 정부와 민간기업간 정보 공유의 고리 역할을 하면서 해외 상사원들이 사실상 정부의 정보요원 역할을 하는 일본의 독특한 해외정보 수집체계를 형성하는 데 공헌했다. 이를테면 일본의 대기업 간부들은 정기적으로 통산성 등의 관료들과 회동하면서 중요한 해외 산업정보를 공유한다. 또 종합상사 간부들은 족의원(族議員)이나 자민당 파벌영수와 같은 유력 정치인에게 고급 해외정보를 제공하는 비공식 정보 네트워크를 통해 정치적 후견세력과 협력하고 있다. 종합상사들은 전 지구적인 정보 수집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는데, 예를 들어 미츠이그룹은 런던에서 나이로비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에 185개의 현지 사무소를 운용하면서 산업정보 수집의 첨병 역할을 했다. 놀라운 점은 미츠이의 본국 본부에는 석유화학·통신·항공 등 모든 사업분야를 망라하여 관련된 방대한 해외정보를 관리하는 중앙컴퓨터시스템이 1957년부터 운용되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고도로 발전된 해외 경제정보 수집·분석·공유체계가 전후 일본의 급속한 부흥과 경제대국의 성공에 결정적으로 공헌하였다고 평가하여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전후 일본의 정보기관은 국가 정보기관 성격을 띠는 내각정보조사실과 군사정보기관으로 통합막료회의 직속기관인 정보본부 그리고 국내 치안 유지를 위해 설치한 공안조사청으로 대별된다. 내각조사실은 1952년 8월 총리부 설치령으로 내각 관방장관 산하에 창설되었고, 57년 국가 정보 수집의 중심기관으로 재발족되어 미국 CIA의 요구를 반영해 공산권 동태 정보 수집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76년 12월 현재의 내각정보조사실로 명칭을 바꾸고 기능이 확대되었다. 공안조사청 또한 52년 한국전쟁중 일본 내 좌익단체의 활동을 통제하기 위한 파괴활동방지법 및 공안조사청법에 근거해 법무성 외청으로 설치되어 2000여 명의 요원으로 대내 정보활동을 시작했다. 그후 공안조사청은 탈냉전 후 96년 조직 개편으로 구공산권 정보 및 국내 이념세력에 대한 정보수집 대신 주로 해외정보 수집과 국내 광신도 종교집단 감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일본 국가정보체계의 중심기구인 내각정보조사실(약칭 내조실)은 2001년 정부 조직 개편으로 실장을 내각정보관으로 하고 내각조사관이라는 명칭은 내각참사관으로 바꾸었으나 내부 조직은 이전과 같이 7개 부, 1개 센터로 구성되어 있다. 내조실이 공식적으로 표방하는 임무는 총리대신의 중요 정책 수행을 위한 정보의 수집·분석·제공·전파와 관련해 각 성(省)·청(廳)과의 연락·조정 업무를 담당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각 부서의 임무를 보면 총무부는 외곽단체인 정세연구회를 관리하고 인사·후생·교육훈련과 주요 정보 분석 및 연락·조정의 기능을 수행한다. 국내1·2부는 각각 국내정보와 국내 언론을 담당하면서 국민출판협회 등 외곽단체를 운용한다. 국내1부는 내각의 중요정책 수립을 위한 국내정보 수집 및 분석을 담당한다. 특히 국내2부는 내각의 주요 정책에 대한 국민 여론의 동향 조사와 신문·방송·잡지의 논조를 분석하는 업무를 수행한다. 이에 반해 국제1부는 내각의 해외정보 수집·분석의 창구로서 동남아조사회·세계경제조사회 등 외곽단체를 운용하는 해외정보 담당 부서다. 국제2부는 해외 매스컴의 논조를 분석하고 내외정세조사회와 통신사 등의 협력을 받는 해외언론 담당 부서다. 경제부는 국내외 경제 관련 연구·조사를 담당하고 자료부는 민주주의연구회를 통해 정보자료·존안관리와 전산화한 정보 및 마이크로 필름을 관리한다. 이밖에 96년 4월에 신설한 내각정보집약센터에는 국토청·경찰청·방위청·외무성 요원 150여 명이 편성되어 있다.

이처럼 내조실은 풍부한 자금을 무기로 주로 외곽 민간 연구기관을 활용해 정보수집 및 분석·평가를 시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위해 내조실은 약 25개에 달하는 외곽단체의 인건비·사업비 등 예산을 부담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특기할 것은 일본방송협회·세계정경조사회·국제문제연구회 등 다수의 외곽단체마다 적지 않은 수의 지원요원을 운용하면서 전 세계를 대상으로 공개된 정보를 체계적으로 수집·분석한다는 점이다. 내조실과 직간접으로 연결된 것으로 추정되는 단체들 중에는 내조실과 깊이 관련된 단체도 있고, 내조실 출신 인물이 아마쿠다리(낙하산 인사)로 임명되면서 인맥을 통해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있다. 예를 들어 대표적인 외곽단체인 세계정경조사회의 이사장은 내조실·경찰청·공안조사청 근무 경험자를 임용하고 회장은 명예직이며 이사장이 주로 운영을 관장한다.

내각정보조사실의 중앙 조정·통제 기능이 강화되면서 각 성·청의 해외업무를 담당하는 정보수집 부서가 분석한 정보도 내조실이 종합·관리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외무성과 경제산업성(통산성)에서 취합하는 것들이다. 외무성의 정보 부서인 국제정보국의 국제정보과·분석1과·분석2과는 각각 국제정세에 대한 정보 수집·분석 및 관리 기능을 수행한다. 일종의 ‘허가받은 스파이’인 대사관 정무과 소속 외교관이나 영사들은 주재국 정세에 대한 정보 수집업무를 주로 담당한다. 특기할 것은 일본은 대사관과 현지 특파원들이 긴밀한 협조체제를 유지하였는데 한국 내에서도 주한 일본 대사가 언론사 특파원들과 주례 회동을 하면서 고급 정세정보를 교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취재 명분으로 자유롭게 정보를 수집하는 일본 언론의 특파원들은 시노하라 기자가 한국에서 군사정보를 취재하다 94년 간첩혐의로 구속사태까지 빚을 정도로 적극적이다.

관방장관 예하 7개부 1개 센터 구성

결국 내조실은 일본 국가정보체계의 중심기관이라 볼 수 있고 그 조직과 다른 성·청과의 관계는 ‘표’와 같다. 도쿄 치요다구의 나가타초에 있는 내각부의 대신관방은 내조실을 비롯하여 내각총무관실·내각관방부장관보·내각광보실로 이뤄져 있고 내각심의관 7명과 내각참사관 39명은 특별히 태스크포스팀으로 편성되어 현안 정책과제가 있을 경우 총무관실·광보실·내조실에 탄력적으로 투입해 임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전후 일본 정보기구의 특징은 45년 이전의 군 정보기관 중심의 국가 정보체계는 해체하고, 미국의 CIA와 같은 통합된 국가 정보기관은 설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최근 일본은 내각조사실, 공안조사청, 정보본부, 외무성 국제정보국 등 정보기구에 대한 조정·통제 기능 강화를 위해 행정개혁의 일환으로 내각 관방장관실 밑에 내조실(내각정보관이 지휘)의 설치를 추진했다(일본 정부는 행정개혁의 일환으로 2001년 1월6일부터 지금까지의 1부 22성·청 체제를 1부 12성·청으로 축소하면서 총리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도록 했다. 즉 총리부·경제기획청·오키나와개발청을 내각부로 통합하고 방위청과 국가공안위원회를 내각부의 직할기관으로 하면서 내각 관방의 지원을 받는 총리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내각부 관방장관 예하의 내각정보관에 의한 국가정보의 중앙조정·통제 기능이 강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 정리·김 당 기자 / 자료제공·국가정보연구회 > dangk@donga.com 주간동아 제302 호






중국 국가 안전부
첨단 기술정보 사냥꾼 ‘만만디 스파이’
수십 년 간 치밀한 활동 핵무기·미사일 기술도 ‘쓱싹’… 17개 공작국 지구촌 정보 손금 보듯
중국의 대표적 정보기관은 국가안전부(MSS : 국안부)다. 국안부는 1983년 6월 공공안전부(공안부) 내의 기존 방첩단위(1∼4국)와 건국 초기부터 당내의 내사 및 내부 안전을 담당한 중앙조사부(中央調査部)의 일부 기능 및 군 총참모부의 일부 인력을 통합해 ‘국가 안전 및 반간첩 공작을 영도·관리하며,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 및 조국통일의 대업을 보위·촉진’시킬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국안부의 설립은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의 채택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으며, 주요 목적은 중국의 대외개방으로 인한 외국인의 입국 및 내국인의 출국이 폭발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좀더 조직적으로 간첩·방첩활동을 전개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국안부 조직은 설립 초기에는 9개 공작국과 4개의 직할 지원기관으로 구성되었으나, 개혁·개방의 추진으로 인한 대외접촉의 증가 및 컴퓨터·정보통신·위성·무인항공기(UAV) 등 첨단기술을 이용한 첩보활동 증가에 대처하기 위해 업무 범위와 조직이 크게 확대되었다.

1990년대 말 현재 국안부는 17개 공작(工作)국과 10여 개의 행정지원국으로 편성되었다. 1∼3국은 지역국으로 해당 지역의 정보수집을 담당하며, 4국은 대만·홍콩·마카오를 별도 관리한다. 5국은 정보 분석의 통보와 정보 수집을 지도·연구하며, 6국은 과학·기술 정보의 수집·연구 및 통신공작을 지휘한다. 6국은 다수의 자연과학 전공자를 충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7국과 8국은 반간첩(방첩) 단위로 반간첩 정보의 수집 및 외국간첩의 정찰·체포를 맡고 있고, 해외의 중국 민주화 인사에 대한 감시 및 공작을 담당한다. 9국은 우편물 검사 및 통신정찰, 10국은 해외 중국 대사관·영사관의 안전공작을 담당한다(일부 자료에 따르면 10국은 해외 중국 대사관 및 영사관 보호 업무와 병행해 유학생 및 반중국 세력의 활동을 감시한다).

문서자료의 수집·연구·관리를 맡는 11국은 대외적으로 ‘중국현대국제관계연구소’(中國現代國際關係硏究所, CICIR)로 알려졌는데, 동 연구소의 대외 학술활동으로 인해 외국에도 잘 알려져 있다. 이밖에 12국은 사회 민의(民意) 및 동태 조사, 13국은 과학 기자재 관리·연구, 14국은 암호·통신공작을 담당한다. 15국은 대만·홍콩·마카오 연구국으로, 4국과 업무 영역이 중첩되는 것으로 보인다. 16국은 국안부 내부 전산망의 안전 관리, 전산망의 외부 침입 방지 및 관련 정보 분석단위로 추정된다. 17국은 ‘청안총공사’(淸安總公司) 같은 국안부 소속 기업 및 사업의 관리를 담당한다.

85년 정보처장 美 망명 ‘호된 신고식’

이에 비해 공안부(公安部, MPS)는 공공치안을 담당하는 주무 부서로, 일반 경찰기관의 업무 외에도 국경수비, 출입국 관리, 소방 및 산불예방, 민간항공, 산아제한, 기술정찰 등 다양한 기능을 담당한다. 특히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각종 소요진압 및 치안유지에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는 ‘무경’(武警:人民武裝警察)도 공안부 소속이다. 공안부는 당 중앙군사위의 지휘하에 현재 약 150만 명으로 추산하는 무경을 관리·운영한다.

신화사(新華社, NCNA)는 중국의 소식을 대외에 전파하고, 외국의 소식을 국내에 보도하는 일반적 통신사의 기능 외에 전 세계 각지의 소식을 수집·번역·요약·분석하여 중국의 고위급 지도자를 포함한 관계 부처에 수시 보고한다. 더욱이 신화사는 국안부 등 정보기관 요원의 해외 파견 때 신분을 은폐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신화사는 당 중앙선전부의 지휘·감독을 받으며, 신화사 사장은 인민일보(人民日報) 사장과 마찬가지로 국무원 부장(장관)급에 해당한다. 국내 31개 지부, 국외 107개 지국을 운영하며, 고용 인원은 1만 명이 넘는다. 특히 신화사 홍콩 지국은 97년 7월 홍콩의 중국 반환 이전 중국 정부의 홍콩대표부로서 통일전선공작을 수행하였으나, 홍콩이 중국의 1개 특별행정구로 설정된 현재도 과거와 같은 정보기능을 수행해야 하느냐는 문제를 안고 있다.

중국의 당·정·군 정보체계는 방대한 조직을 통해 다양한 정보목표를 수행하는데 ‘첨단기술 획득’은 중국의 4개 현대화, ‘대(對) 대만 공작’은 중국의 통일문제와 직결된 주요 업무분야다. 특히 미국 의회 및 반중국 성향 단체들은 중국의 미국 내 첨단기술 불법 획득에 대해 다양한 사례를 제시해 왔는데, 미국 내 중국의 정보활동에 대해 가장 광범위하고 심각하게 문제를 제기한 자료는 99년 5월 미 의회의 위원회가 발표한 이른바 ‘콕스(Cox) 보고서’다. 주요 내용은 중국이 자국의 군사·정보능력의 향상을 위해 핵무기·미사일·항공우주 기술 같은 미국의 다양한 군사기술을 수십 년 간 불법적으로 획득했으며, 미국 정부의 방만한 기술 수출통제정책이 이같은 중국의 스파이 활동을 쉽게 했다는 것이다.

국안부는 설립 초기인 85년 4월에 발생한 정보처장(과장급) 유강성(兪强聲)의 미국 망명 사건으로 호된 ‘신고식’을 치렀다. 유강성의 망명으로 미국 내 중국 첩보조직의 일부가 노출되었는데, 중국계 미 중앙정보국(CIA) 요원 김무태(金無怠) 검거사건이 대표적 사례다. 미국명이 래리인 진(金)은 지난 50년대에 국안부의 전신인 중앙조사부가 미국에 파견한 이른바 ‘심저어’(深低魚: 장기간첩)로 CIA에서 장기간 근무하다 85년 유강성 망명사건을 계기로 미 연방수사국(FBI)에 의해 간첩혐의로 체포되었다. 유강성 망명사건을 계기로 주요 보직자에 대한 문책인사가 단행된 것을 말할 것도 없고, 같은 해 9월에는 당시 47세의 가춘왕(賈春旺)이 국안부장에 전격 임명되었다. 덩샤오핑의 신임이 컸던 그는 98년 3월 공안부장으로 전보될 때까지 무려 12년 이상을 국안부장으로 재직했다.

이밖에도 97년에는 로스 알라모스 국립실험실에 근무하는 대만계 미국인 피터 리(Peter Lee)가 연구소 근무중 소형 핵탄두의 폭발실험 정보 및 대잠전(對潛戰) 관련 비밀자료를 2회에 걸쳐 중국에 전달한 혐의로 체포되어 유죄를 선고 받았다. 또 99년 초에는 역시 대만계 미국인으로 같은 실험실에 근무한 이문화(李文和, Wen Ho Lee)가 연구원 재직중 핵탄두 설계, 미사일 및 기타 군사기밀정보를 다량 유출한 혐의로 체포되어 중국의 대미 기술 획득 공작의 대표적인 사례로 집중포화를 받았다. 그러나 이 사건은 중국의 첩보활동(혐의)과 첩보결과(중국 핵무기 현대화)의 연계를 입증하지 못한 채 현재 증거 불충분으로 종결단계에 있다.

對 대만 공작은 총체적 국가공작

중국 정보당국의 첨단기술 획득 활동에 비해 대(對) 대만 공작은 중국통일의 문제로서 중국의 정보활동 중 가장 역사가 깊고 포괄적이며 철저한 업무분야다. 또 사안의 중요성으로 인해 당·정·군 지도부에서 민간 직능대표단을 동원하며, 적어도 정보수집 차원에서는 모든 영역을 망라하는 총체적 국가공작이다. 대 대만 공작의 최고지도기관은 ‘중앙대대공작영도소조’(中央對臺工作領導小組)로서 조장(江澤民), 부조장(錢其琛), 비서장(통전부장 王兆國) 외 4명의 위원(해협회<海協會> 회장 王道涵, 군 부총참모장 熊光楷, 국안부장 許永躍, 중앙대대판공실<中央對臺辦公室> 주임 겸 국무원 대대판공실 주임 陳雲林)으로 구성되어 있다.

‘양안(兩岸)관계’를 연구하는 대만의 주요 전문가들은 중국의 대 대만 공작을 ‘협상, 교류, 3통(通商·通航·通郵), 무력위협 및 선전’의 5개 분야에 대한 전면적 차원에서 파악한다. 이를테면 양안 교류분야는 87년 대만인의 대륙 방문 허용 및 91년 대만의 계엄해제 이후 급속한 증가를 이뤘다. 그러나 대만측은 중국의 정보단위가 양안교류 확대를 십분 활용해 국안부의 경우 ‘현대국제관계연구소’, 군 정보기관인 총참 2부는 ‘중국국제전략학회’의 학술교류 등을 통해 대만의 동태를 파악하는 것으로 판단한다. 또 3통의 확대는 중국 정보요원의 대만 침투를 좀더 쉽게 해주는 측면이 있는데, 예를 들어 군 총참 3부의 기업단위인‘개리공사’(凱利公司)는 대만 기업과의 정상적인 상업활동을 이용한다고 보고 있다. 대만에서는 이런 상업활동을 통한 정보공작이 중국과 대만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후 더욱 확대되었고, 2008년 올림픽 개최로 인한 중국의 국제적 위상과 경제적 활동 제고는 대만에 대한 압력을 가중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 정리:김 당 기자 / 자료 제공:국가정보연구회 > dangk@donga.com 주간동아 299 호 기사.

정보 분야

20 세기 말, 동서 냉전 체제의 붕괴이후 전세계의 정치-경제 질서의
개편과 동시에 군사력의 판도도 바뀌었으며, 이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정보 기관의 세계에도 커다란 지각 변동이 일어났다.
바로, 동구권 정보기관의 해체와 축소 개편과 정보 기관의 주임무 대상의
변화이다.
그로부터 10 년이 지난 지금, 전세계 정보 기관들은 적국의 군사, 정보 분야
에 관한 정보 수집에서 경제, 테러, 민족, 문화 등에 이르는 전 방위 정보
수집으로 목표를 선회하였다.
이는 21 세기에는 지금과 같은, 국가들만이 세계 질서의 요소가 되는 것이
아니라 MNC, NGO, IGO 등까지도 하나의 요소(factor)로써 작용하는
패러다임이 전개될 것이며, 이 때의 경쟁 요소가 경제, 문화, 사회, 인종, 환경 등의
low factor 들이 지금 중요시되는 high factor 과 거의 동격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동구권의 정보기관들이 그들 국가의 정치, 관료 조직의 불안정에 따라
힘을 잃음에 따라 최근의 각 국가별 정보기관의 순위(?)가 주로 서방 국가의
기관을 중심으로 매겨지고 있다.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이스라엘 과 중국이 세계 정보 기관들 중에서
일류에 속한다(중국의 경우에는 SIGENT, IMINT 능력은 조금 떨어지지만
화교들이 지닌 역량의 이용, 그들 자체의 정보인력 운용의 노하우가
그러한 핸디캡을 메우고 있다. 중국의 정보 수집능력은 우리가 아는 이상으로
미국도 경계할 정도라고 한다)

정보가 힘이라는 말은 진부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틀리지 않은 말이다.
앞으로 세계의 힘의 흐름은 신자유주의에 따른 변화로 말미암아 자본의
집중뿐만이 아니라 정보의 집중까지 일어날 전망이다.
21 세기에는 자본의 투입-정보 획득-이윤 창출-자본의 투입으로 이어지는
순환에 따라 정보 능력의 양극화가 심화될 전망이다.
이러한 추세에서 세계의 정보 기관들을 모두 짚어보는 것은 그 정보의 부족으로
인한 내용의 부실함과 비효율적인 것으로 판단되어 미, 영, 프, 일, 중등의
주요국가 들의 기관만을 논하고자 한다.
(러시아의 경우에는 근 10 여 년간 지속된 사회적 불안정과 FSB, GRU, MVD 등이
관료화, 비대화 한 문제로 인하여 과거와 같은 능력을 보전하고 있지 못하며,
이들 기관들은 주로 HUMINT 쪽에서 강점을 지니고 있어, 앞으로 그 중요성이
더욱 부각될 SIGENT, ELINT, IMINT 등의 분야는 다른 국가들이 앞선다고
여겨졌기에 러시아는 여기서 제외하였다.)

A. 미국

미국의 정보 기관은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에 모두 있지만,
미국 정보 기관들이 실제로는 행정부 위주의 운영 방식이기에 행정부의 기관들을
위주로 논하게 되었다. 행정부 중 가장 막강한 정보 수집 능력을 지닌 기구들로는
국방성, 국무성, 중앙 정보국, 법무성으로 판단된다.
그 중에서도 중앙 정보국의 경우에는 미 정보능력이 결집되는 기구로
말이 필요 없을 정도의 정보 능력을 지니고 있다.
중앙 정보국장은 미 정보 협의체의 의장이며, 중앙 정보 지도국장을 겸임한다.
그리고, DIA, NRO, NIMA, DARO, NSA, 각 군 정보국, 국무성의 INR,
법무성의 FBI, DEA, ATF 등의 기관들의 정보를 취합-분석하여
안보 특별 보좌관과 대통령에게 보고하여 정책 결정에 도움을 주며,
국가 안보 회의에 참석하여 국가 중대사 결정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미국의 주요 기관들은 다음과 같다.

* Central Intelligence Agency
2 차 대전중의 OSS 의 맥을 이어받은 CIA 는 1947 년 국가 안전 보장법의
제창으로 창설되었다.
본부는 버지니아주 랭글리에 있으며 약 20,000 명의 직원이 있다.
CIA 의 내부 조직은 국장, 부국장 아래 운영 부장이 산하의 각 처들을 지휘한다.
처는 정보처, 공작처, 과학 기술처, 행정처로 나뉘어 있다.(차장보가 지휘)

정보처는 각 지역별 분석실로 나뉘어 있으며 정치, 경제, 지리, 전략 문제를
연구하는 기능 분석실로 국제 문제 연구실, 영상 분석실, 과학 및 무기 연구실,
첩보 자료실과 함께 지역별 분석실이 있다.
기능 분석실중 국제 문제 연구실은 마약, 테러, 무기 거래, 정치 불안, 경제, 지리
및 기타 국제 문제에 대한 분석서를 생산한다.
영상 분석실은 국립 사진 해석 센터에서 분리되어 1961 년에 창설된 것으로
이 곳의 분석관은 위성 및 항공 사진을 분석, 첩보를 추출하고 해외의 동향을
파악, 분석서를 생산한다.
과학 및 무기 연구실은 과학 정보실과 무기 연구실을 종합-설립하였다.
이 곳은 각종 신무기와 무기 체계를 연구-분석하는 곳이다.
리더쉽 분석실과 첩보 자료실은 중앙 자료소를 1986 년에 분리, 설립한 곳이다.

공작처는 비밀 첩보 수집과 CA(covered activity)를 수행하는 부서이다.
공작처 구성은 각 지역별 담당과와 외국 정보과, 기획-평가과, 방첩과, D 과,
비밀 활동과로 되어 있으며 각 과는 다음과 같다.
외국 정보과는 첩보의 출처와 정보의 확인 및 신빙성의 확인을 맡고 있는 곳으로
비밀 수집 요구 사항을 심사하고, 지역 분과의 프로젝트, 예산 및 비밀 전신 상태를
검토한다.
기획 평가과는 공작처의 총무부 역할을 맡는 곳으로 공무 집행과 예산 업무를
맡고 있으며, 타부서가 원하지 않는 영역에 대해서 본가와 같은 역할을 한다.
방첩과는 이름 그대로 모든 외국정보-보안 기관에 관한 첩보를 수집-분석하고
적대 기구에의 침투, 변절자에 대한 데마고그, 적 침투 예방등의 임무를 수행한다.
D 과는 타 정부 기관의 협조를 받아 비밀 도청 장치와 통신 정보 활동을
맡고 있다.
비밀 활동과는 지역과와의 협조 하에 비밀 공작 계획을 발전시키고 그 계획의
수행가능성을 평가한다. 이 비밀 활동에는 선전, 선무, 사보타지, 납치, 암살,
전복 공작등을 포함하며, 이들의 직접 행동대로는 SAS(special activity service)가
있다(이들은 주로 미 특수전 부대 요원들이나 전직 특수부대원 출신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육상과, 해상과, 항공과, 지원과로 나뉘어져 있다. 최근에는
산업 스파이 조직인 NOCS 를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과학 기술처는 1962 년에 창설되어 현재 8,000 명 이상의 인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과학 기술처는 개발 공작과, 신호 정보 공작과, 연구 개발과,
기술 지원과 및 해외 방송 청취과로 구성되어 있다.
개발 공학과는 kh-11 영상 위성과 같은 중요 기술을 이용한 첩보 수집 시스템
개발에 관여하고 있다.(이에는 시스템의 총체적인 기술에 대한 지원을 한다)
여기서 개발에 관여하는 시스템으로는 레이저 통신, 디지탈 영상처리,
동시자료 수집과 처리, 전자 공학 등이 있다.
신호 정보 공작과는 최대의 능률을 가지고 수집과 분석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정교한 장비의 개발, 운용 및 유지한다.
(이 과는 NSA 의 협조를 받아 미국내 여러곳의 비밀 청취소를 운영하고 있다.)
연구 개발과는 통신, 센서, 반도체, 인공 지능, 영상 해석, DB 관리, 고속 전산화
분야의 연구를 해왔다.
기술 지원과는 예전에는 공작처의 기술 지원과 였다.
이들에 의해 지원되는 기술은 비밀 서법, 도청장치, 비밀 카메라, 암호조립과
해역장치, 비디오 및 영상 기법 등이 있다.
해외 방송 청취과는 해외방송을 청취, 기록, 번역, 분석 및 보고서를 작성하여
정부의 타 기관에 보내주는 역할을 한다.

