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16일 토요일

wneswkcic30

그 용기에 고백에 찬사를 보냅니다 2008/02/28 12:50:11


이제 그것도 곧 밝혀질것입니다


박정희 암살 쿠데타 모의 했었다”

입력: 2008년 02월 28일 09:46:20


ㆍ권영길의원 본지에 비화 첫 공개



권영길 의원은 인터뷰 도중 박정희 대통령을 제거하려는 목적을 가진 조직을 결성해 6~7년간 활동했다는 비화(秘話)를 처음 공개했다. 자신을 비롯한 몇몇 신문사 기자와 육사 출신의 중령·대령 등 현역 군인들까지 참여해 규모가 제법 컸으며, 조직을 만들어나가는 등 실제 작업도 착수했었다고 했다.



권의원은 “실제적으로 쿠데타라고 표현이 될 수도 있는 ‘박정희 대통령 제거 활동조직’을 했었다”면서 “1960년대 말 민주화에 대한 갈망을 가진 몇몇 기자들을 중심으로 모임을 결성했으며, 나중에 육사를 나온 중령·대령 등 현역 군인들과 연결이 돼 (72년 10월) 유신이 된 다음에 활동을 본격화했다”고 밝혔다. 그는 67년 대한일보에서 퇴사한 뒤 71년 서울신문에 입사할 때까지 4년의 공백기간 동안 모임의 틀을 갖추고, 박전대통령 암살이라는 목표를 정했다고 했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은 용납할 수 없는 독재자라고 규정된 것이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유신정권의 타도라는 생각을 했다”면서 “광범위한 민주화를 꾀하기보다는 한사람을 제거하는 게 아주 효과적일 것이란 생각을 했다”고 했다. 참여 인사에 대해선 “지금 누구라고 하면 알 수 있는 사람도 있고, 한 사람은 어릴 때부터 같이 해왔던 사람”이라고 했다.





현역 군인들이 참여하게 된 경위를 묻자 “군대 내에서 조직화되지는 않았지만 박정희 독재를 수용할 수 없는 몇몇이 있었다. 70년대 초반 우리와 자연스럽게 결합이 됐다”면서 “참여했던 인사들은 대부분 일찍 퇴역했지만 나중에 한 사람은 장군까지 됐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사실은 공개가 상당히 조심스러운 대목”이라며, 참여 인사에 면면은 공개하지 않았다.





그는 “구체적으로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만나는 것도 그야말로 정말로 아주 힘들고 어렵게 만났다”면서도 “자금도 모으고, 세미나 같은 것도 하면서 실제적으로 조직을 만들어나갔다. 민간·군까지 참여해 규모가 제법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명동에 아람죽집이라는 것을 냈는데, 살아가는 방편이라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사람을 만나고 그걸 핑계로 일부 자금도 마련했다”면서 “그때 모인 돈이 어떻게 쓰여졌는지 우리 집사람은 아직도 모르고 있다”고 했다.



그는 “74년인가, 자유언론운동이 일어났고 그때도 활동을 했지만, 이 활동이 노출될 수 있어서 전면에 나설 수 없었다”면서 “민청학련 사건 같은 것도 지켜봤지만, 우리와 목표수준이 다른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친한 친구에게 ‘나에게 어떤 일이 닥칠 수도 있다. 내가 편향된 이념을 가진 게 아니라 정말로 순수한 인간으로서 가슴을 터놓고 살아갈 수 있는 삶을 바랐다고 내 아들에게 언젠가 이야기를 해주면 좋겠다’고 편지까지 썼었다”며 죽음까지 각오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모임은 자진해산됐다. 그는 “자금도 그렇고, 논의과정에서 근본적인 문제가 제기됐다”고 했다. 그는 “‘만약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그 다음에 어떻게 될 것인가’ ‘또하나의 쿠데타 세력이 될 수 있는 것 아닌가’ ‘과연 근본적 사회변화를 이뤄낼 수 있는 것이냐’는 토론이 일었다”면서 “다른 방향이 좋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고 각자 흩어졌다. 그때 기자를 그만두고 프랑스로 간 것도 이런 이유가 있다”고 전했다.



그는 “신변 위험 문제도 있었지만, 참여했던 다른 분들 때문에 그동안 공개를 할 수가 없었다”면서 “김대중 정권 때도 약간 변죽만 울리는 이야기를 하고 조금씩 조금씩 암시만 했었다”고 했다.

〈 이중근·이용욱기자 〉




탄허스님은 생전에 불교뿐만 아니라 유교,도교 등 동양사상 전반, 특히 그중 에서도 가장 난해하다는 [화엄경]과 [주역]의 으뜸 권위자로 평가받은 당대 의 학승이다. 그는 [주역선해][부처님이 계신다면]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으며, 여기에는 미래에 대한 그의 예언이 담겨 있다.


서양의 종교와 동양의 역철학이 보여주는 미래

지금 역의 진행원리로 보면 이 간방의 위치에 간도수(艮度數)가 비치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정역의 원리로 보면 간도수(艮度數)가 이미 와 있기 때문에 후천도수는 곧 시작이 됩니다.
역학을 근거로 하여 미래를 보는 눈은 그보다 훨씬 포괄적이며 나아가서 인류사회의 미래를 우주적인 차원에서 볼 수 있다는 큰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

기독교의 말세론은 2천 년 전부터 있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미래에 대한 예견은 서양종교에서 그 기원을 찾아 볼 수 있지만 동양의 역학원리에 따르면 이미 6천년 전에 복희팔괘(伏羲八卦)로 ‘천(天)의 이치’를 밝혔고 3천년 전에 문왕팔괘(文王八卦)로 지상 생활에서의 ‘인간절의(人間節義)의 이치’를 밝혀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80년 전에 미래역으로 밝혀진 정역의 이치는 ‘후천의 자연계와 인간의 앞날’을 소상히 예견해 주고 있습니다. …

서양종교의 예언은 인류종말을 말해 주고 주의 재림으로 이어지지만 ‘정역의 원리’는 후천세계의 자연계가 어떻게 운행될 것인가, 인류는 어떻게 심판받고 부조리 없는 세계에서 얼마만한 땅에 어느 만큼의 인구가 살 것인가를 풀어 주고 있습니다. …
이 정역팔괘(正易八卦)는 후천팔괘로서 미래역입니다. 이에 따르면 지구는 새로운 성숙기를 맞이하게 되며 이는 곧 사춘기의 처녀가 초조(初潮)를 맞이하는 것과 같다고 할 것입니다.(『부처님이 계신다면』, 157~170쪽)

빙하가 녹고 지축이 선다
북극빙하의 해빙으로부터 시작되는 정역시대는 이천칠지(二天七地)의 이치 때문입니다. 이에 의하면 지축 속의 불기운이 지구의 북극으로 들어가서 북극에 있는 빙산을 녹이고 있다고 합니다. 이로써 북빙하의 빙산이 완전히 녹는데 이 때 대양의 물이 불어서 하루에 440리의 속도로 흘러내려 일본과 아시아 국가들을 휩쓸고 해안지방이 수면에 잠기게 됩니다. …

여기서 지금 지구촌의 설산과 더불어서 빙하가 급속도로 다 녹아내리고 있습니다 NASA의 보고서에도 앞으로 몇년내에 지구촌의 빙하가 다 녹아버린다고합니다

그러한 개연성은 얼마든지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빙하가 녹고 설산이 녹으면 지구촌의 식수부족에 이상기온으로 강수량 부족으로 식수부족으로 인한 사태의심각성을 더욱 이 인구가 밀집된 국가나 도시는 혼란이 불가피합니다 동시에 산업 경제도 마비를 가져다주기에 지구촌은 대혼란을 겪게될것입니다

지금도 그렇게 진행해가고 있으니 .................

이제까지 지구의 주축은 23도 7분 기울어져 있는데 이것은 지구가 아직도 미성숙 단계에 있다는 것을 말하며 4년마다 윤달이 있게 되는 원인이기도 합니다.



북빙하가 녹고 23도 7분 가량 기울어진 지축이 바로 서고 땅 속의 불에 의한 북극의 얼음물이 녹는 심판이 있게 되는 현상은 지구가 마치 초조 이후의 처녀처럼 성숙해 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부처님이 계신다면』, 167~170쪽)

“그렇게 되면 한국의 장래는 매우 밝으며 지금까지 23도 7분 기울어져 있던 지축이 빙하가 녹음으로써 바로 서게 되어 극한(極寒)과 극서(極暑)가 없어지고 세계적인 해일과 지진으로 … (경향신문, 1980.5.31)”

이것이 바로 불란서 예언가가 말한 세계멸망기가 아닌가 합니다.

또는 성경에서의 말세에 불로 심판한다는 시기가 아닌가 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말세와 예언가의 말은 심판이니 멸망이니 하였지만 역학적인 원리로 볼 때는 심판이 아니라 성숙이며, 멸망이 아니라 결실인 것입니다.(『周易禪解』 3권, 429∼430쪽)

: 지구가 죽음의 행성은 존재하나 지구의 종말은 존재하지않는다 인류역시 종말은 없다 단지 일단 지구 행성을 구하기위해서 하늘의 도수는 정해진 이치대로 모든것이 개연성을 갖고 돌아가고 잇다 지금도 종말론은 존재하지않고 단지 심판을 통해서 인류가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인도 해 줄것이다

여기서 누차 언급하지만 미래 세상에 동행하고싶으면 인류는 거듭 깨달아야 할것이다 깨닫지못한 인류는 더 이상 기회가 주어지지않는다

지구표면의 변화
지금은 중국 영토로 되어 있는 만주와 요동반도 일부가 우리 영토로 속하게 될 것이고, 일본 영토의 3분의 2가량이 바다로 침몰할 것입니다. 일본은 손방(巽方)이라고 하는데 손(巽)은 주역에서 입야(入也)로 풉니다. 이 ‘들 입(入)’자는 일본 영토의 침몰을 의미합니다. …

: 이부분에 대해서는 지금도 중국 국가 영토가 어덯게 갈라지는지 이미 알고있습니다 굳이 만주와 요동반도를 포함해서 그리고 중국뿐만아니라 기타 국가들도 그러한 경험을 하게될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V대재앙입니다
지구촌의지각판이 갈라짐으로서 상대적 영향에의해서 지구촌 국가들이 큰 타격을 받게되지요

여기서 각 국가의 핵무기 보유가 자국에 오히려 큰 타격을 주게되므로 이미 이것도 어느 국가들이 타격을 받을것인지 구체적으로 지형적으로 알고 있기에 ...............

지금 현재는 지구 표면에서 물이 4분의 3이고 육지가 4분의 1밖에 안 되지만 이같은 변화가 거쳐가면 바다가 4분의 1이 되고 육지가 4분의 3으로 바뀌어집니다.(『부처님이 계신다면』, 163~170쪽)

소규모 전쟁
소규모의 전쟁들이 계속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나 인류를 파멸시킬 세계전쟁은 일어나지 않고 지진에 의한 자동적인 핵폭발이 있게 되는데 이 때는 핵 보유국들이 말할 수 없는 피해를 받을 것입니다. 남을 죽이려고 하는 자는 먼저 죽고 남을 살리려고 하면 자기도 살고 남도 사는 법입니다. …

중소전쟁과 중국 본토의 균열로 인해서 만주와 요동일부가 우리 영토에 포함되고 일본은 독립을 유지하기에는 너무 작은 영토밖에 남지 않기 때문에 한국의 영향권내로 들어오게 되며 한미간의 관계는 더욱더 밀접해질 것입니다.(『부처님이 계신다면』, 169쪽)

: 소규모 전쟁이나 내전 기타 혼란은 이러한 자연재앙에서오는 파급력때문에 생존의몸부림을 치려고 벌어지는 현상들이지요 이미 그러한 조짐은 발생하고있으니 그러니 미국방부 특별 보고서에서도 핵무기보다도 위험한 것이 자연재앙으로 오는 지구촌 소규모 내전과 혼란 기타 전쟁의 의미를 담고있습니다 지금 지구촌에 돌아가고 발생하고있는 모든것이 연관되어서 돌아가고있으니 ..............

한반도 대운하하는 정책은 분명히 앞으로 형세나 현실적으로나 그것은 매우 큰 죄를 짓게되니 이 정도 감당하고 추진하겠다면 목숨을 내놓고 추진하시기를 바랍니다 굳이 이것이 아니드라도 차후에 다가오는 형세에 역시 중단되기에 그들이 도망가드라도 건설업체를 비롯한 모든 것을 다 회수 해 버릴것입니다 지금도 예의주시하고있기에

황당한 무리한 선견지명이 없는 국가정책으로 국가와 국민을 민족을 어렵게 한죄는 반드시 묻겟다

대변혁과 세계인류의 감소
이는 비극적인 인류의 운명인데 전세계 인구의 60% 내지 70%가 ‘소멸’된다는 것이며, 이 중 많은 사람들이 놀라서 죽게 되는데 『정역』의 이론에 따르면 이 때에 놀라지 말라는 교훈이 있습니다.(『부처님이 계신다면』, 168쪽)

세계종교의 통일
반드시 그러한 왕도정치(王道政治)가 세워질 것입니다. 누구의 덕으로 사는지 모를 세상이 펼쳐질 것입니다.
그런데 종교는 과연 어떻게 변모할 것인가가 궁금스러운 일이지만, 모든 껍데기를 벗어 버리고 종교의 알몸이 세상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현재의 종교는 망해야 할 것입니다. 쓸어 없애 버려야 할 것입니다.

신앙인끼리 반목 질시하고 네 종교, 내 종교가 옳다고 하며 원수시하는, 이방인(異邦人)이라 해서 동물처럼 취급하는 천박한 종교의 벽이 무너진다는 뜻입니다. 그 장벽이 허물어지면 초종교(超宗敎)가 될 것입니다. 김일부 선생은 유·불·선이 하나가 된다고 했는데 그 예언의 연대가 80년대에 열리기 시작할 것입니다.(『부처님이 계신다면』, 108쪽)

: 이 역시 소생이 언급한대로 V대재앙을 겪고나서 인류는 세계모든종교가평정이 될것입니다 더이상 인류가 그동안 대륙별이나 국가별이나 세계5000여개의 종교의 이합집산의 모습이 절대적인 신의 뜻을 모든 인류가 목격하고나서 경험하고나서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못하기에 평정이 되는것입니다

그래서 소생이 천지신명님게서 대한민국에 보여주신 목룡 승천지에 이 혈자리를 두고 인류의 난세에 중요한 역활을 하게될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1인 독재의 통치시대는 선천사가 된 것이요, 앞으로 오는 후천시대는 만민의 의사가 주체가 되어 통치자는 이 의사를 반영시킴에 불과한 것입니다. 강태공의 말씀에 천하(天下)는 천하인(天下人)의 천하요, 일인(一人)의 천하가 아니라는 것도 바로 이것을 의미하는 것일 것입니다.(『周易禪解』 3권, 432쪽)

『정역』으로 본 한국의 미래
『주역』에서 보면 한국은 간방(艮方)입니다. 간(艮)은 갓난아기요, 결실을 의미합니다. 80년대 전반부는 바로 어머니가 아기를 낳을 때의 진통이 있는 때입니다. 이 아픔은 희망찬 아픔입니다. 이 고통이 지나면 우리의 숙원이던 남북통일의 서광도 엿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생각으로 감지할 수 없는 새 차원의 세계가 도래할 것입니다.(『부처님이 계신다면』, 107쪽)

역에서 간(艮)이라 함은 사람에 비하면 소남(小男)입니다. 이것을 다시 나무에 비하면 열매입니다. 열매는 시종(始終)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남을 풀이하면 소년인데 이 소년은 시종(始終)을 가지고 있습니다.(『부처님이 계신다면』, 156쪽)

젊은이들이 반항하는 우주적 이유
『정역』은 세계적인 변화가 지도(地道)의 변화를 따라서 번천복지(飜天覆地)하는 대변화를 나타내는 것입니다.(『周易禪解』 3권, 428쪽)
이 북빙하가 완전히 풀려 무너질 때에 지구의 변화가 오는 것입니다. 지구가 성숙됨에 따라 후천시대는 결실시대로 변하는데, 이 결실을 맡은 방위가 간방(艮方)이며, 이 간방은 지리적인 팔괘(八卦) 분야로 보면 바로 우리 한국입니다.

결실은 뿌리의 결과(結果)이니 뿌리가 시(始)라면 열매는 종(終)입니다. 일단 결실이 되고 나면 뿌리의 명령을 듣지 않는 것이 열매입니다. 그것은 열매가 다시 뿌리가 되기 때문에 뿌리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이니, 이것으로 보아도 결실은 시종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앞의 책, 432∼433쪽)

소남(小男)은 20대 청년을 말함이니, 즉 부모의 여분(餘分)인 결실인종입니다. 방위와 수목이 간(艮)의 시종을 가지고 있다면 어찌 고등동물인 20대 청년이 간의 시종을 가지고 있지 않으랴. 20대 청년들이 부모의 말도 선생의 말도 다 듣지 않고 오직 내 말만 들어보라 하는 것은 그들이 바로 결실인종이므로 부모나 선생의 말을 듣지 않고 스스로 뿌리가 되려 하는 때문입니다.(앞의 책, 423∼433쪽)

소남은 시종을 내포하고 있으므로 간방에 간도수가 접합됨으로써 어두운 역사는 끝맺게 되고 이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될 수밖에 없으며 또한 인류역사의 시종이 다 같이 이 땅에서 이루어진다고 할 것입니다. … 이 한국문제의 해결은 곧 세계문제의 해결과 직결된다고 나는 보고 있습니다.(『부처님이 계신다면』, 157~158쪽)

우리는 간방으로서 지금 이 시점은 결실시대라고 위에서 말한 바 있는데, 결실이 되려면 꽃잎이 져야 하고 꽃잎이 지려면 금풍(金風)이 불어야 합니다. 그 금풍이란 서방바람을 말하는데 이 바람은 곧 30년 전부터 우리 나라에 불어오기 시작한 이른바 미국바람이라 하겠습니다.

이렇게 금풍인 미국바람이 불어 꽃잎이 떨어지고 열매 맺는 가을철, 다시 말해서 결실시대를 맞이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나라가 미국의 도움으로 인류사의 열매를 맺고 새로운 세계사를 시작함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부처님이 계신다면』, 162쪽)

: 여기서 소생의 견해는 지금의 미국의 자세아 정신상태나 지금의 불평등한 한미동맹조건이 아니라 미국도 살아남기위해서 당당하고 대등한 남북한과 미국의 동맹 관계가 설정된다



이것을 이루기위해서는 지금의 미국이나 대한민국 정치 세력들은 청산되고난후에나 가능하다

아울려 미국은 군의 정신력은 이미 사상누각의 징조를 보이고있다라는 사실이다 미국 군인들은 자신들이 이용당하고있음을 그것도 25%나되는 높은수치 배신당한 퇴역 미국 군인들의 삶의 모습에서 잘 말해주고잇다 미국 국가의 충성심이 약화되어가고있다라는것임



미국 군인들은 전쟁을 수행하기위해서 약물로 통제하는것을 보드라도 얼마나 허약한 미국 군인들이지 오늘날 미국 군인들은 직업을 위해서 군에 종사하는것이지 국가에 충성하기위해서 군에 전쟁에 참여하는것이 아니다라는것이다



지구의 재난과 한반도
우리 나라는 동남해안쪽 100리의 땅이 피해를 입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토는 서부 해안쪽으로 약 2배 이상의 땅이 융기해서 늘어날 것입니다. 이러한 파멸의 시기에 우리 나라는 가장 적은 피해를 입게 되는데 그 이유는 한반도가 지구의 주축부분에 위치하기 때문입니다. 정역이론에 따르면 한국은 지구의 중심부분에 있고 간태(艮兌)가 축으로 되니까 일제시대의 일본의 유끼사와(行澤) 박사는 계룡산이 지구의 축이라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앞의 책, 169쪽)

: 여기서 소생의 견해 계룡산 수도가 500년 명맥을 이어갈것입니다 동시에 수도를 이전하는것도 지질학적요인때문에 이전하지요 지금 서울 수도 경기도 일대 신도시들은 아파트 단지들은 고층건물은 다 파괴가 됩니다


인류구원은 한국에서 이루어진다: 한국은 세계 인류의 정신적 수도
우리 선조가 적선해 온 여음(餘蔭)으로 우리 한국은 필경 복을 받게 될 것이다. 우선 이 우주의 변화가 이렇게 오는 것을 학술적으로 전개한 이가 한국인 외엔 있지 않으며, 이 세계가 멸망이냐 심판이냐 하는 무서운 화탕(火湯) 속에서 인류를 구출해 낼 수 있는 방안을 가지고 있는 이도 한국인 외에 또다시 없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한국은 세계적인 신도(神都), 다시 말하면 정신 수도(首都)의 근거지라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시만물(始萬物) 종만물(終萬物)이 간(艮)에서 일어난다면 인류를 구출할 세계적인 정신문화가 어찌 한국에서 시(始)하고 종(終)하지 않으랴.(『周易禪解』 3권, 434∼435쪽)




대통령 관심 갖는 '특별한 임무' 수행, 신설 특임장관

李당선인 "통일 염두에 두고 정부조직개편" 그동안 통일부에서 해오든 일을
정 부 차원에서 해야하므로 해체하는것이라고

지난번 연일 김대중 전대통령은 북한을 악마로 비유와 정권 교체가 되면 전쟁 가능성 발언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한나라당이 정권을 교체했으니 이제 전쟁만 하면되네요

그럼 노벨 평화상을 받은분이 전쟁이 나는것을 알면 과연 어떻게 남은 여생 어떻게 처신하실지 지켜봅니다

앞으로 모든 사태에 대비하기위해서 지금 정부조직을 슬림화하고 동시에 명령 체계 일원화를 위한것의 성격을 두고잇다


미국 정부는 그 당시에 이미 박정희 대통령 암살을 준비하고 있음을 시사한 발언



즉 즉 미국 국무부의 개입이 있음을 반증함



여기에 동조한 인사들도 기록으로 보아도 그 당시 미국이 대한민국



박정희 대통령 암살에 부채질한 국내 인사들도 기록이 나오네요



그 당시에 조직적으로 가담한 국내 인사들이 지금까지 어떠한 정치 인생과 대한민국을 저해왔

는지



그들의 행보를 보면 다 알고 동시에 지금 그들은 어더한 정치 성행을 보이고 있는지



그역시 박정희 대통령 암살 모의에 가담한 방향과 같은 행보이다



그래서 지금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 모의한 국내 정치 인사들은 다시말해서 국가와 민족의 이익

을 저해하는 정치 발언이나 정치적 선택을 보면 알수가 있다



이미 알고 있지만은 ...............


지금 전직 대통령을 비롯하여 현직 대통령 그리고 차기정권들어서는것을 포함해서 박정희 대통령암살 배후 조정및 가담한 실체 인사들과 그리고 자신들의 비자금 관계 즉 전직 대통령들은 전현직간에 비자금을 건네받았기에 즉 지난 정권에 대한 실정과 책임을 묵인하였음을 반증하는 자료이기에

대한민국 30여년 정치사의 국본을 저해한 사실 그리고 국가를 도탄에 만들게해 온 사실 명성황후 암살사건에 대한 일본정부로부터 공식사과 하나받지못하는 그대들의 개,노예들의 근성

이제는 청산해야지요 대한민국을 원래의 모습대로 되돌려줄것인지 그것은 구한말 전과 다르게 해줄수도 있다 즉 이미 사망선고를 받은 대한민국 전체를 그래도 숨길수가 있다고 보는가?