행정처는 9 개 실, 과로 구성되어 다양한 행정 업무를 수행한다.
이에는 통신실, 보안과, 보급과, 경리실, 의무실, 인사과, 교육과, 컴퓨터실,
정보 지원과가 있다.

* National Security Agency

미 국가 안보국은 처음에는 그 존재에 대해 부정을 해왔으나, 두 사람의 변절자에
의해 그 존재가 노출되었다. 원래는 AFSA 였던 것이 1952 년 10 월
트루만 대통령에 의해 NSA 로 그 조직과 인원들이 전환되었다.
미 국가 안보국은 조직상으로는 국방성 소속으로 INSCOM 의 사령관이
겸임하며, 중장 계급의 현역 군인이 그 장을 맡는다.
현재 국가 안보국은 석사급 이상의 인원들로 주로 구성되어 있으며,
20,000 명 이상의 직원이 포트 미드의 사령부에서 활동중이다.
그 조직은 국장아래 국장 참모, 감찰관, 부국장, 자문, 법무관이 있으며,
부국장의 지휘아래 계획-자원실, 기획-정책실, 신호정보 작전실, 연구 공학실,
첩보 보안실, 시설/병참실, 행정실, 전기통신/컴퓨터실이 있다.
이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분과들이 신호정보 작전실, 첩보 보안실, 연구 공학실
이라고 알려져 있다.
신호 정보 작전실은 집행 참모부와 우주 공간및 미사일 감청을 포함하여
지리적으로 상이한 지역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처리하는 책임을 맡고있는
3 개 분과로 구성되어 있다(A분과는 동구권, B 분과는 아시아, G 분과는
3 세계등의 여타 국가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다.)
첩보 보안실은 통신 과 암호, 신호들에 대한 첩보 보안을 책임지고 있다.
연구 공학실은 도청 공작, 암호 해독 및 미국의 암호를 안전하게 보존하는데
필요한 기술과 용구를 개발할 책임을 맡고 있다.

NSA 가 최근에 다시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은 바로 에셜런으로 불리는
범세계적인 도-감청망 때문으로 이 감청망은 앵글로 색슨 국가들(구 영연방 국가와
미국)이 1 급 국가, 친미적인 국가가 2 급 국가로 참여하여 세계의 모든 통신을
감청하였다는 것으로 특히, 우방이던 나토 국가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NSA 는 그 직원들로 주로 수학자와 언어 전문가들을 채용하고 있으며
국가 기관들 중에서 가장 고 학력자가 많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연간 예산은 약 300 억불로 추정되기도 하였다.

* National Reconnaissance Office

국가 정찰처는 국가전략에 필요한 모든 정찰 임무를 수행한다.
특히, 위성 첩보와 전략 정찰기에 의한 정보 수집을 그 임무로 하고 있다.
이들에 대해서는 정보가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최초로 노출된 것도
1973 년 상원의 위원회 보고서의 실수 때문이었다.
이들은 미국의 모든 정찰 위성과 감시 위성을 통괄-관리하는 임무와
전략 정찰기의 운용에 관여하고 있다.

* Defence Intelligence Agency

국방 정보국은 과거에 그 역할을 하던 J-2(합참 정보참모)를 대신하여 생긴
부처이다. 국방 정보국장은 합참 의장을 통해서만 국방 장관에게 보고한다.
국방 정보국은 군 정보국들간의 의견을 조율하고 정보 생산에 대한
모든 견해를 조정하며, 국방 무관 시스템을 관리하고, 수요 정보공급을
충족할 의무를 띄고 있다.
그 조직은 국장, 부국장 아래에 운영 부장이 지휘하는 공작/기획/훈련부와
해외 정보부가 있으며, 그 아래에 각각 수집 관리처, 국방 정보 대학,
기획-정책처, 훈련처, 무관-공작처 와 판단처, 과학-기술정보처, 연구처,
영상 개발처등이 있고 운영 부장 직속으로 대외 관계부, 지원-시스템부,
합참 지원부가 있다.
국방 정보국은 그 자체에서 공작을 하기보다는, 주로 각 군에 있는 정보국들과
육군 보안 사령부의 공작과 작전등을 총괄 관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현재 DIA 는 직원 6,000 여명과 4 억 5 천만 불의 예산을 가지고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 군 정보기구

미국은 각 군별로 다양한 정보 수집-공작 기구를 지니고 있다.

육군의 경우에는 참모 차장 예하에 정보 공동체를 운영하고 있으며,
육군 정보국 외에도 보안 사령부가 있고, 별도로 정보 공작 분견대를
운영하고 있다.
육군 정보국의 경우에는 국방성에 위치하고 있으며, 육군의 대정보 생산과
3 개의 주요 정보생산 센터 활동을 전반 관리하는 책임을 지고 있다.
각국의 동향을 파악하는 곳은 바로 정보 및 위협 분석 센터가 있다.
(이 곳에서 각 지역과 국가별정보-첩보를 수집하는 임무를 맡는다.)
이 곳보다 덜 알려져 있으면서도 매우 중요한 임무를 맡는 곳이
바로 INSCOM(보안 사령부)이다.
버지니아 주 포트 벨보아에 위치한 정보 지원 행동대(ISA)도 이 곳 소속이다.
INSCOM 은 NSA 와 함께 에셜런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고 의심된다.
INSCOM 의 부대중에서 우리와 가장 연관이 깊은 부대로는
501 정보 여단과 그 예하의 4 개 대대가 있으며, 이들은 우리나라의 극비
정보 부대들과도 연관을 가지고 연합으로 작전을 수행한다.
미군의 정보부대들의 더러운 손의 역할을 하는 곳이 바로 ISA 로써,
BSI, SEASPRAY 와 함께 가장 베일에 샇인 부대이다.
인원은 대략 200 여명으로 추정되며, 주로 민간인으로 위장하여 활동을 한다.

해군의 경우에는 그 유명한 ONI                  가 있다.
미 해군은 그 작전 권역이 전세계인 만큼 그 정보 활동의 범위도 일반국가와는
다른 범위를 지닌다. ONI                  는 각 정보 부대들이 수집하고 공작하는 것을
감독하는 일종의 감독기구이다. 해군 정보국장 예하에는 현용정보부장,
해외연락부장, 기획 및 정책부장, 특별계획부장, 대정보부장, 선전부장,
과학기술부장, 조정부장, 분석부장, 합동국가정보개발부장, 공작지원부장
등이 있으며 이들은 광범위한 정보 영역의 임무를 수행한다.
정보국장 예하에는 해군정보 사령관과 해군 보안단 사령관을 차장으로
두고 있다. 해군 정보 사령부 예하에 주목할 만한 부대가 있는데,
바로 168 TF 라고 불리는 특수 임무 부대로 해군의 실질적인 공작 부대이다.
해군 보안단 사령부 예하에는 해군 보안단(NSGC)이 있는데, 현재
한국의 평택에도 그 파견대가 존재하고 있다. 이들은 주로 신호 정보와
통신 보안에 관여한다.

공군의 경우에는 정보 참모실의 조정-지휘하에 공군 정보국, 공군 전자
보안 사령부, 공군 기술 응용센터, 특수 수사대 등이 활동한다.
이 중에서 주목할 만한 것이 공군 정보국과 특수 수사대이다.
공군 정보국의 경우에는 직원 약 2,200 명을 가지고 있는데, 이들 중에서
실제의 인간 정보임무를 수행하는 것은 포트 벨보아의 특별활동 관리센터이다.
이 곳에는 인간 정보를 주로 수행하는 일명 "괴짜 부대"리고 불리던
1127 부대가 있는데, 이들은 특수 정보 임무를 수행하는 전문가 집단이다.

이러한 각 군의 정보 기관이외에도 각 통합군 별로 정부 참모 또는 기구를
두고 있으며, 이 시스템은 각각 독립된 것처럼 활동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상의 사실들로 미루어 미군은 각 정보 기관들을 특정 지역에 통합 관리하고
있으며, 그 위치는 포트 벨보아, 포트 미드등에 군 정보대가 밀집해 있는 것으로
보이며, 주로 버지니아 주와 메릴 랜드주에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미군은 이들 외에도 정보 부대들을 파견시켜 우방과 적국을 가리지 않고
정보 수집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며, 이들의 존재가 이미 깊숙이 들어온
우리 나라 의 입장에서는 그리 쉽게 생각할 것은 아니다.
(특히, 최근에 들어서는 군사 정보 등에 대한 것보다도 경제-정치적인
정보의 수집과 공작에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 각 성 정보기구

중앙 정보국의 정보 능력과도 맞먹는다고 평가되는 국무성 정보 조사국은
주로 국가 정보 판단과 특별 국가 정보 판단과 같은 공동 정보생산에
관여하는 것 이외에도 주요 공개 소스와 외교 루트를 통한 정보 수집을 담당한다.
이들 중에서도 정보 연락실은 타 정보기관과의 연계에 대한 일을 맡으며,
최근에 들어서는 세계 문제-테러 분석실과 경제 분석실이 그 비중이 커지고 있다.

그 다음으로 많은 준 사법기구를 지닌 법무성의 기관들 중에서도
최근에 그 문제가 심각해져 가는 마약문제와 자금 세탁 문제를 담당하는
DEA 가 그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과거와는 달리 마약 문제는 이미 국가의 체제를 위협하는 경우도 생기며
또한 조직 범죄와 인신 매매, 자금 세탁 등과도 관련이 있기에
CIA, NSA, NRO 등과의 연계 활동을 펴고 국경에 대한 활동뿐만이 아니라
전세계의 마약 조직의 활동 지역을 상대로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다.
(DEA 가 최근 들어 활발하게 움직이는 지역으로는 러시아, 중동, 동남 아시아,
중남미 등이라고 하며 앞으로는 FBI 와 함께 그 활동 범위를 넓혀갈 것이다)

wneswkcic24

유럽연합이 명실상부하게 미래 지구 행성을 좋은 초석을 다져주시기를 바랍니다



참으로 소생은 대한민국 국민이면서 아울려 전세계 국가들을 살펴봄에 유럽연합의 달성하신것은 오래동안 유럽 국가들이 꿈꾸어왔든것이 역사적 대업을 이루는데 첫단추를 끼우시게된것은 유럽 국가들의 축복이고 동시에 인류에 크나큰 축복인것입니다



그동안 수천년간 서로간의 피비린내의 역사의 시간과 공간을 아우르고 이제서야 서로간의 상생과 공존의 길을모색하는 지구촌의 다른 국가들에게 좋은 모범적인 사례이고 인류의 희망을 유럽연합에서 먼저 실천해주시는 모습에 참으로 신의 가호와 축복이 아니라고 할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항상 지구촌의 다른 대륙 국가들보다도 솔선수범하고 항상 먼저 깨어있는 유럽 국가들의 국가 정책들을 보면 그리고 유럽 국민들의 높은 청렴성 그리고 자발적인 도덕성 국가 경영의 건전성 부정부패 부조리 다른 대륙 국가들보다도 적은 사례들을 보면



참으로 유럽연합 국가들이 21세기를 맞이하는 벽두부터 앞으로 유럽연합이 이 지구촌에 담당해야 할 사명과 책무가 다른 어느 국가보다도 막중하며



게속해서 급변해져갈 지구촌의 운명이라든가 또 국제 정세의 질서의 변화무쌍하게 급변해가는 시대를 맞이하는 가운데에 참으로 유럽연합의 역활에 세계인들이 지켜보고 있기에



유럽연합의 첫단추에 배부를수는 없지만 대한민국 속담에 시작이 반이라고 하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미 절반을 한것으로 보며 앞으로 부족한 소생이 유럽 연합이 추구 해 가고자하는 방향에 미력하나마나 인터넷으로 어드바이스를 해 드려도 괜찮은지요



이 지구 행성 다른 대륙국가들도 유럽 연합처럼 본을받아서 실천해가며는 되는데 현실은 그러하지못한점 그러나 이와 상관없이 유럽연합은 앞으로 무한정 전진해가는 유럽 연합이 되어갈것으로 봅니다



항상 세상을 솔선수범 리더 해가는 자세라면 언제든지 길은 열러있습니다 그리고 인도 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로마교황청을 비롯하여 유럽연합이 명실상부하게 앞으로미래 인류에 좋은 표상이 이루어지기를 진심으로 기도드립니다



아직도 이 지구에서는 사악한 분류자들이 많음도 소생은 익히 알고 있기에 사악한 국가나 민족들은 반드시 심판을 받게될것입니다 절대적인 신은 절대로 그러한 국가나민족을 앞으로 절대로 도와주지않으며 보호 해 주지않을것입니다



유럽연합과 중동연합 아시아연합 아프리카 연합 이 형성되고 이 대륙 연합이 도 하나의 거대한 연합체로 형성되고 그리고 공동연합 대륙연합군이 창설되어서 이 인류가 미래를 위해서 진일보한 걸음이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소생은 이미 모든 국가들의 앞으로 모든 변수의 상황 분석이 끝나기에 과거의 역사 그리고 현재의 모습 미래의 행동 다 마무리가 되었기에 그리고 유럽연합의 앞으로 과연 얼마나 장애물을 ?고 일어설수가 있는지 이 역시 지켜보며 최선을 다한다면 도와드릴것입니다



유럽연합이 대륙연합 구성에 주도적으로 한다면 물론 미국의 패권주의 세계화에는 실수투성이고 역사가 없다라고해야하는지 그만큼 깊이가 없는 국가라서 꼭 어린아이 장난꾸러기 실수투성이 국가인 미국을 보면 그리고 미국은 아직도 공존보다는 상생보다는 상대방을 파괴하고 그로인한 자국의 이익을 챙기려고하는 아둔한 세계 전략을 보면 그만큼 그들에게도 설명해주었는데



그렇다고 미국만 처다보고 기다릴수는 없기에 이렇게 유럽 연합에게 방향을 돌리고있는것은 기대를 걸고 있다라는것입니다



대륙연합을 구성하면 미국의 그동안 세계 패권화에 그래도 공헌한점도 있기에 미국 국가의 재정 부담을 줄이는데 대륙연합 구성이 큰 일조를 하게되기에 미국으로서도 좋은일이고 대륙연합의 구성의 세계가 하나로 되어감에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봅니다

대륙연합을 하게되면 얼마나 많은 이익이 인류에게 돌아가는데 지금 각 국가들이 안고있는 국가와 국가간의 문제나 난제들을 일거에 해소가되고 그로인한 부대비용 감소, 반복비용 축소 ,얻어가는 이익을 나열하면 참으로 많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남북한에게도 많은 이익을 가져다주는것이고 그동안 동북아의 불안정된 정세를 이것을 통해서 다 해소되기에 남북한이 안정적인 정세를 유지해 갈수가 있다



그리고 동시에 중국,미국,일본 이들 국가가 불안정된 정세 태도와 군사력 증강등 상황시에도 다 카바가되기에 이미 이에 대한 분석은 끝났다 그래서 대한민국이나 남북한은 대륙연합 구축에 대한 강한 자세를 가져야 할것이다 물론 미국이나 일본은 이를 그리고 일본도 다음번에 미국을 공격한다면 미국본토를 접수할수 있을정도의 군사력 증강이되면 움직여야 하고 동북아 군사 전략분석은 다 마무리가 되엇으니



얼마든지 삼국의 동향뿐만아니라 남북한 수시로 유동적인 상황 체크 분석도 마무리가 되었으니 미국이 생각하는 그이상 함정을 파놓고 기다리고있으니 일망타진해버릴것이다 이번에는 5개 국가도 모조리 일망타진도 할수가 있다

이미 이번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선거의 미 국무부의 공작활동이 새삼스러운일은 아니지만 이번에도위의 자료들을 보아도 대한민국의 모든 동향은 미국 국무부손에 좌지우지 되고있음을 대한민국 국가 자주적인 노선은 존재하고 있지않음을 대한민국 국민들은 알고있고 동시에 전세게 국가들이 알고 있는 사실로 혹시나 그동안 저들은 앞으로 남북한 국지전을 염두에 두고 이번 정권을 탄생시킨것으로 본다

그럴만한 정황들은 여러곳에서 감지되어있고 그래서 말인데 미국이 대한민국과 일본과 더불어서 앞전 목록코너에서 남북한 국지전에서 소생이 세계 전쟁이 없다라고 언급한것을 저들은 소생의 글을 다 지켜보고 있기에 워낙 저들의 눈과 귀가 많아서 소생이 역부족인것도 잘 알고 있고 동시에 소생의 글과 여론을 저들도 체크하고 있기에 저들이 세계 전쟁을 하지말라는법은 없기에

하나덧붙여서 설명해 주면 세계 전쟁이 나면 이번에는 우주전도 같이 첫선을 보이게될것이다 우주레이져 우주 공간의 무기를 활용하여 지상전과 병행해서 전쟁을 치루게 될것이다 인간전과 무인전을 병행 해서 특히 중요안 타격 시설에는 기필코 무인전을 기필코 사용할것으로 본다



세게 전쟁을 치룰시에는 어덯게 전쟁의 병법을 전략전술을 사용해야하는지 그리고 준비해야하는지 잘 알고있다


이점을 인지해주고자 글을 첨부한것이다 여러 상황을 보면 중국과 러시아가 이것이 진정으로 미국과 일본이 원하는바이기에 단지 북한 정권 붕괴는 미국과일본의 기준으로보면 먹이감으로 이를 명분으로 중국과 러시아를 향해 나갈수도 있음을 배제할수는 없다

설사 북한 정권이 미국과 일본 대한민국 부패한 세력들의 손에 의해서 붕괴된다고치드라도 중국 경제권 영향에 받지않을수가 없다

그래서 북한 입장에서 미국이 북한의 핵을 포기하라고하는 말에 설득력이 없다 그리고 핵을 포기할 이유가 없다 미국이 설사 군사적 행동을 취하면 미국을 잡아먹는 먹이감으로 이번기회에 활용할것이다

미국만 세계 패권화하라고 이 지구가 있는것도 아니고 이 남북한 역사가 미국의 시다발이하라고 민족이 태어난것도 아니기에 특히 대한민국의 모든 세력들은 그들도 오판을 하면 멸문지하를 당하게될것이다

이미 미국 국무부와 대한민국을 도탄에 만들어온 세력들 전쟁으로 그들이 얻고자하는 연속성과 그동안 대한민국 국가를 도탄에 만들고 자신들의 부귀영화를 누려온 책임을 모면하기위해서 미국 국무부의 개노예 시다발이 노릇에 층실히 하는것도 잘 알고 있기에 말이다

그래서 더더욱이 그들을 모조리 살려두지않을것이다 전쟁은 전쟁으로 승부를 걸고 이 기회에 모두 다 도축 해 버려야 하기에 말이다

이번만큼은 미국무부와 대한민국은 전체가 미국무부 손아귀이기에 같은 무리로 보고 북한과 중국 일본 러시아 정세를 다 살피겟다

그래서 중국과 러시아는 긴장을 풀어서는 아니된다 최소한 7년동안은 모든 사태에 대한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 가야할것이다

이번 기회에 이러한 사태가 발생시에는 전적으로 미국과 일본 대한민국이 책임을 져야 할것이고 미국 일본 국가에게 항복문서를 반드시 받아낼것이다

결자해지차원에서 평정을해야 미국의 개망니짓을 멈추고 지구가 평온해지지 일본의 잠재적인 골치덩어리도 해소해버리고 국가와 민족의 불행을 재촉하게만든 대한민국 저들 세력들도 모조리 없애버리고 살려둘수가 없기에 말이다

자신의 국가와 민족을 이익을 팔아먹는 매국노짓을하는 대한민국 현존의 세력들을 전쟁의 승리국가에서 이들을 도축 해 버린다 절대로 살려둘 이유가 없기에 말이다

어차피 대한민국은 내놓은 자식이고 북한도 이점을 잘 알고 있을것이다 미국 일본 그리고 친미 국가들의 연합구성시에 세계 전쟁 정도는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다



너희들의 사악한 감정을 이용해서 잡아먹을것이다 저들도 스스로 거부할수없는 악함을 이용해서 이번에는 반드시 평정한다





그런면에서 미국은 유럽연합의 성숙된 국가나 역사의 경륜을 미국은 배워야 할것이다 어린애같은 세계패권화로는 미국의 앞날을 앞당길뿐이기에 말입니다



아무조록 대한민구에 유럽연합 지부가 생긴것을 소생은 아주 기쁘게 생각합니다 중동 연합,아프리카 연합도 대한민국에 지부가 생겼으면 합니다

세계는 지금 친미그룹과 반미 그룹으로 나누어지고 여기에 언제든지 유동적인 자세를 취하는 국가 그룹도 있기에 또 하나는제3의 국가가 존재하고 있기에 세계 전쟁시에 두 구도가 세계전쟁을 치루드라도 제3의 국가가 마지막에 승리를 가지고 갈수도 있다

우선 남북한을 괴롭혀온 국가는 역사적으로 중국 그리고 일본 지금은 미국이지만 미국을 끝으로 남북한에 더 이상 강대국의 시다발이 노릇은 대한민국과 미국의 동맹을 끝으로 마지막이 될것이다

그만한 특단의 조치는 이미 강구되어있기에 미국이 아무리 세계 패권화한들 그리고 세계 전쟁을 획책한들 절대로 미국은 이기지못한다 하늘의 도움도 이제는 없기에

그러면 중국 그리고 일본 다 세계화 전략에 실패한 국가들이다 물론 지금 중국은 중국 왕조이래 지금과 앞으로 가장 깨어난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래서 이것을 과거 중국 역사의 오만으로 결부시키다가는 중국의 영광도 한순간에 사라지고 중국 국가도 멸망하게될것이다 그만큼 중국의 현재의 영광이 상대적으로 앞으로 중국이 이 동북아시아에 처세해야하는 방향은 중국 국가보다는 대륙연합국가에 우선점을 두고 중국은 세계 정세에 맞추어 움직여 가야할것이다

그래야 중국은 그 안전성을 보장받을수가 있다 그것이 대륙 국가들속에서 차분히 상생해가고 공존해가고 모두가 이익을 얻어갈수가 있고 지금 중국의 인적자원을 소생이 지적한대로 대륙연합 구축에 앞장서야한다 그것이 중국의 앞날을 보장받는것이고 중국의 13억명의 인구를 최대한 활용하라

즉 미국 일본의 대항에 대한 사전에 차단할수있는 일을 중국이 해야할것이다 신은 중국의 13억명의 축복의 선물을 중국이 활용하지못하면 중국이 가장 타격이 크기에 말이다 중국이 세계화는 바로 여기부터 첫걸음으로 가는것이다

사소한 남북영토가지고 과거의 역사처럼 그리고 지금의 미국처럼 소탐대실하다가 미국이 낭패를 아프카니스탄에 인질 대한민국23명을 모두 그 당시에 사살했어야하고 동시에 미국 국가에게 치명타를 가했어야한것을 그것을 선하게 보여주었드니 이번 대한민국 대선 결과에 미국 국무부의 공작활동에 박정희 대통령 암살과 이휘소박사의 암살 그리고 여전히 미국무부의 대한민국 파괴공작활동 그리고 여기에 놀아나는 박정희 대통령암살에 관여한 지금 전현직 대통령 미국앞에 꼼작못하는 대통령이 있으나마나하는 허수아비 권력추종자들

이러한것이 비록 대한민국 국가에 처한 자원과 경제적인이유로 그러하지만 그럴수록 이 대한민국은 바른길로 가야 하는것이다 그러나 그러하지못하고 지금 저들은 아주 큰죄를 지우고말았다

중국은 진정으로 동북아의 질서의 주인 노릇을 하고싶으면 미국처럼하지도 말고 과거의 중국처럼도 하지말라

우선 러시아와 연합 체제를 유지해야 중국이나 러시아가 무사할수가 있다 그러한차원에서 미국과 일본 그리고 대한민국을 이들의 한그룹으로 보고 접근 해 가야 할것이다

북한은 좀더 지켜보면 그 윤곽이 드러나기에 그때에 포함하여도 늦지않다

그리고 러시아는 러시아 국가의 최대의 난공불락인 해상교두보의 확보인데 이것을 미국이나 일본 중국이 매우 경계 하고잇기에 이부분은 미국이나 일본의 입장을 무시하고 지금이라도 가르처줄수가 있으나 중국의 국가 방향이 흐리멍텅하게 미국과 일본의 같이 보조를 맞추어가면 그때에 러시아에게 가르처줄것이다

러시아가 무엇으로 러시아 국가를 사전에 감지체크해가야하는지 잘 알고 있기에 그것을 본다

러시아도 지리학적으로 북부의 광활한 지역을 제대로 활용하지못하면 아무리 러시아의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있드라도 패망한 경험처럼 그렇게될것이다

영국이 달리 대영제국이 되었나 조그만한 해양 영토국가에 다 국가 내부의 이간질 전략전술로 국가 내부를 혼란조성하여 그리고나서 정치권력을 장악한 스타일로 거대한 중국도 다른국가도 점령할수가 있는것을 그만큼 머리를 사용해서 대영제국이 된것이다 그다음이 군사적으로 대응해가는것을

러시아는 그러한점이 부족하다 그래서 러시아가 다시 일본한테 패망하지말라는법은 없기에 중국도 마찬가지이고 대한민국이야 나를 먹으라고 안달난 국가이고 정치 세력들이니 내놓은 자식이고

그래서 러시아는 광활한 영토를 신이 준 축복을 활용하는 방안을 찿으라는것이다 그것이 러시아를 지켜줄것이다

그럼 일본은 일본은 핵무기를 보유한다 이미 준핵보유국이지만 일본은 항상 모든것을 준비해놓고 그 시기만를 기다리고있는 국가이기에 특히나 틈새를 잘 포착하려고 그것을 위해 수십년을 준비하고 기다려오는 국가가 일본이다

일본은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에 아직도 미련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중국을 설득하려고 동분서주하는데 일본이 유엔 상임이사국으로 진출한다라는것은 이는 국제적 성격과 의미가 매우크 다 즉 한 국가의 유엔이사국이든 무엇을 하든 상관없지만 일본이 상임이사국으로 진출하는것은 대륙국가들에게는 세계 전쟁을 위한 사전 명분의 발판을 만들어주는것과 같다

지난번에 미국이 F_35랩터기를 미국이 일본에게 팔았으면 미국은 아주 큰 실수를 하도록 내버려두어야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미국의 태도를 그리고 대한민국의 태도를 보면 오히려 일본에게도 큰힘이 실리도록 해 주어야 했거늘

일본이 미국과 대한민국 이들 세력들을 잡는다면 얼마든지 일본을 도와드릴수가 잇다 미국이 절대로 모든일에는 먼저나셔지않는다 나셔드라도 미국에게 유리한 상황일 경우에만 나셔지 그러하지않은 동아시아 지형에서는 일본을 앞세우기에 일본이 이번만큼은 미국 본토을 아주 점령가능한 맘이 있다면 얼마든지 대륙 연합은 도와줄것이다 즉 미국의 그릇된 세력들을 처단하고 일본의 국가 영토가 자연재해로 사라지는날을 미리 준비하기 위해서라도 다른 국가 영토가 필요로 하기에 그 영토가 바로 지금 미국 국가 영토인것이다

그것이 향후 일본 국가에게나 동아시아 국가에게나 좋은 현상이기에 그러하지못하면 일본이 지금 핵무기 보유신고를 언젠가는 하는것은 기정사실화이고 단지 지금 미국이나 국제 사회 여론을 의식해서 안하고있을뿐이지 그것이 급한것은 아니기에

일본 역시 모든것이 완료되면 선제공격을 할것으로 본다 물론 일본의 단독이 아니기에 그배후에 미국과 영국,프랑스가 있기에 독일은 현명한 게르만 민족이기에 바보같은짓은 안하기에 지금은 미국의 통제하에 있지만

그래서 중국이나 러시아를 보고 이점을 보고 말해주는것이다

그러면 북한은 이것은 대한민국의 썩어무드러진 세력들을 바로잡지않고서는 언급해줄수가 없다
대한민국 스스로가 살아남으려는 노력을 보여주지않는데 뭐하려 그동안 살길을 그렇게 가르처주었는데도 따라오지않았기;에 죽도록 내버려둘것이다

이미 버린 자식이다 5천만명 다 죽어도 소용없다 이들의 희생으로 인류가 평정된다면 그만큼 더 값진일이없기에 애시당초부터 이 정도는 예상하고 대한민국을 죽어야 대한민국을 살린다는 각오로 왔기에

중동 이슬람 연합도 중동의 친미국가들도 이제는 균형적인 외교자세를 보여야만 하는 시기가 다가오고있다 특히 사우디 아라비아 국가는 석유라는 신의 축복인 그선물을 지구의 평화와 안정을 위하도록 주신것이지 편파적인 사우디의 외교자세로 지구촌의 불행을 재촉하면 그 사우디 국가마저도 석유와 함게 멸망하게 될것이다

유전지대를 원점으로 되돌려놓게될것이다 석유로 인하여 문명이야 발전했지만 여전히 지구는 불안정한 상태이기에 지구의 천하를 평정하기위해서는 모든것을 할수있다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것이다

석유 유전지대를 개발하지않은것만 못한 상황이 지금 지구의 상태이다 그러니 그 유전지대를 가만히 내버려둘것같은가 없애버리지

앞으로 이 지구의 다크호스가 바로 아프리카 연합이다 그래서 지금 미국과 중국 유럽연합이 아프리카에 물론 프랑스도 공을 들이고 잇지만 아프리카 연합도 유럽연합처럼 참으로 중립적인 국제적인 균형감각을 가져야만 하는 아프리카 연합이다 물론 지금 친미국가들이 원조를 해주겎지만 세상에는 공짜가 어디에 있나 공짜를 바라지말고 자립하는 아프리카 대륙이 되어야만 미래 지구촌에서 다크호스로 제대로 자신의 위치에 서있을수가 있다

그러하지못하면 아프리카 대륙은 희망이 없어질것이다

미국은 소생은 미국의 정치 역사를 보면서 대한민국에게 그리고 인류에게 기여한점과 사악한 행위를 해온점 두루살펴보면서 그래도 이들을 잘 다루어서 좋은길로 인도해주면 될것같은 생각이 들어서나 이미 이들은 정신부터 세계 패권화 축에도들어가지못하느 정신 상태를 가지고잇다라는것이다

겉으로는 화려한 세계 패권화 깃발에 허영심이 가득찬 미국이 속은 속빈강정이고 더욱이 사악한 짓을 더이상 용서해줄수가 없다 이미 미국 국무부부부터 그러한 썩어빠진 정신상태로 어느 국가를 감놓아라 파 놓아라하는 발상 대한민국의 썩어무드런진것도 잡지못하는 미국이 어느 국가를 바로잡는다고 놀고들있고 하도 기가차고 그것이 미국 국가의 한계인것을

이번 대선에 그렇게 소탐대실하지마라고 대한민국의 썩어무드러진 세력이나 미국의 썩어무더드러진 미국무부나 백악관이나 구제불능의 국가이다

미국은 한번은 정신을 차려야 할것이고 혼줄이나야 한다 대한민국이야 수천년간 당하고도 정신차리지못하는 족속들이기에 내놓은 자식이고 죽든말든 상관하지않는다 절대로 대한민국을 용서해줄수가없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세계 정세를 무자년 새해 벽두에 요점만 간략하게 키를 정하게된것이다 이제는 그 나머지는 소생이 언급해준것을 얼마나 반영하고 실천해가느냐에 향후 이것이 크나큰 보탬의 역활이 될수가 있다

소생은 언제든지 인류가 멸망하는것도 조금도 두려워하지않는다 지구촌 행성안에서 모든것을 초월할수있는 국가가 되고싶다면 얼마든지 어드바이스 해 드리이다

공존과 상생만이 모두가 사는길이고 그러하지못하면 공멸이다 그리고 이 지구를 지키고 싶으면 사악한 적들을 모두 응징할수잇는 힘이 보유되었다고 판단되면 기사회생하나 그러하지못하면 공멸이 될것이다

세계 국가들은 대한민국 같이 어리썩은 국가나 민족이 되지않기를 거듭알려드리이다 이들 대한민국 국가같은 부패한 정치 세력들처럼 이 지구상에 가장 못난 민족임을 기억해주기를 바란다

그래야 다른국가들이 타산지석으로 삼고 더나은 국가와 민족으로 거듭태어날수가 있기에 지들도 못난 민족이 이라크에 파병은 하는 처지를 보면 이라크 국민들이 비웃겠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wneswkcic님 올림

명박아! 개발로 흥한자는 개발로 망하게될것이다



대한민국 건국 60주년 이승만 정권에서 이명박 정권을 끝으로 대한민국은 미국과 일본과의 악연을 끝내고 대한민국내 이들 세력도 끝내고 새로운 나라를 열어가야 할것이다



대한민국 국토를 대재앙으로 만들려고 작정한 모양이다 안그래도 지구환경대재앙이 들이닥칠것인데 거기에 한술 더드서 지하수를 다 뽑는다고 그러면 지질 기반이 약해져서 이는 주변국가/까지 영향을 받게되는데 미국의 꼬나봉 노릇을 대놓고하네

한반도 지질의 축이 얼마나 이 지구에 지축의 버팀목을 해 주고있는것을 모르고있구만 그러면 미국이 일본이 제일 큰 타격을 받고 그리고 중국도 큰 타격을 받는다 지하수를 다파든 지구의 내핵을 끌어올리든 해보세요 미국과 중국 일본 국토를 망하게 해주면 대한민국 지하수 다 끌어올려도좋다 ㅋㅋㅋㅋ

명박이는 소생의 선몽에서 V대재앙의 계시받은 상황을 한참 모르고있는 모양이구나 대한민국 전국토의 산신령님들이 그들을 용서 해 주지않을것이다 개발로 흥한자는 개발로 망하게될것이다



삼성 중공업 대기업이 유조선 기름유출했으면 서해안 어민들에게 국민들에게 대국민사과성명은 기본으로 해야하는것않인가?



이렇게 도의적인 책임도 지지않는자와 당선자가 만나서 무엇을 해 경제를 살려달라고 있는 서민경제의 생존의 삶도 망치고 빼앗아가고 있는 주제에



더욱이 지구촌의 패러다임에 역행하는 환경파괴하는 국가 정책에 과연 그러고도 친미를 제외한 국가들이 그것도 공화당 말고는 이명박 당선자가 파괴적인 환경 정책을 구사하면 국제사회에서 이명박정부를 도와주지않을것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게서 지구촌 환경 보호에 대한 의지와 2007년 노벨 평화상수상한 엘고어 미국 부통령이 지구 온나화 자연 환경 보호에 대한 노력으로 노벨 평화상을 그리고 지금 일본이 교토의정서에 대한 환경에 대한 본격적으로 실천에 들어가고있는 움직임에 유럽연합은 말할것도없이 친환경 국가 정책을 추진하고있다



동시에 UNEP 국제 기구에서도 지구촌의 환경에 대한 우려를 누구보다도 잘알고 있는 국제 기구이기에 대한민국 국가 망신을 개발정책으로 망신시키지않기를 바란다



국제 사회에 역행하면 대한민국 모든 교역품을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치루어야 할것이다 대한민국 대기업들도 수출에 타격을 받게해서 대한민국 경제에 치명타를 가해 버릴것이다



왜 국제 사회에서 지구촌 온난화의 심각성을 국제 공조하는이유를 정작 모르나 그렇게 세계 정세에 어두워서 그러니 허구헌날 지구촌 국가들로부터 변방에 머무르게되는 대한민국 국가의 운이고 국민들의 운명이고 민족의 운명인것을 알아서들 하시요 나중에 후회하지말고

그러면 국민들은 이명박 정부를 향해서 저항하고 그리고 하야를 촉구할수도잇으니 까불지마라



즉 이말은 대한민국 경제에 수입과 수출에 타격을 대한민국 이명박 정부를 압박해서 하야를 시킬수가 있다 그 이유는 얼마든지 설명을 해주었기에 못할 이유도 전혀없다



유럽연합과 중국,러시아 중동에서 이명박정부가 친미정부에 노골적으로 처신함에 대응해갈것이다 주변4강 외교를 한들 무시해버릴것이다단지 대접해주는곳이 잇다면 부시 대통령 똘아이한테나 대접받겟지만



그러니 국제정세의 환경보호 지구촌 대세의 패러다임에 역행하지말라



하도 명박이가 하는 놀이를 보니 다른 국가들을 보호 해 주기위해서 글을 적는것이다


명박이 지야 대운하인지 나발인지 하는것으로 추진하지만 소생은 단순하게 보지않는다 그것이 미치는 파장을 향후 후손들을 위해서 다른국가나 대한민국에게 말해주는것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에 깨어나지못하고 깨닫지못한 삼라만상은 다 죽어도 상관하지않는다 그 피해를 이웃 국가들에게 주지말라는것이다





경향신문|기사입력 2008-01-02 03:03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로부체의 빙하가 녹아내리면서 거대한 호수가 만들어졌다. 지구의 지붕으로 수십만년 동안 꿋꿋하게 자리해온 히말라야 산맥의 빙하와 만년설이 인간의 탐욕에 따른 기후변화로 매년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 카트만두(네팔)/특별취재팀

자연의 복수는 이미 시작됐다. 개발과 성장 만능의 물신주의가 불러온 지구온난화의 재앙은 지구촌 곳곳에서 실제로 나타나고 있다. 세계의 지붕인 히말라야 산맥과 북극의 녹아내리는 빙하는 대재앙의 전령이다. 6대주 곳곳에 몰아닥친 가뭄과 대홍수, 폭염은 갈수록 횟수가 늘고 강도가 세지고 있다. 지금, 여기서 행동에 나서지 않으면 지구의 미래는 보장받을 수 없다는 경고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는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한반도의 기후변화는 이미 도저화되고 있다. 생태계는 극심한 변화를 겪고 있다. 따뜻한 겨울, 가을의 장마는 일상이 됐다. 사과의 재배지는 강원도로 북상했고, 명태는 이미 동해안에서 잡히지 않고 있다.

그러함에도, 우리는 성장지상주의 개발만능의 신화에 다시 사로잡혀 있다. 환경과 생태는 개발이라는 구호에 밀려나고 있다.

경향신문이 2008년 지면 제작의 우선 가치로 생태와 평화를 설정한 것도 이런 폭주에 대한 브레이크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그 브레이크를 거는 것이 얼마나 시급하고, 절박한가.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경향신문은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낸 지구촌 기후변화의 최전선을 찾았다. 기후변화의 실상을 고발하고, 우리가 해야 할 바를 모색하기 위한 기획 시리즈를 마련했다. 킬리만자로와 히말라야에서, 죽어가는 빅토리아 호수에서, 곧 사라질 운명의 남태평양 파푸아뉴기니 군도에서, 사막화되는 중국 대륙에서 인류의 재앙을 증언할 것이다.

특히 이번 기획은 한국 언론사상 처음으로 인터넷 포털 사이트(다음)와 공동으로 이뤄진다. 7일부터 매주 월요일 실리는 본지 기사와 함께 다음의 블로거 기자가 촬영한 동영상, 취재후기 등이 인터넷 경향신문(www.khan.co.kr)과 다음(www.daum.net)에 공동으로 제공될 예정이다.

〈이재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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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식민주의체제의 대선, 대미굴종과 비밀공작은 계속되나 앞으로는 끝난다



그래서 오죽하면 60년동안 어차피 미국 부시대통령도 허수아비 미국 대통령이다 이번 대한민국 당선자도 대통령으로 확정적이지는 않은 처지이고 미국 대사관을 차차아가서 화기애애하게 썸싱이야 분위기보면 다 아는 사실이고 이 남북한의 역사가 중국으로부터 615년에 여기서 일제로부터 36년 미국으로부터 60년 이것이 대한민국 국민들의 습성이다



그래도 국제 정세의 변화에 의해서 그동안 역사가 남북한이 유지해온것이다 국제 정세가 안정이되면 앞으로 이러한 습성을 가지고 정치를 하거나 살아간다면 살아남지못한다



누가 대한민국 대통령 할배를 하드라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소생은 대한민국 60년의 정치사 조선의 615년의 정치사 1000년의 정치사 4340년의 정치사 이 모든 역사를 통틀어서 살펴보았다 그래서 나온 대책이 소생이 줄곳 깨달음적인 절대적인신과 소생 육신의 가난과 고통 문제에 대한 깨달음을 ?든중에 대한민국 남북한 4340년 역사와 근대의 정치사를 결부시켜서 살펴보고 내린 결론이 대한민국 특검법과 대룩연합구도결성과 미국의 세계 패권화 위축 목록코너에서 언급한대로 이와같은 결론을 내렸다

여기서 참고적으로 대한민국 국가나 국민들 그리고 전세계 국가들에게 부연설명을 해 드리이다

sangdam sangdam http://blog.daum.net/wneswkcic Y
2007.12.28 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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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한민국 대선 결과를 통해서 특검법이 남앗지만 특검법 제처두고도 소생은 핵펀치를 한방날려보내서 속이 후현하다 ㅋㅋㅋㅋ 또 특검법 결과보고 또 오기를 부리면 그 다음 두번째 핵펀치를 날릴것이다 이것도 하늘에서 때가되면 가르처줄것이기에 어더한것을 저들을 또 무력화 할것인지 소생도 기대가 된다 그대들은 대한민국을 먹으려고 설치지만 소생은 저들의 강대국을 잡아먹을것이다

대어를 잡아먹어야 제대로 식사를 한것이지 노래미, 피래미 잡아먹어서 배가 불라지나 ㅋㅋㅋㅋㅋ

sangdam sangdam http://blog.daum.net/wneswkcic Y
2007.12.28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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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블로그 검색·평가 사이트인 테크노라티에 따르면, 이달 현재 전세계의 블로그는 1억1200만개다 국내 불로그수가 천만개이고 그중에 활동하고 있는 불로그 수는 30만개임

sangdam sangdam http://blog.daum.net/wneswkcic Y
2007.12.29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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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일본의 밀월은 그래도 일본은 손해보지않는다 물론 미국이 중간에서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 미국,중국,일본 이러한 일시적인 현상을 보여주고 있지만 이것은 러시아를 견제하기위한 미국의 전략에 맞추어서 행보한것으로 본다

그러나 그만큼 중국이 일본에 대한 자세는 미국이 중국과의 거래가 있지는 않았는지 그래도 중국은 대륙연합 안보체제로 지금의 일본이나 미국의 제의보다도 흔들리지말고 확고한 자세로 러시아와 그리고 대륙연합국가들과 같이 가아 할것이다

만약에 중국이 과거 역사처럼 아둔한 우를 범하면 중국 국가가 마지막으로 역사속으로 살아지게 될리것이다

그래서 대륙연합 구도속에서 중국의 역활이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유럽연합과 러시아가 더욱 공조의강도를 높여가는것이 그러한 맥략이다 왜냐하면 중국 국가 자체도 역사적으로 보아도 불안정한 중국 역사이엿기에

그래서 중국도 미국이나 일본의 외교전략에 말려들어가지않기를 바란다

남북한은 대한민국에 핵보유국이 아니므로 일본은 미국과 언제든지 군사강경드라이브로 선회하거나 했을경우에 대한민국은 샌드위치 안보형 구도이다

설사 북한이 핵을 페기하든 남북한은 핵 강대국으로부터 샌드위치이다 이는 다시말해서 구한말 당시의 국제 정세와 같다

그래서 북한의 핵은 페기하는 자체가 남북한이 향후 더욱이 대한민국 국가 같은 국민들의 습성으로는 국가나 민족 보존은 어렵게 될것이다

북한의 핵은 페기할수가 없다 중국은 몰라도 러시아가 도와주어야 할것이다 그것은 빗장을 열어주는것과 같기에 그리고 러시아 국가가 고민하고있는 해양 안보 구축 전략에 대한 해결책을 찿았습니다

이것은 차후에 언급하고 중국이 러시아와 긴밀한 협조를 하지않으면 중국이 더 큰 손해를 받게될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에 햇볕정책으로 3기 정권이 들어서는데 왜 김대중,노무현은 이것을 포기하고 이명박 당선자에게 힘을 실어주었는지 물론 햇볕정책 3기가 이번정권에들어서는것을 미국이 애시당초부터 알고 차단하기위해서 더욱이 노무현 정권 초기에 반미 감정에 대한 오히려 누구보다도 친미성격을 가진 노무현정권 정치적 노선 그러니 지난번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노무현 대통령을 신뢰하기가 힘든점은 이러한 맥략에서 물론 노무현대통령 사주가 그러한것을

이명박 당선자를 만들어주고 자신의 정치 세력을 확장하려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들 고이정부를 만들어놓고 막판에 판을 갈아엎어보고자하는 방향은 미국이 생각하고있는 전략 구상과 같은맥을 유지하고있는것으로 본다

그것이 북한 정권 붕괴와 대한민국 국가 사회가 이미 통제 불가한 상황이기에 이번 정권을 끝으로 헤처먹을것 다 헤처먹고 난장판을 만들고 대한민국 판을 뒤엎어면서 북한정권을 접수하려는 이것이 노무현 이명박 미국의 공동 이익의 전략의 추구라고 본다

그렇게되면 미국과 이 대한민국과 북한 모두를 접수하는 안으로 준비 해 온것이다 미국은 너무나 과욕을 부리고 있고 대한민국 60년사 정치 세력들은 책임을 회피하기위해서 이 대한민국을 그동안 어지럽혀왔고 도탄에 빠지게했고 부정부패부조리는 더욱 고착화하도록 해왔다

서민들은 갈수록 그들의 의도와 달리 힘들어져가는것을 물가인상을 보아라 무엇을 말해주는지

그러한 구도에서 나이드신 전직 대통령은 노무현 과 이명박 두 사람에게 찬밥신세나 당하지않으면 다행이고 당하드라도 그들도 할말이 없을것이다

이들 두사람의 행보에 전직 대통령 사람들은 역사의 죄인으로남을지 두고볼일이다 그러나 큰 기대하지말아라 다들 당하게되어있으니 종필아 영삼아 알겟나 그러니 자숙하고 지내라

그래서 이러한 남북한의 정세를 동아시아정세 더나아가 세게정세를 고려하지않을수가없는 상황에 직명하게 될것이다

미국의 세게 패권화 전략에 한치도 이제는 양보해줄수가 없다 그래서 이 상황을 사전에 준비대응하기위해서 대룩연합 구도가 형성되도록 촉구하게된것이다

여기서 천명을 전달하게되는것이다 중국,러시아,유럽연합 소생이 다 지켜보고있다 이미 미국은 미국 스스로 낮은자세로 나오지않으면 지금 미국 국가 270년동안 유지해 온 영광을 다 거두어갈것이다

얼마든지 가능하기에 하늘은 절대로 이러한 미국의 국가를 앞으로 천명앞에서 도와주지않겟다

부시대통령 재선에 대한민국 지금의 모든 정치 세력들이 부시재선을 반대한 세력들인데 부시 대통령은 왜 배신을 한것인지 아니면 쓸개가 없는것인지 소생앞에는 부시 대통령은 배신자다

대한민국의 이들의 사악하고 간특한 간계로 부시대통령을 어덯게 꼬셔는지는몰라도 부시 대통령의 실수하나로 미국의 국익은 치명상을 받게될것이다

소생은 대한민국의 이러한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미국 국가에게도 상생하고자했거늘 미국이 추구해오든 동북아 정세 전략에 아직도 과거로부터 엌매어서 헤어나지못하니 미국의 세계 패권화 전략은 성공하지못하고 미국은 실패하게될것이다

그로인하여 미국은 얼마든지 대룩연합 국가로부터 제제를 당할수도 잇다 로마제국이 힘이없어서 무너졌나 그것은 아니기에

거듭말하지만 지금 지구촌 행성의 국제 질서는 이미 언급한대로 갈것이고 소생도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않을수가없다

탄허스님 말슴처럼 그래서 미국이 오만을 하다가 국가가 추락한후에 남북한과 대등한 아니면 더이상 대한민국 남북한을 얕잡아볼수없는 상황의 양국의 미래 관게를 그래서 언급해드린것이다

지금의 동맹 관계수준의 언급이 아니라 이것은 동맹이 아니고 그저 식민지 형국이지 미국을 잡기 위해서 대한민국을 먹이감으로 던져주고잇는것이다

앞으로 천명을 집행시에는 소생의 기록대도 반드시 그렇게 해서 지구 천하를 평정 해 버린다

러시아에서 슈퍼폭탄을 조금만 더 성능을 개선해서 전략전술을 앞으로 미국이 계속해서 자멸의 길로가면 그렇게 세계 패권화 전략전술을 천지신명님의 도움으로 미국을 정복시켜버릴것이다 그리고 친미국가들도 복속시켜버리거나 멸망시켜버릴것이다

지구 행성을 마지막으로 평정하게될것이고 이것을 시발점으로해서 지구촌의 앞으로 어떠한 모든 전쟁이나 우주시대에서도 선점 주도권을 계속해서 이어가게될것이다

우주외계인들을 동원해서 지구를 하나로 통페합한다 그래서 지구 제국이 탄생되고 부패한 군소 국가나 민족은 사라지게되고 부패한 인간들이나 국민들은 도축시킨다

그래서 그 발판이 지금 대륙연합 구축인것이다 알겟나 미국 코쟁이들아!