그대들은 또 김재규가 말하는것처럼 우리들 뒷에는 미국 국무부가 있으니라고 발언하겠지요

이번 대통령선거 결과도 그러하고 이제는 종착점에 다가왔으니 지켜볼것이다

미국이 김대중을 살린것은 그 당시 전두환 정권을 견제하기위함이다



미국은 대한민국에서 최대한 미국의 이익을 내기위서는 전두환 정권 역시 믿지못하기에 왜냐하면 박정희 대통령게서 키워놓은 인물이고 무엇보다도 국가관은 육사시절때부터 몸에 베어있기에



자신의 정권을 세우기위해서 물론 전두환 정권의 성립 과정은 굳이 박정희 대통령 암살 때문에 생긴것이 아니라 그전부터 준비 해 온것이기에 그것은 전두환대통령 되기전의 걸어온 행보에서 잘 말해주고 잇다 즉 대통령의 야망을 물론 미국의 정보눈에 잡혀있는 인물이고



박정희 대통령 암살하기전부터 미국이 그러한 시사를 하는것은 후속 대통령을 이미 정해놓고 움직이는것이기에 그로인한 국내 돌발 사태가 바로 광주 사태이고



이 역시 미국의 함정에 유도한것이기에 그것이 대한민국을 통제해오고 정권을 미국손에 놀아나도록 미국이 환경을 만들온것이다



전두환 계엄령에서 암살에 대한 진실을 밝히지못한것은 바로 그러한 연관성이 있기에 그러한것이다

전두환이나 김종필은 이제 진실을 말해야 할것이다


미국 부시 행정부도 미국 국무부도 이제는 공개해야 할것이다



전두환=노태우( 박정희 대통령 암살과 5.18 민주화 사태),김영삼=이명박(부마 사태 부채질과 박정희 대통령 암살하도록 국내 정치환경 조성과 국가부도 그리고 종교를 빙자한 국가부정부패부조리 그룹) ,김대중=노무현(국가부도를 회생하도록 노력했고 햇볕정책 유지,인터넷 혁명을 다짐,지금 이분들의 선택에 자신들을 비롯하여 국가와 민족의 마지막 운명이 결정될것이다) 다 미국의 대한민국 권력에 그들의 약점을 함정에 걸려들어오도록 만들어 놓고 나서 이간질 ,토사구팽,이분법적으로 대한민국 국가 정치권력을 농단해온 구도가 바로 그러한 구도이다

그래서 대한민국 정치가 잘 될수가 없는것이고 정치인들은 정치인대로 기업인들은 기업인대로 종교인들은 종교인대로 공무원들은 공무원대로 나라가 부정부패부조리가 기생충처럼 퍼져온것이다

그러니 국본이 바로 세워지지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것이다 그러니 대한민국 수십년간 서민들의 애달픈 삶이 나아질 턱이 없는것이다

서민들은 자신의 목숨 저들의 경제 총알받이로 살다가 반평생 다 보내야만 하는 이러한 국가의 총체적인 환경 구도가 대한민국 현재의 모습이다 그러니 이제는 청산을 정리를 해야지요



그동안 30여년동안 대한민국 국가 정치에 개입해온 그동안의 모습들이나 저들의 구도를 보면 거의 비슷한 5년의 각본을 보면 잘 말해주고잇다



미국은 미국 국익을 증강해왔고 대한민국은 끝없이 추락해온것이다



그러나 지금 미국은 소탐대실하다가 대한민국 손실보다도 미국의 손실이 막대함을 알게될것이다 이미그 징조를 보이고 있다



그러므로 미국 국무부의 계산법은 틀렸고 패배자다



왜 미국은 패배자인가 바로 헛다리를 짚었기에 패배자인것이다 패배주의 근성에 찢들어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악습적인 관행에 미국까지 오염에 전염되었기에 그러하다



미국이 대한민국의 독을 먹었으니 미국 몸에 독이 이제서야 서서히 퍼저갸는것을 미국은 그것을 보지못한것이다 미국무부는 아는가?ㅋㅋㅋㅋ



이제 미국은 대한민국을 먹음에 처음에는 달콤해서 먹어왔지만 나중에 독의 매서운 맛을 지금 느끼고 있는것이다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지금 대한민국의 독은 해독약이 있기에 처방을 할것이지만 미국의 해독은 그대들이 그 수천년간 약소국가의 고통과 아픔이 얼마나 처절한지 어떠한것인지 느껴보아야 할것이다

1976년 제럴드 포드 대통령이 내렸던 이 특별한 명령은 미국 정부의 어떤 공무원도 다른 나라 지도자의 암살에 관여해서는 안된다. - 특별명령 제11905호

지금 미국 부시대통령 아버지: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 중앙정보국 국장 (1976), 박정희 대통령 암살에 개입한 인물
그 당시 미국 카터 대통령도 알고 있었음


(이미 대한민국 박정희 대통령암살에 대한 초기 미국 국무부의 의도를 그 당시 미국 대통령이 암시해 준 특별 명령이다 그만큼 중대한 암살임을 말해주고 있는것이다)

76년 10월, 서울에서 3년간(1972~1975) CIA 한국 지부장으로 근무한 도널드 그레그(Donald Gregg)는 텍사스 대학에서의 한 강연에서, “한국의 정권이 현재와 같은 정치를 해 나간다면 임기 중반쯤에 가서 쿠데타로 타도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때에는 이미 박정희 대통령을 강제적으로 제거하고자한 방향을 설정한것임

미국의 항의표시로 10월 6일 소환됐던 글라이스틴 대사가 서울에 돌아온 것은 살해사건이 나기 10일 전인 1979년10월 16일이었다. 매년 열리는 한미안보협의회에 참석하러 방한하는 브라운 미 국방장관 일행이 같은 비행기에 타고 있었다. 귀임이후 글라이스틴 대사는 한국의 여당과 정부당국 및 야당인사들과 정력적으로 만났다

:이때에는 즉 박정희 대통령 암살 실행에 대한 미국 카터 대통령의 결단과 미국 국무부의 결단을 받고 한국으로 귀국해서 그에 대한 사전정지작업을 하기위해서 암살 관련한 이미 후속 난국을 수습할 인물은 정해놓고 다른 한편으로 여당및 야당 인사들을 통해서 암살의 정당성을 확보하기위한 국내 여론 분위기 조성 유도 조성 지침을 글라이스틴 대사가 본국의 결정에 따라서 암살 실행가동한것으로 본다

10.26직전의 YH여공,도시선교회, 부마사태,,,, 2008/01/15 04:03:49


박정희정권을 압박하게 위해, 먼저 터진 것이 YH여공사태, 소위 도시선교회사태선동이였다, 이?? 김영삼제명사건이 터지고, 그런데 도시여공,,자살, 도시선교회사태를 선동 주도한 인물이 소우 이명박 선거두목,,김진홍목사였고, 인명진 목사였다, 박정희가 미국말을 듣지않자, 한국에서는 빌리그레엄 미국씨아이에이 목사 선동의 집회가 수십만명 한국도시에서 일어났고, 그 배후는 미국이였고, 하수인들은 한국내 목사들이 먼저 선동을 한것이다

공개된 미중앙정보국(CIA)문서를 통해 1979년초 ‘박대통령의 권력승계 위기’문제를 거론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미국무부문서에도 9월 26일 김재규와 주한미대사 글라이스틴이 만나 ‘권력승계문제’를 논의했다는 기록이 있다. 주한미군사령관 존 베시는 10월 25일 아시아협회가 주최하는 한 만찬회에서 ‘가령 특별한 사건이 일어난다고 해도’라는 발언으로 10.26을 암시했다.

: 이미 이때에는 박정희 대통령 암살에 대한 전후 과정 모든 계획 각본 시나리오가 모든것이 마무리 되어있음을 말해주는것이다

1979년 11월 5일자 『뉴욕타임즈』는 ‘죽인 것은 한국인이지만 지시한 것은 미국이다’라는 한 ‘한국’인저널리스트의 발언을 기사화했다. 주한미대사였던 글라이스틴은 운명을 다하기 직전인 1999년, 인터뷰를 통해 ‘미국은 10.26에 의도하지 않게 연루됐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1978년 미국 카터대통령 시절에 주한미군 철군정책이 당시 유엔군 사령관 겸 주한미군 사령관인 존 베시 대장과 주한 미군사령부 참모장인 싱글러브 장군 등 군부와 미국 국민들의 적극적인 반대로 철회됨

즉 미국 카터 정권이 주한 미군 철수는 입장은 미국 정치권에서나 여론에서 찬밥 신세였다 그리고 오히려 한미 동맹간에 앃을수없는 죄를 업를 만들고 말았다

케네디 대통령시절의 양국간의 협조체제는 참으로 돈독했으나 카터 정권이 들어셔서 대한민국에 광복을 해준 공이 다 까먹었다

미국이 신뢰를 먼저 깨뜨렸고 지금 미국 공화당이네요 이미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려고 의도적으로 카터는 강경수인 주한미군 철수의 압박을 내놓은것으로 본다

이미 미국 공화당내의 미국무부 소속 인사들이 박정희 대통령 암살을 계획하고있기에 포드대통령이 1976년에 특별명령을 내렸기에

76년 10월, 서울에서 3년간(1972~1975) CIA 한국 지부장으로 근무한 도널드 그레그(Donald Gregg)는 텍사스 대학에서의 한 강연에서, “한국의 정권이 현재와 같은 정치를 해 나간다면 임기 중반쯤에 가서 쿠데타로 타도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박정희 대통령이나 대한민국 정부 세력에게 이미 위험성의 언질을 준 발언이 위와 같다 1977년 카터정부가 들어서는 박정희 대통령 암살에 미국 CIA에 힘이 실렸고 미국 그 당시 프리메이슨 세력들은 박정희 대통령 암살에 힘을 실어준것으로 본다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이익을 저해하고 대한민국 국익을 증강하는것을 미국 프리메이슨 세력들은 두고볼수가 없기에 암살을 강행한것으로 본다

그들만의 세계 정부를 위해서



그래서 박정희 대통령암살이나 지금 30여년간 미국 국무부 인사들이 대한민국 국가 정치권력 경제에 개입하는 최종적인 목적은 대한민국이 망하는 방향으로 설정해서 미국프리메이슨의 추구방향인 세계 정부를 달성하기위해서 지금도 진행해가고 있다라는것

그리고 대한민국 국가의 가치는 그들의 기준에서 보면 가치가 없다라는것은 이미 결론 내려졌기에 이들을 못난 한국인들의 습성을 개,노예로 다루면 무난하다고 봄

그래서 30년동안 아무도 대한민국 어느 세력도 이를 막으려고 하지않고있다라는점은 오히려그들의 뜻대로 방조하여 대한민국 국가와 민족을 위태롭게 만들어온점 이는

대한민국 국가와 국민에게 남북한 민족에게 시사하는바가 크다 그래서 이제 그것을 모든것을 평정 해 버리겠다



그래서 소생이 그동안 관심을 가져왔든부분이나 선몽을 받았든 부분도

결국은 이들과 맞써고자함이다 그리고 그렇게 준비해왔고 V대재앙도 결국은 미국을 향한 심판이 될것이다

하늘에서 참으로 묘하게 모든 정황들이 그들의 세계정부보다도 앞선 W1프로젝트를 실행하고있다

박정희 대통령 암살 배후의 진실을 밝히는것이나 프리메이슨에 대해서 실체를 파악하는것이나

대한민국 정치역사의 그리고30년동안 지금의 현존 정치세력들이 걸어온 행보를 파악하는것도 다 이것을 준비하기위함이고 그리고 심판하기위함이다

그래서 대한민국 국가를 죽여서 대한민국을 살리고 남북한 민족을 죽여서 남북한 민족을 살리는 대사일변정신이다

그래서 그동안 이번 대통령 선거가 매우 중요함을 수차례에 언질을 주었지만 이번에도 과연 대한민국 국가와 국민들이 전직대통령 비자금을 언급하는 이유도

그러한 맥략이다


박정희 대통령 암살에 총 각본은 미국 국무부 한국 담당자들이 주도각본한것임을 미국 정보 문서를 통해서 확인 해 주고있다

각본 계획은 미국이 행동 대장들은 정권 탈취와 국가전복을 바라는 군부와 그 당시 시위를 유도한 여,야 정치인사들

그대들이 말하는 독재이면 18년독재에 그대들은 30여년간 독재를 해온 세력들이다라는 사실이다

두진영 즉 박정희 암살당한 세력의 대한민국의 18년과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 가담한 세력의 30여년의 지금 대한민국 모습 그 결과는 국민이 할것이고 역사가 조만간에 평가받게될것이다

지금이나 차기 미국 정권이 들어서면 미국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를 기대하는바입니다

그러면 그 참회를 소생은 미국을 용서해줄것이며 진정한 한미 동맹은인류 평화와 상생에 크게기여하게될것으로 보기에 아울려 미국 정부의 공식사과를 하게되면 미국의 입장 처지 국내의 친미 정치 세력들이나 종교세력들 우려하시는것으로 보는것이 미국의 입장이지만

굳이 우려할 이유가 없다라고보는데 그것은 미국이 더 잘 알고 있을것이고 이미 이들은 30여년간 부귀영화를 누릴것은 다 누렸고 이제 역사속으로 청산되어야 할 세력임도 미국도 잘알고 있다고 본다

박정희 대통령 암살에 대한 가담한 세력들의 고해성사를 하면 살려주겠지만 그러하지못하면 자연적이든 인위적이든 역사속으로 사라져야 할 그들의 운명임을 물론 그들은 마지막 발악을 하려고 하겠지만 발악하지않아도 청산되기에 그것이 이 대한민국 국가의 운명인것을 이모든것은 그들이 그동안 뿌려놓은 인과응보이다


명성황후를 시해암살난도질한 일본 정부,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한 미국 정부,그리고 그렇게 방조한 깨어나지못한 대한민국 인간들 이제는 모든것을 평정하고 그들 국가로부터 공식 사과문서를 받아낼것이고 국내인들이 거듭 고해성사하지않으면 그들도 그들의 가족도 지구에서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없다

즉 세부적인 암살에 가담한자들은 밝혀지겠지만 박정희 대통령 암살에 대한 전체적인 윤곽이 밝혀졌기에 진실은 언제나 승리하기에 살아있음을 말해주는것이다

사건의 정황들이 거의 구체적으로 파악되었기에 미국 정부에 공식 사과 촉구를 바라는 메일을 전송했습니다

현 부시 대통령의 남은 1년임기안에 암살을 당하고 싶지않으면 공식사과를 해야할것입니다

그렇게 참회를 미국이 보여주고 대한민국에 관련자들의 정보를 넘겨주면 그것은 미국이 자신들의 죄를 사하는것이되고 동시에 대한민국의 못난 수천년간의 악습관을 바로잡는데 미국이 채찍질을 해주는것이 되기에 결과적으로 응당의 죄의 사함을 다한것이 된다

미국의 업보가 지워지고 다시 복을 받을수가 있고 미국국민들의 습성은 대한민국 국민들보다는 우수하다 그것이 아깝기에 두 국가의 국민성을 보면 그러하다 못난 대한민국 국민성을 바로 잡는데에는 하늘에서 집행을 해야하기에

미국이 협조하지않으면 미국 국가의 손실이 대한민국이 입는 손실보다도 막대하다

이들의 죄를 집행함으로서 미래지향적으로 두 국가를 살리고 국민들을 살리수가 있다

미국 부시 대통령 아버지가 뿌려놓은 업보를 현 부시 대통령이 수습을 해야만한다 하지않으면 외계인들이 다른사람들의 몸을 빌어서 동원해서 부시 대통령을 암살할수도 있기에 그 고통이 부시 대통령 아버지가 고스란히 느껴야하기에

자신의 지난날 대한민국 대통령을 하늘에서 보내준 천자를 암살한 이미 하늘에서 그당시 죽음을 막고자 징조를 현충사 서거당일날 수행 보좌한 사람들중에 이들도 박정희 대통령에게도 알려주었으나 그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심적인 불안정한 그리고 넋나간 처지이기에 이를 보좌한 분들은 사슴이 죽은 광경을 목격하고도 방조하고 그 역시 박정희 대통령 측근들의 음모에 방지하지못했다

아무리 인간들이 자신들의 탐욕을 추구한들 그러한 인물을 하늘에서 보내줌에는 다 이유가 있어서 보내주는데 그만큼 깨닫지못한 사람을 암살한것하고 깨달음을 수행한 인물의 암살은 하늘과 땅차이다

그래서 사람은 태어나서 인간으로 보내줌에는 그 사람의 도량은 이미 정해져 보내주는것이 하늘의 뜻이다
그래 암살한다고해서 그들은 죽지않는다 다시 인간으로와서 그들을 주변에서 지켜본다 그들의 죄의 집행은 하늘에서 하게되고 그들을 죽이면 악순환의 업이 생기기에 죽일수가 없다

하늘에서 사람을 보내줌에는 그 시대와 상황에 맞게 사람을 키우고 보살펴 보호주고 천명의 소임을 정한 시간과 도량이 갖추어지면 그 소임을 맡게되는것이다

이분들은 육신을 초연하게 다루고있다 즉 육신의 생명을 버리는 다짐은 이미 태어날대부터 정해져있기에 깨어나지못하고 깨닫지못한 그대들같은 도량으로 육신은 해칠수가 있으나 그 법력은 해치지못한다 알겠는가?

먼 미래에도 또 대한민국 아니 남북한에 대통령 인물에게 암살을 하려는 도수는 이미 하늘에서도 알고있다 그래서 그때에는 암살을 한 국가들이나 민족이나 당한 민족들에게 엄중한 하늘의 형벌이 내려질것이다 아마도 그들의 국가 자체가 멸망하게 될것이다

이미 어느 국가인지 알고 있다 이렇게 애기해주어도 그대들은 말귀를 알아듣지못하는 미련한 속성들이다



의문의 총소리 10.26박정희암살사건과 김재규의혹

김재규를 둘러싼 의혹들



유신이 낳은 풀리지 않은 사건. 10.26 박정희암살사건은 많은 의문을 남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렇게 기억의 한켠 속에 역사적 사건으로 자리잡았던 것들이 10.26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그때 그사람들>이 상영되면서 김재규에 대한 의문들이 사람들에 입에 다시 오르기 시작했다.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에서의 총소리. 유신의 칼날을 세우고 민주와 통일을 짓밟고 독재를 일삼던 박정희가 김재규에 의해 목숨을 잃는다. 몇발의 총소리가 유신의 숨통을 끊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12월 12일 전두환신군부세력들이 나타나 파쇼독재의 바통을 이어나간다. 그리고 미국을 등에 업고 폭압을 저지른다. 5.18광주학살을 자행한다. 10.26사건으로 박정희의 유신독재는 막을 내렸지만 정치권력에 있어서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던 중앙정보부.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중앙정보부의 수장이었던 김재규가 무엇 때문에 박정희를 죽였을까? 박정희를 죽이고 자신이 권력의 권좌에 오르기 위해서? 아니면 누가 시킨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김재규의 말대로 민주주의를 위해서 유신의 심장을 쏘았을까?

풀리지 않는 의문을 남긴 채 10.26사건은 정리되었다. 하지만 판도라의 상자에 의혹을 가두어둔 채 10.26사건을 역사속에 묻히게 할 수 없지 않은가? 풀리지 않은 실타래는 풀어야 그 실을 다시 쓸 수 있다. 무엇 때문에 그 실이 꼬였는지 하나하나씩 풀어헤쳐보자.



김재규의 의혹

10월 26일 궁정동 중앙정보부 만찬장에서 박정희와 차지철 경호실장, 김재규 등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부마항쟁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며 차지철은 김재규를 질타하며 강경대응을 설파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던 중 죽일 기회를 엿보던 김재규는 숨겨두었던 총으로 차지철에게 먼저 한발을, 박정희에는 다음 한발을 쏜다. 차지철도 박정희도 저세상 사람이 되는 순간이었다. 김재규는 육군본부에서 보안사령부 군인들에게 잡히게 되고 계엄령선포 후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인 전두환에게 조사를 받게 된다. 전두환은 조사 후 ‘차지철의 간섭과 월권으로 수모를 당하고 있음에도 박대통령의 차지철 편애와 부마항쟁에 대한 인책설로 불안하던 차에 대통령으로는 자기가 적임자고 권력에 요직자들이 자기 영향권에 있다고 판단해 시해계획을 구상한 것이다’라고 발표한다. 김재규는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계엄사령부는 내란목적살인 및 내란미수죄를 적용시켜 사형을 선고받았고 상고심에서 기각되어 사형되었다.



의혹 하나, 전두환세력의 말대로 김재규는 내란을 목적으로 박정희를 죽였다?

전두환의 발표대로 내란을 하기 위한 10.26이었다면 김재규는 박정희를 죽이고 나서 왜 우왕좌왕했을까? 만찬장에서 나와 중앙정보부로 갈지 육군본부로 갈지 고민한 것도 그렇다. 10.26사건 후 내란을 위한 어떠한 움직임 없이 5시간만에 보안사령부 군인들에게 체포된 것도 의문이다. 내란을 일으키기 위한 것이라고는 너무나 허술하다. 오히려 내란은 신군부세력인 전두환이 일으켰다.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신군부세력은 정승화참모총장을 10.26사건에 관계된 것처럼 조작해 쿠데타를 일으키고 전두환세력들이 정권을 장악한다. 10.26사건을 내란미수죄로 적용시킨 것은 12.12사건을 만들기 위한 빌미에 불과하였다. 결국 신군부세력인 전두환, 노태우는 1996년 12.12쿠데타와 광주학살로 내란죄. 내란목적살인죄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는다.(이후 이들은 김영삼의 ‘화해’와 ‘통합’조치라는 명분 아래 석방된다)



의혹 둘, 우발적으로 박정희를 죽였다?

일국의 대통령을 죽이는데 우발적으로 죽였겠는가! 김재규는 박정희와는 같은 고향출신이고 군대동기이다. 1954년부터 1975년까지 군요직과 정치가를 거쳐서 1976년도에는 중앙정보부장을 맡게 된다. 중앙정보부의 수장이 되기까지 탄탄대로를 거쳐 온 것이다. 당시 박정희에게 질책을 받았지만 우발적으로 사건을 일으켜 자기 무덤을 팔 리는 없었을 것이다. 김재규의 옥중수기에는 1974년 9월, 1975년, 1979년 4월에 살해를 시도하려 했다는 기록이 있다. 혼자 단행한 것이 아니라 수하군인 박선호, 박흥주 등과 모의하여 사건을 저질렀고 그 수하부하 5명은 사형되었다고 한다. 자신을 포함 무려 6명이나 사형을 당한 사건이 우발적으로 저질러졌다는 것은 의혹이 아닐 수 없다.



의혹 셋, 김재규의 말대로 민주주의를 위해 박정희를 죽였다?

김재규는 재판과정에서 ‘민주주의를 위해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고 진술했고 죽기 전에는 ‘내가 목적했던 민주혁명은 자유민주주의가 회복되고 보장된다는 것을 확신한다’고 유언을 남겼다. 이후 종교계에서는 ‘김재규 명예회복을 위한 추모모임’을 만든다. 김재규가족들은 명예회복신청서를 민주화심의위에 제출했고 2004년 민주화심의위는 역사적 평가와 자료 부족으로 심의를 보류시켰다.

과연 김재규는 민주화를 위해 박정희를 죽인 것일까. 김재규를 민주인사로 볼 수 있는 것일까? 여기서 잠깐 김재규의 과거행적과 김재규가 몸담고 있었던 중정(중앙정보부)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중정은 1970년대 박정희유신철권통치를 뒷받침하는 파쇼폭력기관이었으며 민청학련, 인혁당, ‘동백림’ 사건 등 공안사건 고문조작의 본산이었다. 박정희가 죽은 1979년 당시에도 중정은 부마민중항쟁에 대한 진압을 진두지휘하고 있었다. 중정은 무소불위의 파쇼권력기관이었으며 중정의 수장은 박정희 다음의 권력자였다. 바로 이때 김재규가 중앙정보부장을 맡고 있었다. 파쇼권력의 2인자였던 것이다. 파쇼권력의 2인자가 박정희를 죽였다고 해서 갑작스레 민주인사로 될 수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김재규에 의해 희생당했던 수많은 민주, 통일 인사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김재규가 박정희에게 총을 쏜 것을 민주주의를 위한 행동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비약 그 자체인 것이다.



의혹 넷, 미국의 사주를 받아 박정희를 죽였다?

이승만정권 대신 박정희정권을 등장시켰던 미국이었다. 그런데 1979년, 박정희유신철권통치에 억눌려 있었던 민중들의 항거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부마민중항쟁이 시작되면서부터는 박정희정권을 내세워서 이남민중을 장악통제할 수도 없으며 코리아(Corea)이남이 대소봉쇄기지로서의 역할도 수행할 수 없으리라는 판단을 하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박정희정권은 주한미군철수가 일정에 오르자 핵무기를 개발함으로써 언제든지 미국에 대항할 수 있는 군부세력으로 바뀔수도 있는 조건이었다. 공개된 미중앙정보국(CIA)문서를 통해 1979년초 ‘박대통령의 권력승계 위기’문제를 거론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미국무부문서에도 9월 26일 김재규와 주한미대사 글라이스틴이 만나 ‘권력승계문제’를 논의했다는 기록이 있다. 주한미군사령관 존 베시는 10월 25일 아시아협회가 주최하는 한 만찬회에서 ‘가령 특별한 사건이 일어난다고 해도’라는 발언으로 10.26을 암시했다. 그래서 였을까. 미국은 10.26사건이 발생하자 지나치다 싶을 만큼 강하게 ‘미중앙정보국개입설’을 부인하고 다녔다. 그러면 무엇하겠는가. 1979년 11월 5일자 『뉴욕타임즈』는 ‘죽인 것은 한국인이지만 지시한 것은 미국이다’라는 한 ‘한국’인저널리스트의 발언을 기사화했다. 주한미대사였던 글라이스틴은 운명을 다하기 직전인 1999년, 인터뷰를 통해 ‘미국은 10.26에 의도하지 않게 연루됐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10.26의 배후는 아직까지 베일에 가리워졌다. 그러나 ‘내 뒤에는 미국이 있다’라고 김재규가 법정에서 남긴 유명한 말을 통해 10.26사건의 배후에 미국이 있었음을 추정하기란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닌 것이다.



미국에게 이용당한 일회용품 김재규

10.26사건 이후 계엄령이 선포되고 최규하가 대통령직을 이어받는다. 그리고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인 전두환이 계엄사령관 정승화를 체포하는 12.12쿠데타를 단행하고 신군부세력의 실권을 장악한다. 두목만 바뀐 군부독재정치가 다시 시작된 것이다. 10.26사건은 박정희에서 전두환으로의 권력승계를 위한 하나의 정치적 쇼에 불과했다. 정치적 쇼에 김재규는 주연을 담당했고, 그 이후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김재규가 과연 사형을 당했는지 여부도 의혹이다.) 민중들에 항거에 위기의식을 느낀 미국이 파쇼권력의 2인자였던 김재규를 이용해 박정희를 제거하고 그 혼란을 틈 타 전두환을 내세운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 육여사 피살후 핵무기 개발에 적극 나서...



2006년 6월 3일(토) 0:31 [한국일보]



"박대통령, 육여사 피살후 핵무기 개발에 적극 나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육영수 여사 피살사건(74년 8월15일)을 계기로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한 사실이 최근 해제된 미 국무부 비밀문서에서 밝혀졌다. 박 전 대통령은 북한의 남침 방어, 지나친 대미 의존 탈피, 정권 유지를 목적으로 핵개발을 시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1973~74년 미 국무부 비밀문서’에 따르면 74년 11월7일 리처드 스나이더 당시 주한 미대사는 국무부에 보낸 보고서에서 “박 대통령의 장기 목표는 자주국방, 외부세력으로부터의 독립”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특히 박 대통령이 육 여사 암살사건과 관련해 극단적인 정책을 펼쳐 일본과의 외교단절, 미국의 군사ㆍ재정지원 포기도 고려했다”고 적었다. 보고서는 “박 대통령은 궁극적으로 미군을 완전 철수시킨 뒤 다른 곳에서 군수물자를 조달하고, 향후 10년내에 독립적으로 핵 억지력을 보유하려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




미국 정부의 어떤 공무원도 다른 나라 지도자의 암살에 관여해서는 안된다.

- 특별명령 11905



1976년 제럴드 포드 대통령이 내렸던 이 특별한 명령은 그로부터 5년 후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글자 한 자 고쳐지지 않은 채 다시 한 번 되풀이 된다.

왜 이런 이상한 특별명령이 반복적으로 내려졌을까? 소련이나 중국을 공격할 때 곧잘 인권을 들먹이던 미국으로서는 한 번 선포하기에도 부끄러운 내용일텐데....

나는 형식논리적으로 그리 어렵지않게 결론에 이르렀다. 이것은 1976년과 1981년 사이에 외국의 원수가 암살된 일이 있고, 그 암살에 미국의 공무원이 개입했다는 반증이 아니겠는가. 그러면 그 사이에 암살된 외국의 지도자로는 누가 있을까? 나는 그 사이에 암살된 외국의 지도자로 지구상에서 오직 한 사람밖에 찾아내지 못했다.



박정희!



1979년 10월 26일, 한국의 대통령 박정희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로부터 총격을 받고 유명을 달리했다. 사건 후 김재규는 보안사 서빙고 분실에서 가혹한 고문을 받다가 "내 뒤에는 미국이 있다"고 절규했다. 그러나 미국의 배후에 대한 수사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제 김재규는 세상을 떠나고 세월은 흘렀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이 이상한 특별명령은 나의 뇌리에서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왜 합수부는 육군 참모총장까지 불러놓고 결행한 김재규의 거사를 우발적이라고 발표했을까? 왜 김재규가 "내 뒤에는 미국이 있다"라고 말한 부분에 대해서는 수사를 하지 않았을까? 왜 주한 미군 고문관실에서는 이미 10.26 전부터 육사 11기를 스터디한 것일까? 왜 박정희가 개발했던 핵과 미사일에 관계된 자료는 몽땅 증발해 버렸을까? 왜? 왜? 왜?