이것으로 지구 행성에 대한 프로그램을 총정리하게되는것이다



여기에 덧붙어서 다행히 이 세상에 절대적인 천지신명님을 믿는 사람은 자네혼자라고 메세지를 주신 스소리를 들으면서 잠에서일어나 소름이 끼쳤지만 너무나 놀라서 65억명중에 그래도 소생믿기에 그 근거는 수많은 선몽과 계시가 잇었기에 대한민국 99.99999%가 과거역사처럼 살아간 사람들처럼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현존의 대한민국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드라도 소생혼자서 이것을 개선하고자 더욱이 하늘의 천명을 하달받고나서 더더욱이 소생도 그러한 강대국의 개입은 예상하고 있었고



이번대선의 결과를 통해서 소생도 특단의 조치를 하게된것이다

그리고 과거에는 국가간의 권력관게에서 지금처럼 광범위하지않지만 지금은 국가 권력은 어느 국가든 자국가의 자체의 권력은 존재하지않는다



일반사람들은 자국가의 국민들은 자국가의 정치권력이 자체적으로 이루어지고형성되는것으로 알고 잇지만 물론 이러한 구도 유형은 사극드라마나 역사를 통해서 그렇게 인지하고 잇지만 근대와 현재 미래로갈수록 그러한 자국가의 자체 국가 정치 권력은 존재할수가 없다



소생이 그래서 대한민국을 구하려면 대한민국에 썩어무드러진 정신상태의 지금 모든 정치인들에게 아니 국민5천만명모아놓고 교화를 한들 국가를 구할수가 없다라는 사실이다 이것이 현실이고 국제 연대권력의 힘이고 실체이다



더욱이 대한민국 같은 나라에 남북한 민족에 임진왜란 7년전쟁 당하고도 그 당시 썩어무드러진 조선의 이씨 정치 망조나 그것이 고스란히 이어져서 병자호란 국운은 서서히 가파르게 추락하면서 조선은 멸망한것이지요 일제식민지는 또 어?고 육이오전쟁은 또 어?고 아무것도없는 상황에서 우리의것으로 그나마 만들어보자고 한 사람이 박정희 대통령이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은 어더한가



도전도 해보지못하고 있다라는것이다 너무나 거대한 국제 권력앞에 처음부터 대항하거나 그들을 바로잡아보려는 노력을 시도하지않았기에 단지 자신들의 필요한 재물과 권력을 그들이 채워주기에 필요한것이 없기에 그들에게 순종하기에 이르게된것을 그것이 지금 대한민국 정치권력의 실체이다



그나마 소생은 깨달음을 통해서 천지신명님의 도움으로 이미 대한민국 앞으로 수십년 모습을 내다보았고 동시에 세계 국제 정세의 실체를 파악해서 그들과 대항하고자 글로서 투쟁 해 온것이다



그래서 이번 대선의 결과에도 대한민국 정치 세력들의 승리가 아니라 국제 연대 권력의 승리라고 인정해준것이다 대한민국 당선자나 패배자는 다 진정한 패배자들이고 애시당초부터 승리자가 될수가 없는 자신들의 삶의 걸어온 모습들을 조사해보면 다 나오는것을 그래서 패배자인것이다



지금 이명박 당선자 소생은 패배자로 본다 누구도 국제 연대 권력앞에 당당하게 대항하지못하기에 그래서 소생의 불로그에 다음과 야후불로그에 천사 프리메이슨과 지구방위총사령관이라는 가칭의 직책을 걸고 글을 적어왔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살길을 언급해드렸으나 그것도 여러번이나 역시나 패배자들은 패배되기를 좋아하는것을 이번 대선기간동안 그들의 여,야가 걸어온모습들을 기록해서 보아도 다 드러난것을



소생은 대한민국 여,야 전현직 대통령 막론하고 모든 정치 세력과 종교세력들 기업들 국민들 총망라해서 대한민국 국가의 명운을 걸고 시작해왔다 즉 그대들에게 기대지않고 오로지 나의 적수는 국제연대 세계 프리메이슨 지휘부를 향해서 고도의 바둑수의 게임을 즐겨온것이다



그래서 지금보면 소생이 그들에게 승리를 한것이다 ㅎㅎㅎㅎ



왜냐하면 세계 프리메이슨 지휘부보다도 더 앞서가는 발상을 하고있고 대안을 제시하고있기에 마지막 히든 카드를 소생이 가지고 있기에 그래서 미국 백악관보다도 더 파워를 소생이 가지고 있다



앞으로 미국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되든간에 상관없이 파워를 소생이가지고잇다 그래서 절대적인 천지신명님께서도 세계 프리메이슨 지휘부의 존재를 알고 게시기에 대인을 만나는것이지 미국의 한국가 대통령 중국의 국가 대통령 러시아 국가 대통령 그분들보다도 더 파워를 가진분이지요



그러니 그러한 선몽 예지몽을 보여주는 의미와 뜻을 보아도 잘 알수가 잇다



대한민국 특검법과 대룩연합구도결성과 미국의 세계 패권화 위축 목록코너는 미국에게 묵시적으로 경고성이고 동시에 대한민국 모든 정치 세력들에게도 강력한 경고성이기에 설사 소생의 의사와 관계없이 앞으로 세계 국제 질서의 정세는 그렇게 이미 소생의 어드바이스가 노출한만큼 실행될수밖에 없다



그래서 어느 국가든 반발하면 그만한 조치도 마련되어있기에 어더한 지정학 전략가든 정보분석가든 소생의 지혜앞에는 이길수가 없다



무조건 그렇다고 그들을 미워하지않는다 원죄를 묻는다면 그렇게 깨어나지않고 깨닫지않았든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고 정치세력이고 이들의 죄가 원죄이고 가장 큰죄를 지었기에 그러니 그들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얼마든지 가능성있는 외교전략전술을 구사한것이고



더욱이 원죄가 있다라는 사실은 이미 역사적으로 잘 말해주고있으니 그러고도 인정하지않고 깨어나지않고 있는 지금 대한민국 국가 정치권력의 모습이나 그들의 종교세력들의 모습이나 인간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을 보면 소생눈에는 그래서 용서해줄수가 없다라는것이다



그들을 미워할만한 가치라도 잇는지 미워할만한 가치조자차도 없다라고 본다 이런말하면 지존심 상한다라고하겟지만 저놈은 도대체 어느 나라 국민이냐고 묻겠지만



절대적인 천지신명님의 명대로 움직이고 실천하고 살아가는 육신의 미약한 종에 불과하고 그 다음이 인류 그 다음이 민족 그 다음이 국가이다 그 다음이 국민이고



그래서 내년에 대인을 만나면 대인을 만나기전까지의 국내외 모든 정치권력의 상황을 체크해서 최종결론을 내릴수도 있기에 그래서 타협점을 ?게될것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고자하는것이다 더나아가 남북한 더 나아가 국제사회 국제사회를 바로세우기위해서 이미 공개한대로 대한민국 특검법과 대룩연합구도결성과 미국의 세계 패권화 위축 목록코너에서 제시한대로 될것이다



남은것은 지금 대한민국과 남북한만이 남았다 이것을 어?게 처리할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해서 소생도 5년동안 몸고생 마음고생 약값도 나오지않지만 어?게 대한민국을 대한민국 정치권력 세력들이 처리해가는 지켜볼것이다



그대들은 애시당초부터 소생을 거지나부랭이정도로 치부했기에 종교 세력들도 그런것에 소생은 연연하지않고 대한민국 5천만명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움직이고온것이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이지만 더나아가 남북한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움직인다



어렵게 이 세상에 나와서 온갖 구사일생해가면서 목숨부지해오면서 글을적는데 소인배의 장난글을 적을 이유가 있겠는가?



대한민국 국가 거듭말하지만 덕수이씨 종친회 임진왜란 당시에 충무공 이순신 장군님을 도우신 군관민 후손분들의 목숨은 보호해줄것이다 그리고 소생을 조금이라도 도와주신분들 그리고 목룡승천답사시절에 도와주신분들의 당사자와 후손들을 보호해줄것이다



그 나머지는 하늘에 그대들이 믿는 신앙 성인분들에게 물어보세요 보호해주는것은 소생이 개입하고 싶지가 않다



대한민국에 생기운이 없으면 절대로 살아남지못한다 대어를 잡기위해서는 먹이감 정도는 줘야지 그것을 기다리고 있다 소생이 대한민국만 바라보고했다면 그것은 미국의 큰 오산이다



미국에게 그만큼 소탐대실하지말고 이번 대선에 소생이 원하는 사람을 만들어달라고햇거늘 지금 미국이 하는것을 보니 아프카니스탄 인질 23명사태와 비슷한 유형이다



대한민국 그릇된 교회 종사자들이 미국을 망치고 대한민국을 망치고 잇는것을 그리고 국제질서를 망치고 있고 그렇다고 그들이 승리를 하는것도아니고 패배자들이거늘 이미 미국이 그래서 현명한 선택을 하기르 바라며



소생이와 저들이나 미국이나 결과가 어?게 되는간에 최종적으로만 집행하면 되기에



이 정도 설명해주면 그동안 소생이 적어드린 수만페이지의 글속에 다 드러있으니 소생 육신하나야 얼마든지 버릴 각오는 그리고 그들의 세력이 생계를 막는것 정도도 알고있기에 지금 대한민국에는 소생의 동지가 없다



소생이 소생의 생계를 포기하면서까지 알고서도 왜 힘든 길을 선택하는가 생각해보았는가?



그럴것같아서면 애시당초부터 깨달음을 ?아나서지도않았다 일반인들처럼 평범한 삶을 살고말지 그게 더 편안하게 보이는것을 그러나 그게 전부가 다가 않임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체험했기에 선택받앗기에 생사가 없다라는 사실을 진정한 초유의 해탈을 하고싶어서 그저 장작불에 태워서 사리 몇개나오는것이 해탈이 아니라 진정한 해탈은 사리조차도 없다



왜 그런줄 아는가? ?아보아라 깨달음이 아직도 못미치면 답을 못?을것이고 알면 소생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것이다



소생 육신은 성한곳이 없습니다 상처투성이이지요 그럴수록 깨달음의 광명은 빛나고잇으니 육신에 더더욱이 집착하지않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고 인류가 상생하고 공존해가는 길을 제시해드리고 무엇보다도 인류의 습성들을 알고있으면서도 알려드리는것은 소생 육신이 존재하고잇기에 알려드리는것입니다



소생 불로그에 다 답이 있으니 그것을 발견 해 보시지요 인류가 하루라도 빨리 망하고싶으면 그렇게해도 소생하고는 무관하나 그래도 살길은 언급한다라는것입니다 소생의 소임을 다해야하기에



마지막 히든 카드가 천명의 마지막 소임의 시작입니다



일반인들은 이런말해도 이해가지않으나 말듯을 아시는분들은 정해져있으니 그분들이라도 아시고 준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신식민주의체제의 대선, 대미굴종과 비밀공작은 계속되나 앞으로는 끝난다




1. 미국군사령부를 찾아간 대통령당선자
2. 그가 굴종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
3. 중앙정보국 한국지부가 배출한 전설적인 공작원
4. 고위관리로 변신한 공작원과 그의 협조자들
5. 대선국면에 파고든 비밀공작



1. 미국군사령부를 찾아간 대통령당선자


2003년 1월 15일 검은색 고급승용차 한 대가 서울 용산에 있는 미국군기지 영내로 들어갔다. 그 승용차 뒷좌석에는 제16대 대통령당선자 노무현이 앉아있었다. 그는 1월 13일 서울 세종로에 있는 정부종합청사 별관 6층에 자리잡은 대통령당선자 집무실에서 미국정부특사로 서울에 들어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차관보(당시) 제임스 켈리(James A. Kelly)를 만난 지 이틀 뒤에 주한미국군사령부를 찾아간 것이다.

주목하는 것은, 부쉬가 차관(undersecretary)보다 급이 낮은 차관보(assistant undersecretary)를 특사로 지명하여 대통령당선자에게 보냈다는 점이다. 국무부차관보가 평양에 갈 때 그를 상대하는 사람은 북(조선)의 외무성부상이므로, 부쉬정부는 남(한국)의 대통령당선자를 차관급 정도로 여기고 있음이 드러난다. 노무현이 자기의 집무실을 찾아온 켈리와 마주앉아 무슨 말을 주고받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그 만남은 이틀 뒤에 있었던 노무현의 주한미국군사령부 방문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2007년 11월 11일 한국정책방송(KTV)이 방영한 대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4년 전에 당선자 신분으로 주한미국군사령부를 찾아갔던 경험을 이렇게 회고하였다.

"주한미군사령부에 가서 서로 악수하고 사진도 찍고 그랬는데 불가피한 일이었습니다. (줄임) 대한민국 대통령이 당선자 신분으로 주둔군사령부에 먼저 방문해 가지고 악수하고 사진 찍어야 되는 것이 정상적인 나라입니까? (줄임) 좀 서글프긴 하지마는 그렇게 라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그 당시 우리 한국의 현실이었습니다."

위의 회고담에서 그는 4년 전에 자신이 미국군사령부를 찾아간 것이 정상적인 나라에서는 있을 수 없는 서글픈 경험이었다고 지적하면서, 당시 자신은 그처럼 비정상적인 행동을 불가피하게 취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였다. 남(한국)과 마찬가지로, 터키도 미국과 방위 및 경제협력협정(U.S.-Turkey Defense and Economic Cooperation Agreement)을 맺고 그에 따라 미국군이 주둔하고 있지만, 터키의 대통령당선자가 미국군사령부를 찾아가는 비정상적인 행동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미국과 하위동맹관계를 맺은 터키의 현실과는 완연히 다르게, 남(한국)의 지배계급이 기생하는 이른바 '한미동맹체제'라는 것은 제국주의세계체제의 반동적인 지배와 신식민주의체제의 굴욕적인 예속이 뒤엉켜 고착된 현실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회고담에서 자신이 주한미국군사령부를 찾아갔었다고 말하면서도 사령부에서 구체적으로 누구를 만났는지를 밝히지 않았다. 그 까닭은 그가 주한미국군사령부를 찾아갔을 때 그를 상대한 사람은 주한미국군사령관이 아니었는데, 차마 그 사실마저 언론에 드러내놓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주한미국군사령관이었던 육군대장 리언 라포트(Leon J. LaPorte)는 2003년 1월 6일부터 17일까지 워싱턴의 국방부 본부에 들른 뒤에 괌과 오키나와에 있는 미국군기지를 차례로 방문하는 중이었다.

대통령당선자가 미국군사령부를 찾아간 것도 있을 수 없는 굴종행위이었거니와, 미국군사령관이 해외출장 중에 있음을 알면서도 사령부를 찾아간 것은 신식민주의적 대미굴종의 극치였다. 일반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치욕적인 노무현의 굴종행위는, 1961년 11월 11일 5.16 군사반란을 일으켜 정권을 틀어쥔 때로부터 여섯 달 뒤에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으로 도쿄를 찾아간 박정희가 보여주었던 치욕적인 굴종행위를 빼다 박은 닮은꼴이다.

그날 저녁 일본수상의 관저에서는 박정희를 환영하는 만찬이 있었다. 환영축배를 들자마자 박정희는 술병을 들고 불쑥 자리에서 일어나 식탁 맨 끝에 앉은 일본노인에게 걸어가더니 그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유창한 일본말로 정중하게 인사하고 술잔을 올렸다. 박정희가 도쿄로 떠나기 전에 일본정부당국에 미리 연락해서 환영만찬에 모셔달라고 요청했던 그 노인은, 박정희가 1942년 3월 22일에 졸업한 '만주제국 육군군관학교'에 교장으로 있었던 나구모 신이찌로(南雲親一郞)이다. '만주제국'의 수도 신경에서 군관학교 교장을 지내던 시절에 '선계생도(鮮系生徒)' 박정희를 "천황폐하께 바치는 충성심에서 보통 일본인보다 훨씬 일본인답다"고 칭찬하였던 일본육군 중장 나구모, 그리고 그 학교 제2회 졸업식에서 '만주제국'의 허수아비 황제 부의(溥儀)가 하사한 금시계를 받고 졸업생을 대표하여 "대동아공영권을 이룩하기 위한 성전에서 목숨 바쳐 벚꽃처럼 멋진 최후를 맞겠노라"고 선서하였던 오까모도 미노루(高木正雄, 박정희의 일본이름)가 19년만에 도쿄의 수상관저에서 재회하는 장면을 지켜보며 묘한 표정을 짓던 일본수상 이께다 하야또(池田勇人)는 "사은(스승의 은혜라는 뜻-옮긴이)을 아는 것은 우리 동양의 미덕입니다. 박정희 선생에게 경의를 표합니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 미국 땅을 밟아보지 못한 노무현은 대통령선거운동기간에 자기는 "별 볼 일없이 사진이나 찍으러 미국에 가진 않겠다"며 "반미면 어떠냐"고 큰 소리를 친 적이 있으나,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사령관이 자리를 비운 주한미국군사령부에 들어가서 굴욕의 사진을 찍는 수밖에 없었다.

노무현과 박정희가 약 40년의 시차를 두고 똑같이 취했던 신식민주의적 굴종행위는 제국주의자들 앞에서 자존심을 내버린 정치인의 치욕적 경험이 아니라, 남(한국)의 신식민주의체제가 제국주의지배력 밑에서 짓밟히는 능멸의 현장이었다. 신식민주의체제는 남(한국)의 대통령을 비롯한 지배계급을 꼼짝하지 못하도록 얽어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올가미 같은 것이다.

워싱턴의 국무부와 국방부는, 노무현 대통령당선자가 대통령취임식을 2002년 2월 25일에 거행하고 청와대에 들어간 때를 전후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올가미로 그를 얽어매기 시작하였다. 이를테면, 2003년 1월 18일부터 22일까지 미국 국무부 정보조사담당 차관보 칼 포드(Carl Ford)가 서울에 비공개로 파견되어 대통령당선자의 핵심인사들을 만났으며, 2003년 2월 26일부터 28일까지 미국 국방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나중에 부차관으로 승진) 리처드 롤리스(Richard P. Lawless Jr.)가 서울에 나타났다. 포드와 롤리스의 서울방문은 새로 등장한 노무현정부를 올가미로 얽어매기 위한 것이었다.

2007년 12월 19일에 당선될 대통령당선자도 선임자와 마찬가지로 신식민주의체제의 올가미에 얽어 매여 대미굴종의 길로 향할 것이다.



2. 그가 굴종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


주목하는 것은, 워싱턴의 제국주의반동정권이 대통령당선자 노무현에게 굴욕적인 행동을 요구한 까닭, 그리고 대통령당선자가 그 요구에 굴종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다. 그 까닭을 밝히려면, 우선 아래와 같은 배경설명이 요구된다.

노무현이 자신의 지지율을 앞서 가던 이회창을 대선 막판에 따돌리고 극적으로 당선되었던 2002년 말부터 2003년 초에 이르는 시기의 남(한국) 내외정세는 너무도 복잡하였다.

1-1) 제국주의반동세력 가운데서도 악명 높은 이른바 '신보수주의세력(네오컨)'에게 등을 떠밀려 간신히 대권을 거머쥔 부쉬는 백악관 집무실에 들어앉자마자 이라크 침략준비에 박차를 가하였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 포진한 제국주의전쟁광들은 병력 22만5천명, 군용기 700대, 항공모함 전투단 5개로 구성된 방대한 무력을 이라크전선에 내몰기 시작하였다. 제국주의전쟁광들이 대규모 선제공습을 명령하여 이른바 '이라크자유작전(Operation Iraqi Freedom)'이라는 무력침략을 도발한 때는 2003년 3월 20일 새벽 5시 30분이었다. 이라크에서는 지금 이 시각에도 제국주의점령군이 '안정화작전'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파괴와 살육을 저지르는 중이다.

워싱턴의 제국주의전쟁광들은 이라크침략전쟁을 도발한 것도 모자라서,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조미 정치회담마저 중단하는 실로 엄중한 사태를 일으켰다. 조미 정치회담의 중단은, 2002년 6월 29일 연평도 앞바다에서 조선인민군 경비정 684호와 한국해군 고속정 357호가 교전을 벌여 고속정 357호가 격침되고 정장을 비롯한 6명이 목숨을 잃고 18명이 부상을 당한 해상무력충돌사건으로 이미 정치군사적 긴장이 조성되어 있었던 한(조선)반도의 정세를 결정적으로 악화시켰다. 워싱턴의 제국주의전쟁광들이 한(조선)반도의 정세를 전면대결구도로 몰아간 위험천만한 시나리오는, 경기도 오산의 미국 공군기지를 떠난 특별군용기 한 대가 서해직항로를 타고 평양 순안 비행기장에 내린 2002년 10월 3일, 그러니까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되기 두 달 반전에 실행에 옮겨지기 시작하였다. 그날 특별군용기를 타고 평양에 내린 미국측 협상대표 제임스 켈리는 부쉬정부가 들어선 뒤 처음으로 진행된 조미 정치회담에서 느닷없이 고농축우라늄 문제를 걸고들었다. 고농축우라늄 문제를 걸고든 것은 켈리의 즉흥적인 행동이 아니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검토하고 승인한 치밀한 사전각본에 따른 도발공세였다. 2003년 2월 12일 미국 연방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나간 국방정보국장 로월 재커비(Lowell E. Jacoby)는 "북(조선)이 공개적으로 핵무기 추가확보에 나선 것은 30년이래 미국의 지역이익에 반하는 가장 심각한 도전"이라고 주장하였다.

켈리의 평양방문으로부터 두 달 뒤인 2002년 12월 10일, 남(한국)에서 대선이 실시되기 불과 아흐레 전에, 워싱턴의 제국주의전쟁광들은 하위동맹국인 스페인의 해군에게 연락하여 아라바아해를 항해하던 북(조선) 화물선 서산호를 공해에서 불법적으로 수색, 억류하였다가 이틀 뒤에 풀어주는 전무후무한 해상도발을 자행하였다.

1994년에 체결된 뒤로 부침을 거듭하면서도 조미 정치회담의 기조를 유지시켜주었던 조미기본합의는 제국주의전쟁광들의 파기음모와 해상도발에 의해서 휴지조각처럼 구겨지고 말았다. 전쟁중독증에 걸린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연속적으로 취한 협정파기와 도발공세로 한(조선)반도의 정세는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으로 밀려가고 있었다.

2003년 1월 10일 북(조선)은 정부성명을 통해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한다고 선언함으로써 마침내 워싱턴의 제국주의전쟁광들에게 초강경한 반격공세를 퍼붓기 시작하였다. 북(조선)은 2003년 2월 14일 동해에서 최신형 순항미사일을 발사하는 훈련을 실시하였고, 2003년 2월 17일 북(조선)의 외무성 관리는 평양을 찾아간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 특파원에게 북(조선)이 정전협정을 준수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고 하면서 그 협정의 구속에서 완전히 벗어날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것은 무력도발에 무력보복으로 응전하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었다. 한편, 미국의 극우논객 니컬러스 크리스토프(Nicholas D. Kristof)는 언론을 통해 미국이 북(조선)의 영변 핵시설을 외과수술식 정밀타격으로 파괴하고, 견고한 지하시설들을 전술핵무기로 파괴하는 전술을 검토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New York Times, 2003년 2월 28일)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한(조선)반도 정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전혀 알 수 없었기에 조미관계가 극도로 악화되는 것을 보면서 전쟁공포를 느끼는 것 이외에는 속수무책으로 앉아있어야 하였던 노무현은, 사령관마저 자리를 비운 미국군사령부에 찾아가서 제국주의전쟁광들에게 신식민주의체제의 평화와 안정을 구걸할 수밖에 없었다.

1-2) 2002년 6월 13일 주한미국군 장갑차가 굉음을 내지르며 국도 53호선을 달려가고 있었다. 얼마 뒤, 그 장갑차는 또래의 생일모임에 가려고 발길을 재촉하던 10대 소녀 심미순, 신현순 양을 등뒤에서 덮쳤다. 그들의 죽음은 너무도 참혹하고 원통하였으나, 2002년 11월 22일 주한미국군 군사법원 배심원단은 두 여중생을 죽인 미국군 병사 두 명에게 무죄평결을 내리고 그들을 미국으로 빼돌렸다. 남(한국)의 대중은 주한미국군사령부의 만행에 격분하였다. 부쉬에게 미국군 범인을 남(한국)의 사법기관에게 넘기라고 요구하면서 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을 외치는 광화문 촛불시위가 자연발생적으로 시작되었다. 촛불을 든 시위대오는 날이 갈수록 불어나더니, 2002년 12월 6일 광화문 일대에 모여든 3만 명의 시위대는 98개 중대 1만2천명의 경찰병력이 막아선 저지선을 뚫고 마침내 주한미국대사관 정문 앞까지 밀고 나갔다.

2003년 2월 9일 미국 씨비에스(CBS) 텔레비전 방송프로그램 '60분(60 Minutes)'이 '미국놈 돌아가라(Yankee Go Home)'는 제목으로 방영한 현장기록영상물은 분노한 시위군중이 서울시청 앞에서 미국기를 불태우는 장면을 보여주었고, 반미주의 무풍지대라고 믿었던 남(한국)에서 반미감정이 폭발하여 심리적 충격을 받은 주한미국군사령관 리언 라포트의 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당시의 충격적인 상황에 대해서 훗날 롤리스는 이렇게 말했다.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것은 2002년 한국 대통령선거를 앞둔 6개월, 즉 2002년 7월부터 12월까지였다. 그 기간에 한미동맹은 정치적으로 공격되고 이용됐다. 6월 13일 58번 국도에서 발생한 두 소녀의 비극적 죽음 이후 미국은 그 사건이 미칠 파장을 줄이려고 무척 애를 썼다. 그러나 김대중정부는 동맹을 지키기 위해 거의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신동아 2007년 8월 호)

당시 한나라당 대선후보로 나선 이회창마저도 광화문 촛불시위현장에 고개를 내밀 만큼 분노한 대중의 반미감정이 들끓고 있었으니, 대선후보로 뛰어다니던 노무현이 그 분위기에 재빨리 올라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대선후보 노무현이 한미관계의 평등한 개선을 희망한다는 말을 꺼낼 수 있었던 것은 그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2002년 9월 12일 대선후보 노무현은 아시아-유럽 프레스포럼에서 연설하면서, "전환기 시대의 한미관계는 성숙한 동반자 관계, 수평적 동맹관계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10월 7일 남(한국)의 언론과 대담하는 자리에서도 "한미동맹관계는 우리의 민주화와 정치, 경제발전에 걸맞게 수평적이고 상호협력적인 관계로 발전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워싱턴의 제국주의반동정권은 한미관계의 수평적 관계개선을 말하고 다니는 노무현을 길들일 필요를 느꼈다. 제국주의반동정권이 신식민주의정권을 정치적으로 길들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대통령선거가 끝나자마자 당선자를 굴복시키는 것이다. 대통령당선자가 주한미국군사령부를 찾아갈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 거기에 있다.

아니나 다를까, 제국주의반동정권에 굴복한 노무현은 워싱턴을 향해서 굴종자세를 취하기 시작하였다. 2003년 2월 20일 대통령 취임식 직전, 워싱턴에서 손꼽히는 수구반동성향의 연구기관인 헤리티지 재단(Heritage Foundation)이 서울에서 개최한 토론회에 모습을 드러낸 노무현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국민이 주한미군 주둔을 원치 않는 것으로 오해하는 일도 있었으나 사실이 아니다. 우리 국민은 한국전쟁 당시 피로써 나라를 지켜준 미국에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다. 최근의 주한미군지위협정 개정요구도 주한미군의 주둔을 전제로 한 것이다. 우리 국민 대다수는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주한미군 주둔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집권의 시작이 그러했으므로, 노무현정부의 집권기간 다섯 해는 이 글에서 늘어놓을 수 없을 만큼 수없이 되풀이된 신식민주의적 대미굴종의 연속이었다.



3. 중앙정보국 한국지부가 배출한 전설적인 공작원


경인티뷔(TV) 대표이사(당시) 신현덕이 기독교방송(CBS) 사장 이정식에게 폭로하고, 2006년 10월 31일 방송위원회에 대한 국회 문화관광위원회의 국정감사에 출석한 기회를 이용하여 공개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진 이른바 미국간첩의혹사건은 남(한국)에서 미국 국가정보기관의 비밀공작망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엿볼 수 있는 보기 드문 사례이다. 그 사건을 보도한 남(한국)의 언론은 이렇게 적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일찍이 남한에서 통용되지 않았던 '미국간첩'이란 말이 등장한 것이다. 해방 뒤 남로당 당수 박헌영이 '미제간첩'으로 숙청된 적은 있었지만, 북한에서의 일이다. 분단된 남한에서 간첩은 북한간첩밖에 없었다. 미국과의 관계는 동맹 이상이었기에, 미국을 위한 우리나라의 정보제공은 간첩행위로 인식되지 않아 왔던 한반도의 모순을 이번 사건은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한겨레21 제636호, 2006년 11월 23일)

미국간첩의혹사건에는 여러 사람이 등장하는데, 그 사건의 중심인물은 그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던 2006년 10월 당시 미국 국방부 아시아태평양담당 부차관이었던 리처드 롤리스이다. 물론 그는 자신이 미국간첩의혹사건에 연관되지 않았다고 주장하였으나(신동아 2007년 8월 호), 그 동안 언론보도를 통해서 드러난 일련의 사실들은 그의 주장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공작원은 중앙정보국을 떠나 민간인 신분으로 돌아간 뒤에도, 공작원 활동경력을 밝히지 않는 규율을 지킨다. 중앙정보국 공작원으로 암약하였던 롤리스도 예외가 아니어서 국방부 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에 임명된 뒤에도 이전의 공작원 활동경력을 밝히지 않았다. 그렇지만 미국과 남(한국)의 몇몇 언론들이 간략하게 보도한 내용을 종합하면 아래와 같은 밑그림이 드러난다.

롤리스가 중앙정보국에 들어간 때는 1972년이다. 그가 1946년에 아일랜드계 미국인으로 태어났으니, 대학을 졸업하고 스물 여섯 살 되던 해에 중앙정보국 공작원이 된 것이다. 중앙정보국에 들어가기 직전에 그는 미국 평화봉사단원으로 남(한국)에 들어가, 전라도에서 약 2년 동안 활동하였다. 그때 배우기 시작한 한국(조선)말이 10년 뒤에 그가 남(한국)에서 비밀공작을 벌일 때 결정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제공하게 된다. 1972년에 중앙정보국에 들어간 롤리스는 곧바로 주한미국대사관 상무관으로 신분을 위장하고 중앙정보국 한국지부 비밀공작원으로 배치되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가 중앙정보국 한국지부에 배치된 직후인 1973년 3월부터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은 미국정부기관의 감시를 피해 핵무기개발사업에 시동을 걸었다. 그러나 박정희의 핵무기개발계획은 중앙정보국 한국지부에서 비밀공작활동을 벌인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입공작원 롤리스의 손에서 파탄되고 말았다. 롤리스가 박정희의 핵무기개발계획에 관한 극비자료를 빼내어 중앙정보국 본부에 보고하였던 것이다.

자기들이 지배하는 신식민주의체제가 핵무장의 길에 들어서는 것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 워싱턴의 제국주의반동정권은 핵무기개발을 중지시키기 위해서 박정희를 짓눌렀고, 그 정권의 압력에 무릎을 꿇은 박정희는 프랑스에서 재처리시설을 사들이려던 계획을 1976년 1월 23일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박정희의 핵무기개발계획에 관한 극비자료를 워싱턴 근교 랭리에 있는 중앙정보국 본부로 빼돌려 그 계획을 파탄시킨 롤리스는, '신동아' 2007년 11월 호의 관련기사가 지적한 것처럼, 중앙정보국 한국지부가 배출한 전설적인 공작원으로 인정받았다. 미국언론에 따르면, 2004년 11월 중앙정보국 비밀공작담당 총책인 스티븐 캡스(Stephen R. Kappes)가 사임하였을 때, 롤리스는 그 후임 물망에 오른 후보자 세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Washington Post, 2004년 11월 14일)

롤리스보다 조금 뒤늦게 1973년에 중앙정보국 한국지부에 배치된 또 다른 비밀공작원은, 1951년에 중앙정보국에 들어간 도널드 그렉(Donald Gregg)이다. 박정희가 재처리시설 수입사업을 중지하자, 롤리스는 일본으로, 그렉은 중남미로 각각 공작거점을 옮겼다.

주목하는 것은, 롤리스가 남(한국)에서 비밀공작을 벌이기 시작하였던 1972년에 현지협조자(field collaborator)를 얻었는데, 그가 미국 버클리의 캘리포니아 주립대 경제학과에서 유학하고 남광토건에서 일하고 있었던 배영준이다. 배영준의 말에 따르면, 1972년에 주한미국대사관이 서울에서 열었던 중장비전시회에서 롤리스를 처음 만났다고 한다.

'신동아' 기자는, 자신이 작성한 대담기사에서 롤리스와 배영준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1972년의 중장비전시회에서 우연히 만나 '30년 지기의 깊은 인연'을 맺은 것처럼 묘사하였지만, 중앙정보국 비밀공작원과 현지인의 관계가 개인적 친분으로 유지되는 관계가 아니라는 점은 너무도 명백하다. 중앙정보국 한국지부에 배치된 1972년에 신입공작원 롤리스는 미국에 유학하여 영어로 의사를 소통할 수 있는 현지협조자를 얻었던 것이다.

1975년에 남(한국)을 떠나 일본으로 공작거점을 옮기기 전에 롤리스는 현지협조자 또 한 사람을 얻었는데, 그가 기독교방송의 폭로기사에서 '애덤스' 또는 '빅맨'이라는 공작명으로 나오는 백성학이다. 신현덕이 2006년 10월에 백성학과 대화한 것을 녹음한 녹취록에 따르면, 백성학은 자기가 배영준을 1970년대 중반에 처음 알게 되었다고 말하였다. (기독교방송 특별취재반 2007년 3월 14일)

그때로부터 30여 년 뒤 신현덕이 미국간첩의혹사건을 폭로하자 배영준과 백성학은 자기들과 롤리스의 관계를 사업관계 또는 친분관계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혐의를 부인하였는데, 미국과 남(한국)의 언론보도에서 드러난 일련의 사실들을 살펴보면 그들의 부인발언이 전혀 타당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서울남부지검은 백성학을 수사하는 시늉만 하다가 2007년 4월 30일 그에게 혐의가 없다는 처분을 내렸지만, 이름을 밝히지 않은 제보자가 2007년 5월초에 '신동아'에 검찰수사기록 일부를 넘겨주면서 "검찰은 백 회장의 스파이 혐의에 대해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백 회장은 스파이 혐의로 기소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신동아 2007년 6월 호) 남(한국) 검찰이 그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려면 우선 롤리스부터 소환하고 중앙정보국 한국지부와 국방정보국 한국지부를 조사해야 하는데, 그러한 소환과 조사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다.

1975년부터 여섯 해 동안 일본에서 암약한 롤리스는 1981년에 남(한국)에 재배치되어 1987년까지 비밀공작을 벌였다. 롤리스가 남(한국)에서 두 번째로 공작활동을 벌인 1980년대의 한(조선)반도 정세는 매우 복잡하였는데, 그러한 시기에 중앙정보국은 유능한 공작원을 공작현지에 침투시킬 요구를 느꼈을 것이고, 롤리스가 그 요구를 충족하는 공작원이었음을 두말할 나위가 없다.

1981년부터 1987년까지 레이건정부 안에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였던 중앙정보국장은, 제2차 세계대전 시기의 전략정보국(OSS)에서부터 해외비밀공작경력을 쌓은 노회한 공작전문가 윌리엄 케이시(William J. Casey)였다. 케이시는 비밀공작을 자신이 직접 지휘하였고, 중앙정보국 한국지부가 배출한 전설적인 공작원 롤리스를 자신이 직접 지휘하는 비밀공작에 배치하였다. 케이시의 비밀공작에 차출된 공작원들은 롤리스의 이름을 본떠서 '롤리스 그룹'으로 불렸다. (Sidney Blumenthal, 2007년 11월 1일)

케이시가 한(조선)반도에서 벌인 비밀공작은 윌리엄 자일커(William Zylka)와 이어리 콕(Erie Cocke)을 비밀특사로 여러 차례 북(조선)에 파견한 것이다. (U.S. News & World Report, 1999년 8월 9일) 북(조선)은 케이시의 비밀공작을 역이용하여 레이건정부에게 조미상호교류와 남북(북남)미 3자 평화협정 체결을 제안하였는데, 자신이 개입한 이란-콘트라 사건이 터지면서 궁지에 몰린 케이시가 1987년에 뇌암으로 죽는 바람에 그 공작은 중단되었다.



4. 고위관리로 변신한 공작원과 그의 협조자들


케이시가 죽은 1987년에 롤리스는 중앙정보국의 상관과 마찰을 빚었고, 결국 15년 동안 몸담았던 중앙정보국을 떠났다. 비밀공작원에서 민간인으로 돌아간 그는 유에스아시아 상무개발 주식회사(USAsia Commercial Development Corp.)를 세우고 대표이사가 되었다. 유에스아시아 상무개발은 남(한국)과 대만에 들어가는 미국계 자본의 투자활동을 조절해주는 투자자문회사이다. 내가 쓰는 개념으로 표현하자면, 그 회사는 신식민주의시장경제를 장악, 지배하기 위하여 침투하는 제국주의독점자본의 척후병이다. 롤리스는 중앙정보국 공작원으로 암약하던 시기에 연계된 인맥을 유에스아시아 상무개발에 끌어들였다. (신동아 2007년 1월 호)

2006년 9월 9일 배영준이 신현덕에게 한(조선)반도 정세동향을 해설해준 장소는 서울 중구 소공동 70번지 삼구빌딩 15층에 있는 유에스아시아 상무개발 한국지사 사무실이며, 같은 건물 10층에는 백성학의 집무실이 있다.

대만언론에 따르면, 롤리스는 중앙정보국에서 나온 뒤에 유에스아시아 상무개발을 세우면서 플로리다 주정부 상무장관을 접촉했는데, 그가 바로 미국 대통령 부쉬의 친동생이며 당시 플로리다 주지사였던 젭 부쉬(Jeb Bush)이다. 롤리스와 젭 부쉬는 오랜 동안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Taipei Times, 2002년 8월 5일) 롤리스가 중앙정보국 출신으로 국무부 부장관이 된 리처드 아미티지(Richard Armitage)의 도움을 받아서 따낸 14억 달러 규모의 대형사업은, 미국과 중국을 연결하는 해저통신망 설치사업이다.

롤리스는 유에스아시아 상무개발을 세운 이듬해인 1988년에 젭 부쉬의 서울방문을 주선하였다. 서울에 들어간 젭 부쉬는 백성학을 만났고, 그 만남을 계기로 하여 백성학이 경영하는 모자생산기업 '영안모자'는 플로리다에 해외지사를 내올 수 있었다.

부쉬가문과 백성학의 관계는 젭 부쉬와 백성학이 서울에서 만나기 이태 전인 1986년부터 시작되었다. 그해 백성학은 미국 잡지 '리더스 다이제스트(Reader's Digest)'에 자신이 어린 나이에 주한미국군 부대에서 심부름꾼 노릇을 하고 있었던 6.25 전쟁시기 어느 날 포탄파편에 중상을 입었을 때 빌리라는 이름을 가진 미국군 병사가 자신을 헬기에 싣고 미국군 야전병원으로 실어가서 목숨을 살려냈다는 회고담을 실었다. 그 회고담을 읽은 사람들 가운데는 6.25전쟁 시기 백성학과 함께 미국군 부대에서 심부름꾼 노릇을 하였던 김병기가 있었다. 김병기는 오래 전에 미국군 장교의 가정에 양자로 들어가서 미국으로 건너온 뒤에 부쉬가문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부쉬의 운전기사 겸 경호원으로 일하고 있었던 것이다. 백성학은 김병기를 통해서 당시 미국 부통령이었던 아버지 부쉬를 만날 수 있었다.

부쉬가문과 백성학의 특별한 관계는, 두 차례 있었던 부쉬의 대통령 취임식 때마다 백성학이 초청을 받았을 뿐 아니라, 그 취임식에 참석한 남(한국)의 정계, 재계인사들 가운데서 그가 가장 상석을 차지하였다는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2006년 11월 1일 남(한국)의 언론은 "워싱턴에서 그의 영향력은 한국정부 관계자 모두를 합친 것보다 크다고 봐도 된다"고 보도하였다.

외교통상부장관(당시) 반기문은 2006년에 유엔사무총장 선거에 출마하였는데, 그 선거를 좌우하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환심을 사려고 선거막판에 백성학에게 긴급히 도움을 간청하였다. 2006년 10월 2일 반기문이 백성학에게 자신이 직접 두 차례, 그리고 자기 비서를 시켜서 두 차례나 전화연락을 하였는데도 백성학은 응답전화조차 주지 않다가, 퇴근길에 외교통상부장관 공관에 들러 30분 동안 만나주었다. (신동아 2007년 5월 호) 반기문의 간청을 들은 백성학은 워싱턴의 고위관리에게 연락하였고, 반기문은 유엔사무총장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미국언론은 반기문의 유엔사무총장 선출이 "실적경쟁이라기보다는 뒷거래의 결과"였다고 비판하였다. (Newsweek, 2007년 3월 5일)

백성학의 육성녹음이 담긴 녹취록에서 그가 "미국이 1991년부터 우리 두 사람(백성학과 배영준을 뜻함-옮긴이)에게 중요한 일을 시켰다"고 말한 것을 보면, 롤리스는 중앙정보국에서 나와 유에스아시아 상무개발 주식회사를 경영하였던 1987년 이후에도 여전히 중앙정보국의 비밀공작에 관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남(한국)의 언론은 그가 "최근까지도 개인적인 채널을 통해 한국 정치상황에 대한 정보를 꾸준히 취합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보도하였다. (신동아 2007년 8월 호)

롤리스는 1999년 어느날 배영준에게 부쉬가 대통령이 되어 자기를 부르면 유에스아시아 상무개발 한국지사를 맡아달라고 말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부쉬는 백악관에 들어간 뒤 얼마 되지 않은 때에 롤리스를 워싱턴으로 불렀고, 2002년 10월 롤리스는 국방부 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에 임명되었다.

백악관이 전설적인 공작원 출신 롤리스에게 중앙정보국 요직이 아니라 국방부 요직을 주었던 까닭은, 주한미국군의 전략적 유연성 강화라는 간판을 내걸고 실제로는 제국주의군사전략을 한층 강화하는 한미동맹정책구상회의(FOTA), 용산 미국군기지 이전협상, 전시작전지휘권 이양협상, 주한미국군 병력감축, 한국군 이라크 파병 등 중요한 변화에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의 결정사항을 집행할 유능한 인물이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국방부 고위관리로 변신한 롤리스는 제국주의군사전략 강화사업을 지휘하는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였다. 당시 국방장관 럼스펠드(Donald H. Rumsfeld)는 워싱턴의 국방부 본부를 찾아간 남(한국) 국방부 고위관리들에게 "한국문제에 있어서는 롤리스가 사실상 책임자다. 이 사람하고 얘기하는 게 나하고 얘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신동아 2007년 1월 호) 럼스펠드로부터 전권을 위임받다시피 한 롤리스는, 2003년 2월부터 청와대 국가안보회의 사무차장으로 일하던 이종석이 자기가 지휘하는 제국주의군사전략 강화사업을 순순히 따르지 않자, 노무현 대통령과 정동영(당시 청와대 국가안보회의 의장)을 압박하여 이종석을 청와대에서 퇴출시켰다. 전권을 휘두르는 그의 행동이 오죽 거칠었으면, 그를 가리켜 '이름처럼 강압적이고 난폭한 무법자(lawless)'라고 부르는 남(한국)의 고위관리들(신동아 2007년 1월 호)이 생겨나기까지 하였을까.

롤리스가 제국주의군사전략 강화사업을 지휘하는 것과 발맞춰 그의 현지협조자들도 맹렬하게 활동하였다. 남(한국)의 기독교방송이 2007년 3월 6일에 공개한 백성학의 육성녹음 녹취록에서, 백성학은 자기가 "배영준과 함께 다섯 개 라인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여 정리한 뒤에 영어로 번역해 미국에 보고한다"고 말하였다. 그 육성녹음에 "우리 디씨(DC)의 조직"이라는 표현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서, 배영준과 백성학이 수집한 정보를 보고하는 대상은 '디씨에 있는 조직'이라는 점이 드러난다. 미국에서는 워싱턴이라 부르지 않고 워싱턴 디씨(District of Columbia)의 줄임말인 디씨로 부르고 있으므로, 백성학은 자신과 배영준이 워싱턴에 있는 어떤 조직에 속해있음을 자인한 것이다.

2006년 10월 21일 베이징 방문을 마치고 모스크바로 날아가던 전용기 안에서 미국 국무장관 라이스(Condoleezza Rice)는, 직전에 중국정부특사로 평양을 찾아갔던 국무위원 탕자쉬안(唐家璇)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부터 핵실험에 대해 죄송하게 생각한다는 말도 듣지 않았고, 추가 핵실험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도 듣지 않았다는 발언을 늘어놓은 적이 있는데, 백성학은 자기의 대화내용이 담긴 육성녹음 녹취록에서, "우리 조직에서 (라이스를) 야단쳤기" 때문에 "비행기 안에서 웬만하면 떠들어대지 않는" 라이스가 그렇게 발언한 것이라고 말했다. (기독교방송 특별취재반 2007년 3월 26일)

국무장관의 발언을 제어할 수 있는 워싱턴의 조직이란 국무부와 경쟁관계에 있는 국방부밖에 없으므로, 배영준과 백성학이 속해 있는 조직은 미국 국방부 산하의 국방정보국(DIA)일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백성학은 정보문서를 자신이 직접 들고 용산의 미국군기지에 들어가서 상대에게 전달하는데, 전달된 정보문서는 곧 미국 부통령 체니(Dick Cheney)의 책상에 올라간다고 말하였다. 또한 남(한국) 검찰은 배영준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용산 미국군기지 헌병사령관에게 조회하였더니 그가 2001년, 2006년, 2007년에 여러 차례에 걸쳐 용산 미국군기지 출입증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배영준은 검찰심문에서 용산 미국군기지에 들어가 미국군 소령 비(B)를 만난 적이 있다고 진술하였다. (신동아 2007년 6월 호) 배영준은 검찰심문에서 미국군 소령 비(B)가 롤리스의 보좌관이라고 지목하였지만, 용산 미국군기지를 거점으로 첩보활동을 벌이는 현역 군인은 국방정보국 공작원들밖에 없으므로 비(B)는 국방정보국 한국지부에 배치된 공작원일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롤리스가 국방부 고위관리에 임명되면서 체니-럼스펠드-롤리스-국방정보국 한국지부-현지협조자들로 이어지는 공작체계가 가동하기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남(한국) 언론의 표현을 빌리면, 롤리스는 '코리아팀'을 가동하였던 것이다.



5. 대선국면에 파고든 비밀공작


미국의 국가정보기관들은 10만 명의 인원을 움직이고 440억 달러의 예산을 쓴다. (연합뉴스 2006년 4월 22일) 미국 중앙정보국에서 반테러공작과 해외비밀공작을 전문으로 하는 부서는 공작국(Directorate of Operations)인데, 그 부서의 인원은 약 5천 명이며, 그 가운데 약 1천 명은 여러 나라들에 잠입하여 암약하는 비밀공작원들이다. (Washington Post, 2004년 11월 14일) 워싱턴의 제국주의반동정권이 좌우하는 제국주의세계체제가 그처럼 방대한 공작망에 의해서 유지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제국주의반동정권의 해외비밀공작이 엄청난 것처럼 보이지만, 그 공작에는 자기의 악명을 무색하게 만드는 허점이 있다. 이를테면, 중앙정보국 국장 마이클 헤이든(Michael V. Hayden)은 아시아와 중동에 침투시킬 공작원이 얼마 되지 않아서 고민에 빠졌고, 현재 국방장관으로 있는 로버트 게이츠(Robert M. Gates)는 중앙정보국장으로 재직하면서 "북(조선)에 침투시킬 아시아계 공작원들 가운데서 미국인 티가 나지 않는 사람을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탄식하였다. (Foreign Policy, 2007년 9/10월 호)

이처럼 중앙정보국이 아시아와 중동에서 벌이는 비밀공작에 공작원을 대주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아주 예외적인 지역이 있다. 중앙정보국이 아무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 해외비밀공작의 '천국'이 있으니, 그곳이 바로 남(한국)이다. 남(한국)은 중앙정보국이 비밀공작을 마음놓고 벌이는, 전세계에서 유일한 지역이다.

2007년 대선과 관련하여 주한미국대사관 관계자 두 사람이 전한 말을 보도한 남(한국) 일간지는, "국무부, 중앙정보국(CIA) 등이 유력후보들의 미국관, 북한관, 안보관과 한미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입장 등 정견과 성향을 분석하는 일을 진행해왔다. 주한미대사관 관계자들과 CIA 한국지부 요원들이 한국의 언론과 학자 등과 빈번히 접촉하면서 정보를 얻고 있고, 지역민심을 살피기 위해 직접 지방으로 내려가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다. CIA는 한국에서 활동하는 요원을 보강했다는 소문도 있다"고 적었다. (중앙일보 2007년 11월 13일)

중앙정보국 한국지부의 비밀공작은 언론에 전혀 드러나지 않으므로 세상에 알려진 바 없으나, 중앙정보국 공작원이었던 이용수가 1996년에 펴낸 책 'No라고 말할 수 있는 한국'에서 그 비밀공작의 분위기를 좀더 구체적으로 엿볼 수 있다.

충청남도 공주에서 태어났고, 미국으로 건너와 제럴드 리라는 미국이름을 가진 시민권자가 된 그는 중앙정보국에 20여 년 동안 몸을 담았던 공작원 출신이다. 그의 책을 보도한 '내일신문' 2006년 11월 1일자 기사에 따르면, 청와대 수석보좌관, 장관, 장성, 국회의원, 대기업 최고경영자에 이르기까지 남(한국)의 '지도층 인사'들이 자발적으로 중앙정보국의 현지협조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들은 중앙정보국 한국지부 공작원들과 만나는 것을 자기의 신분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삼고 있으며, 청와대의 대통령 책상에 올라가는 비공개보고서를 중앙정보국 한국지부 공작원에게 통째로 갖다 바치면서 자기의 정보가치를 입증하려는 충격적인 사례도 있다는 것이다.

남(한국)에서 비밀공작을 벌이는 미국의 국가정보기관은 국무부와 직통하는 주한미국대사관 정치과, '지역조사과(ORS)'라는 위장간판을 내건 중앙정보국(CIA) 한국지부, 그리고 국방부 산하의 국방정보국(DIA) 한국지부이다. 법무부 산하의 연방수사국(FBI)도 남(한국)에 공작원을 파견하여 사법기관의 배후에서 움직이지만, 지부를 두지는 않았다.