신동아 2000년 4월호





“김대중 살릴 것을 강력히 권고한다”


본지 2000년 1월호에 이어 이번 호에 공개하는 미국무부 비밀전문은 카터 당시 미대통령이 김대중 현 대통령의 석방과 구명을 위해 박정희와 전두환 당시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 김대중 대통령의 과거 성향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 이외에도 이 비밀전문에는 김일성과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의 대화 내용, 북한이 판문점 도끼 만행사건을 일으킨 후 키신저를 비롯한 미국 수뇌부의 비밀 회의록 전문, 주한미군 철수에 대한 박정희 대통령과 윌리엄 포터 주한 미대사의 극비 면담록, 김종필 당시 국무총리가 박정희 대통령의 영구 집권 야망을 미국무부에 알린 사실 등 흥미로운 내용이 담겨 있다. 이번호에 실린 미국무부의 비밀전문은 미국의 정보공개법(FOIA, Freedom of Imformation Act)에 따라 올해초부터 비밀해제되기 시작한 방대한 비밀문건 가운데에서 한국 정치 지도자과 관련된 자료이다. 이 자료는 한국 현대사 자료 발굴을 하고 있는 워싱턴 소재 비영리재단 인터내셔널 센터의 KISON(Korea Information Service On Net) 프로젝트팀으로부터 입수한 것이다.<편집자> 이흥환·정광호 미국 KISON 연구위원



--------------------------------------------------------------------------------

김대중 석방 및 구명에 관련된 미국의 압력




다음은 카터 행정부 때인 1977년 4월26일 미 백악관 안보담당 보좌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Zbigniew Brzezinski)가 김대중씨 석방건 등 당시 한미간 현안에 대한 카터 대통령의 지시 사항을 국무장관에 전한 비망록 형식의 1급 비밀(Top Secret/Sensitive) 문서 전문이다. ‘김대중 석방’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2쪽 짜리 1급 비밀 문서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원하는 조건을 미국이 받아들일 경우 김대중씨를 석방하겠다는 내용이 들어 있고, 이 부분(본문 가운데 명조체)에는 카터 대통령이 직접 쓴 ‘그렇게 되면 좋겠다(will be glad to do so)’라는 자필 의견(notation)이 기록되어 있다.


TOP SECRET/SENSITIVE
1977년 4월26일
비망록 수신자: 국무부 장관
제목: 김대중 석방

대통령의 의견(notation)이 첨가된 다음 문건은, 석방 조건(김대중씨 석방: 역주)으로 박(박정희 대통령: 역주)의 면목을 세워주라는(credit) 대통령의 의지가 나타나 있음. 슈나이더(Sneider) 주한 미 대사에게도 통보하는 것이 적절할 것임.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첨부: 문안 2번
1급 비밀-Sensitive 1977년 4월26일


인권에 대한 박정희 대통령의 태도: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최근 슈나이더 주한 미 대사에게 박 대통령의 심경을 전한 바 있음. 이에 따르면 박 대통령이 인권에 대해 강경한 자세를 바꾸는 것은 기대하기 어려움. 김(김종필: 역주)에 따르면, 박(박정희: 역주)은 명동 사건 관련 구속자를 석방하는 것이 미국 압력 때문으로 비치지나 않을까 우려하고 있음. 그렇게 되면 반체제 인사들의 활동을 한층 더 강화시켜 ‘심각한 결과’를 야기할지도 모름. 그러나 최근에 박을 면담한 전직 대사 함(함병춘 주미 대사: 역주)은 대통령이 명동 사건 문제에 대해 훨씬 유연해졌다고 전했음. 함은 또, 김(김대중: 역주)의 석방이 단지 미국이 압력을 가한 결과가 아니라 박 정권의 강고함(stre ngth) 때문이라는 것을 입증할 만한 방법을 서울이 찾을 수 있도록 미국이 도와주기만 한다면, 박은 김대중을 석방할 것이라고 주장했음.


다음은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 이후 내란죄로 구속 수감된 김대중씨의 구명을 위해 카터 대통령이 한국의 전두환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 전문(2급 비밀, Secret)이다. 머스키 국무장관(Edmund S. Mus kie)은 카터의 친서 초안을 작성해 11월25일 백악관에 보냈고, 카터 대통령은 12월1일 외교적 관례를 감안해 자극적인 표현을 자제한 국무부의 이 초안을 직접 수정했다. 카터는 이 수정본에서 김대중씨에 대한 형 선고 취소나 감형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군사 경제적 측면에서 한미 관계가 나빠질 수 있음을 경고하고, 김대중씨에 대한 감형을 ‘강력하게 권한다(urge)’는 이례적인 표현(국무부 초안에는 ‘희망한다(hope)’로 되어 있음)을 동원할 정도로 김대중씨 구명에 깊은 관심을 표했다. 카터 대통령은 또한 국무부의 초안 표지 오른쪽 상단에 만년필 글씨로 ‘JC’라는 자신의 약명과 함께 ‘오늘 12월1일, 발송할 것’이라는 지시 사항을 따로 적어놓았다. 친서 가운데, 명조체는 카터 대통령이 직접 첨가해 넣은 부분이며, 괄호 안 내용은 원래 국무부 초안 사본에는 있었으나 카터 대통령이 삭제 또는 수정한 부분을 표시한 것이다. 카터 대통령은 국무부 초안 중 12행 정도를 삭제했는데, 이 부분은 번역에서 제외했다.


경애하는 대통령 각하


11월10일자 각하의 친서를 잘 받았습니다. 양국간 우의와 동맹 관계가 앞으로도 더 강화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머지 않아 각하께서는 김대중씨에 대해 형(사형)을 집행할 것인지, 아니면 군사 재판이 결정한 형량을 감형하거나 또는 형 취소 결정을 내릴 것인지 매우 어려운 결정을 내리시게 되리라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이번 서신에는 저의 사적인 견해를 담았습니다. 각하께서 주지하시는 대로, 글라이스틴 주한 대사가 귀 정부와 상의한 이후 미 정부는 본 사건이 최근 몇 달 간 재판에 계류중인 관계로 이에 대해 섣부르게 공개적이고 공식적인 언급을 피하기 위해 지금까지 주의를 기울여왔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국제 관계에서 심각한 피해를 볼 가능성이 있습니다. 한미 양국의 중요한 안보 관계에 대한 미 국민의 지지는 떨어질 대로 떨어져 이미 위험 수위에 달했습니다. 한국 야당 지도자들이 말 한마디 못한 채 투옥되거나 정상적인 정치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미국은 깊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차기 미 행정부가 (내 후임자가) 양국의 긍정적인 협조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을 하리라고는 믿고 있으나, 김대중씨 같은 주요 정치인을 처형하는 것은 한미 양국의 군사적·경제적 관계를 근본부터 크게 위협하게 될 것입니다. 향후 수개월 간 경제와 안보 면에서 양국의 상호 관심사를 같이 추구할 기회가 있습니다. 이 중대한 시점에(워싱턴의 새 행정부가 출범하게 되는 시점에) 각하께서도 이런 일들이 위협받지 않기를(손상되지 않기를) 희망하시리라 믿습니다. (중략) 각하의 지도력은 오직 화해와 관용을 통해서만 공고해지리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각하는 김대중씨가 각하의 경쟁자가 아니며 김대중씨와 개인적인 원한이 있는 것도 아니라고 여러 차례 밝혔습니다. 따라서 각하께서 김대중씨에 대해 감형 조치를 취하실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그런 결정은 오직 각하만이 하실 수 있는 결정이라는 것을 저도 잘 인식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국가 이익과 한미 양국의 상호 관계를 위해, 저는 군사재판의 형 선고 취소나 감형 조치를 취해주실 것을 강력하게 권합니다(희망합니다). 지미 카터




김대중 대통령 후보가 미 측에 밝힌 초기 이력(1970년)



김대중 의원이 신민당의 7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것은 1970년 9월이다. 같은 해 12월17일 포터 주한 대사가 국무부에 전송한 ‘김대중 이력’ 보고서에는 다음 해(1971년)의 대통령 선거에서 김 후보에게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는 점을 분석해놓은 부분이 들어 있다.


선거에서의 잠재 취약점


a. 초기 좌익 연루: 김대중은 1945년 해방 직후 좌파 정치에 연루되었음. 그러나 자세하게 들어가면 언론마다 보도 내용이 다름. 한 보고서에 의하면, 김은 1940년대 후반, 한때 친(親)공산주의자였던, 멤버들이 조직한 보도연맹에 대해 반(反) 공산주의 연설을 행한 바 있음. 이 점을 볼 때 김은 초기 한때 좌파에 경도됐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으나, 동시에 반공산주의로 빨리 넘어왔다는 사실도 지적해둠. 10일 전 김대중은 우리 대사관 관리에게 자신의 초기 활동에 대해 말해준 바 있음. 이에 따르면, 해방 후 그는 약 6개월 간 좌익 신민당에 관계했으나 내부 공산주의자들의 세력에 반대해 당을 떠났음. 김은 또 자신이 1946년 10월 목포 파출소 습격 사건에 참가했던 것으로 비난을 받고 있으나, 그는 그 사건이 일어난 날 장남을 출산하는 부인 옆에 같이 있었다고 주장했음. 김은 또 우리 대사관 관리에게 말하기를, 1950년 목포가 공산주의 점령하에 있을 때 공산당에 의해 감금되어 있었으며 사형 선고를 받았다고 했음. 그는 공산당 패주로 구출되었음. 미 육군 정보참모부가 한국 정보 계통 관리의 말을 인용한 바에 따르면, 한국 정보 계통 인사들 사이에서 이 이야기는 일반적으로 틀림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음. 상황을 종합해볼 때, 초기에 좌익에 기울었다는 주장은 대통령 선거 운동에서 김대중에게 잠재적인 위해가 될 수 있음. 그러나 최소한 박 대통령도 똑같은 약점이 있기 때문에 민주공화당이 그 문제를 공개적으로 부각시킬 것 같지는 않음.


b. 병역 미필 문제: 김대중의 출생 신고서에 따르면, 한국전 발발 시 그는 24세였으나 군에 징집되지 않았음. 김은 대사관 관리에게 말하기를 자신은 단순히 소집되지 않았을 뿐이며, 따라서 징집 기피로 분류될 수는 없다고 함. 그러나 당시 부유층이나 유지급 가족의 자제가 병역 면제를 받는 것은 흔한 일이었으며, 이를 반증하지 못할 경우 국민들은 군 복무를 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할 것임. 신민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직후 김대중의 참모들이 준비한 김의 이력에 따르면, 김대중은 1950년 10월에는 ‘공민 해안경비대 전남 지부 부사령관’으로 되어 있음. 조사에 따르면 공민 해안 경비대는 지역 방위와 해안 경비를 임무로 하는 비공식적인 자원 단체임.




정일권이 본 김대중의 두 가지 문제



1971년 1월15일자 미 국무부의 비밀 대화 비망록은 3개월 후에 치러질 한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미국을 방문한 정일권 전 국무총리가 국무부 고위 관리들을 만나 나눈 대화 내용이다. 한국과 미 의회의 관계, 정일권의 방문 일정 가운데 하나인 미국 농업용 관개수로 시찰 및 세미나 참석 등을 주제로 하고 있으나, 신민당 김대중 대통령 후보에 대한 평가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정일권은 김대중 후보를 명석하고 활력 있는 사람으로 평가함. 그러나 김은 두 가지 기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함. 1950년 한국전 때 김은 20세였으나 군 복무를 하지 않았음. 한국의 안전은 군에 의지하고 있음. “김이 어떻게 그들(군부)을 컨트롤하겠는가?” 더구나 김은 학자 같아서 이론과 원칙에만 치중하고 실제에는 취약함. “임금은 올리고 세금은 낮추면서 예산을 짜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그런 약속을 할 수 있는가?” 한국은 ‘실무에 밝은 사람,’ 즉 박 대통령 같은 사람이 필요함. 정이 생각하기에 박 대통령은 한국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 가운데 한 명임. 박 대통령이 한번만 더 임기를 채우면 한국은 북한에 대해 우위에 설 것이며 통일에 대한 대비를 할 수 있을 것임. 박 대통령의 통일관이 김대중보다 훨씬 나음. 박 대통령은 북한에 대해 침투 행위를 중단하라, 그러면 교류할 것이라고 말하는데, 김은 반대로 지금 북한에 서신왕래, 인적 교류 등 모든 것을 열겠다는 것이다.’ 정일권은 김대중 후보를 이렇게 평한 다음, 한국 대통령 선거에 대한 미국의 생각을 물어본다. 미국의 대답은 이렇다. “베스트 맨이 대통령이 될 것이다.”




김일성과 이후락의 만남



다음은 1972년 11월3일, 평양에서 열린 남북 대표간의 2차 회의에서 한국의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북한의 김일성 수상이 만나 나눈 대화 내용 가운데 일부다.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은 같은 해 5월 극비리에 평양을 방문해 처음 김일성을 만났으며, 7월4일에는 남북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남북조절위원회 구성 및 운영에 관한 사안을 협의하기 위한 11월2~4일의 평양 회담에는 이후락 중앙정보부장 외에 장기영 전부총리와 최규하 대통령특별보좌관이 동행했다.

김일성-이후락 간의 이 대화 초록은 72년 11월9일 하비브 주한 미 대사가 미 국무장관 앞으로 보낸 비밀 전문에 들어 있는 내용이며, 이 비밀 전문은 최근 비밀 해제된 것을 KISON이 입수한 것이다. ‘11월 2~4일, 평양의 남북조절위원회 회동’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전문은 2급 비밀(Secret)로 분류되어 있으며 ‘배포 금지(NODIS, No Distribution)’라는 등급이 매겨져 있다. 이 전문(A4 용지 5매 분량) 머리부분의 요약란에는 “한국 중앙정보부장이 평양 조절위원회 회담 초록 사본을 주한 미 대사관에 제공해주었음”이라고 밝히고 있으며, “이후락과 북한 사람들의 회동, 특히 김일성과 회동은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졌다고 기술되어 있음”이라고 적고 있다. 따라서 미 국무부의 이 전문은 한국 중앙정보부가 제공한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된 것이며, 평양 회의를 보는 하비브 주한 미 대사의 평가와 의견이 첨부되어 있다. 총 6개 항으로 되어 있는 이 전문은 첫번째 항에서 남북 대표들 간에 ‘연방제’를 놓고 현격한 의견 차가 있었음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평양 회의의 본질적 측면은 토의에서 나타난 바 세 가지 단어(합작, 연방, 공동 보조: 역주)로 요약됨. 김일성과 북한 고위 관료들은 시종일관 연방(confed eration)으로 가기 위한 즉각적인 합작(협동 또는 합동 노력으로 번역될 수 있음)을 고집했으며, 이후락 일행은 공동 성명에 나타난 바 공동 보조(정치적 연합의 의미를 포함하지 않는 공동 협조로 번역할 수 있음)라는 용어를 줄곧 주장했음.”


11월3일 10시15분부터 13시50분까지 점심 식사를 겸해 이후락이 김일성을 만남


A. 김일성이 말하기를, 세상 사람들이 한국이 통일되리라고 믿지 않고 있으며 통일되기를 바라지도 않고 있지만 한국인들은 반드시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에게 전해달라면서 이후락에게 한국인은 ‘어떤 형태가 되었든 간에’ 가능한 한 이른 시일 안에 합작(coalition)을 위해 함께 뭉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인은 서로 다른 점을 조정해 조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박 대통령에게 전해 달라고 했다. 그는 조절위원회는 말만 할 것이 아니라 행동을 해야 한다면서,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막대한 군사 지원을 받고 있지만 북한은 러시아로부터 그렇게 많은 지원을 받지 않고 있기 때문에 방위비 부담이 크다고 불평을 털어놓았다. 그는 또 연방제가 되면 군사적인 노력과 군사 예산에 힘을 쏟는 대신 평화로운 산업 분야에서 협조해야 하며, 연방제 하에서는 양쪽이 있는 그대로의 사회 체제를 유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락은 시종일관 양측은 서두르지 말아야 하며, ‘급격한 변화’보다는 ‘단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후락은 또 김일성의 연방제는 고려해볼 만하고 더 연구 검토해볼 만한 것이지만, 박 대통령의 제안은 통일로 가는 특정 단계가 성사되기 전에 ‘민족회의(national conference)’가 열려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로 의견을 교환하는 과정에 이후락은 7·4 공동성명은 평화조약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B. 김일성은 단정지어 말하기를 북한이 분단 국가로 유엔에 가입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했다.


C. 김일성은 여러 차례에 걸쳐 박정희 대통령과 정상 회담을 촉구했다. 이후락은 이에 대해 공동 협조가 잘 이행되고 조건이 성숙했을 때 정상회담을 추진하겠다고 대답했다. 대화중에 김일성은 박 대통령이 좋다면 자기 동생인 김영주를 12월이나 1월쯤 박 대통령에게 특사로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대사관 노트: 한국 정부는 11월30일 아마도 김영주의 서울 방문과 관련된 중대 발표를 할 것이라는 관측이 있음).


D. 김일성은 국호를 ‘고려연방공화국’으로 새로 지어야 한다고 제안하면서 오래 전부터 박정희 대통령에게 이를 개인적으로 제안하고 싶었을 뿐만 아니라 이후락이 박정희에게 그의 말을 전해줄 것을 요청한다고 했다.


E. 김일성은 또 오래 전부터 자신이 제안해온 10만명 수준의 상호 병력 감축을 되풀이 주장하면서 절감된 군비 예산은 경제와 정치 협력을 위한 공동 개발에 사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일성은 박 대통령이 1980년의 통일을 제안했는데 그때가 되면 김일성은 70대가 되고 박 대통령은 67세나 68세가 되므로 두 사람은 나이가 너무 들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후락은 박 대통령의 말은 늦어도 1980년까지는 통일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응답했다. 한국일보 사장 장기영은 김일성에게 통일이 얼마나 빨리 될 수 있다고 보느냐고 물었다. 김일성은 만약 박 대통령이 동의만 하면 우리는 한 달 안에, 아니 하루만에라도 통일할 수 있다고 답하면서, 그러나 불행하게도 박 대통령과 한국 정부는 북한의 동기를 의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F. 김일성은 덧붙이기를, “솔직히 말해서 나는 통일된 조국의 수상이 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아직 내 철학 저술을 다 마무리하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자기는 누가 통치를 하느냐 하는 것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통일에만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일성은 “박 대통령에게 이렇게 전해주십시오. 나는 통일을 밀어붙이는 게 아니며 서두르지도 않는다고 말입니다”라고 말했다. 이후락은, 박 대통령도 같은 생각이며, 공동의 노력이 통일을 이끌어가야 한다고 대답했다.


G. 이후락은 남쪽에서 공산주의자를 체포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북에 와서 공산주의자와 협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참 묘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김일성은, 이후락은 공산주의자와 제휴를 시도할 만큼 용감하기 때문에 그와 동행한 최규하나 장기영보다 더욱 믿음이 간다고 말했다. 이후락은 자신에게 영웅 칭호를 부여하겠다는 김일성의 제안을 극구 사양했다.

H. 김일성은, 남북조절위원회가 대화에만 국한할 것이 아니라 공동의 노력을 위한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락은 이에 대해, 박 대통령의 철학도 김일성의 생각과 완전히 일치한다고 말했다.




김일성, 청와대 기습사건 사과


--------------------------------------------------------------------------------


다음은 1972년 11월20일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하비브 주한 미 대사를 만나 당시 진행중이던 남북조절위원회의 진행 상황 및 향후 전망, 이후락 부장의 김일성에 대한 평가 등을 주제로 나눈 대화 내용 가운데 주요 부분을 발췌한 것이다. 이후락과 하비브의 이 대화 내용은 1972년 11월22일 하비브 대사가 미 국무부에 보낸 2급 비밀(Secret) 전문(Telegram)에서 밝혀진 것이다.


‘남북 관계 진전에 대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의 토론(Discussion with ROK CIA Director Lee Hu-Rak on South/Nor th Developments)’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이 비밀 전문은 A4 용지 6장 분량이며 대통령, 국무장관, 임무 책임자 등 특수 인가자에게만 공급하도록 되어 있는 ‘배포 금지(NODIS, No Distribution),의 등급이 매겨져 있다. 이 전문은 남북조절위원회의 평양 2차 회의(11월2~4일)가 끝나고 서울에서 열릴 3차 회의(11월30일)를 1주일 가량 앞둔 시점에 타전되었고, 남북한 정부가 남북조절위원회를 통한 정치 대화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의 입을 통해 미국 측에 전달되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남북 관계 진전에 대해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한 토론


요약: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은 11월2일부터 4일까지 평양에서 열린 제2차 남북조절위원회 회의에서 한국 정부가 기본 주장을 변경하거나 논의의 진행 속도를 가속하지도 않았다고 말했음. 소위원회가 열리게 되어 있긴 하지만 한국 정부가 준비가 되었다고 판단할 때까지는 가동하지 않을 것임. 그는 11월30일 서울에서 열리는 제3차 남북조절위원회에서 특별한 진전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음. 박 대통령과 김일성의 정상 회담은 가까운 시일 안에는 열리지 않을 것임. 평양은 남북 적십자 회담을 통한 인도적 분야의 진전에 진정한 흥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음. 반공법과 국가보안법이 지금 당장은 개정되지 않을 것임. 이후락은 남북 대화 및 외교 정책에 대한 한국 정부의 상황과 관련, 조율의 필요성을 인정했음.


1. 1972년 11월20일, 한국 중앙정보부장 이후락과 만나 한반도 내부 상황과 관련, 의견 교환에 따른 남북한 관계의 진전에 대해 토의했음.


2. 이후락에게 11월2일부터 4일 사이에 열린 2차 남북조절위원회 기간에 북한을 방문하면서 느낀 일반적인 인상, 특히 김일성과 45분간에 걸쳐 개별 면담할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물었음. 이후락은 이번 회담은 특별히 중요한 것은 없으며, 주로 이전의 토의 내용을 재검토했다고 했음. 김일성은 1968년 1월21일 발생한 청와대 습격 및 실패한 박 대통령 암살 기도를 설명하고 사과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음. 김일성은 재차 북한의 강경 분자들을 비난하고, 박 대통령에게 자신의 사과를 전해줄 것을 요청했음. 이후락은 평양 방문에 대한 일반적인 인상을 아직 정립하지 못하고 있었음. 그러나 그는 평양의 목표는 북한의 혁명 공작이 한국에 잘 먹혀드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음. 북한은 한국의 경계 태세가 늦춰지고 반공에 대한 수위가 약화되며 반공법이 개정되기를 희망하고 있다는 것임.




남북한 ‘시간 벌기’


--------------------------------------------------------------------------------


3. 김일성과 이후락은 경제 분야에 대해서도 장시간 이야기를 나누었음. 김일성은 특히 북한의 광물 자원에 대해 열을 올리면서 자랑스러워하는 것처럼 보였음. 이후락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본 북한 사람들에 따르면, 500만 명의 노동력 가운데 약 100만 명이 북한의 광물 자원 개발에 투입되어 있다는 것임. 이후락은 북한이 경제 자립을 시도하면서 노동력을 비경제적으로 분배하고 있다고 결론지었음. 이후락은 또 농업과 여러 방면의 제조업 분야로부터 지나치게 많은 노동력이 전용되고 있다고 보았음. 김일성은 분명히 남북한의 경제 교류를 원하는 것 같았음.



4. 한국이 남북조절위원회에 설치되어 있는 소위원회에서 경제 및 군사 교류를 추진할 의향이 있는지 물었음. 북한은 남북한을 갈라놓고 있는 주요 현안들에 대해 토의하고자 하는 단호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듯이 보임. 이후락은 소위원회에 대한 자신의 생각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대답했음. 소위원회를 열기로 했지만 한국이 소위원회를 개최할 준비가 됐다고 판단하기 전까지는 가동되지 않을 것임. 한국은 북한이 재촉하는 현안들에 대해 토의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며, 그런 주장을 완강하게 고수할 것임. 한국이 진척시킬 수 있는 분야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이후락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문화·스포츠·경제 교류가 가능하겠지만 소위원회 가동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답했음. 조절위원회가 적십자 회담의 진전에 도움이 되겠느냐는 질문에 이후락은, 평양이 인도적 분야의 진척에 진정으로 흥미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기 때문에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답했음.



5. 북한은 분단국으로는 유엔에 가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김일성의 언급을 상기시키면서, 유엔 문제에 대한 많은 토의가 있었는지 물었음. 이후락은 이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면서, 평양은 한국이 거부권 때문에 유엔에 가입할 수 없을 것으로 판단하는 것 같다고 말했음.

이후락이 받은 인상으로는 김일성은 기본적으로 평화 공존의 기간, 즉 전쟁 없는 상태를 원한다는 것임. 연방제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이후락은, 연방제는 ‘생각할 수 없는(not thinkable)’ 것이라고 말했음. 김일성은 연합(federation)이나 연방(confederation)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명백하게 공식화하지 못했음. 이후락은 김일성이 막중한 군사비 부담을 줄이는 방안을 찾고 있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것 같았음.



6. 평양이 촉구하는 큰 현안들을 한국이 회피하려 하기 때문에 남북 대화가 결렬될 가능성은 없느냐, 어떻게 대화를 유지할 것이냐는 질문을 했음. 이후락은 통일은 남북조절위원회라는 방법으로는 달성될 수 없다고 잘라 말했음. 이후락은 자유 사회와 공산 사회가 합쳐지기를 바라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라고 거듭 말하면서, 그러나 남북한은 똑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는데 다름아닌 시간벌기(buy time)라고 했음. 한국이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은 강력한 국가 건설을 위한 것임. 즉 서독이 동독의 우위에 서 있는 것처럼 남한이 북한의 우위에 서야 한다는 것임. 북한 역시 시간이 필요함. 자본주의 체제의 내부 모순으로 남한이 취약해지고 혁명 분위기가 조성되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임. 비록 목적은 서로 다르지만 남북 양측은 시간이 자기 편에 유리하게 전개될 것이라고 믿으면서 대화를 지속하게 될 것임. 하지만 한국은 평양이 채택하고자 하는 큰 현안들을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것임. 한국 정부는 김일성 이후를 바라보고 있음.




이후락 남북조절위원회 의장직 기대


--------------------------------------------------------------------------------


7. 2차 남북조절위원회는 진전 속도가 빨라진 것 같은 인상을 주었다고 말하자 이에 대해 이후락은, 외견상 진전된 것 같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사실은 진척된 것이 없다고 말했음. 남북 양측은 자신들의 게임 계획(game plan)에 집착하고 있으며, 실제로는 어떠한 실질적인 양보도 하지 않고 있음. 이후락은 이전의 접근법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았으며, 겉보기에 바뀐 듯 보이는 것은 형식적인 것이거나 아니면 전문가가 취하는 한 방편임.