주한미국대사관 정치과와 중앙정보국 한국지부는 주한미국대사관에 자리잡고 있고, 국방정보국 한국지부는 용산 미국군기지에 자리잡고 있다. 세 정보기관의 책임자들은 금요일마다 용산의 미국군기지 영내에서 연석회의를 갖는다. (신동아 2001년 9월 호)

중앙정보국 한국지부에는 평시에 46명의 인원이 배치되는데, 대선국면 같은 특별한 시기에는 인원이 보강된다. 주한미국대사관 정치과에는 정치참사 한 명, 1등 서기관 세 명이 배치되어 있고, 그 밑에 실무진을 두고 있다.

주한미국대사, 부대사, 정치참사는 서울 정동에 있는 대사관저로 남(한국)의 각계인사들을 불러들여 오찬이나 만찬을 베풀거나, 서울 시내에 있는 호텔식당에서 만나거나, 주말에 용산 미국군기지 영내에 있는 골프장에 불러들여 골프모임을 갖는다. 주한미국대사 벌쉬바우(Alexander Vershbow)는 2007년 대선후보들 가운데서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후보만 빼놓고 주요한 대선후보들을 직접 만났다. 그는 접촉대상자와 면담을 마치고 대화보고(Memorandum of Conversation)를 작성하여 워싱턴의 상부기관에 보고하곤 한다. (신동아 2007년 8월 호)

2007년 11월 2일 벌쉬바우는 민주당 대선후보 이인제를 대사관저에 불러 오찬을 베풀면서 "미국 대선과 달리 한국 대선은 콤팩트하게 진행돼 매우 흥미롭다"는 말을 던졌다. 벌쉬바우는 그 자리에서 남(한국)의 대선이 흥미롭다는 말을 두 차례나 하면서, "많은 관심을 갖고 신중하게" 남(한국)의 대선을 보는 중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2007년 11월 2일) 지난 시기의 대선공작보다 더 맹렬하게 대선공작을 벌이고 있음을 암시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남(한국) 언론은 "미국이 이전에 비해 훨씬 더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태도로 정보수집에 임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고 보도하였다. (신동아 2007년 8월 호)

주한미국대사는 남(한국)의 정계, 관계, 재계, 군부, 언론계, 학계, 종교계 등 '지도급 인사'들을 감시하는 이른바 '잠재적 지도자 신상정보보고공작(PLBRP, Potential Leader Biographic Reporting Program)'을 벌이는데, 1년에 네 차례씩 수정, 보완하여 국무부에 정기적으로 보고한다. (이흥환 편저, '미국 비밀문서로 본 한국 현대사 35장면', 151쪽) 비밀해제된 1970년대의 잠재적 지도자 신상정보보고자료 중 극히 일부내용이 남(한국) 언론(신동아 2000년 1월 호)에 보도된 적이 있다.

주한미국대사관 정치과 서기관을 직접 대담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그는 민주노동당의 활동을 "의미 깊게 지켜보고" 있으며, 민주노총의 시위현장에 자주 나가 보거나 노동문제의 현안을 살펴보면서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월간 말, 2004년 6월 16일) 해마다 하와이에서는 주한미국대사관과 주한미국군사령부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연례행사가 벌어지는데, 그 행사에 불려 가는 사람들은 남(한국)의 언론인들이다. 주한미국대사관 정치과, 중앙정보국 한국지부, 그리고 국방정보국 한국지부가 언론공작을 매우 중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다섯 해마다 남(한국)에 '대선바람'이 불면 대선후보들 만큼 분주한 미국인 세 사람이 있는데, 주한미국대사, 중앙정보국 한국지부장, 국방정보국 한국지부장이 그들이다. 그들은 남(한국)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차단하면서 은밀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들의 행동은 명백하게 대선개입 비밀공작이다.

워싱턴의 제국주의반동정권은 유럽연합이나 일본 같은 하위동맹국들에서 실시되는 대통령선거나 총리(수상)선거에 개입하는 노골적인 비밀공작을 벌이지 못한다. 만일 선거개입공작이 드러날 경우 하위동맹국의 반미감정을 자극하여 동맹관계가 손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한국)의 대선에는 마음대로 개입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남(한국)에는 미국 공작원을 간첩죄로 처벌할 형법규정이 없을 뿐 아니라, 국정원, 경찰, 검찰 상층부에도 저들의 공작망이 침투해있기 때문에 그러하다. 이러한 변태적 현실은 제국주의반동정권의 지배를 받는 신식민주의체제에서 생겨난 것이다.

워싱턴의 제국주의반동정권이 남(한국)의 2007년 대선에 개입하였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물증은, 2006년 8월 29일자로 작성된 '디(D)-47 정국동향'이라는 제목의 정보문서이다. 2007년 3월 30일 방송위원회 비공개회의에 출석한 신현덕은 그 문서를 보고 백성학이 미국 스파이라는 의혹을 느끼게 되었다고 진술하였다. (신동아 2007년 5월 호) 2007년 1월 12일 남(한국) 검찰이 배영준이 경영하는 유에스아시아 상무개발 한국지부 사무실을 수색하여 압수한 문서들 가운데는 '디(D)-47 정국동향'의 영어번역본이 있다.

백성학은 자기의 대화가 담긴 육성녹음 녹취록에서 "나 지금 자료가 한 댓 군데서 수집이 돼. 이걸 최종정리를 하는 게....영어번역하는 거는 우리 저 15층(배영준의 유에스아시아 한국지부 사무실을 뜻함-옮긴이)에서 다 정리를 해 가지고...(줄임) 배 사장이 두 군데 받는데 있고 내가 세 군데 받는 데...해 가지고 분석을 해. 우리가 일단 리스크린(rescreen, 검토라는 뜻-옮긴이)을 해서 정리가 돼서 올라간다고. (줄임) 상당히 지금 반응이 크지"라고 말하였다. (기독교방송 특별취재반 2007년 3월 26일) 이러한 정황을 살펴보면, 롤리스의 현지협조자들이 정보문서를 영어로 번역하여 국방정보국 한국지부에 넘기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의 정보문서는 '차기 정권 창출 관련'이라는 소제목 아래 '여권 대선후보 무력화'와 '야권 대선후보 약점 확보'에 관한 정보가 있다. 그 문서는 "2007년 대선에서 중도성향의 변화와 개혁, 추진력을 겸비한 사람이 대통령 후보로 가장 본선경쟁력이 있다"고 지적하고, 당시 한나라당의 대선후보로 나선 이명박, 박근혜, 손학규 세 사람 가운데서 이명박이 "중도세력의 표를 결집시킬 인물로 가장 적합하다. 반노 반좌파 구국연합 성격의 정치운동조직 탄생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Ohmynews, 2007년 7월 24일) 롤리스의 현지협조자들이 2007년 남(한국) 대선에서 수구반동세력의 승리를 논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롤리스의 현지협조자들이 위의 정보문서를 작성한 때로부터 한 해가 지난 뒤에 대선국면은 매우 달라졌다. 주목하는 것은, 그 문서를 받아보는 상부에서 일어난 내부변화이다. 럼스펠드는 2006년 11월 8일 국방장관 자리에서 물러났고, 롤리스는 2007년 7월 6일 부차관 자리에서 물러났고, 체니는 부통령 자리를 지키긴 하였으나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이전만큼 힘을 쓰지 못하는데 요즈음은 심장병이 도지는 바람에 병원을 들락날락한다. 이처럼 딕 체니(부통령)-도널드 럼스펠드(장관)-로월 재커비(국방정보국장)-리처드 롤리스(부차관)로 이어지는 국방부 공작체계가 교체되는 기회를 틈타서 콘돌리자 라이스(장관)-크리스토퍼 힐(차관보)-토머스 핑거(정보조사국장)-알렉산더 벌쉬바우(주한미국대사)로 이어지는 국무부 공작체계가 한(조선)반도 정책의 집행권을 틀어쥐었다.



2007년 대선에서 국방부 공작체계는 수구반동정당이 내세운 대선후보를 당선시키려고 생각하였을 것이며, 그와 달리 국무부 공작체계는 중도개혁정당이 내세운 대선후보를 당선시키려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또한 양측은 자기들끼리 약속이나 한 듯이 그 두 공작체계는 진보정당이 내세운 대선후보의 지지율 상승을 저지하려고 하였을 것이다. 이처럼 두 갈래의 공작체계가 서로 다른 생각을 하였으므로, 2007년의 대선국면에서는 예측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게 뒤엉키면서 돌발변수들이 튀어나와 판세를 바꾸는 현상들이 속출하였다. 물론 수구반동정당의 대선후보와 중도개혁정당의 대선후보 가운데서 차기 대통령을 선택하는 2007년 대선구도의 최종결정은 부쉬가 주재하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양측의 논란 끝에 내려졌을 것이다. (2007년 12월 8일 작성)


12월19일 대선전 과정과 결과가 미국 공작활동대로 그대로 진행해왔음을 확인됨

여기서 대한민국 대형 언론사와 공영방송사와 민영방송사 다 하나같이 미국의 대선 공작 방향에 맞게 움직였다라는 사실 이는 달리말하면 대한민국만의 목소리를 내는 방송사나 언론사는 없었다라는것이다

그러니 대한민국이 지금 모든 난제가 그들의 책임이다라는것이다 서민들만 그나마 아둔한죄외에는 책임이 없지요 이들의 기득권 세력들이 책임이 부여되는것이다



이러고도 대한민국이 온전하다고 생각하나 개,노예 잡탱이들아 2007/12/28 14:18:08


동맹을 하드라도당당한 동맹을 하라 말로는 동맹 실제는 개,노예의 하수인에 불과한 동맹 그러나 동맹을 외치는 자들이 시대의 역사의 위선자이고 가증스러운 짐승이고 죄를 받아야 할것이다

자신의 것도 지키지못하면 뭐 국민을 위한다고 경제를 살린다고 미국이 잘못 걸어가면 지적해주는것이 동맹인것이다 그래야 양국이 상생하고 발전하는것이다 이것이 동맹의 원칙이다 그런데 그대들은 동맹이아니라 나는 개보다도못한 짐승이다라고 표현한것과 같다


2007년 4월 12일 (목) 14:37 뉴스메이커

[포커스]美, FTA 최종 타깃은 중국이다


한국 이어 일본과도 체결 요구… 동북아전략 궁극 목표는 ‘중국 견제’

동북아시아는 과거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역학구도로 빨려들고 있다. 한·미FTA가 불러온 새로운 지평이다. 한국은 중국과 일본 사이의 샌드위치 신세에서 동북아 FTA 허브로 부상하고 있다. 하지만 한·미FTA는 시작이다. 한국은 아세안, 유럽연합(EU), 중국과도 FTA협상 중이거나 협상계획을 갖고 있다. 일본은 미국을 회피하면서도 호주와 인도 그리고 중국 주변국과 FTA협상을 꾀하고 있다. 중국을 포위하기 위한 전략이다. 미국은 중국 포위전략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일본과 FTA체결을 요구하고 있다. 한반도 주변 국가들이 동시다발적으로 FTA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동북아질서 중심축 군사서 경제로

한·미FTA가 체결되기 전까지 동북아 정세는 군사 중심으로 이뤄졌다. 동북아 한·중·일 3국의 질서는 중국 대(對) 미국을 중심으로 한 중국의 대항세력으로 존재해왔다. ▲ 한·미 동맹강화 ▲ 한·일 유대관계 공고화 ▲ 미·일 동맹의 돈독화 ▲ 일본의 군사대국화 등이 그 요체다. 동북아 질서의 중심축이 군사에서 경제 중심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경제도 과거 미국이 주도하는 ‘다자간 규범’에서 FTA 체결국 사이의 ‘1 대 1 규범’으로 근본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 GATT(관세무역일반협정)·UR(우루과이라운드)·WTO(세계무역기구) 등 다자간 협력체제의 역할은 어느 정도 축소될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동북아시아에서 미국과 처음으로 FTA를 체결했다. 그것은 미국의 전략적 선택이었다. 외교통상부의 한 관계자는 “한·미FTA 속에는 중국을 견제하고 일본을 자극하는 동시에 한국의 친중·친북노선에 제동을 걸겠다는 메시지가 포함되어 있다”고 말했다.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도 “미국이 만만한 한국을 지렛대로 이용하는 것”이라고 동조했다. 그런데도 새로운 한·미관계가 안보·경제 복합동맹으로 한층 강화시킬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앞으로 동맹개념도 군사보다 경제가 더 강조될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기존 동북아 질서를 흔든 것은 중국의 부상이다. 중국은 용광로다. 게다가 중국은 민족주의, 즉 중화주의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중국의 패권국화’ ‘중국의 위협론’이 그 기저에 깔려 있는 것이다. 미국 네오콘들은 미국의 군사적 힘을 바탕으로 미국식 민주주주의를 확대시킬 전략을 구사해왔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의 실패와 중간선거에서의 패배 등 국내외 사정으로 동아시아 전략의 수정이 불가피하게 됐다.

수정된 전략의 이론적 토대는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의 외교론이다. 키신저 전 장관은 “중국의 세계 강대국 부상은 불가피하다”면서 “그것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것도, 해야 할 것도 없다”고 말했다. 키신저 전 장관은 철저한 ‘현실주의자’로 통한다. 이상주의에 바탕을 둔 상호주의보다 냉정한 힘과 현실을 바탕에 놓고 세계질서와 국제관계를 본다. 이를 ‘키신저의 지정학’이라고 일컫는다. 중국의 실체를 인정하고 이에 대응하자는 논리인 셈이다. 이를 위해 경제적으로 중국을 포위하고 미국 주변국과 군사적 연대를 강화하는 게 ‘키신저의 지정학’의 핵심이다.

“만만한 한국 지렛대로 이용한 것”

미국의 동북아 전략의 핵심은 중국패권화 차단이다. 특히 중국이 눈부신 발전, 일본의 군사대국화 등으로 인해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안정적 주도권을 유지하기 쉽지 않게 된 것이다. 다자간 규범 속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더욱 약화될 수 있다는 의미다. 한 학자는 “미국은 다자간 구도를 통해 세계 질서를 유지하겠다는 전략을 포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이 주도한 도하어젠다(DDA)에 미국이 불참한 것도 이런 흐름을 반영하는 것이다. 한 학자는 “다자간 공동규범에서 미국은 자국에 절대 유리한 조건을 내걸기가 어렵다”면서 “그러나 1 대 1로 협상하는 FTA협상은 각개격파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미국의 FTA는 다자간 협상의 대체물이라는 얘기다. 미국의 힘이 떨어지자 미국이 중심이 되어 미국과 일본·한국을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지난해 중국의 대미 흑자는 1700억 달러를 넘었다. 올해는 1780억 달러를 상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중국은 이미 일본을 뛰어넘는 대미 최대흑자국이 됐다. 미국의 지난해 무역적자는 무려 7636억 달러에 이른다. 이 같은 악화된 무역수지는 미국의 재정적자로 이어졌다. 미국의 2006년 재정적자는 2470억 달러나 된다. 홍종학 경원대 교수(경제학)는 “달러가 세계의 기축통화가 아니면 국가파산을 선언해야 할 수준”이라며 “쌍둥이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달러화 평가절하 혹은 긴축정책 대신 대외통상압력정책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미국의 경제체제가 소비자 중심으로 움직이는 결과물이기도 하다. 이는 미국 경제성장의 취약 요인이다. 세계의 경제대통령이라는 벤 버냉키 미국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과 그린스펀 전 의장은 “장기적으로 재정적자는 심각한 문제”라며 “적자 해소를 위해 ‘조기에 의미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미국의 불량담보 대출이 확산되고 있는 것은 종전에 보지 못했던 미국 경제의 그림자다. 이런 재정적 부담을 안고 있는 미국 정부는 막대한 군사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군사적 경쟁을 피하면서 경제적 부담이 적을 뿐만 아니라 국가적 이득을 낳을 수 있는 FTA를 선택한 것이다. 국내의 정치적 불안정을 외교적으로 해결하고 경제적으로 중국을 견제하자는 것이다. 레스터 써로우 MIT 경영대학원 교수가 “중국이 대미 흑자만 1000억 달러 이상을 기록하고 있으나 이런 식의 일방적 구도가 영구적으로 이뤄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흐름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나 김상조 교수는 “FTA가 미국의 적자 해소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면서 “오히려 세계 경제의 불안정성을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쌍둥이 적자 해소 여부와 관계없이 이웃나라들이 미국 전략변화의 부담을 떠안게 될 위험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김상조 교수는 “경제가 미국·유럽연합·아시아로 3극화하면서 다자간 협력체제에서 미국이 일방적 이득을 취할 수 없다”면서 “그러나 1 대 1 협력체제인 FTA에서는 미국의 우월한 입장이 고스란히 반영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FTA는 미국의 이득을 위해 ‘이웃나라에 부담을 전가(Begging the neighbor)’는 데 유효한 수단이라는 얘기다. 장하성 캠브리지대 교수는 “미국은 자유무역을 위장한 보호무역을 하는 나라”라고 규정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들 경제강국은 자신의 부담을 경제적 약자에게 떠넘기는 게 관행으로 되었다. 1980년 중반에도 미국의 쌍둥이 적자 해소를 위해 한국 등에 개방 요구를 강화하고 독일과 일본 통화의 평가절하를 요구했다. 그런 의심을 이번에도 지울 수 없는 것이다. 이를 ‘요동치는 19세기(Roaring 19’s)’의 저자(스트리그리트) 이름을 따 ‘스트리그리트 의심’이라고도 한다.

주변국과 연대 강화 중국 포위

이웃나라에 부담을 떠넘긴 대표적인 예는 1979년 동아시아 경제환란을 낳았던 IMF 위기. 미국의 조지 솔로스가 중국의 부상을 차단할 목적으로 홍콩 달러를 대량 매입했다.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던 일본이 단기 채권회수에 들어갔다. 기업 건전성이 취약했던 한국·인도네시아 기업들이 줄도산을 맡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IMF의 인증제도’는 철저히 적용됐다. ‘개혁’을 담보로 IMF의 돈을 끌어다가 위기를 넘겨야 했다. 이 과정에서 IMF의 규범 즉 ‘글로벌 스탠더드’가 침투하게 된 것이다.

물론 미국의 최종 목표는 일본과 FTA를 체결하는 데 있다는 게 일반적 분석이다. 일본은 늘 ‘2등 효과’를 누려왔다. 그럼에도 국제사회의 공헌도는 크지 않았다는 게 미국의 시각이다. 일본과 FTA를 체결하는 것은 곧 동북아 질서의 핵심인 중국을 견제하는 효과가 크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마중물(Pumping Water)’이 필요했다. 그게 바로 한·미FTA다. 한국은 미국의 리트머스 시험지다. 한국의 입장에서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경제적 규모에서 일본과 비교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일본과 이웃하고 있다. 본질적으로 미국이 매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일본도 즉각 눈치를 챘다. 미국 대신 한국과 FTA를 체결하자며 손짓하고 나섰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일본도 자신의 경제적 부담을 경제력이 약한 이웃나라에 떠넘기겠다는 뜻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김상조 교수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면서 “미·일FTA 체결은 곧 일본 제조업에 미국 안방 시장을 내주는 꼴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꽃놀이패가 된다. 특히 한·미FTA에서 개성공단의 임가공 제품을 한국산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 것은 다행이다. 미국화의 여지를 둠으로써 대중외교의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것이다. 한 학자는 “북미관계 개선은 북한 핵이 대중견제용 카드로 사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를 했다.

한·미FTA에 시작된 세계경제 질서 재편의 성공 여부는 결국 한국 경제의 성공 여부와 직결된 측면이 강한다는 게 일반적 분석이다.

<김경은 기자 jjj@kyunghyang.com>


“전 세계 미군 전력 60% 美 태평양사령부로 이동 중”

● 항공모함 11척 중 6척 이상 상시 배치
●최신예 전폭기 F-22 랩터 40대 이상 실전배치
● “日 MD 방어망 구축 여부에 따라 北 선제공격 시점 앞당겨질 수도”

2007-11-29 오후 3:25:51 [ 고동석 기자 ]



‘당근과 채찍’이라는 미국의 대북 양면적인 강온 전략이 서서히 실체를 드러내고 있는 것일까. 미 부시행정부는 북핵 6자회담의 결과물인 북한 영변 5메가와트 핵발전소의 불능화 해체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하면서 한편으로는 유사시 한반도 군사충돌에 대비해 미군 태평양사령부로 전 세계 미국 전력을 재편, 전략 무기들을 속속 태평양사령부로 집결시키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미국의 강온 전략 이면에는 그 목표와 대상이 북한 보다는 중국에 맞춰져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핵항모 엔터프라이즈호가 호위 구축함과 지난 10월 4일 중동 페르시아만을 항해하고 있는 모습. 미 해군은 전력 증강을 재편에 발맞춰 보유 중인 항공모함 11척 중 6척을 미 태평양사령부로 배치할 계획이다. ⓒ미해군


美 태평양사령부 전력증강 왜?

미 태평양사령부 대니얼 리프 부사령관은 지난달 2일 워싱턴타임스(WT)와의 인터뷰에서 “미군은 한반도와 대만해협에서의 군사적 충돌에 대비해 태평양군사령부 관할지역에 폭격기, 군함, 잠수함 등 전략무기의 실전 배치를 증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리프 부사령관은 “태평양사령부가 대대적인 재편에 착수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그가 대략적으로 밝힌 미 태평양사령부의 전력 증강 재편 계획은 △군함, 잠수함, 전략폭격기 등 전략무기 괌·하와이 추가 실전배치 △실전 개념의 군사훈련 확대 △동북아 동맹국과 긴밀한 협력 유지 및 주둔 미군기지의 유연한 전술적 사용 증대 등이다.
리프 부사령관은 이러한 전력 재편의 목표에 대해 “한반도와 대만해협에서 군사적 충돌이 발생했을 경우 투입될 군 전력을 강화하고 전략적 융통성을 부여할 것”이라며 “이 지역은 이와 같은 전략적 유연성을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미 태평양사령부의 전력 증강 재편에 발맞춰 미 해군은 최근 하와이호와 텍사스호, 노스캐롤라이나호 등 최신예 버지니아급 공격용 핵잠수함 3척을 단계적으로 2009년까지 태평양함대 관할 지역으로 배치하고, 2010년까지 대서양에 배치됐던 잠수함 6척을 추가로 이동시킬 방침이라고 밝혔다. 항공모함 11척 중 적어도 6척 이상을 태평양에 상시 배치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대서양 연안의 미 해군 잠수함 전력의 20~30% 가량이 태평양사령부 지역으로 편입되는 것이다. 이밖에도 핵잠수함 18척을 비롯해 미 해군 전체 잠수함 전력의 60%를 태평양사령부에 배치했다.

미 태평양사령부의 전력 증강에는 공군 전력 역시 예외가 아니다. 미 공군은 알래스카에 스텔스 기능을 보유한 최신예 전폭기 F-22 랩터 40대를 올 8월부터 내년까지 알래스카 엘멘돌프 공군기지에 배치할 계획이다. 엘멘돌프 공군기지에서 운용할 F-22의 이동 배치가 완료된 뒤에는 괌 앤더슨 공군기자와 오키나와 카데나 공군기지에 추가로 전진 배치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니얼 리프 부사령관의 인터뷰 이후 지난 11월 5일 로스엔젤리스급 핵잠수함들이 속속 미 태평양지역으로 이동 배치됐고, 다음날인 6일 항공모함 도널드레이건 호가 하와이로 이동했다. 항모 아브라함 링컨 호 역시 같은 시기 캘리포니아 남부 태평양 연안 지역에서 실전에 가까운 훈련을 벌이고 있었다. 지난 8월에는 키티호크 항모전단이 태평양에서 일본, 호주 해군과 더불어 대대적인 합동군사훈련을 전개했다. 지난 2005년부터 미국은 태평양 지역 동맹국과 더불어 대규모 해 ·공군 합동 실전훈련을 해마다 실시하고 있다. 이처럼 언제부터인가 미국의 군사 안보 전략은 그 중심추가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이동하고 있다. 문제는 태평양 지역에서 해마다 실시되고 있는 미국 주도의 대규모 군사훈련의 목표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 대상은 바로 중국과 북한이다.

지난 10월 13일 미국과 일본은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에 따라 일본 근해 해상에서 실전모의훈련을 한데 이어 지난달 5일부터 16일까지 또다시 대규모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했다. ‘예리한 칼(keen sword) 2008 훈련’으로 명명된 미·일 군사훈련은 육해공을 동원해 입체적인 실전모의훈련이었다. 이 훈련에는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호주 등 7개국 참가했고 전체 전력은 2만 2500명의 병력과 군함 100척, 항공기 450대를 투입하는 만만치 않은 규모였다. 중국과 한국이 이 훈련에 참가하지 못한 것은 전적으로 북한의 반발이 예상됐기 때문이다.

한국국방연구원의 박성곤 연구위원은 “미국은 군사 안보 전략 차원에서 전 세계 미군 운용을 전략적 유용성을 기초에 둔 절대적 군사적 우위를 점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태평양사령부로 전력을 집중시키는 이면에는 중국을 겨냥한 것이지만 북한은 부수적인 핑계거리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박 연구위원은 “미국은 6자회담과 북핵 불능화 작업이라는 평화적 협상 노력을 벌이는 한편 항상 한반도와 대만해협에서 유사시 군사 충돌에 대비 태세를 갖추기 위해 실전훈련을 벌이고 있다. 태평양사령부로 전 세계 60%의 미군 전력이 배치되고 있는 것은 북한 보다 가속화 되고 있는 중국의 군사력에 대한 대비라고 봐야 한다. 동북아 지역에서 전쟁의 시발점이 대만이 됐든 한반도가 됐던 결과적으로 미국과 중국의 충돌이 불가피해진다. 미국이 태평양사령부로 전력 증강을 서두르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3월 7일 한 무리의 항모 전단이 아라비아해를 벗어나 태평양사령부로 이동하고 있다. 상공에서 항모전단의 조타수 역할을 맞은 HH-60H 헬기 탑승자가 항공모함을 쳐다보고 있다. ⓒ미해군


전략적 유연성과 미 국방부 QDR

미국의 대외 안보 전략은 2006년 2월 새롭게 발표된 ‘4개년 국방전략보고서(QDR)’과 같은 해 3월에 실체를 드러낸 ‘국가안보전략서(NSS)’에서 극대화되고 있다. QDR(Quadrenial Defense Review)은 미 국방부가 예산안과 함께 매년 4년마다 의회에 제출하는 군사전략을 담은 국방정책보고서이다. 이 문건의 핵심 내용을 살펴보면 북한과 이란 등 잠재적 적대국가들의 대량살상무기(WMD)가 미국에 직접적인 군사위협을 제기하지 않더라도 초(超) 국가적 위협으로 자라나기 전에 무력 동원을 해서라도 분쇄시켜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모든 군사 전략이 테러와의 전쟁의 연장선상에서 단기전에서 장기전으로 이른바 미 부시 대통령이 지목했던 불량국가(rogue state)들로 타깃이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2006판 QDR은 북한을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했거나 추구하는 다수의 잠재적 적대국 중 하나로 규정하고 있다. 미국은 냉전시대와 달리 적성국가와 단체들에 대해 협상을 통한 억지수단이 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정 아래 양날의 칼처럼 ‘채찍과 당근’이라는 압박과 협상이라는 이중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또 이들 적성국들이 보유한 대량살상무기 위협을 해체하는 예방적 차원의 평화적 수단과 노력이 실패로 돌아갈 경우, 필요시 즉각적인 무력 사용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2006년판 QDR은 3대 목표로 수정됐는데 △미국 본토 방어 △테러와의 전쟁에서 우위 유지 및 비정규 작전 수행 △재래식 전쟁의 전개와 승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재래식 전쟁 목표와 관련해서는 동시 발발한 2개의 전쟁 중 하나의 전쟁에서 속전속결로 적대 정권을 제거하고 그 군사력을 괴멸시킨다는 전략을 세워두고 있다.

대테러전쟁의 장기화를 염두에 둔 미국의 군사전략은 특수부대전략을 강화하고, 상시 감시체제 구출을 위해 프레데터와 글로벌호크 등 무인항공기 운용시스템을 재편성하는 동시에 전략적 유연성에 기초한 최첨단 무기 증강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를 테면 △미 해군 특수부대(SEAL) 강화 △2010년까지 F-22 랩터 구매 연장 △매년 최신형 잠수함 2대씩 건조 △특수기동군 15% 증원 △그린베레 대대 3분의 1 증원 등을 꼽을 수 있다. 특수전부대와 공해상에서 최첨단 기습 타격 능력으로 적국의 저항 기반을 꺾어놓는 대테러전술의 일환에서 비롯됐다고 할 것이다.

이는 미국의 전쟁 수행 방식이 달라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반도 전쟁계획을 상정한 작전계획 5027에서 엿볼 수 있듯이 이전의 방식은 전쟁 초기에 대규모 공습 후에 군대를 증파해 육지에서 적군을 섬멸하는 식으로 육군이 최종적인 전쟁의 종지부를 찍는 형태였다. 그러나 현재 미국의 군사 전략은 내부 침투에 따른 시설 파괴하는 특수전과 정밀기습타격 형태의 공습 위주로 ‘전략적 유연성’을 강조하는 형태로 공군과 해군의 정밀 기습 타격 전략으로 바뀌었다. 이 전략적 유연성을 처음으로 언급하고 기초를 닦았던 장본인이 바로 럼스펠드 전 미국 국방장관이다.

워싱턴포스트 밥 우드워드는 그의 저서 ‘공격 시나리오(Plan of Attack)’를 통해 지난 2001년 9·11테러 이후 럼스펠드가 펜타곤 참모들에게 한반도 전쟁 작계 5027의 전면적 수정을 지시했다고 밝히고 있다. 당시 럼스펠드는 펜타곤 참모들로부터 한반도 전쟁 작계를 브리핑 받은 뒤 “모기 한 마리 때려 잡으려고 쇠망치 75개를 그 땅(한반도)로 운반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고 한다. 그 결과 전략적 유연성을 바탕에 두고 한반도 유사시 군사 충돌에 대비한 작계계획 5027은 북한 김정일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한 전술적 변형이 작계 5028, 5029, 5030 등 여러 형태의 수정판 작계들로 나타났다. 이런 맥락에서 미 국방부는 상시 감시체제를 통한 긴급 공습 부대 증원을 위해 전 세계 86개 비행대대를 조직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장거리 공습 능력을 50% 향상시키는 동시에2025년까지 장거리 공습 침투 능력을 5배로 증강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미 공군은 스텔스 기능이 탑재된 최신예 전폭기 F-22 랩터 40대를 미 태평양사령부 산하 알래스카와 괌 공군기지에 전진 배치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미공군


부시 행정부 군사전략의 축 NSS

미 국방부가 의회에 제출하는 QDR은 전 세계 미군의 전략 무기와 부대 운용에 중점을 둔 보고서라면 조지 부시 대통령 명의로 발표되는 국가안보전략서(NSS)는 미국의 대외 군사안보의 나침반 같은 문서로 QDR의 상위 개념의 전략을 설정하고 있다.

지난해 3월 6일 발표된 NSS의 핵심 내용은 선제공격전략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전략은 대량살상무기(WMD)로 무장한 테러집단과 적대국들이 미국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기 전에 자기 방어 원칙에 따라 선제공격을 한다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NSS를 통해 북한·이란·시리아·쿠바·벨로루시·미얀마·짐바브웨 등을 대표적인 독재체제 7개국을 명시하고 있다. 이들 중 이란과 북한을 미국 안보의 최대 위협 국가로 지목하고 있다. 미국은 이 두 나라의 독재체제 종식과 핵무기 보유 위협에 미국과 동맹국을 보호하기 위해 ‘선제공격’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선제공격 전략을 재확인하고 있다. 선제공격전략에 대해 부시 행정부는 “우리의 적들이 이런 적대적인 행동하는 것을 사전에 예방하거나 저지하기 위해 미국은 필요하다면 자위권을 행사하는 차원에서 선제행동을 할 것”이라고 NSS를 통해 밝히고 있다. 이는 적성국의 위협이 막연히 다가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한편으로 “우리가 선호하는 것은 비군사적인 조치들이 성공하는 것이며, 어떤 나라도 공격을 위한 구실로 선제공격을 사용해서는 안 될 것”이라며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는 한 쪽에서 선제공격을 위한 실전모의훈련을 실시하면서 비군사적인 조치 차원에서 평화적인 협상 노력도 기울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특히 2006판 NSS보고서에 담긴 북한 관련 내용은 “북한은 핵확산 위협을 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미국 달러화를 위조하고 마약을 거래하며 군사력으로 한국을 위협하고 미사일로 주변국을 위협하고 있다. 북한 주민들을 짐승처럼 다루면서 굶기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여기서 미국은 북한이 선제공격 대상임을 애써 숨기려 하지 않는다.





지난 10월 24일 로스엔젤레스급 핵잠수함 한 척이 일본 요코스카 주일미군 해군기지에 정박 중이다. 미 해군은 공격형 핵잠수함 6척을 2010년까지 단계적으로 태평양사령부로 전지 배치할 것으로 알려졌다. ⓒ미해군


MD 방어망 구축하기

전 세계 미군 전력이 태평양 지역으로 집중되면서 미국의 미사일 방어계획(MD)도 잰걸음을 이어가고 있다. 미 국방부 산하 미사일방어국(MDA)은 지난 10월 27일 오전 하와이주 카우아이섬 인근 해상에서 스커드형 미사일 요격실험을 실시했다. 북한 스커드미사일을 겨냥한 것이다. 이날 MD 실험은 하와이 제도 중 네 번째로 큰 카우아이섬 인근에서 벌어졌다. 군함에서 테스트용 스커드미사일을 쏘아 올렸다. 몇 분 뒤 섬에서 미 육군 6방공포여단은 요격미사일을 발사했고 태평양 상공에서 정확하게 명중 격추됐다.

미국은 스커드미사일보다 고도가 높아 패트리어트 미사일로 격추하기 어려운 중국과 러시아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대비해 고고도방공시스템(THAAD)을 이용한 격추 실험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지난달 6일에도 태평양 하와이 인근 100마일(161㎞) 상공에서 2기의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요격하는 실험을 벌였고 동시 격추에 성공했다.

이날 요격 실험에 성공한 뒤 MDA 리처드 레흐너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이번 실험에서 두개의 표적 탄도미사일이 정확하게 동시에 요격되지는 않았다 해도 거의 동시에 비행 중이었고 요격이 가해졌다”면서 “이번 실험은 지난 2001년 이후 총 32, 33번째 ‘명중에 따른 파괴(hit to kill)’ 방식의 요격이 성공을 거두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이번 실험은 적이 1발 이상의 미사일로 공격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작전상 매우 실제 상황에 흡사했다”며 “이지스 체계를 갖춘 미사일 구축함 ‘레이크 이리’호 승무원들이 물론 인지는 하고 있었지만 표적 미사일이 언제 발사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실험이 이뤄졌다”고 요격 성공을 자평했다. 미국이 MD 방어선을 구축한 이래 이지스 체계는 일본의 정밀 전자기술에 힘입어 수십억 달러를 투입해 개발한 요격 시스템이다. MDA는 이지스 체계 탄도미사일 요격 시스템을 태평양 지역 15척의 구축함과 3척의 순양함에 우선적으로 장착하는 첨단화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 결과 미국이 보유중인 18척의 미사일 요격용 이지스함 가운데 16척이 태평양에 배치돼 있다.

미국의 MD 방어망 구축과 전력 증강에도 북한과 이란은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 2006년 2월 6일 라이언 헨린 미 국방부 정책담당 수석부차관은 “북한의 핵무기와 운반수단인 탄도미사일 개발에 대응, 미국이 동북아 지역에서 탄도미사일뿐 아니라 크루즈 미사일까지 포함하는 통합 미사일 방어망을 구축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그는 워싱턴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이같이 밝히고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단순한 공격태세가 아니라 방어와 기동력을 갖춘 균형 잡힌 타격으로 이뤄진 새로운 3각 전략을 구축하고 있다”면서 “미사일 방어 능력은 단지 미국만 보호하는 게 아니라 동북아 지역의 동맹국들에게 안보에 대한 확신을 심어줄 것이고 이것이 이 전략의 핵심”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미국과 일본의 MD 방어망 구축 노력에 북한은 지난달 13일 노동신문을 통해 “미 호전세력들의 군사적 패권 야망이 변하지 않았으며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책동이 날을 따라 더욱 노골화하고 있다는 것을 뚜렷이 실증해준다”고 강력 비난했다. 북한의 내각 기관지인 민주조선도 같은 날 “미국은 위협을 느껴서가 아니라 선제 타격 능력을 마련하기 위해 미사일 방위체계 수립에 광분하고 있다”면서 “문제는 미국의 이러한 군사 전략적 기도가 우리나라와 이란과 같은 반제 자주적인 나라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미국이 MD 구축이 결국 북한이나 이란을 선제공격하기 위한 발판 마련에 있다고 해석했다.

북한의 지적에 미국도 부인하지 않고 있다. MDA는 지난해 2007년 회계연도 예산안 보고서에서 북한과 이란의 장거리 탄도미사일의 성능개선을 지속적으로 추구하고 있고, 특히 북한은 핵능력을 보유하다고 지적했다. 당시 MDA는 “이에 대비하기 위해 미국은 향후 MD 체계 강화를 위해 지상요격 미사일을 알래스카 기지에 최대 20기, 캘리포니아 기지에 2기를 2007년에 추가 배치할 것을 권고했다. 또 요격용 미사일인 스탠더드미사일(SM-3) 24기와 이지스함에 탑재할 요격미사일 34기, 패트리어트미사일(PAC-3) 534기도 각각 추가 실전 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 역시 미국이 매번 실시한 탄도미사일 요격 실험에 높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11월 6일 MD 실험에는 일본 해상자위대 소속 구축함 콩고호 1척도 훈련에 참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일 양국은 지난 2006년 6월 23일 탄도미사일 공동 방어 분야에서의 협력 확대를 핵심으로 하는 협정문을 서명했다. 안보전문가들은 이 협정으로 미·일 양국이 21~27억 달러의 미사일 개발비용을 분담하게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일본 방위청은 2006년 12월 오키나와 카데나 미군 기지에 패트리어트(PAC-3) 미사일 24기를 배치하는 것을 필두로 2008년까지 일본 열도 내 항공자위대 관할 기지에 순차적으로 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2007년 말부터 해상자위대의 이지스함에 스탠더드미사일(SM-3) 실전 배치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군사적 결속이 강화되는 것에 대해 한국국방연구원 이규열 책임연구원은 “미군의 전력 배비상태를 태평양 중심으로 전환하여 총 전력의 60%를 태평양 지역으로 이동시켜 아·태 지역에 대한 군사적 장악 능력을 집중적으로 강화시키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거시적으로 중국의 군사력에 대한 견제 차원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한 안보전문가는 “미국의 대외 군사전략이 태평양으로 집중되고 있는 것은 그만큼 중동과 동북아 지역에서 안보 위협의 긴장도가 고조되고 있음을 의미한다”면서 “태평양 지역에서 미·일의 MD 방어망 구축이 제 모습을 갖춰가면서 북한과 이란에 대한 미국의 선제공격 시점도 그 만큼 빨라지고 있는 것은 아닌 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더불어 북한-시리아 핵 개발 커넥션을 주목하라고 덧붙였다. 그는 “부시 행정부 내에는 북핵 불능화 작업이 실패로 돌아가길 원하는 강경파들이 많다. 그들의 손에는 이스라엘 모사드가 전달해준 북한-시리아 핵 커넥션의 증거들이 들려 있다. 그들은 시리아 핵 의혹 시설이 이스라엘 전폭기에 의해 폭격될 때 북한 공습을 거론했다고 한다”며 “미국의 북한 공습 카드는 부시 행정부 내 전쟁 기획자들 사이에서 더 이상 딜레마가 되지 못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 25일 하와이 근해에서 전개된 ‘림팩 2006’은 한국과 미국, 영국, 호주, 일본, 캐나다, 칠레, 페루 등 8개국이 참가한 가운데 대규모로 치러졌다. 당시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006 환태평양훈련’(RIMPAC.림팩) 착수에 대해 “다국적 북침 전쟁연습이자 공화국에 대한 군사적 도발”이라고 비난했다. AP=Yonhap




美軍 2011년까지 3분의 1 재배치
[세계일보] 2007년 12월 21일(금) 오후 10:30 가 가| 이메일| 프린트
미국이 2011년까지 전체 병력의 3분의 1을 재배치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의 미군 재편안을 확정했다고 뉴욕타임스가 20일 보도했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2011년까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기타 새로운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미군 전체 병력을 7만4000명 늘린 54만7000명으로 유지하고 해외 주둔군의 재배치를 확정짓는 안을 승인했다고 군 관계자가 19일 밝혔다.

이번 재편안은 2004년 부시 대통령이 공식 발표한 ‘전 세계적 방어태세 재검토 계획’을 확정한 것으로, 냉전시대 서유럽과 동북아시아를 중심으로 배치된 해외 주둔 미군을 시대 변화에 맞게 감축하고 동유럽 국가 등에도 병력을 주둔시켜 새로운 전략거점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재편안에 따르면 미군 당국은 일본 가나가와현 자마기지를 ‘제1군단 전진사령부’로 개칭해 아시아의 핵심 작전 허브로 격상시켰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제1군단 사령부는 미 서부 워싱턴주 포트루이스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진사령부는 긴급 시 지휘 네트워크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된다. 전진사령부 사령관인 찰스 자코비 장군은 이번 기지 격상에 대해 “동맹국과 미군이 보다 밀접한 활동을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독일 주둔 2개 여단 병력은 당초 예정인 2011년보다 1∼2년 더 주둔시켜 1개 여단은 2012년에, 다른 1개 여단은 2013년에 철수시킬 계획이다. 이후 유럽에는 독일과 이탈리아에 각 1개 여단, 총 3만7000여명이 주둔하게 된다.

유럽 주둔 병력 감축 규모가 줄어든 것에 대해 리처드 코디 육군 부참모총장은 “미국의 안보 위협을 방어하기 위해 외국 군대와의 훈련을 유지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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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유럽연합 관계발전 전망 밝아
2007-03-31 오전 4:47:28


28일 중국주재 유럽연합(EU)대사 앤버는 중국인민대 법과학원에서 가진 연설에서 중국의 평화발전은 현대 국제정치구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변화 가운데 하나라고 지적하면서 중국의 미래와 중국‐유럽 관계 전망에 낙관을 표시했다. 앤버는 이날 연설에서 유럽은 중국의 제1대 수출시장이자 유럽도 대중국 투자가 가장 많은 지역이라며 갈수록 많은 중국인들이 유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연설에서 현재 유럽에서 유학하고 있는 중국인학생이 이미 10만명을 돌파했다면서 중국과 유럽은 고등교육과 과학연구 분야에서 중요한 협력계획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올해 1월 유럽연합과 중국은 새로운 파트너협력협정에 대한 담판을 가동하고 중국정부와 중국‐유럽 법학원, 중국‐유럽 지적재산권 협력, 중국‐유럽 비즈니스관리 양성훈련 항목 등 3가지 항목의 재정협정에 체결했는바 유럽연합과 중국의 협력이 한층 더 발전하고 있음을 상징한다고 말했다.
중국과 유럽 간의 ‘전략적파트너관계’에 대해 앤버는 상대방에 대한 기대에서 전략성이 집중적으로 구현된다고 강조했다. 앤버는 중국의 유럽에 대한 ‘전략적 수요’에 대해 시장개방, 기술, 투자 연구 등 측면이 포함되며 유럽의 경우 환경, 기후변화, 지역 및 국제의 평화유지 등 분야에서 중국의 전략적 협력이 필요한바 양측이 서로 의존하는 관계라는 것은 이미 밝혀진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독일 데일리미러는 24일자 기사에서 유럽연합과 중국 간의 관계를 다루면서 역사적으로 보면 유럽과 중국은 이미 3번째 만난 것으로 된다고 설명했다. 첫 만남은 16~17세기에 이뤄졌는바 당시 유럽은 중국에 대해 큰 흥미를 가졌으며 중국의 우질적인 물산에 놀란 유럽인들은 중국의 사상, 가치와 기술을 흡수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유럽을 야만적인 곳으로 보고 유럽의 역사와 성취에 대해 별로 흥미를 갖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어 신문은 유럽과 중국의 두번째 만남은 아편전쟁 가운데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쟁을 통해 서방의 우세를 뼈저리게 느낀 중국은 자신을 다시 정시하기 시작했으며 훗날 중국의 근현대사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유럽과 중국의 두차례의 만남은 정치 또는 문화의 평등과 상호이익 면이 부족했다고 주장했다.
기사는 이어 근년 들어 중국이 유럽을 바싹 따라잡음에 따라 중국과 유럽은 처음으로 동등한 위치에서 관계를 조정할 기회가 주어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신문은 다극적 세계와 다변적 무역은 양측에 모두 중대한 의의를 갖고 있는바 중국은 유럽대륙을 신세계 질서에 편입하는 견고한 교량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또 프랑스, 독일, 러시아, 중국 4국이 이라크전쟁에서 반전동맹을 결성한 것은 순간적인 협력으로 볼 수 없다면서 현재 국제체계는 근본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미국과 유럽은 내정과 외교 분야에서 점점 멀어져가고 있는데 반해 유럽과 중국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유럽연합 외교안보정책 수석대표 솔라나의 수석고문 로버트 큐브는 유럽연합을 포스트모더니즘의 모델이라고 설명한 적이 있다. 유럽연합은 국가간 충돌을 제거하고 평등한 세계를 창조하는 것을 그 목표로 내걸고 있다. 그런 면에서 중국의 인종주의, 영토확장 등에 대한 배척적인 태도 등 오늘날 많은 부분에서 유럽과 동질성을 보이고 있다.


인터내셔널 기자 허훈

뿌리깊은 적대감 양쪽관계 정체
에너지 문제 시장원리로만 안돼
미·중 부상속 러시아는 중요 카드
유럽연합(EU)은 러시아를 계속 옛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소련)으로 취급하고 있다. 하지만 두 대륙은 ‘아름답고 훌륭한 동맹’을 반드시 맺어야 한다.
난해 11월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유럽연합과 러시아의 정상회담은 실패로 끝났다. 유럽연합은 처음부터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자신들을 분열시킬 것’이라는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다. 결국 폴란드가 거부권을 행사해, 올해 1월 끝나는 양쪽 간의 제휴협력협정(PCA) 갱신 협상을 저지했다.
제휴협력협정은 1994년 서명됐으나, 체첸전쟁으로 1997년에야 발효됐다. 이 협정은 자유무역지역의 창설 등 경제·재정·사법 분야에서 상호 접근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 협정은 러시아의 경제상황, 절차의 경직성, 러시아 내부의 동요(체첸 사태, 부패, 인권 침해) 등으로 제동이 걸렸다. 특히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유럽 지도자들의 끊임 없는 불신이 협정 불이행의 가장 큰 원인이 됐다.
2003년 5월 상트페테르부르크 정상회담은 만족스러웠다. 15개 회원국은 러시아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시장경제의 지위를 부여했다.


» 지난해 11월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유럽연합-러시아 정상회의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당시 유럽연합 의장국인 핀란드의 타르야 할로넨 대통령이 대화하고 있다. 유럽연합과 러시아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으려던 애초 계획은 폴란드의 거부권 행사로 실패했다. 헬싱키/로이터 연합



2003년 말 상황은 바뀌었다. 유럽연합이 러시아의 인권문제와 세계무역기구 가입 등 다른 현안들을 연계한 것이다. 또 2004년 5월 유럽연합은 동유럽 국가들을 받아들여 25개국으로 확대됐다. 러시아는 이를 자국의 주변에 대한 비우호적 개입으로 해석했다.
오해의 시작은 냉전종식과 소련의 붕괴로 거슬러 올라간다. 러시아 사람들은 별다른 문제제기 없이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라는 이중의 충격을 받아들였다. 서구모델을 채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조화롭게 맞추는 게 목표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양쪽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의 벽은 점점 더 두터워졌다. 러시아 사람들에게 유럽연합은 경제적으로는 거인이지만 정치적으로는 소인에 불과했다. 반면 러시아는 자신들이 세계강대국이라고 자부하지만, 유럽인들이 보기에는 지역의 강자일 뿐이었다.
유럽연합의 신규 가입국들은 공산주의에 대한 쓰라린 경험을 공유한 채, 미국과 보조를 맞춤으로써 러시아와의 관계가 정체됐다. 협력은커녕 러시아를 방해하는 모든 것이 유럽에 좋은 것으로 여겨지고, 러시아인들은 최고의 적이 돼버렸다.
에너지협력은 러시아-유럽연합 관계의 애매모호함을 총체적으로 드러낸다. 유럽연합에게는 에너지의 안정적인 공급이 필수품만큼이나 중요하다. 하지만 러시아는 시장법칙에만 맡겨놓기에는 이 분야가 너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유럽인들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위기를 통해 에너지 안보에 대한 취약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지난해 11월 미국 리처드 루거 상원의원은 러시아가 ‘총 한방 쏘지 않고’ 유럽 경제를 마비시킬 수 있기 때문에, 러시아야말로 커다란 근심거리라고 단언했다.
유럽인들은 근거 없는 신화를 만드는 경향이 있다. 러시아와의 협력을 재개하려면 푸틴의 후계를 기다리는 게 올바르다는 식이 그것이다. 또 하나의 근거 없는 신화는, 옛 소련의 공화국들이 러시아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면 민주주의와 시장이 번영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그러나 러시아는 그들에게 필수불가결하고 인정된 협력자가 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유럽이 러시아의 가스를 필요로 하는 만큼, 러시아도 유럽의 자본을 필요로 한다는 생각도 하나의 신화에 불과하다. 그것은 러시아가 에너지를 시장법칙에만 맡겨두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 에너지 소비국과 생산국 사이에 엄연히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망각한 것이다.
유럽연합은 당연히 러시아를 약화시킬 능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미국의 지배력과 중국의 출현으로 영향을 받게 될 미래에, 러시아와의 협력이야말로 유럽연합이 내밀 수 있는 중요한 카드 중 하나라는 것이다.
니나 바쉬카토프/벨기에 브뤼셀대 교수


유럽의 홀로서기 "미국은 없다"
"필요한 건 악의 축이 아니라 관용의 문화"

2002-02-15 오전 10:11:39





북한ㆍ이라크ㆍ이란을 악의 축으로 지목한 부시 미국 대통령의 발언으로 미국과 유럽간의 반테러 공조체제에 균열이 드러나면서 오히려 유럽은 이슬람 국가들과의 유대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미국 주도의 반테러 공조체제에 맨먼저 반기를 든 유럽국가중 하나는 독일. 요시카 피셔 독일 외무장관은 지난 12일 터키 이스탄불에서 '문명과 하모니'를 주제로 최초로 열린 유럽과 이슬람 72개국 외무장관회담에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어떤 축이 아니라 관용의 문화"라며 부시의 악의 축 발언을 비판했다.