8. 이후락은 조절위원회가 1년에 최대한 5회 정도 개최될 것으로 생각하고 집행위원회는 좀더 자주 정기적으로 열릴 것으로 기대했음. 그는 남북조절위원회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는데, 위원회는 기본적으로 한국 정부가 북한의 ‘평화 공세(peace offensive)’를 무디게 만드는 도구로 간주하고 있다는 것임. 그는 조절위원회를 모든 남북 관계가 그쪽으로 통해야 하는 ‘통합된 창문(integrated window)’으로 묘사했음. 통일주체국민회의가 남북 관계 진전에 어떤 구실을 할 수 있겠느냐고 묻자, 그는 아직까지는 모든 것이 조절위원회를 통해 처리될 것이라고 말했음. 그는 11월30일의 3차 조절위원회는 평양의 2차 회의와 유사할 것으로 보고 특별한 진전은 기대하지 않았음. 11월23일부터 정홍진(중앙정보부 협의조정국장: 역주)과 김덕현(노동당 중앙위원회 책임지도원: 역주)이 회의 의제와 합의서 초안 준비에 착수할 것임. 박 대통령의 재가가 있어야 되는 사안이긴 하지만, 이후락은 장기영이 3차 조절위원회의 의장 대행이 될 것으로 보았음. 그는 북한이 이 안에 반대해주고 결국에는 자신이 의장 자리를 유지하게 되기를 기대하고(expect) 있었음. 조절위의 다른 한국측 위원은 최규하, 정홍진, 강인록(전문에는 Kang In-Rok으로 표기되어 있지만 강인덕의 잘못 표기인 것 같음: 역주)이 될 것임. 이후락은 평양이 소위원회 가동을 촉구할 것으로 보고 있었는데, 그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양보할 의사가 없었음.


9. 이후락은 박정희와 김일성 사이의 정상 회담은 가까운 장래에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음. 그는 5년이나 10년 후 국제적 상황이 호전되거나, 한국 경제가 충분히 좋아졌을 때, 또는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외교적으로 승인받는 것을 한국 정부가 막지 못할 경우에는 정상회담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했음. 약 5년 후에는 한국의 경제 상황이 북한 경제보다 우위를 점하게 될 것임. 그렇게 되면 김일성이나 그의 후계자는 남한을 접수하려는 그들의 희망을 포기할 것임. 현재 평양은, 한국이 경제적으로 심각한 퇴보를 겪게 될 것이며, 이 때문에 혁명적 상황이 야기될 것으로 믿고 있음. 따라서 현재는 정상회담에 적절한 시기가 아님.


10. 한국 정부가 반공법과 국가보안법을 개정할 계획이 있는지를 물었음. 이후락은 자신이 개정 가능성을 암시하는 말을 공개적으로 한 일이 있음을 상기시켰으나 지금 당장 시행 가능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음. 한국 정부의 다른 지도자들도 개정에 호의적이지 않으며, 한국 국민도 자칫 이를 오해할 소지가 있다는 것임. 국민들은 한국 정부가 북한에 너무 가깝게 접근하고 있으며 공산화가 가능할 정도로 개방하고 있다고 걱정할 것임. 이후락은 조심스럽게 나아갈 것이며 내부지지가 필요하다고 말했음. 그는 박 대통령이 취임하고 나면 통일주체국민회의를 통해 두 가지 결의안이 통일을 위해 채택되기를 원했음. 첫째는 박 대통령에게 평화통일을 추진할 수 있도록 전권을 부여하는 것이고, 둘째는 남북 교류에 생산적으로 종사하는 남한 국민들이 반공법에 저촉되지 않으면서 활동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임.


11. 이후락이 어려운 현안들에 대해 북한과 의견을 나누는 것을 피하고자 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현안들에 대한 토론은 이미 시작된 것이 분명하다고 그에게 말해주었음. 본인은 한국 정부는 평양이 제기한 현안들을 놓고 계속 토론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봉착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음. 아직까지는 한국 정부가 남북한 대화와 일반적인 외교 정책 간의 조율에 성공하지 못한 것 같이 여겨짐. 예를 들면, 한국 정부의 대유엔 정책, 남북한 중 누가 국제적인 대표성을 갖느냐 하는 문제, 일본의 북한 접근에 대한 한국 정부의 견해 등임. 이후락은 이런 문제들에 대한 조율이 있어야 한다는 데에 동의했음. 그는 한국 정부는 국제사회가 북한을 승인하려는 것을 계속 저지할 것이라고 말했음. 그러나 이후락은 국제적 조류가 이런 노력에 역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시도가 어려우리라는 것은 인정했음.


12. 마지막으로 이후락은 북한의 강경파(har dliners)와 훨씬 현대화된 분파(more modern elements) 사이에 벽이 있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음. 그는 또 명백한 증거는 없지만 한국에 접근하는 자세에서 김일성은 좀더 온건한(more moderate)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음. 반면에 북한 군부의 주류는 남북한 관계의 진전에 덜 호의적임.




판문점 도끼 만행사건 이후 미국의 대응



다음은 1976년 8월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이 일어난 직후인 8월18일, 판문점 사건이 보고된 후 최초로 미 백악관 상황실에서 열린 국가안보회의(National Security Council)의 비밀 회의록 전문이다. 이 회의록은 2급 비밀(Secret)로 분류되어 있으며, 국가안보회의의 지니 데이비스(Jeanne W. Davis)가 작성해 백악관 안보담당보좌관인 브렌트 스코크로프트(Brent Scowcroft) 앞으로 보낸 비망록 형식으로 되어 있다.


비밀: 1976년 8월18일
수신: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주제: 1976년 8월18일 WSAG(Washington Special Actions Group) 회의록

첨부 문건은 한국 사안 토의를 위해 1976년 8월18일 열린 워싱턴 특별대책반(WSAG)의 회의록임. 워싱턴 특별대책반 회의1976년 8월18일
시간 및 장소: 오후 3시47분/백악관 상황실
주제: 한국
참석자
의장: 헨리 키신저(Henry A. Kissinger)
국무부: 찰스 로빈슨(Charles Robinson)
필립 하비브(Philip Habib)
국방부: 윌리엄 클레멘츠(William Clements)
모턴 아브라모위츠(Morton Abramowitz)
합동참모부: 제임스 할러웨이 제독(Admiral James L. Holloway)
마이클 혼블로우(Michael Hornblow)

윌리엄 스미스 중장(Lt. Gen. William Y. Smith)
중앙정보국(CIA): ............................. (문서에서 삭제된 부분. CIA 국장 조지 부시를 포함해 CIA 간부 2명이 같이 참석한 것으로 추정됨: 역주)
국가안보회의:윌리엄 하일랜드(William G. Hyland)
윌리엄 글라이스틴(William Gleysteen)
키신저: 실질적인 문제를 하나 지적할 것이 있다. 사건이 일어난 것은 어젯밤 9시43분인데, 오늘 아침 9시까지도 보고를 받지 못했다.

CIA: 우리 측 잘못이다. 비난받아 마땅하다.

클레멘츠: CIA만 비난받을 이유는 없다. 국방부와 국무부도 마찬가지로 이 채널을 통해 보고를 받지 못했다.

하비브: 정보가 들어온 것은 어제 한밤중인데, 나도 오늘 아침에야 보고를 받았다. 내가 처음 알게 된 것은 오늘 아침 8시30분이다.

아브라모위츠: ISA도 오늘 아침 9시30분까지는 몰랐다.

CIA: 작전 센터에서 상의가 있긴 했으나 아무도 상부에 경과 보고를 하지 않았다.

키신저: 최근에 이런 일이 일어난 적이 또 있다. 마야구에즈 사건이다.

하비브: 자정 12시1분에는 보고를 받았어야 한다. 보고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CIA: 작전 센터에서 서로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누긴 했으나 상부에는 보고하지 않은 것이다.

키신저: CIA를 비난할 생각은 없다. 각 부처가 상부에 보고할 수 있도록 유기적으로 움직여줘야 한다. 브리핑을 시작하자. (CIA 브리핑 시작)

키신저: 사진을 찍었는데, 왜 북한군 시체는 보이지 않는가?

할러웨이: 스틸웰(미8군 사령관: 역주)은 북한군 사상자가 없다고 보고 있다.

로빈슨: 북한이 이 사건에 대해 보도했는가?

CIA: 그렇다. 그러나 사상자에 대한 언급은 없다. (CIA 브리핑 마침)

키신저: 남한의 병력은 어느 정도인가?

CIA: 육군이 52만3000명, 제트 전투기가 280대, 순시정이 175대이고 잠수함은 없다. 우리 판단으로는 북한군의 군사 행동은 기습 공격이 효과적이다. 따라서 북한이 전면적인 공격을 할 마음은 아니었던 것으로 본다.

키신저: 누가 내게 남북 양쪽의 군사력을 비교 분석해줄 수 있겠는가?

할러웨이: 북한 지상군의 타격력은 훌륭하지만, 한국군은 훈련이 잘 되어 있고 미군이 뒷받침하고 있다. 공군력 규모는 북한이 우세하지만, 한국 공군은 훨씬 훈련이 잘 되어 있다. 자신감이라는 요소도 감안해야 한다. 한국군은 미군이 버티고 있다는 점 때문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북한군 잠수함은 성능이 좋지 못하다. 남북한 양쪽의 군사력은 자신의 전략과 위치를 잘 뒷받침하도록 훌륭하게 짜여 있다. 내 판단으로 이것은 군사적 대결이다. 지금 당장 북한이 실제로 군사적인 침공을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CIA: 미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는가?

CIA: 그것이 핵심이다. 두 가지 요인이 있다고 본다. 하나는 한미 상호방위조약이고, 다른 하나는 주한 미군이다. 만약 주한 미군이 철수하게 되면 북한은 군사적으로 우위에 놓이게 된다.




몹쓸 놈의 나무 잘라버려야


--------------------------------------------------------------------------------



키신저: 대응 병력이 현장에 늦게 투입된 이유는 무엇인가?

할러웨이: 스틸웰 장군이 그 점에 대해서는 대답을 회피했다.

키신저: 그는 분명히 사진을 촬영했다고 말했다. 나무 가지치기를 꼭 할 이유가 있었는가?

할러웨이: 관측소와 전망대 사이 관측선을 가로막고 있었다. 이 차트에는 한곳만 표시가 되어 있다.

클레멘츠: 지역 내 장애물 제거는 통로 확보 작전 아닌가?

키신저: 조금 전에 내가 받은 전문을 보니까, 이 문제를 놓고 수도 없이 공방전이 오간 것으로 되어 있다.

하일랜드: 북한 쪽에서 우리에게 하지 말라고 말했다.

할러웨이: 스틸웰 장군의 보고서에 따르면, 원래 계획은 나무를 잘라버리는 것이었다. 북한이 안 된다고 하니까 우리는 가지치기를 하기로 했던 것이다. 한 증언자의 말에 의하면, 북한군 장교 한 사람이 현장에 다가와 무얼 하느냐고 물어보았다고 한다. “가지치기를 한다”는 말을 듣고 그 북한군 장교는 “좋다”라고 대답까지 했다.

하비브: 그 부분에 대한 보고에 약간 다른 점이 있다.

키신저: 우리가 나무를 자르거나 가지치기를 하는데 왜 북한군이 이의를 제기하는가? 그럴 권리가 있는가?

하비브: 그 지역 전체는 공동 경비 구역이다.

키신저: 그러면, 만약 북한군이 나뭇가지를 치기로 결정했으면, 우리 허락을 받아야 하는가?

하비브: 아니다. 우리는 상관하지 않는다. 공동경비구역 내에는 각 측이 전용으로 맡고 있는 지역이 있다.

키신저: 한쪽이 다른 쪽에 명령할 수 있는가?

하비브: 서로 강요를 할 수는 없고, 말싸움을 자주 한다.

키신저: 좋다. 내가 보기에 문제는 두 가지다. 첫째는 두 명의 미군 장교가 맞아 죽었다는 것이고, 둘째는 우리가 지금 밟고 있는 이 진행 과정을 검토해보는 것이다. 첫째 문제에 대해 나는 CIA의 분석에 동의한다. 내가 받은 인상으로는 이것은 사전에 계획된 공격이다. 우리가 전지 작업을 못하도록 막고자 했다면 다른 방법이 얼마든지 있었다. 스틸웰이 이 편지를 김(김일성: 역주)에게 보내고 싶어한다. 왜 스틸웰이 김에게 이 편지를 보내야만 되는가? 무슨 뜻이 있는가?

하비브: 스틸웰은 유엔사 사령관이고, 김은 북한군 사령관이다. 또 김은 정전협정에 서명한 사람이기도 하다.

키신저: 이미 백악관과 국무부를 통해 이 살인 사건에 유감을 표하는 성명이 나갔다. 스틸웰의 성명이 왜 또 필요한가? 스틸웰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가?

아브라모위츠: 없다. 워싱턴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키신저: 그 건은 잠시 보류하자. 오늘 대통령을 만나 이 문제를 얘기해야 한다. 뭔가 강한 행동이 필요하다는 것은 대통령도 느끼고 있지만, 그게 뭐가 될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내가 생각한 것은 두 가지다. 몇 주 전에 우리는 중국을 자극할 수도 있다는 이유 때문에 B-52 훈련을 취소했다. 그 훈련을 재개할 수 있다. 둘째는 한국의 모든 군대에 비상을 발동하는 것이다.

할러웨이: 데프콘 4에서 데프콘 3으로 갈 수도 있다.

키신저: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할러웨이: 우리가 특별한 계획을 가지고 있지 않거나 북한이 느끼기에 우리가 특별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느끼지 않는 한, 북한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키신저: 그런 조건에서라면 위협은 없는 것이다.

아브라모위츠: 스틸웰은 전지 작업을 마무리하자고 건의한다.

클레멘츠: 나도 동의한다. 그 몹쓸 놈의(the God damm thing) 나무를 잘라버려야 한다.

키신저: 나도 찬성이다. 하지만, 군 동원 문제를 마무리하기 전까지는 그 나무를 어떻게 할 수 없다고 본다. 데프콘 발동의 의미는 무엇인가?

할러웨이: 5는 평시이고 1은 전쟁이다. 2단계는 전쟁이 불가피한 것이고, 총격전이 시작되면 1단계다.

CIA: 올해는 선거가 있는 해다. 3단계로 올라가면 언론과 미 국민이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키신저: 아무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북한이 두 명의 미국인을 죽였고, 반드시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CIA: 북한은 지금 미국 내에서 또 하나의 베트남 식 심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조짐을 찾고 있는 중이다. 따라서 그런 망상을 깨게 하려면 언론과 여론 형성층으로부터 적절한 지지 의사를 받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키신저: B-52 연습을 재개하는 것은 어떤가? 국무부는 지금 이 자리에서 연습 반대를 철회하겠다. 지금이 연습을 재개할 가장 좋은 기회다.

하비브: 그건 훈련 연습이다.

아브라모위츠: 미국이나 한국 국민이 겁에 질리지 않을까?

글라이스틴: 다른 연습도 계획되어 있다.

키신저: 하지만 그건 누구나 다 알고 있다.

클레멘츠: 그 연습에서 B-52기들이 한국으로 날아갔다가 돌아온다는 것이 사실인가?

할러웨이 : 그렇다.

키신저: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가?

스미스: 72시간이면 된다. 그보다 덜 걸릴 수도 있다.




“실폭탄은 투하하지 않나”


--------------------------------------------------------------------------------


키신저: 빠를수록 좋다.

클레멘츠: 실제 폭탄을 투하할 것인가?

키신저: 프로그램의 일환이라면 그렇게 하고, 아니면 하지 않는다.

클레멘츠: 내가 악역이 돼 묻겠다. 왜 실폭탄을 투하하지 않는가?

키신저: 계획에 실폭탄 투하가 들어 있으면 그렇게 한다.

클레멘츠: 나는 그렇게 할 수 있다.

아브라모위츠: 악몽 수준보다는 낮은 것이고, 실제 폭탄 세례는 하지 않도록 되어 있다.

하비브: 비행기는 북한을 가까운 사정권 안에 둘 것이다. 거리는 가깝다.

키신저: 좋다. 그들에게 좋은 교훈이 될 것이다. 자, 이제는 가능한 조치가 무엇인지를 알아보고, 그 조치에 대해서 내일 아침 8시에 다시 토의하기로 하자. 대통령은 1차적 군사 조치의 가능성을 알아보기를 원하고 있다. 우리가 무얼 할 수 있는가? 오늘 밤에 그것을 생각해봤으면 한다. 우리가 뭘 하든 균형이 잡혀 있어야 한다.

할러웨이 : 가능성은 여러 가지가 있다. 지뢰를 부설할 수도 있고, 북한기를 게양한 선박이나 어선을 나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선 나포는 위엄 있는 행동이 아니다. 북한기를 달고 운항하는 상선은 34척인데, 우리 항구나 동맹국 항에는 기항하지 않는다. 그중 위치 확인이 가능한 것은 9척뿐이며 나머지 선박들은 북한 영해에 있는 것 같다. 한국군과 합동 군사 훈련을 하는 방법도 있다. 모든 준비를 완료하는데 최소한 4일이 걸린다. 병력은 항공모함으로 수송할 수 있다. 미드웨이 호는 48~72시간 사이에 도착할 수 있다. 현재는 야쿠스카(Yakuska)에 있다. 해안에 미사일을 발사할 수도 있다.

키신저: 나는 그 나무를 잘라버리는 아이디어가 좋다고 본다. 먼저 우리 병력에 준비 태세를 시키고 나서 나무를 잘라버려야 한다. 또한 좀더 높은 단계의 비상을 걸어야 한다. 오늘 밤에 데프콘 3을 발령하고, 스틸웰로부터 나무 절단에 대한 계획을 받자. (할러웨이 제독에게) B-52 발진 준비를 할 수 있는가?

할러웨이 : 물론이다.

키신저: 스틸웰이 나무를 잘라버리는데 병력이 얼마나 필요한지 알고 싶다.

할러웨이 : 두 가지 어려운 문제를 결정해야 한다. 첫째는, 어느 시점에 증원병 투입을 중단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과거 사례로 볼 때, 우리가 병력을 움직이면 저쪽에서도 똑같이 병력을 움직였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어느 시점에서 중단할 것인가? 다음은 화기(무기: 역주) 사용 여부다. 최근 사건에서 양쪽이 모두 화기를 가지고 대치했으나 사용하지는 않았다.

키신저: 만일 내가 얻어맞아 죽은 사람 가운데 한 명이라면, 화기를 쓸 것이다.

하비브: 그들은 뒤에서 공격을 당했고 방어할기회도 없었다

할러웨이 : 우리 병력 대부분은 베트남 전 참전 용사들이었다. 교전 규칙을 위반하지도 않았는데 죽었다.




“서해 섬들이 취약하다”


--------------------------------------------------------------------------------


하비브: 동원 병력 수에 대해서는 스틸웰이 잘 알 것이고, (?: 역주, 문자 해독 불가)을 위반하지 않고는 병력을 움직일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만약 교전이 벌어진다면 그 지역(비무장 지대: 역주) 밖에서 증원병을 투입해야 할 것이다.

하일랜드: 꼭 그 부대를 증강시켜야만 하는가?

하비브: 그 지역의 주력 부대는 한국군이다. 무엇이 필요한지는 스틸웰이 우리에게 말해주어야 한다.

키신저: 누가 한국과 상의할 건가?

하비브: 스틸웰이다.

하일랜드: 더 이상 편지 전달할 생각은 하지 말고 나무를 잘라버리는 계획을 준비하라고 스틸웰에게 메시지를 보낼 필요가 있다.

하비브: 병력을 사전에 미리 배치해놓았다가, 동원이 필요할 경우 투입하면 된다.

키신저: 병력을 충분히 가동함으로써, 저 미친 미국 놈들이 뭘 하는 것이냐, 선거가 있는 해에 뭘 하겠다는 것이냐 하고 북한이 의아하게 생각하도록 만드는 것도 유용할 것이다.

아브라모위츠: 한국에 미군을 증강 배치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키신저: 그것도 바람직하겠다.

하비브: 북서쪽 섬들(백령도 등 서해 섬: 역주) 문제도 있다. 아주 취약한 지역이다.




유엔 통보없이 데프콘 발령 기능


--------------------------------------------------------------------------------


키신저: 우리 병력은 어떤가? 오늘 밤에 비상을 발동해야 한다. 그리고 또 훈련 연습도 준비해야 한다. 내일 아침에는 한국으로 이동할 미군 리스트를 제출해달라. F-111과 F-4의 이동도 고려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금요일 아침에 나무를 절단하러 들어갈 수 있다. 아무래도 F-4를 이동시키려면 지금 결정해야만 할 것이고, 내일은 F-111의 이동을 결정해야 할 것이다.

스미스: 착수 시점으로부터 12시간 안에 해낼 수 있을 것이다.

하비브: 일본과도 상의해야 한다.

키신저: 그렇게 하자. 진행해라.

아브라모위츠: 공군 병력을 임시로 이동하는 것은 일본과 상의하지 않아도 된다.

하비브: 일본에 조언(advise)만 하면 될 것이다.

키신저: 대책반(working group)을 가동했으면 한다. 이 정도면 되겠는가?

하비브: 충분하다. 국무부, 국방부, 합참, CIA의 대표가 필요할 것이다.

키신저: 박(박정희: 역주)에게는 누가 통보할 건가?

CIA: 대사와 스틸웰이 같이 가야 한다.

글라이스틴: 이 얘기가 곧 알려질 텐데.

키신저: 그렇겠지. 언론 발표문의 기준을 정해야 한다. 다 드러내면 안 된다. 사전에 계획된 살인이기 때문에 데프콘 3으로 간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클레멘츠: 유엔에도 통보해야 하는가?

하비브: 안 해도 된다. 전에도 유엔 통보 없이 데프콘 3으로 간 적이 있다.

할러웨이: 스틸웰은 합참의 명령을 받지 유엔의 명령을 받지 않는다.

하비브: 내가 알기로는 합참에서 유엔에 통보하는 절차가 있다.

키신저: 내일 아침 모임에는 모두가 준비된 자료를 가지고 와야 한다.

아브라모위츠: 비상대권(War Powers Act, 전쟁권법으로도 번역됨: 역주)은 어떻게 되는가?

키신저: 좋은 지적이다. 의회와 상의하려면 통합 단일 계획이 있어야만 한다.

할러웨이: 찾아보자. 내가 여기 가지고 있다.

하비브: 변호사들이 검토하면 된다.

키신저: 좋다. 오늘 초저녁까지 우리는 다음 일을 해야 한다.

1. 비상대권에 대해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2. 언론 발표문 - “사전 계획에 의해 미국 군인이 살해됐고 북한군이 어떻게 움직일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이와 같은 예방책을 취한다.”

3. 한국 및 일본과 상의한다.

아브라모위츠: 북한의 동맹국에 대해서는 어떻게 하는가?

키신저: 잠시 후 5시에 중국인(중국 대표: 역주)과 만나기로 되어 있다.

하비브: 북한은 이미 그들의 견해를 들고 나왔다. 오늘 밤 회동에 대해 동의하지 않았다. 회의에 나오도록 해야 한다.

하일랜드: 제안 성명문은 그리 강한 것이 아니다.

하비브: 회동 때 편지를 제출하지 말라고 스틸웰에게 말해야 한다.

키신저: 내일 아침 8시 회의 때는 상황도가 있으면 좋겠다. 이동 가능성을 감안해 기동 부대에도 비상을 걸어놓아야 한다. 내일 초점을 맞출 사안은 아래 4가지다.

1. 한국에 추가 병력을 배치하는 문제
2. 어떤 군사 행동을 취할 것인가.
3. 가능한 외교적 조치. 누구에게 통보하고 브리핑할 것인가.
4. 의회 대응 조치.

오후 4시43분 회의 종료




주한미군 철수에 대한 박정희 대통령 면담록 극비 전문



주한 미군 철수 문제는 박정희 정권의 최대 과제 가운데 하나였다. 닉슨 미 대통령이 공표한 ‘아시아의 방위는 아시아인의 손으로’ ‘미국이 다른 나라에 군사 물자는 지원할 수 있어도 더 이상의 병력 지원은 없다’는 내용의 이른바 닉슨 독트린이 발효된 것은 70년 2월이다. 닉슨은 이미 69년 7월 괌에서 미국의 새로운 외교정책의 기본 개념을 밝힌 바 있다. 당장 문제된 것이 주한 미군의 철수였다. 닉슨 독트린이 나온 직후부터 한미간에는 주한 미군 철수를 위한 비밀 교섭이 시작된다. 주한 미 지상군 2개 사단 가운데 1개 사단을 철수시킨다는 것이 골격이었다. 그러나 한국은 어떠한 형태가 되었든 미군 철수에는 반대라고 강경하게 밝혔다. 미국도 좀체 물러설 태세가 아니었다. 마침내 주한 미군 철수 건은 양국간 갈등으로 번졌다. 70년 8월3일. 윌리엄 포터 대사가 미8군 사령관 마이클리스(Michaelis) 장군과 청와대로 박 대통령을 찾아간다.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한미 양측 모두 긴장한 분위기였다. 오후 4시30분부터 시작된 인터뷰는 약 2시간 동안 진행되었고, 포터 대사는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와 박 대통령 면담 내용을 국무부에 전송한다. 8월4일 오전 1시56분과, 2시24분, 7시5분 등 세 차례에 걸쳐 보낸 이 극비 전문은 총 8쪽 분량. 국가 안보에 직결된 사안인만큼 박 대통령과 포터 대사 사이에는 열띤 논쟁과 서로 밀고당기는 한판 신경전이 펼쳐졌다.


1. 요약: 미군 감축에 대한 협조나 감축에 대한 합동 계획을 계속 완강하게 거부하던 박 대통령은 우리가 점점 더 압력을 넣자, 현재 진행중인 한국군 현대화 작업이 ‘만족할 만한 수준’에 이르기 전까지는 그런 계획을 시행하지 말 것을 국방부 장관에게 지시하는 쪽으로 태도를 바꾸었다. 나중에는 결국, 아직 현대화 작업 그룹의 중간 보고를 받지 못했으니 보고를 받을 때까지는 합동 계획에 대한 견해를 유보할 것이며, 보고를 받은 다음에 우리를 다시 만나겠다고 함으로써 처음의 주장을 약간 누그러뜨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에게 철군 문제를 제기하자, 말투가 거칠고 결심을 못하는 듯한 태도를 취했지만, 그의 협조가 있든 없든 간에 미국의 결정은 그대로 시행된다는 사실을 그에게 분명히 전달했다. 그는 ‘마땅히 해야 할 것들’을 반복해 거론하면서 자주 ‘불쾌감’을 표시했다. 그는 호놀룰루에서 타진된 미국의 의사 표시를 모르고 있었다. 사전에 국무총리가 우리와 함께 인터뷰 자리에 배석할 것이라고 했지만, 박 대통령은 인터뷰 자리에 장관들이 배석하지 못하게 했으며, 통역자를 포함해 청와대 참모 2명만 참석시켰다.