이 회담에서 유럽연합 의장국인 요셉 피쿠 스페인 외무장관은 "수백년에 걸친 이슬람 문화의 기여가 없었다면 유럽은 오늘날의 유럽이 될 수 없었을 것"이라며 유럽과 이슬람 국가간 공조를 강조했다.

이스탄불 회담은 유럽과 이슬람 문화권의 교차지점에 위치한 터키가 주도한 것으로 유럽연합 국가들과 이슬람 국가들의 높은 관심과 뜨거운 호응을 받았으며 이란과 이라크 외무장관도 참석해 워싱턴의 '일방적이고 군사적인 외교정책'을 비난했다. 나지 사브리 이라크 외무장관은 이 자리에서 터키에 미국의 대 이라크 군사공격에 참여하지 말 것을 호소하기도 했다.

이에 앞서 지난 10일 스페인 카세레스에서 열린 유럽연합 15개국 외무장관 회담 역시 미국에 대한 비판으로 격앙됐다. 이 회담에서 유럽국가 외무장관들은 이스라엘만을 두둔하는 부시행정부의 일방적인 중동정책과 이란ㆍ이라크ㆍ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부시의 표현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위베르 베드린 프랑스 외무장관은 미국의 흑백론적 외교정책을 비판하면서 팔레스타인 갈등의 책임은 일방적으로 공격적인 정책을 펼치는 이스라엘을 무조건 편들고 있는 미국에 있다고 지적했다.

베드린 외무장관은 또 세계가 중동지역의 평화정착을 위한 첫 단계로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해야 한다며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이를 위해 국민투표를 실시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베드린의 제안은 현실적으로 팔레스타인 과격파의 힘을 더욱 강하게 해줄 수도 있다는 회의에 부딪쳐 유럽연합의 결의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피셔 독일 외무장관은 "유럽은 중동의 바로 인접한 이웃으로서 중동지역의 평화문제를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며 "악의 축 발언은 우리를 더 이상 앞으로 끌고 나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페인 정부도 "미국이 지난해 테러 이후 너무 일방적으로 이스라엘 편을 들고 있으며 정치적인 해결책을 찾지 않고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유럽연합 외교담당 집행위원인 크리스 패튼은 "부시 행정부는 아주 절대적이고 단순화된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며 "세계의 유일 강대국이라 하더라도 무든 일을 혼자 처리할 수는 없다"고 경고했다. 패튼은 또 유럽인들이 자존의식을 높일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유럽연합 국가들중 미국과의 공조관계를 우선시하는 나라는 영국이 유일했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11일 대변인을 통해 '부시가 유럽 파트너들과 합의점을 찾고 있지 않다는 유럽 국가들의 비판은 적절치 않다'며 '테러와 대량살상무기와의 전쟁이 가장 우선 순위에 있다'는 부시의 견해를 전달했다.

영국을 제외한 독일 프랑스 등 주요 유럽국가들이 두 차례에 걸친 회담을 통해 밝힌 입장은 더 이상 미국이 주도하는 군사정책 위주의 세계질서에 따라가지 않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사실 유럽국가들은 부시가 지난 1월 29일 국회 연두교서에서 '테러와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며 확전을 시사한 이후 미국과의 외교관계를 고려한 탓인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나 부시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자 미국과의 이견을 노골적으로 표명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이슬람 국가들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지리적으로 인접한 중동지역에 대해서는 주도권을 행사하겠다는 의지가 표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부시 행정부의 외교정책에 반기를 드는 것은 전통적 우방으로 여겨졌던 유럽국가들 뿐만은 아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11일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 또한 이라크를 문제로는 보고 있으나 이라크에 대한 군사행동은 유엔 결의 하에서만, 그리고 최후수단으로만 가능하다'며 "러시아는 블랙리스트(악의 축을 의미) 작성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미국과 유럽간 외교정책에 대한 갈등과 관련해 독일의 FAZ(Frankfurter Allgemeine Zeitung)는 12일 '테러와의 전쟁이 붕괴를 재촉하고 있다'는 기사를 통해 '지난해 9월 11일 이후 부시 대통령이 주창해온 테러와의 전쟁은 반테러리즘에 대한 국제적 연대를 이끌어내는 데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FAZ는 처음부터 서로 적대국에 대한 밑그림이 다른 모스크바와 테헤란 베이징 델리 이슬라마바드 앙카라 리야드 파리 런던 등 모든 정부로부터 동의를 얻을 수 있는 정책은 불가능했다며, 지금은 테러에 대한 국제사회의 정의 통일과 대량살상무기를 통해 세계안정을 해치는 테러위협국가들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통된 인식이 선행돼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이영태/기자

독일사민당의 유럽통합 정책
독일사민당은 1925년 하이델베르크 당대회 강령에서 유럽연방공화국(Die Vereinigten Staaten von Europa)의 창설을 주장한 이래 언제나 유럽의 통합을 지향해 왔다. 민주주의 국가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유럽의 평화를 위해 결속해야 한다는 것이 사민주의자의 오랜 신념이다. 유럽공동체는 국제사회의 초석으로서 민주주의와 평화를 이룰 기회를 제공한다고 보는 것이다.
유럽 통합에 대한 사민주의자의 꿈
유럽공동체는 공동의 외교 정책을 통해서 평화를 정착시키고, 회원국가의 위상을 높이며, 강대국 사이의 충돌을 완화한다. 유럽공동체의 정체성은 군사력이 아니라 무역과 산업, 과학 기술과 환경 보호, 그리고 제3세계의 발전을 돕는 파트너라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유럽공동체는 유럽의 분열을 방지하기 위해 지역의 모든 민주주의 국가를 받아들이고 동유럽 나라들과 다양하고 밀접한 협력관계를 쌓아 나가야 한다.
사민주의자는 유럽공동체가 모든 민족의 문화적 정체성을 인정하고, 소수 언어와 문화를 존중하며, 모든 시민이 동등한 자유와 기회를 누리는 유럽연방공화국으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고 믿는다. 이를 위해서는 유럽의회의 위상을 높이고, 의회의 통제 아래 명확하게 규정된 책임과 권한을 가지는 유럽정부를 만들며, 유럽 차원의 경제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한다고 본다. 유럽 전체를 포괄하는 사회국가적 기본질서를 창출하려 하려는 것이다.
사민당 유럽정책의 목표는 공동의 안보 정책과 개별국가의 주권 및 영토를 존중하는 바탕 위에 전 유럽을 포함하는 평화질서를 정착시키는 것이다. 중부유럽과 동유럽 국가들이 급속한 민주화와 인간화 과정을 밟고 있는 것은 유럽 전체에 희망을 가져다주었다. 사민당은 이들 나라의 현대화 작업을 지원한다.
사민주의 유럽 정책의 목표
독일사민당은 유럽의회에서 사민주의 정파를 다수파로 만들기 위해 다음과 같은 정책 목표를 추구한다.
­ 사회정의의 기반 위에서 경제적 효율성을 추구함으로써 유럽 모델의 국제적 경쟁력을 확보한다.
­ 국가간 협력을 통해 환경의 무한 파괴를 저지하고, 시민의 건강과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한다.
­ 범유럽적 협력을 통해 국제 조직범죄에게서 시민의 안전을 지킨다.
­ 민족주의와 인종주의에 단호하게 대처하며, 모든 유럽인을 전쟁과 박해의 위험에서 해방시킨다.
­ 남성과 여성의 기회 균등을 이룬다.
독일 국민은 두 차례의 전쟁을 일으킨 어두운 과거 때문에 유럽의 통합에 대해 특별한 책임감을 느낀다. 더욱이 독일은 유럽의 중앙에 있기 때문에 이웃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의 영향을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강하게 받으며 독일이 이웃 나라에 미치는 영향도 다른 어떤 나라보다 강하다. 유럽에 독일처럼 많은 접경국가를 가진 나라는 달리 없다.
독일사민당은 유럽연합에서 독일의 이익을 대변하며, 유럽의 다른 사회민주주의 정당과 협력함으로써 사민주의 정책목표를 달성하려 한다. 독일은 유럽공동체가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민주주의와 복지를 실현할 수 있었다. 고립은 이 모든 것을 잃는 길이다. 유럽의 어떤 나라도 혼자의 힘만으로는 미래의 도전을 이겨낼 수 없다. 유럽연합이 독일을 필요로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독일도 유럽연합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 사민주의자의 신념이다.
범유럽적 고용 정책
사민당은 유럽연합의 다른 회원국 사회민주주의 정당들과 더불어 범유럽적 고용 정책을 추진한다. 실업은 사회적 불의며 경제적 낭비다. 일자리 만들기는 사민당의 가장 중요한 정책목표다. 사민주의자는 유럽연합이 실업과 싸우는 데 최우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믿는다. 예컨대 학교교육과 직업교육의 강화, 노동시간의 유연화, 세제 개혁, 중소기업 지원 등이 그 주요한 수단이 된다.
독일 경제와 이웃 나라 경제의 깊은 상호의존성은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유럽적 전략을 요청한다. 유럽은 국경을 넘나드는 교통 통신망을 요구한다. 낮은 임금과 열악한 근로조건으로 유럽이 세계와 경쟁할 수는 없다. 유럽에 필요한 것은 교육 투자와 혁신, 미래형 기술의 개발이다.
사민주의자는 유럽단일통화 유러(Euro)의 성공을 갈망한다. 이를 위해서는 공동의 경기조절정책과 조세정책, 공동의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펴야 한다. 파멸적인 국제적 감세경쟁을 중단하지 않으면 이것은 불가능하다. 법인소득과 자산소득에 대한 과세에 있어서 공동의 최저세율 규정을 만들고 유럽연합 내부에 존재하는 세금 도피처(Steueroase)와 감세경쟁(Steuerdumping)을 중단해야 한다. 사민당은 노동에 대한 과세를 경감하고 환경친화적 세제개혁을 추진하기 위한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서 애쓰고 있다.
무제한적 환경파괴의 저지
효과적인 환경 보호는 국제적 공동노력으로만 가능하다. 사민당은 유럽의 환경기준을 높이는 것이 경쟁력을 해치지 않으며, 오히려 미래 유럽의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는 길이라는 입장을 견지한다. 실제로 독일의 엄격한 환경 규제는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기여했고, 일관성 있는 환경정책이 유발한 새로운 기술은 고부가가치 수출품이 되었다. 지속 가능한 성장이라는 원칙이 말로만 끝나서는 안 된다고 믿는 독일사민당은 유럽의 틀 안에서 환경 친화적 세제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환경재앙을 막으려면 이산화탄소를 비롯한 유해가스 배출량을 지속적으로 감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에너지 사용의 효율성을 높이고 재생가능한 에너지의 개발에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독일사민당은 유럽연합이 재생가능한 에너지원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명확한 목표를 제시해야 한다고 믿는다. 구체적으로는 유럽연합 회원국가들이 2050년까지 에너지 사용량의 절반을 재생가능한 에너지로 대체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민당은 그 첫 단계로서 현재 전체 에너지 사용량의 5%에 불과한 재생가능 에너지의 비중을 2010년까지 15%까지 올릴 것을 주장한다.
유럽연합의 치안과 안보 정책
시민들의 편익을 위한 유럽연합 역내의 국경 개방이 조직범죄와 마약거래, 돈 세탁과 테러리즘에 악용되어서는 안 된다. 사민당은 이를 위해서는 범죄 방지를 위한 유럽연합 차원의 치안 정책을 수립하고 유럽경찰(EUROPOL)을 확대 강화할 것을 주장한다.
유럽연합은 경제적, 정치적 상호의존과 협력을 통해 평화를 정착시키는 모델로서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유럽연합은 공동의 외교 안보정책을 통해서만 세계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할 수 있다. 사민주의자는 유럽인이 힘을 모으고 함께 구체적 목표를 추구함으로써만 세계의 모든 민족과 국민들과의 더 강력하고 실질적인 연대감을 보여줄 수 있다고 믿는다.
독일사민당은 또한 공동의 개발도상국 지원정책을 폄으로써 유럽연합이 기아와 빈곤을 퇴치하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신장하려는 제3세계의 국가와 국민들을 더 효과적으로 지원할 수 있다고 본다. 공동의 난민법(Asylrecht)을 제정하여 유럽연합 회원국들이 공정하게 난민 수용과 지원 비용을 분담해야 한다고 제안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이다. 경제 난민의 유입문제를 유럽연합은 함께 처리하고 규제해야 하며, 이 문제의 근본 원인을 제거하는 데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럽연합의 재정문제
사민당은 독일이 과거와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유럽연합의 재정적 기초를 강화하는 데 자기의 몫을 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민당과 녹색당은 연정협약에 2000년에서 2006년까지 유럽연합 재정은 회원국 국내총생산(GDP)의 1.27%인 현행 상한선을 지키고, 가능하다면 그 이하에 머무를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명시했다. 그리고 회원국들이 재정 부담을 더 공정하게 분담할 수 있도록 유럽연합 재정운용 규칙을 손질하고, 2000년 이후에는 유럽연합 농업 정책의 틀 안에서 이루어지는 직접적 농업소득 보전(補塡) 비용을 유럽연합과 해당 회원국이 공동 조달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참고> 유럽연합과 독일
유럽연합은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네덜란드, 그리스, 벨기에, 포르투갈, 스웨덴, 오스트리아, 덴마크, 핀란드, 아일랜드, 룩셈부르크 등 유럽 15개국의 결합체이다. 유럽연합은 1950년대 이후 꾸준히 성장해온 유럽공동체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유럽연합은 경제적 목표뿐만 아니라 공동의 정치적 목표를 추구함으로써 유럽의 안정과 세계 평화를 지키는 데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1969년 12월 유럽 공동시장을 실현한 이래 유럽의 정치 지도자들은 유럽연합의 틀을 진지하게 검토해 왔다. 1972년 파리 유럽 정상회담에서 그들은 기존의 모든 조약을 그대로 유지하는 가운데 하나의 연합체를 만들어 나가는 기본 개념에 합의했다. 이 비전은 1984년 2월 유럽의회 창설, 1993년 유럽 단일시장의 출범, 1992년 2월 마스트리히트 조약과 1999년 유럽통화동맹의 출범을 거쳐 현실이 되었다.
유럽연합은 일반적인 국민국가와 거의 유사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가장 중요한 기관은 회원국 국민들이 선출하고 입법권과 예산권을 가진 유럽의회(정원 626명; 독일 99, 영국 87, 프랑스 87, 이탈리아 87명 등)이다.집행기관은 19명의 회원국 대표(앞의 4개국은 각 2명, 나머지는 각 1명)로 구성되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이다. 유럽의회는 집행위원회를 견제하고, 통제하며, 불신임할 권한을 행사한다. 주권국가 연합체로서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회원국 정부 수반과 장관들은 각각 협의회를 운영하면서 집행위원회가 수행할 사업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린다. 그 밖에 자문 기능을 수행하는 경제·사회문제 위원회와 지역위원회, 협약을 수호하는 사법부로서 유럽연합 법원, 예산 회계를 감독하는 감사원이 있다.
유럽연합은 국제적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지역적 국가연합이다. 세계에서 차지하는 유럽연합의 비중을 보면 인구는 7%,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6%, 에너지 소비량은 17%, 역내 거래를 제외한 수출량만으로 세계 총수출의 19%, 총생산은 23%, 자동차 생산량은 27%, 외환보유고는 32%, 개발도상국 원조액은 53%를 차지한다.
유럽연합은 회원국들이 혼자서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어려운 정책을 담당한다. 대표적인 것은 유럽화폐 유러 도입을 비롯한 통화통합, 공동의 외교안보 정책, 유럽시민권의 수립, 공동의 무역 정책, 농업 정책과 사회 정책의 협조와 조정 등이 있다.
독일은 유럽연합의 중심축인 동시에 유럽연합에 대한 의존도가 가장 높은 나라이다. 독일은 미국, 일본과 더불어 세계 정상의 무역대국이지만, 총 교역량의 60% 이상이 유럽연합 회원국들과의 교역이다. 이는 유럽의 번영 없이는 독일 경제의 번영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유럽연합에 대한 독일 국민의 관심이 경제적인 영역에 국한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두 차례 세계전쟁을 통해 유럽을 불지옥에 빠뜨렸던 역사를 기억하는 독일 국민은 무엇보다 유럽연합이 유럽의 평화를 지키는 데 기여한다는 점을 중시한다. 아울러 독일 정부와 국민은 글로벌라이제이션의 과정에서 감세와 근로조건 악화, 환경 파괴를 기반으로 한 국제 경쟁이 벌어짐으로써 애써 만든 사회국가(Sozialstaat)와 환경국가의 장점이 사라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유럽연합 차원의 사회복지협약(Sozialcharta)을 강력하게 추진해 온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유럽연합 혼란속 영국의 전략 (영문 + 오디오, 관련기사 참조)
06/03/2005



유럽연합, EU의 주요 회원국들 가운데 현재까지 영국만이 EU의 새로운 유럽연합 헌법에 대한 찬반 국민 투표 실시 날짜를 결정해 놓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관측통들은 영국인들이 유럽 대륙과는 달리 미국과 특별한 관계를 계속 유지할 것을 원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이 시간에는 영국의 유럽 대륙 국가들과의 관계와 이것이 미국-영국간 협력 관계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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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나라인 영국은 유럽연합내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종 특별대우를 받으려 했고 또 유럽에서 보다 밀접한 정치적 통합을 이루려는 프랑스와 독일의 움직임에 맞서 왔습니다.
유럽연합의 기존15개 회원국들 가운데 유로화를 채택하지 않고, 유럽연합 회원국간 여행 간소화를 위한 쉥겐 협정에 서명하지 않은 나라는 영국뿐입니다. 그리고 영국의 미국과의 역사적인 친밀관계는 다른 유럽 국가들과의 관계를 소원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영국도 1973년에 유럽연합에 가입한 후 크게 변하고 있습니다. 현재 영국은 역사상 그 어느 때 보다도 해양보다는 대륙지향적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영국 수출상품의 약 60%가 유럽대륙 국가들로 나가고 있습니다.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영국인들이 유럽 대륙을 방문하고 있으며, 또 많은 영국인들이 프랑스어, 독일어 등 유럽 대륙의 언어들을 배우려 하고 있습니다.
워싱턴 소재 민간 연구기관,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아나톨 리븐 선임 연구원은 유럽연합에 대한 영국내의 지지가 다양하다고 말합니다.
“영국의 스코틀랜드인과 웨일즈인들은 대체로 유럽연합을 훨씬 더 지지합니다. 왜냐하면 스코틀랜드인들과 웨일스인들은 자신들을 같은 영국의 잉글랜드인들과 함께 나란히 유럽연합내의 동등한 동반자로 보기 때문입니다. 이에 비해 잉글랜드인들은 모든 점을 감안할 때 유럽연합을 훨씬 덜 지지하는 편이지만 이들도 양분돼 있습니다. 잉글랜드인들의 여론조사들을 보면 다수가 밀접한 유럽통합에 반대하는가하면 또한 다수의 잉글랜드인들이 유럽연합내 회원국이 되는 것을 지지합니다.”
또한 영국인들 사이에 이념적인 분열도 있다고 리븐 연구원은 지적합니다. 영국의 보수진영은 EU와의 보다 밀접한 관계를 반대하고 있지만, 중도진영과 진보진영은 대체로 유럽연합과의 밀접한 관계를 지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또 다른 민간연구기관인 뉴욕 소재 외교문제위원회의 찰스 쿱찬 유럽문제 연구부장에 따르면 이라크전쟁을 둘러싼 논쟁으로 영국의 전략적인 이익과 미국은 불가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새로운 진영이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부쉬 행정부와 이라크전쟁 그리고 토니 블레어 총리의 이라크전쟁 지지에 대한 영국인들의 반응으로 영국이 계속해서 미국과 밀착관계를 유지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깊은 의문이 제기됐습니다. 지금 영국에서는 미국의 정책에 대한 그리고 영국의 유럽-미국간 가교역할에 대한 커다란 불안감을 분명히 알아챌 수 있습니다. 이는 특이 젊은 영국인들에게서 그렇습니다.”
이 같은 영국에서 유럽연합 헌법채택은 어려운 일이고 되고 있습니다.많은 영국인들은 유럽연합의 수도 브뤼셀에서 이루어지는 중앙집권적인 의사 결정에 불신을 갖고 있습니다.
영국은 대체로 선출되지 않은 외국인들에 의해 성안된 헌법은 말할 것도 없이 성문헌법을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또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영국 헌법의 최고 수호자로서인 자신의 역할에 대해 유럽연합 헌법이 미치는 영향에 관해 문의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의 아나톨 리븐 선임 연구원은 유럽 대륙의 대국들에 의해 지배되는 유럽연합에 의문을 품는 것은 비단 영국만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이 프랑스, 독일과 입장을 같이하는 것은 아닙니다. 프랑스와 독일에 의해 지배되는 유럽에 아주 회의적인 것은 동유럽만이 아닙니다. 네덜란드, 덴마크, 포르투갈, 심지어는 이탈리아와 스페인도 마찬가지로 회의적입니다. 프랑스와 독일에 의해 지배되는 유럽에 대한 회의라는 면에서 영국은 유럽연합의 다른 나라로부터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럽연합을 강력히 지지하는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영국의 국미투표에서 EU 헌법이 부결되면 영국을 고립시키고 유럽안에서 영국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블레어 총리는 영국이 유럽에서 주요 국가로 남아 있을 경우, 유럽지역 정책에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또 미국과의 긴밀한 관계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외교문제 위원회의 찰스 쿱찬 유럽문제 연구부장도 이에 동의합니다. 쿱찬 부장은 미국과 갈라서는 것을 원치 않는 유럽 인들이 많다고 덧붙입니다.
“폴랜드, 덴마크, 네덜란드 같은 나라들은 선택을 원치 않고 있습니다. 이들 국가들은 ‘EU나 미국 중에 하나 ’의 편이 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따라서 이 나라들에게는 EU의 전반적인 방향과 비전을 형성하는데 참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쿱찬 부장은 유럽 정치인들은 그들이 달성하려고 노력하는 유럽의 통합을 저해하는 미국에 등을 돌리기 보다는 미국과의 강력한 관계를 유지하는 쪽을 선택한다면 보다 나은 위치에 있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영국의 위치는 유럽에 있고 EU의 멤머이기도 한 반면에 독일 프랑스(대륙국가)위주의 유럽통합에는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유럽은 베스트팔렌 조약 이후로 지금껏 힘의 균형을 찾으려고 노력해왔는데 영국은 현재 그 균형을 미국에서 찾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같은 뿌리라서 즉 영국인들이 과거에 미국으로 이주를 했기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런 논리라면 과거 독일의 Angel, Sachsen 지역에서 영국 섬으로 넘어간 앵글로 섹슨족인 영국인들은 독일과도 미국못지 않게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할 것입니다
다시 불붙은 유럽-아프리카 식민주의 논쟁
식민주의 논쟁의 재현, 유럽과 아프리카 관계 증진에 역효과 가져올 수도


오는 8-9일 포르투갈에서 열리는 유럽연합(EU)-아프리카연합(AU) 정상회의를 앞두고 해묵은 식민주의 논쟁이 다시 불붙고 있다. 논쟁의 중심에는 짐바브웨가 있다.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사진)이 최근 한 만찬 자리에서 "짐바브웨를 망친 건 짐바브웨를 식민통치한 영국"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짐바브웨 경제는 붕괴 직전이다. 비옥했던 농지는 황폐해졌고 국민들은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으로 신음하고 있다. 국내외 비판가들은 짐바브웨의 경제 위기가 무가베 대통령이 백인 소유 농장을 몰수하는 등의 극단적인 조치들을 취하면서 비롯됐다고 지적하고 있지만 무가베 대통령은 짐바브웨를 식민통치한 영국 탓으로 돌리고 있다. 압둘라예 와데 세네갈 대통령도 무가베 대통령의 편을 들고 나섰다.


지난주 짐바브웨를 방문한 와데 대통령은 짐바브웨의 문제는 가혹했던 식민통치 역사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무가베 대통령을 "아프리카의 존엄을 지키는 전사"라고 칭송했다.


EU-AU 정상회의는 개막도 하기 전에 무가베 대통령의 참석 여부를 놓고 한바탕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무가베 대통령이 참석 의사를 밝히자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가 정상회의 불참을 선언한 것. 이처럼 짐바브웨와 영국 갈등이 부각되면서 7년 만에 한 자리에 모이는 두 대륙 간 정상회의에 벌써부터 암운이 드리워지고 있다.


그런가하면 차드 반군은 지난주 프랑스와 외국군에 대한 전쟁을 선포했다. 차드는 과거 프랑스의 식민지. 프랑스는 현재 차드에 1천100명의 병력을 주둔시키며 차드에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프랑스는 식민통치했던 코트디부아르의 정치에도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는 지난해 이탈리아 영사관 앞에서 벌어진 폭동을 이탈리아에 대한 리비아인들의 반감 탓으로 돌렸다. 이탈리아는 1911년부터 1943년까지 30여년간 리비아를 점령한 바 있다.


식민주의 논쟁의 재현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아데 아데푸예 영연방사무국 아프리카 대표는 식민주의 논쟁의 재현은 유럽과 아프리카 관계 증진에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출처: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