미군 감축 통보에 박정희 무릎 떨어


--------------------------------------------------------------------------------


2. 우리의 입장을 점검하고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협조할 수 있는지 확인해 보고자 인터뷰를 요청한 것이라고 내가 말문을 열었다. 나는 한미간에 철군에 대한 합동 계획이 없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미 의회에서 현대화 문제를 호의적으로 검토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좋으며, 괜스레 문제를 복잡하거나 위태롭게 만들 필요는 없으므로 공개적인 논쟁이나 문제점은 최소화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호놀룰루에서 우리가 제공한 해명 자료대로 하면 이 문제들을 잘 처리해나갈 수 있게 될 것이며. 현대화에 대한 대화가 진행중인 만큼 그에 필요한 유익한 밑그림이 그려지리라 확신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제는 미군 감축에 대한 합동 계획으로 진전시킬 만하지 않은가?


3. 박 대통령은 대답하기를 한국측 주장에는 변동이 없다고 했다. 그의 견해는 호놀룰루에서 미국에 전달된 바 있다. 한국군 현대화에 대한 협의의 성과물이 없고 한국 국민에게 안보에 대한 ‘보장’이 있기 전까지는 병력 감축 계획에 관한 한 어떠한 일도 이루어질 수 없다. 이 일이 선행되고 나면 합동 협의가 시작될 것이다. 미국의 상황은 이해하나, 어렵기는 한국도 마찬가지이며 한국이 더 어렵다. 한국 국민 100%가 미군 감축을 반대한다는 편지를 받았다. 만약 감축하려면 한국에서 전쟁이 발발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런 협정(agreement)이 없는 한 감축에 동의할 수 없다. 한국군 현대화에 대한 진지하고 성실한 토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고, 그 토의가 일반 대중을 안심시킬 수 있는 결론을 도출하리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때 가서는 미군 감축을 얘기할 수 있다. 그때 가서 협정에 따라 규모나 시간, 조치 등을 토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보장이 주어지기 전까지는 한국 정부가 감축에 대해 얘기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


3A. 박 대통령의 이런 답변에 대해 나는 우리와 대화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것이라고 유감을 전달하면서, 미군 감축 논의에 따른 문제점들을 지적했다. 우리 계획은 이렇다. 불행하게도 한국 정부가 참여할 수 없다고 했기 때문에 우리 측이 단독으로 마련한 안이다. 1970년 12월까지 5000명을 감축하고, 1971년 3월까지는 8500명을 추가 감축하며, 1971년 6월30일까지 4900명의 병력을 추가로 감축하는 것이다. 통역하는 동안에 박 대통령은 스트레스를 받는지 눈을 감고 앉아서 무릎을 떨다가 커피를 시켰다.


4. 박 대통령은 거듭 말하기를, 의회를 포함해 미국이 어려워하는 점을 잘 알고는 있지만 한국군 현대화와 관련해 쌍방이 받아들일 만한 결론이 없는 한 한국 정부는 대화에 응할 수 없다고 했다. “만약 미국이 감축을 진행한다면 반대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협조할 수는 없다.” 그는 또 말하기를, 한국 정부가 비협조적이라고 말하겠지만 그것은 미국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왜냐하면 이 결정이 나기에 앞서 한국 정부의 의견을 들어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보장이 있어야 한다고 그는 또 한번 강조했다.


5. 나는 우리가 합동해서 계획을 세우자고 한국 정부에 제안했을 당시에는 미군 감축에 대해 결정된 사안이 아무것도 없었다고 대답했다. 따라서 국민 감정, 정책, 예산, 인적 자원 등을 고려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 한국 정부는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계획 입안 과정에는 그 아이디어를 내놓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합동 계획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병력 감축을 한 직후 유용하게 쓸 수 있는 군 장비의 처분 같은 심각한 문제가 야기되고 있다. 이런 것은 우리가 어떻게 해야 좋겠는가? 이런 문제를 악화시켜서는 안 된다. 한국이나 미국에서 일반 국민이 어떻게 반응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만약 한국 정부가 우리와 같이 계획을 짜고 입안하는 작업을 거절함으로써 그 장비를 다른 곳에 보내게 된다면, 그건 대단히 불행한 일이다. 장비 목록은 아주 대단하다. 예를 들면 수백 대의 탱크와, 한국 공군에 크게 이바지할 수 있는 다른 장비가 많이 포함되어 있다.


6. 일방적으로 선언만 해대던 분위기에서 좀더 생각에 잠기는 듯하던 박 대통령은 목록에는 단위 부대 장비가 포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7. 나는 또 말하기를, 한국측의 생각이 전혀 접수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일방적으로 계획을 발전시킬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국의 생각은 아주 유익할 것이다. 하지만 참여하려고 하지를 않는다. 마이클리스 장군이 이 문제의 군사적인 측면에 대해 답변할 것이다.


8. 박 대통령은 이에 대해 오히려 화를 내면서, 3월27일에 미국의 방침을 밝힌 최초의 공식 문건을 받고 몇 년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요청했는데도 이에 대한 미국 정부의 반응은 유감스러운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계속해서 향후 몇 년간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한국의 안보 문제를 재고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미국내의 상황이 어려워 기다리기가 힘들다면 한국군이 침략을 저지할 만큼 강화되고 단독으로 안보를 지킬 수 있게 된다는 조건 하에서는 굳이 반대하지 않겠다, 한국군 현대화에 대한 토의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잘 모르겠지만 만약 성실한 자세가 부족하고 한국의 요구 사항이 미국의 입장과 상충되어 절충점을 찾지 못하게 될까 봐 한국에서의 병력 감축을 반대하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계획대로 병력을 빼내간다면 주한 미군은 미국의 통제하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나로서는 아무 것도 할 일이 없다고 말했음.


9. 이에 대해 나는 이런 모든 문제들이 결국은 신뢰의 문제에 귀착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한국군 현대화에 대해 최고위급에서 취할 수 있는 가능한 모든 보장을 제공했으며, 한반도 안보에 대해서도 여러 차례 언급했다. 지금까지 우리가 취한 것 이상의 어떤 조치를 취하는 것은 법적으로 불가능하다. 우리가 보기에는 한국 정부가 미국의 의도와 언급에 대해 신뢰하지 않는 것 같은데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 없다.




흥분한 박정희 대통령


--------------------------------------------------------------------------------


10. 박 대통령은 그때 내가 언급한 “불가능하다”는 단어를 딱 꼬집어냈는데, 내가 한국측의 추가적인 안보 보장을 미국이 받아들이기가 불가능하다고 말한 것인지를 확실히 해두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만약 한국 정부가 조약(treaty) 이상의 어떤 언질(commitment)을 요구하는 것이라면, 조약의 한계를 넘어서는 언질은 불가능하다. 만약 한국 정부가 추가적 보장을 위해 조약의 재협상을 원한다면, 현 상황에는 그런 재협상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미국의 견해다. 박 대통령은 그런 요구는 자신이 한 것이 아니라 국회 쪽에서 나온 것이라고 했다.


11. 박 대통령은 이어 말하기를, 한국에 대한 미국의 믿음, 미국에 대한 한국의 믿음 등 양국 간에 신뢰와 믿음이 부족한 것은 사실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상호 방위 조약에 크게 의지하지는 않고 있다. 한국전이 터졌을 당시에 그런 방위 조약 같은 것은 있지도 않았다. 그러나 미국은 적시에 아주 귀한 도움을 주었다. (이때 박 대통령은 약간 흥분했다.) 양측의 신뢰성 문제에 대해 박 대통령은 1년 전 닉슨 대통령과 정상회담 을 할 때를 상기시켰다. 1년 전 닉슨 대통령은 그의 독트린과 해외 미군 감축의 의도를 설명했다. 닉슨 대통령은 한국에는 독트린이 적용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미군이 더 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언급은 실질적으로 공동 선언에 나타나 있다.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 때에도 비치 장군(General Beach)은 서신에서 한국군이 베트남에 있는 한 한국에서 미군이 빠져나오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때, 내가 뭔가 의아해하는 눈빛으로 박 대통령을 바라보자 그는 내 시선을 피했다. 그는 흥분한 상태였고, 나는 잠시 생각 끝에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겠다는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비서실장과 통역자가 있는 앞에서 박 대통령이 틀렸다고 고쳐주는 것보다는 일단 넘어가기로 한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그는 상대방이 잘못을 지적하려는 틈을 주지 않는다. 박 대통령의 말이 빨라졌다. 이제 한국이 경제 발전과 자주 국방을 할 때가 왔다. 한국이 이제는 자립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이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이런 일이 하루 이틀에 이루어질 수는 없다는 것이다. (중략)


15. 마이클리스 장군이 실질적인 장비와 자금 조달, 우선 순위, 훈련에 필요한 시간 등 한국군 현대화 위원회에서 토의하고 결정해야 할 사항들에 대해 설명했다.


16. 마이클리스 장군과 나는 박 대통령이 지적한 ‘만족할 만한 수준의 보장’을 충족시키기에는 정말 시간이 없다고 지적하면서, 우리가 언급한 병력과 장비 감축은 곧 시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비를 싣고 떠나게 되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우리는 다시 박 대통령에게 물었다.


17. 박 대통령은 화를 내면서 다시 끼어들었다. 우리 얘기를 듣자니, 한국 대표는 감축 합동 계획에 가 앉아서 미국이 하는 말을 듣기만 하라는 소리로 들린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한국 대표들은 우리와 만나야 하며, 부대와 장비 정렬에 대한 아이디어를 교환해야 하는데 한국 측의 아이디어를 알 수 없으니 대단히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18. 박 대통령은 감축에 대한 미 대변인 성명을 보니 미국 정부는 그대로 실시할 것으로 보이는데, 한국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현대화 작업 토의에서 만족할 만한 ‘수준의’ 결과가 도출된다면 미군 감축에 대해 토론할 용의가 있으며 미국 측과도 만나겠다는 말이라고 했다. (중략)


20. 박 대통령이 마이클리스 장군에게 자세한 감축 계획과 이미 승인된 사안의 윤곽을 알려달라면서, 부대 전체에 해당되는 것인지 부대 일부에만 국한되는 것인지를 알고 싶어했다. 마이클리스 장군은 차트를 보여주면서 주한 미군 철수의 성격과 규모에 대해 설명했다.


21. 그러자 박 대통령은 미국의 일방적인 계획에 대해 강한 불쾌감을 표시했고, 그때 내가 다시 나서서 한국 측이 우리와 같이 작업을 하지 않을 경우에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유감스럽다, 불만스럽다는 말을 되풀이하면서 박 대통령은, 미군이 비상시에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면 그건 이해가 되는 일이지만, 이번 일은 그런 것이 아니라 오로지 미국의 국내 정치 문제에 기인한 것이라면서 한국은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했다. (중략)


23. 나는 인터뷰를 끝내면서 박 대통령에게 우리의 견해를 밝힌 비공식 문건을 남겨놓았다.


24. 박 대통령은 아무런 반응 없이 한동안 앉아 있더니 입을 열었다. 한국군 현대화에 대한 중간보고를 아직 받지 못했다, 보고를 받기 전까지는 합동 계획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겠다, 보고를 받은 다음에 다시 만나자. 이에 대해 나는 곧 뵐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5. 박 대통령의 태도에서 느낀 것은 차후에 구체적으로 언급하겠음. 인터뷰가 끝났을 때 한 가지 재미있는 일이 발생했음. 작별 인사를 하고 대통령 집무실을 막 나서기 직전에 나는 다시 한번 돌아서서 박 대통령을 쳐다보았음. 박 대통령은 마이클리스 장군이 건넨 감축 승인 계획서를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빙그레 미소를 짓고 있었음. 이상하기 짝이 없었음. 인터뷰 내내 박 대통령은 한번도 웃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음.




국무부가 지켜지켜본
정치 격변 비상사태 선포에서 10월유신까지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가 박정희의 승리로 돌아간 직후부터 정계에는 박정희가 영구 집권을 위한 구상을 추진중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새삼스러울 것이 없었다. 선거전이 펼쳐지고 있을 때에도 총통제니 종신 대통령제니 하는 소리들이 공공연히 떠돌아다닌 탓이다. 오히려 영구 집권 구상 자체보다도 언제 어떤 방법을 동원해 그 구상을 실천에 옮기겠는가 하는 것이 화젯거리였다. 시기는 예상보다 빨랐다. 4월 선거가 끝난 지 1년도 채 못된 그해 12월6일 박정희는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한다. 역시 명분은 국가의 안보, 즉 임박한 북한의 침략 위협에 대한 긴급 대처였다. 북한 위협론은 미국을 자극했다. 국무부는 그러나 조심스럽게 움직이면서 급박한 북한의 침략 가능성을 부인하는 견해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미국은 비상사태 선포의 시기와 내용, 명분과 방법 등 시시콜콜한 것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 비상사태 선포 나흘 전인 12월2일,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은 하비브 대사에게 ‘박정희의 계획’을 일러준다.


“박 대통령이 12월5일이 들어 있는 주에 비상사태를 선포할 것이라고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말해주었음. 이는 허둥거리며 말하길, 이 선언은 헌법상 법적인 의미에서의 비상 선언이라기보다는, 국가 안보에 대해서 국민들을 ‘일깨우기’ 위한 훈계적인 선언이라고 함.”


이후락은 비상사태 선포의 6가지 목적과 구체적인 내용을 열거해가며 하비브 대사에게 설명을 해준다. 이후락의 설명을 듣고 난 하비브의 첫 질문은 “군대도 움직이느냐”는 것이었다.


이: 군의 이동은 없다.

하: 국민들이 꼭 필요한 조치라고 수긍하지 않으면 비상사태에 강하게 반발할 수도 있을 텐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 이번 비상사태 선포는 헌법상의 법적 조치가 아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비상사태를 선포한다 해도 자동적으로 제한 조치가 취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계속되는 북한의 위협에 직면해 전면적인 비상사태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제자리에 위치시키려는 것이다.

하: 이전에 내게 말하길, 가까운 장래에 북한이 침략해올 것이라는 조짐은 없다고 했는데,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는가?

이: 변한 것은 없다. 침략 조짐은 없다.


이후락은 비상사태 선포를 하비브에게 사전에 전달해주는 이 자리에서 남북간 비밀 접촉 사실도 통보한다. 북한과 극비리에 진행중인 예비 비밀 접촉에 대해 통보해주고 싶다. 지금 진행중인 것은 고위급 접촉이 아니며, 북에서는 김덕현이 움직인다. 남한측 인사의 이름은 밝히고 싶지 않다. 하비브가 이후락을 만난 이틀 후인 12월4일, 이번에는 김종필 국무총리의 특별보좌관인 한상국씨가 하비브를 찾아온다. 이를 하비브는 이렇게 적어놓고 있다. 어제(12월3일) 김종필 국무총리의 한상국 특별보좌관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호놀룰루로 떠나기 전에 김 총리와 점심을 같이 하거나 아니면 다른 시간에 만났으면 한다고 제안했음. 한이 오늘 아침 나를 만나러 왔음. 김 총리가 보내 왔다면서 한은 총리가 왜 나를 만날 수 없는지를 설명했고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달했음.


박 대통령이 12월5일 국가 안보에 대한 위협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해 ‘예비 비상’이나 ‘준비상’ 사태를 선언할 계획인데, 헌법상 조치는 아님. 나의 질문에 한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음. 비상 사태는 언론에 제한을 가하게 될 것인데, ‘규제’가 아닌 ‘설득’이 될 것임. 국회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가 취해지지 않으며, 군대 동원이나 군 이동도 없을 것임. 김 총리는 이와 같은 일련의 상황에 호의적이지는 않으나 이런 비상 사태를 중지시키도록 대통령을 설득할 수도 없음. 그러나 가능한 한 이러한 상황이 빨리 종결되도록 노력할 것임.


12월28일, 하비브 대사는 이후락 부장과 만나 점심을 같이 하면서 비상사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하루 전인 12월27일은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여당이 단독으로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이라는 법안을 처리한 날이었다. 야당은 비상사태 선언 철회와 국가보위법 무효화를 주장하면서 정치 공세에 박차를 가하는 상황이었다. 하비브 대사는 이후락 부장을 만나자마자 박 대통령의 권한 남용 가능성을 거론한다. 이후락 부장은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비상대권을 사용할 것’이라고 대답한다. 하비브는 또 국회와 언론, 개인의 자유 등에 관련된 문제점 등을 지적하면서 미국측의 우려를 전달하고, 이 비상 사태가 얼마나 지속될 것인지를 묻는다.


“무한정이다.”


이후락의 대답이었다.


72년 1월. 이번에는 워싱턴에서 한국의 비상사태 문제가 쟁점이 된다. 국무부의 마샬 그린 차관보가 김동조 주미 대사를 만난다. 국무부는 1월3일 두 사람의 회동에서 논의된 내용을 비밀 전문에 담아 서울의 하비브 대사 앞으로 보낸다. 나는 북한의 침략이 급박하다는 김 대사의 평가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고, 국민에게 그런 위협을 자주 쓰게 되면 한국 정부의 신뢰를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도발적인 것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음. 더구나 이러한 상황은 미 국민과 의회의 한국 정부에 대한 지지를 약화시킬 수도 있음. 존슨 차관도 김 대사에게 이와 유사한 언급을 했음.




정일권이 내린 결론 "박은 물러나지 않는다"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국무부의 윌리엄 번디 차관보를 만나 박 정권의 대통령 간접 선거제를 언급하면서 10월유신의 정변을 시사한 4개월 후인 72년 8월. 당시 민주공화당의 신임 당 의장 정일권은 하비브 주한 미 대사와 만난 자리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이번 임기 후에도 한국의 대통령으로 남아 있으려 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면서 박 대통령의 영구집권 야망을 기정 사실화한다. 하비브는 정일권에게서 들은 내용을 국무부에 타전한다. 역시 국무장관 앞으로 보낸 72년 8월22일자 비밀 전문인데, ‘국내 정치 상황’이라는 제목이 달려 있다. 정일권 전 국무총리가 8월22일 내게 전한 내용임.


A. 박정희 대통령은 의심할 여지 없이 현 임기가 끝난 후에도 대통령으로 있으려 한다. 이 점은 정이 박 대통령과의 비공식 대화를 통해 얻은 명백한 결론이다.


B. 네 번째 임기를 만들어낼 것인지에 대해서는 박 대통령은 아직 아무런 지침도 내리지 않았으며 결정된 바도 없다. 당과 청와대 그룹들이 이 사안을 놓고 연구중이며 대안을 고려하고 있다. 정은 나름대로 국민의 동의를 얻는 선거나 국민투표 같은 것이다고 생각하고 있다. 정은, 몇몇 자문가(이름은 밝히지 않음)의 반대 의견을 듣고는 있으나 박 대통령 자신은 선거 절차 유지의 중요성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C. 정은 방법이나 과정에 대한 결정이 내년 초쯤에 내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정은 8·3 경제조치의 성패 여부가 대통령의 권력 유지를 국민이 받아들이느냐 마느냐 하는 데에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고 보았다. 정일권은 이 비밀 전문에서 10월 유신이 73년 초쯤 단행될 거라고 예견했으나 이는 정확하지 못했다. 박 대통령이 선거 절차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선거나 국민투표의 형태를 거쳐 네 번째 임기를 확보하려 한다는 분석은 적중했다. 사실상 정일권은 유신 개헌 작업에서 철저히 배제되어 있었다. 김종필 당시 국무총리도 마찬가지였다. 박 대통령의 10월 유신이 구체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한 것은 72년 5월 초다. 유신 헌법의 제정과 개헌 방법, 발표 시기에서 발표 방법에 이르기까지 세세한 모든 작업은 궁정동의 중앙정보부 별실에서 비밀리에 약 5개월간 진행되었다. 정일권이 ‘아직 박 대통령이 아무런 지침도 내리지 않았으며, 결정된 바도 없다’고 하비브에게 말한 것을 보면 당시 정일권이 철저하게 유신 작업에서 배제되어 있었다는 것을 여실히 알 수 있다. 당시 유신의 사전 작업을 추진한 사람은 김정렴 대통령 비서실장과 이후락 중앙정보부장 등이었다. 홍성철, 유혁인, 김성진씨 등 청와대 비서관들과 신직수 법무장관이 실무 작업을 맡았고 한태현, 갈봉근 교수 등 헌법학자들도 극비리에 궁정동 별실을 드나들었다.




김종필, 하루 전에 하비브에게 10월유신 통보



주한 미 대사 하비브는 10월유신이 터지기 하루 전인 10월16일, 두 차례에 나누어 총 12장 분량인 장문의 비밀 전문을 국무부 장관에게 타전한다. ‘한국의 비상계엄령 선포와 정부 변화 계획’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이 비밀 전문은 서울에서 주일 미국 대사에게도 동시에 전송되었으며, 국무부는 전문 입수 후 즉각 미 국방장관과 하와이의 태평양사령부 사령관에게 전송했다. 다음은 이 전문의 앞머리이다.


김종필 국무총리가 10월16일 18:00시에 10월17일 19:00시를 기해 한국에 계엄령이 선포될 것이라고 통보함. 동시에 한국 정부는 현행 헌법에 대한 주요 개정안을 국민투표에 부칠 것이며, 이를 통해 대대적인 정부 구조 개편 작업을 실시할 것임. 계엄령 발효와 더불어 국회는 해산될 것이며, 정치 활동도 중단됨. 10월27일 헌법 개정안이 공고되고, 이 헌법 개정안에 대한 국민투표가 11월17일 실시될 것임. 개정안의 아주 구체적인 사안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선거단 구성이 포함될 것임.’


하비브 대사는 두 번째 전문에 김종필 총리로부터 계엄령 선포를 통보받는 과정을 간략하게 적었다.


10월16일 18:00시에 김 총리 사무실을 방문했음. 놀랄 만한 소식이 있어 만나자고 했다면서, 계엄령 선포를 통보했음. 김 총리는 조치가 취해지기 전에 미국 측에 통보하는 것이 예의라고 믿어 24시간 전에 통보하는 것이라고 말했음.


하비브 대사는 또한 같은 날 세 번째 전문에서 비상계엄 선포와 정부 조직 개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는데, 박 대통령이 한국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으며, 박이 선택한 것을 수시간 내에 되돌려놓는 일이 미국의 의무일 수는 없겠으나, 어쨌든 박은 대미 관계에서 중요한 문제점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만큼은 틀림없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그는 또 덧붙이기를 ‘우리는 벌어진 상황에 매우 신중하게 대처해야 하며, 언론에는 한국의 비상계엄은 한국의 국내 문제이며 미국과는 사전 협의나 관련이 없음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자신의 견해를 적었다.




김종필이 하비브에게 전달한 박정희의 영구집권 야망



하비브 주한 미 대사가 국무부 장관에게 보낸 72년 10월17일자 비밀 전문은 박 대통령의 비상계엄령에 대한 당시 김종필 국무총리의 견해를 정리해 놓고 있다. 당시 박 대통령은 계엄령을 추진하는 과정에 김종필 국무총리 등 5·16 주체 세력과 정일권씨 등을 철저하게 배제한 채 핵심 측근들을 동원해 비밀리에 작업을 진행했는데, 이 비밀 전문에서도 그때의 상황이 잘 묘사되어 있다. 이 비밀 전문에 따르면 김종필 총리는 자신이 박 대통령의 조치에 반대한다는 사실을 개인 비서를 통해 미국에 분명하게 전달하고 있으며, 박 대통령이 이미 영구집권 계획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은 하비브 대사와 김 총리의 개인비서인 한상국씨 사이의 비밀 대화록 전문(全文)이다. 하비브 대사가 한상국씨와 11년 동안이나 접촉하고 있었다는 전문 내용으로 보아, 미 국무부는 이미 5·16 직후부터 줄곧 5·16의 핵심 주체인 김종필 총리와 대화 통로를 유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 김종필 국무총리의 개인 비서인 한상국이 비상계엄령 선포에 관련된 새로운 소식을 전해주었다. 나는 한을 11년 동안 알고 지냈으며, 핵심을 묻는 내 질문에 늘 솔직하게 대답해 주곤 했다. 어제 저녁 김종필 총리가 내게 대충 (정부 개편에 대한) 계획을 말해주긴 했는데, 김 총리의 진짜 생각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한은 내 앞으로 머리를 숙이며 가까이 다가와 아주 작은 목소리로 김 총리는 비상계엄령에 반대하지만 아무 일도 할 수가 없다고 속삭였다. 한에 의하면, 김 총리가 이번 문제와 관련해 사임하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했다는 것이다. 이번 일은 1971년의 3선 개헌 때와 마찬가지로 아주 어려운 결정이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김 총리는 대통령이 길을 잘못 들어선 것으로 믿으나 그로서는 중단시킬 방법이 없다.


2. 국무총리나 다른 사람들이 대통령의 결정을 반대한다고 조언했느냐고 물었다. 한은, 모든 계획은 한 달 전쯤에 중앙정보부에서 이미 완성되었다고 말했다. 김 총리와 정일권이 통보를 받긴 했으나 대통령의 결심은 이미 굳은 상태였고 총리도 중요한 수정없이 그 안을 받아들였다. 김 총리는 자기 혼자로는 대세를 막을 길이 없다고 판단했다. 기본적으로 이번 일이 내포하는 뜻은 대통령이 평생 동안 그 자리에 있기를 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3. 한은 또 말하기를 김 총리는 오늘도 박 대통령에게 의견을 전했으나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내가 질문했던 점을 계엄령에 반영해 개정하는 것뿐이라고 했다.


4. 한은, 김 총리가 만족스러워하지는 않지만 박 대통령의 야망 앞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김 총리는 미국이 이번 일을 반대한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다고 했다. 나는 김 총리가 지금까지 일이 진척된 대로 계속 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한은 김 총리는 찬성하지는 않지만 따라갈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고 대답했다.


5. 정보원의 신원을 밝히지 않길 바람.




이후락은 비둘기파, 매파는 김종필과 최규하



70년대 초는 국내 정치뿐만 아니라 남북 관계도 획기적인 사건들로 점철된 시기다. 남북 적십자 회담이 지지부진 진행되는 와중에 남북한의 밀사가 서울과 평양을 교차 방문했고, 7·4남북공동 성명이 나왔으며, 박 대통령의 6·23선언이 한국 외교사에 전환점을 만들어냈다. 특히 남북 관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미국이다. 박정희 정권은 툭하면 북한의 남침 위협을 거론했고, 국내 정치에 유효 적절하게 써먹을 뿐만 아니라, 그때마다 미국에 지원을 요청하곤 했다. 북한의 남침 위협이 있다는 것을 사실로 확인 또는 동의해주거나, 그렇게 못하겠으면 최소한 남침 위협이 없다는 말은 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었다. 미국은 그때마다 곤혹스러워했다. 때로는 못 이기는 체 눈을 감기도 했고, 때로는 타일러가며 다독거렸고, 때로는 불 같이 화를 내며 성질을 부리기도 했다. 10·26으로 박 정권이 종말을 맞기까지 18년 동안 미 국무부의 비밀 문건은 이런 문제를 수도 없이 거론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앞두고 닉슨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도 역시 북한 위협론이 거론되어 있다. 미 국무부는 박 대통령의 이 친서에 대해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또 북한 위협론을 과장하고 있음. 우리측 정보 판단으로는 현재 그런 조짐이 없으며, 이 문제에 관한 한 한국에 아무런 대꾸도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됨. 그럼에도 박 대통령 쪽에서 반복해 이 문제를 거론할 경우, (미국) 언론 등을 통해 직접 (북한 위협론에 대한) 우리 측의 판단을 대중에게 알리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음. 국무부 비밀 문건 끝에는, 김동조 대사가 국무장관을 만나기에 앞서 그린 차관보, 레너드 한국과장과 나눈 대화 가운데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면서 남북 관계를 주도해가는 국내 주요 인사들의 정치적 성향을 지적해놓은 부분이 있다. 국무장관 면담에 앞서 대기실에서 김동조 대사는 그린과 레너드에게 남북한 관계와 관련, 청와대에서 있었던 내부 토론에 대해 흥미로운 얘기를 들려주었음. 김에 의하면, 남북 문제를 주제로 한 청와대 참모들의 내부 회의(inner council)에는 이후락, 김종필, 김용식, 이동원, 최규하 등이 참석했음. 김은 참석 인사들의 정치적 성향을 다음과 같이 분류했음. 매파: 이동원과 최규하. 비둘기파: 이후락과 김용식, 중간파이긴 하지만 매파에 가까운 사람: 김종필.




동아일보 김상만 사장이 마련한
덕소별장의 6인 극비 회동



7대 대통령 선거가 끝난 후 71년 7월9일, 서울의 포터 미 대사가 국무부에 보낸 9장 짜리 비밀 전문은 여타 비밀 문서와는 달리 특이한 내용을 담고 있다. 동아일보 김상만 회장이 포터 대사의 이름으로 이후락 정일권 김성곤 김대중 이철승 김영삼씨 등을 덕소 별장으로 초대했을 때 일어난 일들을 포터 대사가 자신의 관점에서 기술한 것이다. 마치 한편의 수필 같은 포터 대사의 글솜씨가 잘 드러나 있다. 다음은 이 비밀 전문을 옮긴 것이다.


얼마 전 대통령 선거 운동이 한창일 때, 동아일보 편집국장의 고뇌에 대해 한번 언급한 적이 있다. 동아일보의 선거 보도에 대해 불만을 품은 학생들과 중앙정보부가 동시에 동아일보를 공격했을 때의 일이다. 물론 학생들의 위협이 덜하긴 했지만, 동아일보 발행인 집안이 고려대학교에 지원금을 대고 있다는 것을 감안할 때 학생들이 동아일보를 위협했던 것은 더 공정하고 균형 잡힌 보도를 해달라는 의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사실 동아일보는 공정 보도에 가장 근접해 있는 언론이며, 따라서 발행인인 김상만씨가 선거 이후 중앙정보부와 빚게 될지도 모를 마찰을 예방해보려는 것은 수긍과 동정이 충분히 가는 일이다. 선거가 끝난 뒤 얼마 되지 않아 발행인이 편집국장을 통해 그의 걱정거리를 내게 전해왔다. 정부는 편집국장을 교체하라고 자신에게 압력을 넣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느냐고 내가 의아해하자, 무슨 말인지 이해는 가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서 예를 들어주었다. 그의 메시지를 내게 전달해준 바로 그 편집국장이 사실은 이보다 덜 심각한 이유 때문으로 2년이나 런던에 쫓겨가 있었다는 것이다. 발행인은 이런 일로 내게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그가 꼭 알고 싶어하는 것은, 선거도 끝나고 해서 서울 근교에 있는 발행인 별장에서 작은 모임을 하나 마련했는데 혹시 내가 참석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김상만 사장은 그 모임에 몇몇 정치인을 초대하겠다고 했다. 어떤 사람들이 오는가? 내가 궁금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편집국장이 명단을 꺼내놓았다.


이후락, 정일권, 김성곤, 김대중, 이철승, 김영삼, 동아일보 편집국장 등 2명


아하, 무슨 말인지 이제 알겠다. 멋진 파티가 되겠는데. 당신 보스는 정말 기가 막힌 사람이다. 국회가 열리기도 전인데 벌써부터 서로 상대방 선거 운동을 비난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사람들이 이 초대를 받아들이리라는 것을 발행인은 도대체 어떻게 알고 있단 말인가? 편집국장은 이해해 줄 것 같아 솔직하게 말하겠다고 하면서, 다른 손님들에게는 내가 초대하는 것으로 알리겠으며 각자에게 다른 손님들 명단도 다 보여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단정적으로 말하기를 “한국인을 이해하신다면” 이 파티의 참석률은 분명히 100%일 것이라고 했다. 나는 김대중씨는 자동차 사고 후에 아직도 병원에 있지 않으냐고 말했다. 편집국장은 그도 올 것이라고 선언하듯 말했다. 그리고 이후락씨가 온다는 것이 더 재미있다는 것이었다. 그렇지. 중앙정보부의 부장님이신데. 그 사람에 대해 관심이 있나요? 그럼요. 편집국장의 대답이었다. 그러면, 이후락씨가 전에도 김 사장의 별장에 갔었나요?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올 겁니다. 그런 걸 좋아할 겁니다. 부인들도 초대하나요? 물론 아니지요. 한국 남자들은 부인들이 옆에 있으면 마음놓고 쉬지를 못합니다. 어-어? 그렇다면 이 소모임은 결국 ‘미국’ 대사가 만드는 게 되는 것이로군요? 그렇습니다, 멋지지 않습니까? 만약, 이후락씨가 참석하겠다고 한다면. 그건 바로 선거 기간에 당신이 쓴 사설 때문에 동아일보가 매질을 당하지는 않게 된다는 걸 뜻하는군요. 사장님 생각이 바로 그겁니다. 나는 대답했다. 좋습니다, 가지요.


나는 동아일보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우선 나는 김상만 발행인을 좋아했고 또 하나는 한국인의 심리전이 펼쳐지는 현장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참석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파티는 취소되는 것인가요? 전부 오겠다고 할 겁니다. 재미있을 거예요. 편집국장은 이틀 후 내 사무실에 다시 왔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잘 되었다는 것이었다. 병원에 있는 김대중씨나 이후락씨도 다 참석한다는 겁니까? 물론이지요. 다른 참석자들의 명단을 보고 나더니 단 한 사람도 참석하지 않겠다는 말을 안 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완벽합니다. 발행인도 좋아하고 있습니다. 몇 시에 시작하나요? 오후 다섯 시부터입니다. 자, 이건 정말 재미있는 일이다. 김상만 발행인이 이후락씨를 잠깐 어리둥절하게 만들기 위해 정교하게 짠 한국판 시나리오에 내가 출연하는 것이다. 결과? 누가 알겠는가! 어쨌든 좋다. 다들 참석하게만 된다면 흥미진진할 것이다.


6월2일 편집국장과 나는 덕소로 갔다. 덕소는 발행인의 별장이 있는 곳이다. 5분 여 후 산자락을 따라 잘 다듬어진 잔디밭에 도착한 우리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카메라맨들이 사진을 찍었다. 다양하고 흥미로운 세 시간이었다. 날씨도 좋았고, 아담하면서 보석 같은 한국식 집도 정다웠으며 접대 또한 융숭했다. 박 대통령의 측근 참모들을 비롯해 그곳에 참석한 김대중씨 등은 불과 얼마 전의 선거에서 서로 치열하게 싸우던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서로 자제해가며 술을 한잔씩 나누고 화기애애하게 한자리에서 어울렸다. 그런 한국인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내게 무척 유익한 기회였다. 그들은 정치 이야기를 나누었고, 몇몇씩 모여 그룹으로 사진을 찍기도 했다. 밤 9시, 김상만 발행인과 이후락씨는 서로 얼싸안았다. 나는 이 광경을 지켜본 다음 참석자들에게 이 전원의 목가적 풍경과 이별할 때가 되었으니 나는 이만 자리를 뜨겠다고 말했다. 내 말을 듣더니 참석자들은 모두 당황했다. 이 산 언덕 위 어둠 속에 자기들만 남겨놓겠다는 것이냐고 농을 하면서 가지 말라고 나를 붙들었다. 정일권 전 총리가 한국식 해결책을 제시했다. 서울로 돌아가겠다는 말에는 동의하지만, 만약 대사가 혼자 집으로 돌아간다면 여기 모인 사람들은 이 저녁을 즐기기가 정치적으로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신민당 사람들도 모두 동의했다. 정일권 총리는 논리적이고 건전하며 유일한 해결책은 우리 모두가 함께 유명한 요정인 청운각으로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너무 늦은 시간이라고 말했으나 그들은 같이 가자고 강권했다. 나는 결국 품위를 지키는 선에서 그 제의를 받아들였다. 그러자 이후락씨는 고맙다면서 “이후 진행될 파티는 포터의 평화 파티”라고 선언(?)했다. 1시간 10분 후, 나는 요정에 와 있었다. 장소는 청운각이 아니라 이후락씨의 사무실 근처에 있는 다른 요정이었다

wneswkcic28

아래에 언급한대로 미국의 이익을 얻기위해서 대한민국의 YS계 지금 이명박 세력이나 미국의 대리전을 수행하기위해서

이번에 미국 국무부의 대선개입에 공을 들인이유가 여기에 있고 동시에 YS계가 이명박 당선하도록 총동원된것도

이와같은 맥략이다

그러니 대한민국내 이들 세력들이 부패를한들 국가 정책을 혼란을 조성한들 황당한 국가정책을 내놓는 이유의 뒷면에는 바로 이것을 수행하기 위한 분산작전이다



그러니 김대중계와 김영삼계중에 하나가 결판을 내야만 한다라는것이다 그것이 아니면 앞전에도 말했지만 대한민국 모든 과거의 그리고 지금의 정치세력들이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 또 다시 동족간의 전쟁을 유도하려고 지금 움직이고 있다라는것이다

그래서 아래와 같은 글을 적어드린것이나 세게프리메이슨 지휘부의 의사를 기다리고 있는것이다


미국은 대한민국이 북한을 공격하게 만들든 북한이 대한민국을 공격하게 만들도록 압박하게하든 미국은 누가 공격하든 상관하지않는다

즉 동족간의 전쟁이 일어나주면 되는것이 미국의 이익이고 그 핑게로 중국을 잡지못하거나 그 댓가로 중국에게 대만을 미국이 넘겨주고 일본은 그 틈새에 전쟁 군수물자 보급로로 다시 일본 국가 경제가 발전하는 게기로 만들려는 계산인것을

이것을 빌미로 그동안 대한민국은 수십년간 전직 대통령세력들이 국가를 농단해온이유이고 이제는 책임을 피하기위해서 전쟁 놀이를 하려고 하는것이거늘



미국이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 대한민국에게 단독작전 수행시켜서 이명박 정부를 세우게 한 이유이고 그리고 이들의 부정부패국가 도탄한 책임도 회피할겸해서 동족간의 전쟁을 추진하려는 의도임

그리고 미국은 양면작전중에 바로 한미 FTA를 통해서 전쟁후의 경제적 종속을 겨냉한 양동작전을 지금 진행하고 있기에

그동안 대한민국의 정치 세력들이 책임을 회피하려고하는 이익과 미국의 이익이 맞아떨어지는 아둔한 짓을 하고 있음

지금 남은기간안에 국가 사회 내부혼란용겸 여론분산용이 바로 한반도 대운하정책이라는 미명아래에 전쟁 준비를 해가는 계산 그리고 이미 전쟁 실행 시간도 알고 잇습니다

그러니 소생이 어찌 이 난국을 가만히 보고만 있겠습니까?

제2차 육이오 대리 전쟁 그리고 V대재앙


6자회담에서 평화협정보다는 정전협정을 논의하는것이 우선이다


지금 문제는 외부에 있는것도 아니고 미국에게 있는것도 아니고 중국에게 있는것도 아니고 일본에게 있는것도 아니다 진정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곳은 바로 대한민국 모든 정치 세력들이나 삼라만상체의 생명을 가지고 있는 한반도 영토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문제이다

그 이유는 지금으로부터 300년전에 임진왜란7년 전쟁이 일어났다 아비지옥 세상을 만난 조선이지요

임진왜란 전의 300년의모습은 또 어더한가 원나라로부터 개,노예 근성을 보인 고려의 말기 300년 동안 걸어오면서 과연 올바르게 국가를 유지해왔는가 그리고 그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제대로 깨달아서 깨어나서 이 민족을 바로 세워왔는가

그러하지못했다 지금 다시 전쟁의 기운이 감도는것 역시 저들의 사특함에 비롯된다면 이역시 이 나라의 민족의 운명이고 지금과 같은 대한민국이 30년동안 핵무기보유하지못하고 미국의 개,노예노릇을 하고 비자금 은닉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임진왜란 당시의 조정대신들이 그러해왔듯이 지금 대한민국 모든 정치권이 그렇게 해간다면 이미 대한민국은 지금 현재로 사망선고를 받아놓은셈이다

그럼에도불구하고 기사회생하려고 노력하지않는 이 대한민국의 시간이 흘려간다면 반드시 재앙은 불가피하다

그리고 이 기회를 통해서 지금 한 국가를 바로 세움에 자국의 내부적힘으로 세우기에 힘들다라고 소생이 지난번에도 언급해 드렸다

그래서 일차적으로 대한민국은 당연히 모든 삼라만상체가 사망선고이기에 죽을것이나 그와 동시에 미국,중국,일본,친미국가들도 책임을 재앙을 받게될것이다

그래서 하늘에서 그에 대한 신의 선물을 내려주시는것을 지금 예상하고 있다

즉 두번 다시 육이오 전쟁과 같은 그리고 이 민족이 수천년간 반복하고 있는 관행의 사람들의 악습을 심판을 하게 될것이다

그러므로 V대재앙은 이러한 기준에서 그동안 의미에서 최종적으로 이것을 하기위함인것 같다
그동안 V대재앙의 의미를 막연히 자연재해의 심판정도의 성격과 의미를 두어왔는데 오늘에 이르러서 그 의미가 시사하는바가 이것임을 깨닫게되었다

그래서 한반도 대운하를해서 지질학적으로 그 타격도 받게된다

지금 누가 어느 세력이 이 대한민국을 바로 세울것인지 스스로 자정통제력을 통해서 국가와 민족을 위한 행동을 보여주고있는지 세력을 지켜보고있다

차기에 들어서는 정권 그리고 그들의 추종세력들은 과연 남북한 2차 육이오전쟁 대리전에 말려들어갈지 지금 남북한 평화협정보다는 정전협정을 하는것이 순서이다 평화협정은 미국 국익의 기준에 맞추어서 정한것이고 전쟁의 불안 요인을 담고 있기에 그것을 불식시키고 6자회담을 통해서 이들 국가들이 논의를 해주어야 할것이다

2차 육이오전쟁 대리전에 6자회담에 참가한 국가들이 개입이 되기에 북한의 핵페기 역시 기타 국가들이 핵의 보유에 대한 상징성은 그들 국가들이 잘 알고 있다

대한민국은 박정희 대통령시절에 핵을 보유했으면 벌서 남북은 통일이되었고 지금과 같은 국제 정세의 희망을 앞당겼다

그러나 그 당시 6자회담에 참가한 국가들이 박정희 대통령의 핵무기 보유에 대한 반대 입장을 다들 취했기에 오늘날 남북한에 이러한 시간에 문제를 다루고 있는 국제 정세의 현실이다

결론은 대한민국만 국익에 상당한 국가적 손실을 맞이하고잇는것이고 그 고통은 고스란히 대한민국 국민들이 안고 있는것이고 지금도 그러하고

그만큼 지금 박정희 대통령 총탄에 암살당하시고 그 댓가로 부귀영화를 누리는 전현직 대통령들 모든 생명체들 사망해도 그대들은 할말이 없는것이다 단지 명분을 정당화하기위해서 미국의 개,노예 근성으로 지금

남북한 2차 전쟁 대리전의 사전 정지 작업을 차기정권이 그리고 이들을 지지하는 세력들이 종교세력들이 하고있음을 지금 전직 대통령분들 비자금을 언급한 이유가 무엇인지 아는가?

마지막으로 그대들이 그 비자금으로 국가와 민족을 구하는 호국의 자금으로 전환해주기를 바라는것이다

그것만이 그대들의 죄를 사하고 반성하는 의미로 보겠다

거듭말하지만 앞으로 그만큼 대한민국 이번 제17대 대통령 선거가 국가와 민족에게 국민들에게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함을 국가 보위측면에서나 국민의 생명 보호 측면에서나 중요함을 언급 해 주어도

국가 기관들이나 정보기관들 언론사 방송사들은 죽음의 문턱을 선택했다 종교세력들 역시 마찬가지이고 진정한 중생들 구제와 양들을 구원하지않는 태도는 용서해줄수가 없다

아무리 법당이나 교회이나 성당에서 교리나 설파한들 경전을 가르친들 현실에서 실천하지않는 종교 사상은 무용지물이다

그래서 이미 대한민국은 지금 앞으로 수천년간 해온 이들의 고질적인 악습의 관행을 고처지기란 기대하지않는다 그만큼 살길을 가르처주어도 그대들은 거절했기에 그래서 이미 사망선고를 하늘에서 받았기에

거기에서 기사회생여부는 지금 대한민국 모든 정치 세력 들이 어떻게 처신해가느냐에 달려있다

그럼 미국의 전략이든가 일본 중국,그리고 친미국가들 그것은 기도의 힘으로 V대재앙으로 해줄것으로 본다

남북한이 진정으로 반성과 참회를 하면 하늘에서 도와줄것이고 그러하지못하면 남북한을 포함해서 미국,주변국가들 ,친미국가들 모조리 V대재앙으로 심판하는 범위가 확대되는 심판으로 갈것이다

소생이 혼자서 이렇게 해갈것이다

아무리 지금 대한민국 5천만영의 뜻이 모두가 정당하다라고 보는지는 모르나 소생의 눈에는 틀렸다 잘못가고 있기에 하는말이다 그것이 그대들 민족의 잘못걸어온 악습의 관행이고 모습들이고 허상들이다

인구수로 보니 대략 20억명 이상과 소생과 절대적인 천지신명님과 함게 투쟁해갈것이다
어차피 V대재앙은 내린다 굳이 대한민국 문제가 아니드라도 다른 이유가 존재하고 잇기에 그러하다 단지 그것을 통해서 피해를 줄이게 해줄일수는 있다

지금과 같이 6자회담에 참가한 국가들이 소생의 바라는 뜻을 저버리면 가르처주지않는다 시기도 가르처주지않는다



설사 남북한에 제2의 육이오대리 전쟁이 나고 미국이 원하는것을 얻고 중국,일본이 얻는다고치드라도 그리고 대한민국 그들의 세력이 또 아둔하게 얻는다고 치드라도



그 다음 대응전략을 통해서 모조리 처리해갈것이다


동시에 이것을 기회로 활용 해 갈것이다

그래서 지금 대한민국을 그동안 도탄에 만들게하고 해온 세력들 모두가 바로세우는 세력이 있는 반면에 그래도 거역하는 세력들이 있다

차후에 거역하는 세력들을 아래의 글대로 모조리 사형은 집행해야 하고 그들의 가족의 뿌리도 도축해야 할것이다

그 정도 좌장군의 위엄 서슬퍼런 명부전에도 하늘에서 그명을 위임해줄것이니 사천왕사님들과 같이 그들의 명을 모조리 거두어야 할것이다 전쟁으로 흘리는피보다는 적기에 그것이 그나마 다수의 생명을 그리고 그들의 죄를 반성하고 참회하고 한 댓가가 그러하므로 살려주는 구도가 그러하다 그러하지못하면 다 도축시켜버린다

어느 네티즌 분이 프랑스혁명시절에 국가와 민족반역자들을 도축함에 좋은 참고 자료가 될것같아서요

2차대전 당시 독일에 점령당했다가 4년만에 되찾는 등 여러가지로 우리나라와 상황이 비슷했던 프랑스의 경우를 봅시다. 우리의 시각으로 본다면 이들의 반민족행위자에 대한 처벌은 너무 가혹하다고 할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과거청산에 익숙치 않은 우리의 눈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민족을 배반한 자들에 대한 강력한 응징이야말로 그 자체가 애국심이며 정의인 것입니다. 그들의 민족반역자 처리사례(언론을 위주로)를 한번 보도록 하지요.

프랑스는 1944년 해방이 되자마자 가장 먼저 민족반역자의 처리부터 서둘렀습니다. 그 일이야말로 민족정기와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할 '의식'라고 생각했던 거지요. 그로부터 40여년 간을 그들은 일관되게 당시의 민족반역자들을 색출하여 처벌합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동안 처벌할수 있었던 근거는 1964년 12월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전쟁범죄에 관한 시효 제거를 규정한 법률'에 의한 것입니다. 해방 후 20년이라는 세월로도 모자라 아예 시효자체를 없애버린 거지요.



그렇게 처형당한 반민족행위자 수가 공식적으로 발표된 것만 무려 11,200명(그러나 이 수치는 공식적인 절차를 거쳐 처형된 숫자이며 비공식집계로는 즉결처분이나 약식재판을 통해 처형된 사람이 무려 12만명에 달한다는 설도 있습니다.), 그리고 약 1만명에게는 강제노역, 약 3천명에게는 중노동 무기형, 약 4만명가량에게는 공민권 박탈을 각각 선고했습니다.

지방법원은 총 12만건을 재판에 회부,4,783명에게 사형선고를 내렸으며 이들중 3,000여명의 사형이 집행됐다.시민법정 역시 다수의 나치협력자를 처단하였다.11만5,000여건을 취급하면서 9만5,000명에게 ‘비국민 판정’을 내렸다.비국민 판정은 선거권 박탈,공직진출자격 박탈,무기 소유·휴대 금지 등 사실상 시민의 권리를 박탈한 준 사법적 조치로,이는 반역자들을 매장하 고 그들의 재부상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해 고안한 프랑스 특유의 ‘발명 품’으로 불린다.

특히 언론에 대한 조치는 더욱 엄격했는데, 독일이 점령하고 있던 4년 동안 15일 이상 발행한 신문은 모두 나치에 협력한 것으로 간주, 폐간조치를 하고 신문사의 재산을 국유화했습니다. 언론에 대해 이렇게 가혹한 처벌을 한것은 이들이 신문을 통하여 독일의 정책수행을 도왔고, 대중의 여론을 오도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개인의 부역과 같이 취급할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처벌을 면한 신문은 '르 피가로', '라 크로와', '르 탕'지 등 3개 뿐이었는데 이들은 모두 독일점령기간 중 자진휴간함으로써 민족의 양심을 지킨 신문들입니다.



언론에 대한 처벌 뿐 아니라 언론인에 대한 처벌은 더욱 가혹했는데, 가장 가벼운 처벌이 다시는 언론에 종사하지 못하게 하는 공민권 박탈이었으며 독일에 협력하였던 많은 언론인들이 처형을 당했습니다.



처형당한 언론인들의 사례를 몇가지 들어보겠습니다.



-일간 '오주르디'의 편집인 쉬아레즈는 "우리의 땅을 수호하고 있는 것은 독일인"이라는 기사와 히틀러의 관대함을 찬양한 기사 등을 쓴 혐의로 사형과 재산몰수형을 받고 총살에 처해졌습니다.



-일간 '누보 땅'의 발행인 쟌 뤼세르는 신문협회의 회장을 지내면서 반민족 언론인들의 사상적 가이드역할을 했던 인물로 사형과 재산몰수형을 받았습니다.



-수필가이며 문학비평가인 브라질라쉬는 프랑스노동자의 독일 파견을 주장하는 사설을 쓰고 독일의 프랑스침략을 찬양한 혐의 등으로 사형을 받았습니다.



-'르 마뗑'지의 논설위원 스테판 로잔느는 독일을 찬양하는 사설을 쓴 혐의로 20년의 독방구금과 재산몰수형을 받았습니다.

주간지 '그린구와르'에 "영국은 허구의 동맹국", "드골은 역사가 구토할 이름"등의 사설을 쓴 앙리 베로드는 무기형을 받았습니다.



이 외에도 독일방송의 선전문을 작성했던 폴 페르도네, 독일 점령기간 동안 라디오 파리의 해설가로 이름을 날린 쟌 헤롤드-파퀴, 그리고 피에르-앙트완 쿠스토, 루시엔 레바테가 모두 사형을 받았습니다.


인간의 무한한 상상력속에서 창조가 시작되는것이거늘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는것이 깨닫지못한 인간사 세상사의 모습이고 국제 정세이거늘



영원한 동맹은 없다 오로지 영원한 인류의 공존만이 존재하는것이거늘

그러니 미국이 그것을 파괴하고있다



공존속에서 상생을 모색하고 창조를 모색하고 발전을 모색해야만한다

이것이 인류가 그동안 실수투성이에 대한 비싼 수업료의 결과의 답이다


북한하고 일본이 손잡고 미국을 공격하면 그러면 대한민국의 부패세력들이 북한을 공격한들 그것은 러시아가 아니면 중국이 잡으면 되고 친미국가들은 유럽에 중동에 이 역시 반미 국가들이 잡으면 되고그리고 남미에서 반미 국가들이 합세하면 미국 국가를 정복 가능하다 이렇게 상상해봅니다ㅋㅋㅋㅋ

북한하고 일본이 얻는 국가적 이익은 동아시아에서 얻는 이익보다도 북한하고 일본은 더 많기에 특히 일본은 다시 미국의 등에 업고 동아시아를 향해서 움직일지 아니면 미국의 진주만 기습처럼 방향을 돌릴지 여전히 미지수다

결론은 일본이 얻고자하는 하는것은 새로운 국가 영토를 바라고 있기에 미국과 일본이 동아시아를 향해서 얻고자하는 이익분하고 북한하고 일본이 미국을 향해서 얻는 이익분하고는 과연
어느것이 이익이 많은지는 계산해보면 답이 나온다

일본이나 북한이 그동안 꿈꾸든 것을 미국 본토에서 달성가능하고 장애물이 적다

그러나 동아시아에서 하면 대륙연합 국가이기에 장애물이 많이 부딪치기에 성공률은 낮다 그것이 그동안 일본이 대륙을 향해 침략해온 결과가 말해주고있다

어차피 W1프로젝트은 진행한다 그리고 인류에게 공존하지않으면 세계전쟁의 수많은 시나리오중에 다양한 전쟁 양상 구도를 지금부터 살펴보는것이다

이것은 인류가 깨닫지않으면 그대들의 습성으로 습성을 백분활용하겠다 어차피 W1을 진행해감에 프리메이슨 지휘부에서 진행해가든 해가지않든 인류는 그렇게 가고있기에

단지 인류를 좀더 진전된 진보된 지구를 효율적으로 앞으로는 유지해가기위해서 세계 1,2차 대전처럼 그동안 방식대로하지않고 하기 위해서 절대적인 신의 뜻을 담는 세계 전쟁이 될지 아니면 인류가 아둔한 모습대로 갈것인지 이것이 차이점이다

인류가 그대들의 습성대로하면 그래서 세계 전쟁을 치룬들 결과는 더많은 문제들이 대기하고 있기에 그것을 생각해서 지금 절대적인 신의 뜻을 알려주려고 하는데

그 첫단추가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는데 인류가 소생에게 협조해주는냐 못하느냐에 달려있다

소생한 몸은 어땋게되든 상관없다 이미 초월한 그리고 일반인들 보기에는 황당한 다윗과 골리안의 사움처럼 황당무개한 투쟁을 하지만 그것은 그대들이 잘못보고있다

신의 뜻을 인류에게 전달하는 사람이기에 소생의것은 아무것도 없다

단지 W1 프로젝트를 수행함에 주어진 시간과 공간안에서 지구촌 국가들이 효울적인 세계 전쟁을 위해서 대안을 알려드리고자하는것이 목적이다

그대들의 깨닫지못한 깨어나지못한 세계전쟁은 또 아둔한 결과물만 남기에 지구행성은 더욱더 수명을 앞당기고 말기에 말이다

기도의 힘으로 이 지구를 다스려감에 통제해감에 유럽연합이 부디 깨어나야하고 미국은 그동안 해온것처럼 아둔한 세계 패권화 전략은 역사의 악순환만 반복할뿐이다

즉 미국가의 존망만 앞당기게될것이다 소생은 인류 전체를 보고 기도의 힘으로 W1를 바로세움에 방치할수가없기에 왜냐하면 인류 역사상 태초이래로 인류가 처음으로 하늘의 대업이기에 깨어나지못한 인류손에만 맡겨놓을수가없는것이 하늘의 뜻이다

이 정도 설명해주면 세계 프리메이슨 지휘부에서 그동안 소생을 실험하는시간도 어러마남지않았으니 실험 그만하고 소생의 명을 받아들어야 할것이다

가능성 있는 국가로 소생이 가서 그들이 원하는것을 얼마든지 도와줄수가 있다

대륙연합 국가로 거듭 갈것인지 아니면 미국의 그동안 패권전략으로 계속해서 이어갈것인지 지구촌 국가들에게 어디로 갈것인지 지켜보고잇으니 미국 역시 마찬가지로

한국에 2차 대리전 양상을 몰고갈것인지 그후의 상황 역시 잘 알고잇기에 미국은 대한민국 부패 세력들은 오판하지마라

W1 기초가 다져지면 인류가 큰가다로 잡히고 평정이 되니 지구촌 국가전체를 통솔 해 갈것이다

그리고 이들을 인간들을 어덯게 다루어가야할지 잘 알기에 그렇게 알려주고나서 소생은 이 지구를 떠나면 되는것이다

그리고 지구를 떠나서도 필요하다면 다시 올것이다 깨달음의 경지 세계에서 육신이 다른유형으로 되어도 지금의 육신의 의지대로 그대로 집행 해 간다 앞으로 영원히 .................

일본이 임진왜란 7년 전쟁 당시에 조선을 완전 정복 가능할수있는 이유를 답을 드릴수도 있다

미국이 세계 패권화 전략에 왜 실패하는지 그 답도 가르처줄수가 있다

북한이 육이오 전쟁에서 북한 방식의 통일을 이루지못한점왜 못하였는지 그 답도 알고 있다

남북한 민족이 왜 수천년간 약소 국가로 살아가고있는지도 그 답은 지금도 가르처 주고 있다 그 답을 가르처줌에도 그들의 분류의 인간들은 앞으로 지구촌에서 유전자 자체를 없애버리겟다 즉 혈통을 없애버리겠다 왜냐하면 지구촌의 앞날에 좋은 유전자 정보가 아니기에 말이다

그러므로 제거해버리겠다 그래서 지구 행성에 영원히 제거되어야 할 유전자이고 육신들이 누구인지 잘 알기에 지금 대한민국에 그러한 세력들이 누가돌지 지켜보고잇다 이미 알고잇지만은 마지막으로 그들의 행동과 정신 의지를 지켜본다

앞으로 세계 대전은 인류역사상 가장 큰 전쟁으로 마감될것이다 인류 역사상 지구촌의 역사속에서 수많은 전쟁중에 가장 규모가 크고 가장 인명손실이 많이 발생하는 그리고 전쟁범위도 가장 광범위하고 그래서 그동안 인류가 깨닫지못하고 깨어나지못한 수많은 전쟁사를 치루어왔지만 지금의 세상사 지구촌 모든 국가와 인류를 향해서 그대들 어떠한 종교 신앙 조차도 성령도 절대적인 신은 그대들에게 뜻이 없다라는것이다

그래서 소생에게 모든것을 보여주신것이고 그래서 그대들이 그대들 나름대로 세계 전쟁을 치루기전에 절대적인 천지신명님의 뜻을 인류에게 전해줄것이다

그리고나서 그대들은 절대적인 신의 뜻을 받아들이고나서 소생이 제시하는 세계 전쟁에 대해서 논의한후에 세계전쟁을 치루게될것으로 본다

지금은 대한민국 인간들이 살길을 가르처주어도 소귀에 경읽기인데 지구촌 전 인류에게 지금 소생이 이러한 말을 언급해주어도 역시 믿음이 없는것도 잘 알기에

그것을 증명하기위해서라도 보여줄것이고 물론 인류가 믿든말든 상관없이 V대재앙을 집행하게될것이다

믿음이 강한 국가부터 앞으로 구제와 구원을 선택적으로 해줄것이다 믿음이 약한 국가들이나민족은 보호 해 주지않는다

지금과 같이 대한민국 국가처럼 살아가는 국가나 국민들은 살려둘수가없기에 말이다


그동안 대한민국 대통령들의 비자금과 비자금 조성은 어덯게하고있는지





일단 모든 전현직 대통령들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비자금을 축척한다라는 사실 단지 아래의 수많은 대통령비자금의 진실의 루머는 지금도 숨바꼭질을 하고잇고



대통령의 비자금에 대한 정보를 주변국가들은 이 정보를 이용해서 자국의 이익을 증대하기위해서 모든 일에 대해서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비자금 당사자들은 자신들의 비자금의 폭로를 두려워한 나머지 주변국가들의 입김에 좌지우지하고 잇는 대한민국 국가와 정치의 현실



물론 대한민국 대선이든 총선이든 그러한 이유로 역대 대통령이 이렇게 국가의 채권을 남발하여 자신들의 비자금축척하고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국가는 망하는것이고 그것이 아니드라도 국가 재정적자가 높아져가는데



그만큼 국가 경영에 책임감이 과거의 국가 경영형태보다도 이러한 페단을 이어가고있다



지금 비자금 모든 대통령들이 비자금을 축척하여 권력의 맛에 벗어나지못하고 퇴임후에도 영향력을 행세하려는 모습에



지금 대한민국의 모든 세력들이 대한민국을 그들이 어디로 몰고가려는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소생은 세게 프리메이슨 지휘부의 최종적인 선택을 지켜보고 있다



다시말해서 대한민국을 이렇게 전현직 및 대통령 그리고 모든 기관종사자들 그리고 기득권세력들 대기업들 대한민국을 살리고싶지않으면 나라를 판을 갈아엎어버리는 속성 잘알고



미국역시 대한민국 국가를 완전종속하고 북한 정권 붕괴를 바라는 미국의 이익



미국 다음에는 또 중국이 미국처럼 그러한 완전한 남북 종속을 바라고 있으니



지금 얼마나 대한민국이 그대들이 그렇게 방향으로 몰고간들 결과는 다 그대들이 그동안 수십년동안 바르게 해 오지않아서 국가가 위태워지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국민들의 생사는 개죽음당하겠지만 그들은 외국으로 가면 그만이다



그래서 세계 프리메이슨 지휘부에 세계전쟁을 염두에두고 지금 대한민국을 어떻게 처리할것인지



이미 그대들의 속성을 알고 있기에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 전현직 대통령을 비롯하여 여,야 정치 세력들 그리고 대기업,방송사 언론사,기타 예하 기관이나 군부들 정보기관들 사정기관들



이래가지고는 대한민국 보존하기는 어렵다 어차피 국가를 사랑하지않고 병들게 만들고오는 마당에 마지막으로 그대들의 선택과 결정이 달려있다



남북한의 명줄은 남북한 이땅위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권은 충무공 이순신장군님이 지금 가지고 계시기에 그대들 모두를 국가와 민족 전체를 그대들이 그렇게 맘을 먹고 결정하면



세계 프리메이슨 지휘부에서 그들 모두의 목숨을 거두어갈것이다 즉 주변국가들의 힘을 통해서



이 남북한 전체를 명을 거두어갈것이다 그리고 외국으로 도망가드라도 살아남지못한다 그이유는 나중에 알게되지만 외국 은행에 돈을 은닉한들 살아남지못하고 그돈은 어느 국가가 환수한들 의미가 없다



지금 세계는 재물의 탐욕의 의미가 얼마나 권력 세계에서 축소되어가고 있는지 알고있는가?



참으로 못난 권력않인 권력자들이 비자금 조성하느라고 죄를 짓고 또 숨기려고 죄를 짓고 잇고



지금 세계가 세상이 어덯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있구나



이 대한민국의 이들의 추악한 모습들을 보면 구태 봉건시대의 권력 세습을여전히 타파하지못하고 국가의 악순환을 자초하고잇고 자신들의 불행을 앞당기고 있으니



대한민국을 긑까지 이대로 몰고가려는 모든 대한민국 세력들은 이번에 그대들의 선택권은 없다 반드시 대한민국을 그동안 바르게해오지 않은것을 바르게 세워놓아라



박정희 대통령의 총탄의 흘린 피로 그대들이 지금 박정희 대통령의 피을 기대했든 세력들이 지금 어덯게 해왔는지 대한민국을 어떻게 해왔는지는 그대들이 잘 알것이다



그리고 정치적인 이유를 떠나서 그대들이 이땅의 민족의 후손이면 민족의 한을 아픔을 불행을 깨닫지못하고 깨어나지못한 죄 역시 무겁다



종교적으로는 절대적인 신과 그대들 육신의 생명을 주심에 역시 바르게 실천해오지않았다



이 죄도 무겁다 국가가 민족이 처한 분수를 망각하고 자신들이 해온죄를 묻자면 그것을 반성과 참회는 아직도 하지않고 국가와 민족을 불행한곳으로 지금 몰고가고 있으니 그대들이 과연 살아남을수가 있다고 보는가?



그래서 절대적인 천지신명님께서 소생을 보고 대인을 만나야 하는 이유이고 충무공 이순신장군님이 선몽에 나타나셔서 하신말씀은 바로 지금 처한 대한민국 국가의 운명을 바르게 세우지않고 계속해서 병들게만들어가려는 저들의 습성을 용서하지않음을 말해주는것이다



솔직히 인류의 심판하기전에 대한민국부터 먼저 심판을 받아야함을 잘알고있는데 저들은 그렇게 살길을 가르처주어도 죽는길로 가고자 몸부림치고있으니 하늘에서 모조리 살려두지않을것이다



그대들이 불행으로 이 국가와 국민을 구제하기는커녕 불행의 구덩이로 몰아넣으려는 죄는 사하고 싶으면 지금 그대들이 대한민국 모든 조직 세력들이 사람들이 가고자하는 방향을 사악한 맘을 하늘에서도 알고 잇기에 대단한 피비린내가 진동할것이다



항상 국가를 다 망처놓고 도망가려는 기득권세력들의 습성은 수천년간 대한민국 인간들의 깨어나지못한 습성인것을 그래서 이번기회에 절대적인 천지신명님게서 그들을 바로 잡는것이되니



그동안 이 한반도에서 벌어진 피비린내의 혈의 누는 그대들이 생각하는 전쟁 그이상이 될수가 잇다 그동안 수많은 이 민족의 전쟁사가 있었지만 이번에 아주 강력한 응징으로 그대들을 모조리 심판하겠다



그래서 계속해서 지금처럼 나라를 살릴생각하지않으면 바로 세우지않으면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이명박 김대중 노무현 국가를 가지고 술래잡기하나 짝짓기하나



군부도 출현하겟지요 그러나 그들의 30년의 손아귀에 있는 군부로는 대한민국을 바로세우지못하니 천명을 가지고 대한민국 남북한을 평정하게 될것이다



비자금을 조성하려는 마음자세부터 틀렸다 그것이 결국은 자신의 국가와 국민을 괴롭히고 자신에게도 재앙이되는것임을 한순간의 물질의 쾌락에 권력의 허영심에 불쌍한 육신들의 영혼들을



저승 세계가 없는줄 아는가? 도솔천 세계는 분명히 존재하니 이승이 전부가 다 아니다



거듭말하지만 이제는 소생은 마지막으로 그대들은 스스로 선택하라 그 결정에 따라서 4340년의 한을 그대들의 피를 대신하겟다



이것이 정해진 도수이다 그래서 충무공 이순신장군님께서 400여년만에 소생의 선몽에 나타나신것은 소생의 말을 거역하면 그렇게 집행한다



그래서 후손분을 살려달라고 잘부탁하자라고 말씀하신이유를 알겠는가? 바로 그대들이 그동안 대한민국을 이렇게 국가와 민족을 위태롭게 만들어가고있으니 그 결과는 무엇이 기다리고잇나



이것을 알고도 의도적으로 하고 있는 그대들 모두를 하늘에서 용서하지않는다



아래는 역대 대통령의 비자금 관련한 의혹의 루머들이고 그속에 진실도 숨어있으니



국가 재정적자는 이들의 비자금들을 다 국고로 환수하면 대기업들의 국고를 편법으로 착복하는 이익금도 환수하면 국가 재정적자는 메워지고 이 이익을 서민들에게 되돌아갈수가 잇는것이다



돈을 착복하여 횡령하여 자손대대손손 부귀영화를 누리고 하는모양인데 참으로 하늘의 도수도 모른 육신들이 그렇게 내버려두지않는다



그대들의 불안전한 육신들과 그리고 부단히 깨달음을 게을리해오면서 살아온 습성어느정도 이해를 하나 지금 그러한 부족한점들을 국가와 민족의 기둥 자체의 뿌리를 뽑아버려야 할지 그대들 선택에 따라서 결정되는것이다 이것을 말해주고 싶다



정치라는것은 그대들의 놀이개이고 거역하면 모조리 도축시킵니다 이것은 확고한것이기에 그리고 정해진 이치이고 도수이기에





YS-DJ 시절의 대형 무기도입 비리 사건



끈끈한 비리의 사슬

이상으로 김영삼, 김대중 양 정권에 걸친 무기도입 사업의 비리 의혹에 대해 제가 알고 있는 내용을 말씀드렸습니다.

지난 10년여간 우리나라에서 벌여졌던 모든 무기도입 비리 사건에 국방장관과 국정원장(안기부장)을 거친 권영해와 천용택이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이러한 비리들이 왜 이제까지 밝혀지지 않고 덮혀 버리게 되었는지를 설명드릴 차례입니다. 이 비리의 주역들이 서로 어떻게 연계되어 있고, 이들이 해외에 숨겨 놓고 있는 비자금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러한 비밀을 밝히기 전에 먼저 이해를 구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저는 김대중 정권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도망와 있는 한낱 망명객에 불과합니다. 일개인의 능력으로는 이들의 커넥션과 비자금의 전모를 추적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저는 그동안 이들이 해외에 숨겨놓고 있는 비자금의 존재에 대해 어렴풋하게나마 그 실체를 파악하였습니다. 제가 확인한 바로는, 권영해와 김영삼, 김대중은 모두 해외에 거액의 비자금 계좌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전두환과 노태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권영해, 천용택, 김대중의 은밀한 뒷거래

김대중은 집권 초에 이미 권영해의 무기 비리를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김대중은 자신도 장차 무기도입 사업으로 돈을 먹으려고 계획했기 때문인지, 문제를 밝히기보다는 문제를 덮는 방향을 택했습니다.

지난 98년, 정권이 바뀌고 난 후 김대중 정권은 본격적으로 권영해를 압박하였습니다. 권영해는 북풍사건으로 미운 털이 단단히 박힌 데다, 무기도입 비리까지 겹쳤으니 크게 손봐야 할 대상이었던 것입니다.

권영해는 김대중 측과 거래해 보려고 발버둥을 쳤으나, 결국 구속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가 조사를 받으면서 할복 자살이라는 연극을 꾸미게 된 것은 이런 배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할복이 아니라 비계 껍질을 살짝 긁은 것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그 후 권영해는 구속이라는 불리한 처지에서 김대중 측과 거래를 벌여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국방장관이었던 천용택이 나섰습니다. 이때 권영해는 천용택에게 30억원에 달하는 거액의 뇌물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 대가로 천용택은 국방부 내 문제는 자신이 직접 수습했습니다. 천용택은, 위에서 설명한 바와같이, 정권 인수위가 중단시켰던 여러 사업들을 강행하면서 반발하는 실무자들을 눌렀습니다.

권영해와 김대중간의 본격적인 뒷거래에는 박지원이 나섰다고 합니다. 권영해는 “무기 비리는 덮고, 북풍에 대해서만 처벌받는다.”는 조건으로 김대중에게 400억원에 달하는 거액을 바쳤다고 전해집니다.

홍콩에 계설되어 있던 권영해의 비밀 계좌에서 홍콩에 있던 김대중의 비밀 계좌로 이 거액의 돈이 흘러 들어갔다고 합니다. 권영해는 10여년간 무기 비리로 치부했던 돈의 상당 부분을 그렇게 토해내야 했던 것입니다.

권영해, 김영삼, 김대중의 해외 비자금

대한민국 역사상 대통령들을 제외하고는 권영해 만큼 부패한 자를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권영해는 홍콩 등 여러 곳에 수개의 비밀계좌를 개설하고 2천억원대의 천문학적인 비자금을 숨겨 놓고 있다고 합니다.

한때, 권영해는 극비로 북한제 장거리 미사일의 도입을 추진한 적도 있었습니다. 주위의 격렬한 반대로 결국 들여오지는 못했지만, 구입자금으로 쓰려던 안기부의 특수사업비 수백억원은 그후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모두 그의 비밀계좌로 들어간 것입니다.

비리의 교사범이자 공범인 김영삼도 대만 등 여러 곳에 1천억원에 조금 못미치는 비자금을 묻어 두고 있다고 합니다. 다른 전직 대통령들에 비해서는 약소한(?) 규모이지만, 아직도 김현철을 십여 차례는 국회의원에 당선시킬 수 있는 액수라고 합니다.

최근 홍인길은 어느 인터뷰에서 “김영삼은 빈털터리다.”고 낮뜨거운 거짓말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지난해 그의 측근들은 “가정부에게 월급을 줄 돈도 없다.”며 김영삼에게 푼돈을 모아준 일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전두환의 29만원 사건에 버금가는 민망한 코미디입니다. 그나마, 좀 평가해줄만 부분이 있다면, 김영삼은 최근 몇 명의 대통령 가운데서는 가장 청렴하고 양심적으로(?) 해먹었다는 것입니다.

( 웃기는 소리,3대 재벌로 둔갑은 무엇인가?

천문학적인 마사회 수입은

모두 대통령구좌 인데도?,) -무숙자-


비리의 또다른 공동정범인 김대중은 상상을 초월하는 천문학적인 거액의 비자금을 해외에 숨겨두고 있다고 합니다. 김대중이 혈세를 도둑질하여 스위스, 홍콩 등지에 분산 예치하고 있는 비자금의 규모는 최소 6,000억원에서 1조(兆)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범죄 규모로 보나 죄질로 보나, 김대중이 우리 역사상 가장 극악한 부패사범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저는 그를 “희대의 악마적인 사기꾼” 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가 “언젠가는 전라도 백성들의 손에 의해 부관참시 당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 스위스를 방문중인 김대중은 세계보건기구(WHO) 총회 개막식 연설을 마치고 호텔에서 쉬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스위스 방문 목적이 WHO에서 연설이나 하려는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건 너무 순진한 생각일 것입니다.

저는 그의 이번 스위스 방문이 “그의 비자금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구좌이체를 위한건지, 아니면 계좌의 상속문제를 처리하기 위한건지는 알 수 없지만, 아뭏든 그의 친필 싸인이 필요했기 때문에 스위스를 방문했을 것입니다.

이번에 우리 정부는 정부 예산으로 김대중의 유럽여행 경비를 지원했다고 합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코미디입니다. 이 악마적인 사기꾼의 사기행각에 철저히 놀아나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번 김대중은 “4월 말경에 상해를 방문할 예정”이라고 발표한 적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 계획이 결국 취소되었는지, 아니면 비밀리에 실행되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때 김대중의 중국 방문도 홍콩에 있는 그의 비자금 구좌와 연관이 있을 것입니다.

제가 지난해 밝힌 바와 같이, 김대중은 대북송금과 관련하여 2억달러 이상을 챙겼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여러 정황으로 보때, 저는 김대중과 김정일이 “북한에 송금할 돈의 10%는, 킥백(리베이트)으로 되돌려 받기로 약속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 글에서, “99년 12월 김대중이 김정일에게 15억 달러를 주기로 합의했다.”고 밝혔습니다. 저는 북한의 최고위층으로부터 직접 들은 사람으로부터 그 정보를 전해 들었습니다. 저는 그 출처가 북한의 최고위층과 접촉한다는 사실을 그 이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북에 건너간 돈은 15억불보다 좀 더 되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3억달러씩 한 차례 내지 두 차례 더 간 것으로 추정됩니다. 아마도 노벨상 단독 수상이나 김정일의 방한약속 실행에 대한 대가로 지불되었을 것입니다.

지난해 1월, 김대중은 2억달러 송금을 시인하고 이 문제를 덮으려고 시도하였습니다. 그 후 예기치 않게 저의 글이 발표되자, 마지못해 5억 달러를 보냈다고 시인했습니다. 그러나, 그후 특검은 4억 5천만 달러밖에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5천만 달러(10%)는 어디로 사라졌을까요?

현대상선 미주지부에서도 북으로 3억 달러를 보냈다고 알려졌습니다. 정몽헌은 죽기 직전에 권노갑에게 3,000만 달러를 바쳤다고 실토했습니다. 그러나, 그 3,000만 달러는 권노갑이 먹은 게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3억 달러의 리베이트(10%)로 김대중의 스위스 계좌로 들어갔을 것입니다.

김대중은 또한 국내 굴지의 방산업체인 한국화약으로부터 수백억원을 뇌물로 받고 대한생명을 특혜 분양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화약의 사주인 김승연이 소유하고 있던 경향신문이 지난 5년간 정권의 나팔수 노릇을 한 것은 이러한 커넥션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일은 김한정 제1부속실장이 돈심부름을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한나라당의 모 의원으로부터 두 차례나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분은 한화 비서실 관계자에게서 전해 들었다고 합니다.

참고로, 지난 2002년 10월, 이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신건 전 국정원장은 국정원의 감청부서인 과학보안국을 해체한 바 있습니다.

밝히려는 자 vs. 숨기려는 자

여러분들은 이제 김대중 시절, 김영삼이 김대중에게 극도의 혐오감을 드러냈던 이유를 조금은 이해하셨을 것입니다. 김대중이 권영해를 구속하면서 치부를 들춰내려하자, 김영삼이 반격에 나섰던 것입니다.

아마도 김영삼은 공격을 받을수록 더 전투의지를 발휘하는 특이한(?) 승부사 체질을 가졌나 봅니다. 우리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저들은 저들끼리만 아는 언어로 그런 식으로 대화를 주고 받았던 것입니다.

여담입니다만,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는 지난 93년 감사원장시절 율곡비리 감사에서 권영해의 비리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김영삼의 반대로 권영해를 건드리지 못했습니다.

이번호 시사저널이 보도한 대로, 당시 권영해 국방장관은 이회창 감사원장이 율곡비리를 캐고 들어오자, 이 총재 아들들의 병역비리 카드를 들고나와, 이 총재를 협박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후 이회창 총재는 권영해와 김영삼을 처단할 목적으로,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 숨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이회창과 김영삼이 끝까지 화해하지 못했던 배경에는 이 점도 작용했을 것입니다.

지난해 12월 16일, 임복진 전 의원은 내일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러한 비리의 일단을 증언했습니다. 임복진 전 의원은 특정 지역 출신으로서는 “드물게”-이렇게 밖에 표현할 수 없음을 용서바랍니다.- 보는 훌륭한 군인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김대중 정권에서 초대 국방장관으로 내정되었으나, 개인적인 실수가 빌미가 되어 낙마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때 천용택이 권노갑에게 고자질하여 국방장관 자리를 가로챘기 때문에, 그후 두 사람은 서로 원수지간이 되었다고 합니다.

저는 임복진 전 의원의 지난번 인터뷰가 단순히 천용택에 대한 사적 감정의 발로라고 폄하할 생각은 없습니다. 임복진 전 의원은 누구도 섣불리 말하지 못하는 주제에 대해 용기 있게 발언한 것입니다.

저는 임 전 의원님께서 좀 더 구체적인 사실을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를 계기로 앞으로 더 많은 증언이 나올 것으로 기대합니다. 차제에 국방부 내 양심 있는 젊은 군인들도 나서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지난해 발표한 글에서, “권영해가 조기에 석방된 것이 석연치 않으며, 김대중과 권영해 간에 엄청난 뒷거래가 있다는 것을 들었다.”고 썼습니다. 저는 저들을 떠보기 위해 일부러 그 내용을 넣었습니다.

얼마후 김한정은 제 3자를 통해 은밀히 의사를 타진해 왔습니다. 자기가 국정원에 아는 사람이 많으니, 저와 국정원간에 중재를 해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일언지하에 거절을 했습니다. 저는 김한정의 의도가 “내가 얼마나 아는지를 떠보기 위한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난해 글을 발표하고 난 후 여러 사람들로부터, “김한정과 무슨 악연이라도 있는 게 아닌가?”, 또는 “김한정을 너무 과대 평가하는 건 아닌가?”라는 오해를 종종 받은 적이 있습니다.








<<무기의 그늘, 부패의 온실>>



1) 글을 시작하며

국민 여러분들께 이 글을 드립니다.

저는 지난해 발표한 세 차례의 글을 통해 김대중의 위선과 기만, 그리고 임동원의 간첩 혐의 및 국정원의 도청 실태를 밝힌 바 있습니다.

저는 지난해 세 번째 글에서 “마지막이길 바라는 비장한 심정”으로 글을 쓴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저는 오늘 다시 펜을 들면서 그러한 저의 다짐을 깰 수밖에 없는, 비통한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저는 이 기회를 빌어 다시 한번 저의 입장을 분명히 하고자 합니다. 제가 국민 여러분께 이 글을 드리는 이유는 개인적인 영달이나 사심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저는 저의 글이 혹시라도 국민 여러분들께 뭔가 가르치려 들거나 훈계하려는 것으로 비추어질까 두렵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쓰는 단 하나의 목적은, 오로지 우리 모두가 지난 날을 바로 알고, 오늘 날을 다함께 걱정하고 염려하며, 다가올 날을 올바로 설계하자는 차원이라는 점을 이해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저는 이 글에서 김영삼, 김대중 정권 시절에 벌어진 무기도입 관련 비리 의혹에 대해 설명드리고자 합니다.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일들을 밝히기 전에 미리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군인들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대다수의 선량한 군인들이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기에 오늘 우리의 안전이 보장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저의 이 글이 그런 대다수의 선량한 군인 여러분들께 누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경찰청 특수수사과의 납품 비리 수사

지난해 12월, 청와대 직속의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이원형 전 국방부
품질관리소장과 이영우 AM코퍼레이션 대표, 정호영 한국 레이콤 회장 등을 구속하고 천용택 전 국방장관 등을 소환, 조사하였습니다.

이번에 특수수사과가 수사한 주요 사건은 대략 다음 세가지 사업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 오리콘(Oerliken) 대공포 계량 사업
2. 케이블 어셈블리 납품 사업
3. 해군 견인소나장비 납품 사업

지난해 국방부의 장교들이 청와대에 투서한 편지가 계기가 되어 이번 무기비리 수사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아직 군내에 양심적인 젊은 군인들이 남아 있음을 확인한 것은 큰 위안이라 할 것입니다.

이번 사건은 전체 무기비리 가운데 지극히 작은 일부분에 불과한 것이었지만, 아직 제대로 진상이 알려지지 않았거나 일부 잘못 알려진 부분이 있기에 몇가지 설명을 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오리콘(Oerliken) 대공포 계량 사업 비리 의혹

이 사업은 총560억의 사업비를 들여 청와대 주위와 수도권에 배치되어 있는 GDF-001대공포의 성능을 개량한 것입니다.

이 사건의 개요는 지난 98년 기원전자의 정호영이 천용택 장관에게 로비하여 사업권을 획득한 후 대부분의 사업비를 착복하였고, 이원형 품질관리소장에게 로비하여 하자 있는 제품을 납품했다는 것입니다.

이 대공포는 스위스 Oerliken사에서 제작한 것으로서, 정확한 명칭은 GDF-00 135mm 이연장 대공포입니다. 이 대공포는 레이다 유도 방식의 대공포라고 합니다. 지난 75~78년간 36문이 도입되었다고 합니다.

이 대공포는 도입 당시 성능이 매우 우수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포대가 대공포 2문과 수퍼 플레더마우스(Super Fledermaus) 사통레이더 1대로 구성되는데, 수방사에서 18개 포대를 운영,관리하고 있다고 합니다.

국방부는 당초 638억의 사업비를 책정, 이 대공포의 소모부품 국산화 사업을 추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호영이 천용택에게 로비하여 부품 국산화 사업을 성능개량사업으로 변경하고 사업권을 획득했다고 합니다.

도입한 지 20여년이 지난 대공포의 성능을 개량한다는 발상 자체가 무리한 측면이 있었지만, 대공포를 전혀 만들어 본 적도 없는 회사에게 성능 개량사업을 맡긴 것이 더 큰 문제였다고 합니다.

지난 2002년 성능개량 사업을 종료하였는데, 사업 종료후 오리콘 대공포의 성능이 사업 이전보다 오히려 더 떨어지는 사태가 발생하였다고 합니다. 성능 개량사업이 아니라 성능 개악사업이 된 것이지요.

성능 개량사업 후 목포물을 포착하는 데서부터 사격에 이르는 전 과정을 수동으로조작해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 원인은 성능개량 사업을 한답시고 기존의 레이더를 못쓰게 만든 데 있다고 합니다.

정호영은 지난 92년 윤석양 이병의 보안사 민간인 사찰 폭로 사건이후, 기원전자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컴퓨터 보안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기무사에 납품하면서 군납 사업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후 정호영의 기원전자는 주로 통신장비의 비화기를 제작하여 국방부에 납품하는 군납 사업을 해왔다고 합니다.

기원전자에는 송응섭 고문(육사 16기, 육군대장), 이학건 사장(육사 16기,육군준장) 등 천용택의 육사 동기 2명을 비롯하여, 예상오 (육사 22기, 육군소장), 김정호(육사 23기, 보안사준장), 유보선(육사 25기, 국방부차관) 등 고위 군출신 인사들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편, 이 사건과 관련하여 유보선 국방차관이 국방부 내 입단속을 지시하였다고 합니다.

케이블어셈블리 납품 관련 비리 의혹

이 사건은 연합정밀 대표 김인술이란 자가 문일섭 획득실장과 이원형
획득정책관에게 로비하여 국방부에 납품되는 각종 케이블어셈블리의 납품 사업을 따내는 과정에서 빚어진 비리 의혹이라고 합니다.

이들의 대표적인 비리 의혹은 육군의 통신장비 획득사업인 SPIDER에 들어가는 케이블어셈블리와 커넥터의 납품을 가로챈 사건이라고 합니다.

SPIDER에 들어가는 케이블과 커낵터는 100여종인데, 당시
광남텔레콤(대표:홍정휘)이 대부분을 국산화하였고, 한국레이콤 (대표:정호영)과 셀렉트론(대표:함태환)이 23종의 케이블을 수입, 납품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일섭과 이원형이 주 계약자인 삼성전자(현삼성탈레스)를 협박하여 기존 납품 업체인 광남텔레콤의 납품 계약을 취소시키고, 납품 업체를 연합정밀로 교체했다는 것입니다.

한편, 납품업체가 교체된 후 삼성전자의 성진용 사업담당 부장이 연합정밀의 상무이사로 옮겨갔다고 합니다.

또 다른 비리의혹 사건으로는 이원형이 연합정밀에게 특혜를 부여하기 위해 국산화 규정을 수정한 것을 들 수 있습니다.

이원형은 37국산화 규정이라는 단서 조항을 신설하여 “현재 어떤 업체에게 독점 지정되어 있는 국산화 제품 중 국산화율이 85% 이하인 품목의 경우, 다른 업체에게도 다시 국산화 지정을 할 수 있다.”는 항목을 추가하였다는 것입니다.

이 규정을 삽입함으로써, 현대모비스(현로뎀)에서 생산하는 케이블 에셈블리37종과, 대우종합기계와 삼성테트윈에서 생산하는 K-9자주포와 K-200장갑차용 케이블43종의 계약을 취소시켜, 납품업체를 연합정밀로 교체하는 것이 가능해졌다고 합니다.

이렇게 연합정밀에게 특혜를 부여하기 위해 납품 업체를 변경하는 과정에서 이원형이 연합정밀로부터 뇌물을 수수한 혐의가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성능 미달의 제품이 납품 되었다는 의혹도 자연히 따르게 되었지요.

참고로, 지난 2001년 국정감사시 한나라당 박승국 의원과 민주당 정대철 의원 등이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뇌물을 받고 덮어준 일이 있다고 합니다. 김인술 연합정밀 대표가 지난번 경찰청 특수수사과 조사에서 이러한 내용을 자백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견인 수중 음파탐지 장비(견인소나시스템)

납품관련 비리 의혹

견인수중음파탐지장비(Towed Sonar System)란 구축함에 사용되는 최첨단 수중 음파탐지 장비라고 합니다. 구축함은 자체의 소음으로 인해 바다속의 음향을 정확하게 탐지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견인 소나 장비를 2Km 후방에 끌고가면서 수중 음파를 탐지한다고 합니다.

엠텍(대표:최창선)은 해군의 Sonar System을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회사입니다. 이 회사는 지난98년 대우통신이 부실화하면서 대우통신의 방산사업부가 엠텍과 머큐리사로 양분되면서 분리되어 나왔다고 합니다.

엠텍은 94-99년간 300억원의 개발비를 들여 견인소나시스템의 개발을 완료하고 해군에 납품하고 있다고 합니다. 엠텍은 이미 지난 2000년부터 KDX-1, 2 사업에서 7척 분량의 견인소나시스템을 납품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장비는 해군이 요구하는 성능을 충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견인 케이블이 종종 끊어지는가 하면, 감아 올리는 윈치가 자주 고장을 일으킨다고 합니다. 이원형 품질관리소장이 이와 관련하여 뇌물을 수수한 혐의가 있다고 합니다.

참고로, 최창선은 지난해12월 16일 구속되었으며, 수사도중 자해 소동을 벌였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습니다.

경찰청 특수수사과의 수사 결과

지난 2004년4월 2일, 서울중앙지법은 이원형 전 국방부 품질관리 소장에게 징역 6년에 추징금 1억 6,000만원을, 정호영 한국레이콤사 회장에게는 징역1년을 각각 선고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특수수사과의 수사는 기대에 크게 미치는 못한 졸작이었습니다. 비리의 본질에는 아예 근처에도 접근해 보지 못하고 헛다리만 긁다가, 또 하나의 “태산경동서일필”로 마무리되고 말았습니다.

지난 김대중 정권 시절에 저질러진 모든 무기 관련 비리에는 천용택 국방장관, 문일섭 획득실장, 이원형 획득정책관 등 호남 군맥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천용택은 무기도입 비리 뿐만아니라, 군납, 군인사, 군시설공사 등 모든 군관련 비리의 최종 결정판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번에 그가 처벌을 면한 것은 부실 수사였음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실형을 선고받은 이원형은 평소 주위로부터 괜찮은 군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김대중 정권의 무기 비리에 대해 총대를 멘 것입니다. 현재 수의를 입고 있는 그의 심경이 어떠한지 궁금합니다.

3) 권영해의 미스트랄 도입 비리 사건

들어가면서

그동안 무기도입(획득사업)과 관련한 비리 의혹은 국가 안보라는 미명하에 비밀의 장막 뒤에 가리워져 있었습니다. 비밀은 부정을 낳기 마련입니다. 절대 비밀은 절대 부정을 낳습니다. 무기도입 사업이 역대 대통령들의 비자금 마련 창구라는 것은 상식에 가깝습니다.

위에서 설명드린 사건들은 전체 무기비리 가운데 지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아주 사소한 몇 가지 예에 불과하다는 말입니다. 물론 이제부터 제가 말씀드릴 부분도 전체 무기 비리 가운데 몇가지 대표적인 사례에 지나지 않을 것이지만 말입니다.

우리 정부가 지난 80년대부터 지금까지 1백 수십조를 투입, 추진하고 있는 율곡사업과 방위력 증강사업의 핵심적인 위치에 권영해 전 국방장관/ 안기부장이 있었습니다. 김대중 정권 시절에는 천용택 전 국방장관/국정 원장을 비롯한 호남 군맥이 그 자리를 대신했습니다.

특히, 지난 98년 정권이 교체되는 과정에서 김대중과 천용택은 권영해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받고 권영해의 무기 비리들을 덮었습니다. 물론, 김대중 정권에서는 이전보다 더 많은 비리가 자행되었습니다.

그러면, 먼저 우리나라 무기 도입사상 최악의 비리 사건이자 최대의 국제 사기 사건이라고 알려져 있는 프랑스산 미스트랄(Mistral) 휴대용 대공 미사일 도입 사업부터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그동안 미스트랄 도입 사업은 너무나 많은 의혹이 제기되어 논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시급을 요하는 사업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하여 엄청난 사업비를 낭비했다는 것입니다.

미스트랄 3차 사업이 결정했던 97년은 극심한 외환위기 상황 이었습니다. 당초 2,800억 정도로 예상했던 사업비가 사업 집행시인 98~99년도에는 환율인상으로 인해 4,800억으로 늘어났다고 합니다.

권영해와 김영삼

구체적인 사건 설명에 들어가기에 앞서, 지난 이야기이지만, 먼저 권영해와 김영삼간의 관계를 잠시 되돌아 보겠습니다.

지난 1998년 5월 28일자 동아일보의 비화문민정부 기사는 김영삼 정권 시절 권영해의 위상과 역할에 대해 비교적 소상하고도 정확하게 보도하고 있습니다. 김영삼 정권 초기 권영해 국방장관은 군내 하나회를 척결하는 선봉장 노릇을 하면서 김영삼의 신임을 얻었습니다.

지난 93년 말, 권영해는 율곡비리 사건에 자신과 친동생이 연루된 것으로 드러나 잠시 낙마하였다가 한국야구연맹(KBO) 총재를 거쳐, 94년 12월 김현철의 후원으로 다시 안기부장으로 발탁되었습니다.

보도에 의하면, 권영해는 92년 5월 김현철의 장인인 김웅세 롯데월드 사장을 통해 김영삼에게 소개되었다고 합니다. 이때를 전후하여 권영해의 부인은 국군 중앙교회에서 김영삼이 다니던 충현교회로 옮겼다고 합니다.

이때 권영해는 김영삼에게 거액을 바치고 국방장관 자리를 예약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기사에 의하면, 지난 93년 정권 교체기에 권영해 국방차관은 거취를 묻는 부하 직원에게 “나는 신경쓰지 말고 나가는 사람들이나 잘 챙겨주라.”며 자신의 낙점을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그는 국군 중앙교회의 장로였는데, 자신의 국방장관 취임 축하 예배에서 김영삼에게 아부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모세와 같은 김영삼 대통령을 대한민국에 보내셨으니, 저는 제사장 아론과 같은 역할을 하게 해 주십시요.”라고 공개적으로 기도했다고 합니다.

권영해는 안기부장으로 재임중에도 군내에 별로 배경이 없는 공군 출신의 이양호를 국방장관으로 천거하고, 실질적으로는 자신이 뒤에서 직접 모든 무기도입 사업을 주물렀다고 합니다.

그마저도 만만한 이양호가 린다 김과 결탁하여 백두/금강 사업에 끼어 들자, 얼마 가지 않아 잘라 버렸습니다. 그 후 김영삼 정권의 안보분야는 줄곧 그의 독무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권영해는 안기부장으로 재임 중, 안기부 청사 내에 있는 공관으로 국방부 핵심 인사들을 수시로 불러 들여 직접 지시를 내렸고, 국방부의 인사에도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국방부에서는 “우리 나라에 국방부 장관이 둘이 있다. 권영해 안기부장이 사실상 국방장관이고, 김동진 국방장관은 차관이다.”라는 자조적인 말들이 흘러 나왔다고 합니다.

권영해와 이영우

이번에 구속된 AM코퍼레이션 대표 이영우라는 자는 권영해의 오른팔 이자 개인 심부름꾼이며, 대한민국 최고의 무기 브로커 중 한 명입니다.

또한, 위에서 언급한 이원형은 권영해 밑에서 무기도입의 실무를 담당했으며, 지난 김대중 정권 시절 자행된 모든 무기도입 비리의 최고위 실무 책임자 중 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권영해와 이영우와의 관계를 간략하게 설명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영우는 뉴욕에서 보험 영업(외판)사업을 하던 교포 출신이라고 합니다. 그의 부인은 뉴욕에서 뷰티서플라이 가게를 운영했다고 합니다. 이른바 흔히 말하는 가발장사를 했다는 말이지요.

권영해가 아직 군에 있을 때, 그의 딸을 미국으로 유학 보냈는데, 그때 이영우가 그 딸을 돌봐주면서 서로 인연을 맺었다고 합니다. 한때 시중에는 권영해와 이영우가 인척지간이라는 소문도 있었지만, 제가 파악하기로는 아마 사실이 아닌 듯 합니다.

이야기가 약간 옆으로 샙니다만, 권영해가 안기부장 시절에는 주미 안기부 파견관이었던 최명주 공사라는 자가 권영해의 딸을 돌봐주기도 했습니다. 지난 98년 정권이 바뀌자 최명주는 그 일로 인해 전라도 출신(전주고) 이면서도 살생부에 이름이 오르기도 했었습니다.

최명주는 지난 2001년 4월, 나종일의 후원으로 국정원 차장으로 승진 했습니다. 그는 임동원과는 사이가 좋지 못해 서로 부딪히기도 했다고 합니다. 저는 그와는 별다른 인연이 없는데, 지난해 제가 글을 발표한 후 그는 저를 “죽여버리겠다.”며 길길이 날뛰었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이영우는 권영해의 아파트 옆집에 살면서 권영해의 심부름을 도맡아 했습니다. 그는 권영해의 심부름으로 프랑스를 수십 차례나 갔다왔다 했습니다. 이영우가 프랑스 무기 도입과 관련하여 대한민국 최대의 브로커로 알려진 것도 이러한 연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영우는 AM 코프레이션이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미스트랄 도입 사업의 에이젼트를 담당했습니다. 그는 이 사업을 하기 전에는, F-16 전투기의 시뮬레이션 장비를 1대 납품한 것 이외에 전혀 실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한편, 이영우는 김대중 정권 시절에도 천용택 장관, 문일섭 획득실장, 이원형 획득정책관 등과 상당한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었고, 박지원과는 뉴욕에서부터 서로 아는 사이라고 합니다.

참고로, 이영우는 미트트랄 사업을 성사시킨 후 프랑스로부터 산업기사 작위(훈장)를 수여받았다고 합니다. 이영우 이외에 이 훈장을 받은 사람으로는 조중훈 회장과 김우중 회장이 있다고 합니다.

미스트랄 vs. 스팅어

미스트랄은 프랑스 국영 방산업체인 마트라(Matra)사 제품으로서, 미국 휴즈(Hughes)사의 스팅어(Stinger)나 북한의 SA-16와 같이 저고도 방어를 위한 휴대용 대공 유도 미사일입니다.

당시 미스트랄은 아직 실전에서 성능이 확인되지 않았고, 스팅어보다 무게가 두 배 가량이나 더 나가 두, 세 사람이나 동원되어야 운반할 수 있는 데다, 삼각대로 고정시켜 발사해야 하기 때문에 산악이 많은 우리 나라의 작전 환경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게다가, 미스트랄은 스팅어보다 기당 가격도 훨씬 더 비싸서 경제적이지도 못했습니다. 또한, 마트라사는 계약상으로 미사일의 핵심 기술을 우리에게 이전하겠다고 약속하였지만, 실제로는 그러한 약속을 충실히 지키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미스트랄은 국제 무기시장에서 대만이나 카타르 등에 시험용으로 300기정도 수출된 것이 고작이었다고 합니다. 특히, 프랑스와 영국의 특수부대조차도 자국의 미스트랄이나 제블린, 스타버스터를 쓰지 않고 스팅어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우리로서는 가격이 싸고 시험과 실전에서 이미 그 우수성이 충분히 입증된 스팅어를 도입하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당시 스팅어는 실전에서 300여회 이상의 격추기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스팅어는 아프간 반군이 소련군을 물리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었습니다.

스팅어는 무게가 15kg 정도로 병사 한 사람이 운반할 수 있는 데다, 견착식 사격이 가능할 뿐만아니라, 야간사격 능력까지 갖추고 있어 우리의 작전 환경에 적합하다는 것이 중론이었습니다. 스팅어는 명중률에서도 경쟁 미사일 가운데 최고인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또한, 스팅어는 자동 재발사 기능(Automatic Refire Capability)이 갖추어져 있을뿐만 아니라, 적군기의 교란 방어장치(Flare Decoys)에도 대응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더욱이, 스팅어에는 피아기 식별장치(IFF, Identification Friend or Foe)이라는 탁월한 장점이 있었는데, 이는 미 NSA가 운용하는 인공위성의 코드로 아군기를 자동적으로 추적하여(Lock on) 아군기와 적군기의 식별을 가능하게 하는 최첨단 기능이었습니다. 이 피아기 식별(IFF) 기능은 한미 양국군의 연합작전에 있어 필수 불가결한 요소였습니다.

당시 휴즈사는 우리 군(ADD)에 미래의 저고도 미사일(PSAM) 기술뿐만 아니라, 고고도(高高度) 방어체계인 PAC과 연계한 기술이전도 약속했다고 전해집니다. 또한 삼성항공과 LG정밀 등과의 합작 생산과 향후 제 3국으로의 수출까지도 파격적으로 보장했다고 합니다.

당시 우리 군내의 의견도 절대 다수가 스팅어를 선호했습니다. 스팅어의 유일한 단점이라면 도입 기간이 다소 길다는 것이었으나, 그에 대해서도 휴즈사는 단축이 가능하다는 약속을 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지난 90년대 초, 권영해가 미스트랄을 도입하기로 결정하자 군내에는 격렬한 반발이 있었습니다. 특히, 해군의 경우 주로 미군의 무기체제를 채택하고 있어, 미스트랄이 기존 해군의 무기체제와 맞지 않는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우리의 해군 함정에는 발사 장치대가 없어 조준사격이 곤란하고 함정의 이동에 따라 안정사격이 곤란하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당시 주윤돈 해군 조함사업단장 (준장, 해사 19기)은 “우리 함정에는 프랑스의 미스트랄이 맞지 않는다.”며 격렬하게 반발하였습니다. 이에 격분한 권영해는 “함정을 뜯어 고쳐서라도 미스트랄을 배치하라.”고 윽박질렀다고 합니다. 그 후 93년 8월,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권영해는 직권으로 주윤돈 제독을 보직해임 시켜버렸다고 전해집니다.

권영해는 국방장관이 된 이후엔 이영우를 아예 가락동의 자기 호화 아파트의 옆집으로 이사시켜 아침, 저녁으로 만났습니다. 이영우는 권영해의 심부름으로 프랑스를 제집 드나들듯 왔다갔다 하였습니다.

또한 권영해는 자기의 동향(경주) 후배인 최동진 소장(육사25기)과 이홍환 준장(육사 26기) 등을 육군본부와 교육사 시험평가 부서에 주로 배치시켜 무기 도입비리에 이들을 이용하였습니다. 최동진 장군은 최근까지 국방부 획득실장이란 자리에 있던 사람입니다.

한편, 권영해는 한국국방연구원(KIDA)의 신모(명미상) 박사라는 사람 등을 통해, 미스트랄 미사일과 스팅어 미사일의 비용효과지수 (Cost/Efficiency Index)를 조작하였다고 합니다.

지난 96년 7월, 성능시험 평가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때 KIDA는 미스트랄의 경우 96년도 데이터를 적용하고, 스팅어는 91년도 데이터를 적용하였다고 합니다. 당연히 미스트랄의 명중률은 터무니없이 부풀려진 반면, 스팅어의 명중률은 의도적으로 낮추어진 것입니다.

국방연구원은 가격, 절충교역, 명중율 등에서 미스트랄이 스팅어보다 더 우수한 것으로 조작 평가하였습니다. 스팅어의 장점들은 고의적으로 무시되고, 미스트랄의 장점은 없는 것도 만들어 내었습니다.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한심한 부정이 총체적으로 저질러진 것입니다.

위에서 잠깐 언급한 바와 같이, 권영해는 안기부장으로 재직시에도 수시로 국방부 획득부서 관련 간부들을 안기부장 공관으로 불러 직접 프랑스산 무기와 장비의 구입을 강요하였다고 합니다.

지난 97년 1월 중순과 하순, 주한 프랑스 대사와 톰슨사 부사장, 톰슨사 에이젼트인 백동립 등을 안기부 청사내 공관으로 초청했고, 국방부 간부들도 함께 불렀습니다. 이 자리에는 국방부의 하복만 장군이라는 사람도 배석시켜 프랑스 장비를 구입하도록 압력을 넣었다고 합니다.

권영해와 천용택, 그리고 미스트랄

미스트랄과 스팅어는 한국에서 세 번에 걸쳐 경쟁하였는데, 세 번 모두 미스트랄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국제 무기시장에서 이상스럽게도 한국에서만 유일하게 미스트랄이 스팅어를 이긴 것입니다.

미스트랄의 1차 도입은 지난 92년에 이루어져 900기가 공군 기지와 일부 육군에 배치되었습니다. 미스트랄의 2차 도입은 지난 94년에 이루어져 360기가 해군 함정에 배치되었습니다.

미스트랄 3차 도입은 97년 말에 계약이 성사되어 1278기를 직도입하고, LG IT에서 1153기를 국내 개발하는 것으로 하는 사업이 추진되었습니다. 물론, 규모가 가장 컸던 3차 사업이 문제 또한 가장 심각했습니다.

더욱이 3차 사업은 워낙 졸속으로 진행하다보니 당초 예산액도 책정되어 있지 않은 사업을 강행하였습니다. 당시 외화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시급히 추진해야 할 이유가 없었는 데도 말입니다.

미스트랄의 3차 도입이 결정되기 이전, 이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권영해는 “미국이 스팅어를 구매하라는 압력을 넣는다.”며 교묘하게 반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언론플레이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실제로, 조선일보 97.6.15.자 사설은 「한미 미사일 논란」 이라는 제하로 미국을 비난하기도 하였습니다. 권영해는 또한 “1, 2차 도입 때는 미국이 스팅어 판매를 거부했다.”고 거짓 선전을 해댔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97년 10월 13일, 국방부는 “스팅어가 아니라, 미스트랄을 도입하기로 최종 결정했다.”고 발표했습니다. 한-프간 미스트랄 3차 도입 계약은 97년 12월 3일 이루어졌습니다.

김영삼의 최종 결재는 97년 12월 대통령 선거가 끝난 후에 있었습니다. 이때 청와대로 결재를 받으러 들어간 권영해는 김영삼 앞에서 무릎을 꿇고 “개국이래 최고의 성군이시다.”며 극단적인 아부를 연출했다고 합니다.

지난 98년 초, 이 문제로 인해 미국과의 마찰이 심해지자, 김대중 정권의 인수위에서는 사업의 집행을 정지시켰습니다. 당시 분위기 모르는 국민회의 김경재 의원(순천)이 천용택 국방장관에게 결정적인 증거를 들이대면서 강력히 시정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천용택과 문일섭은 들은 척도 않고 별도의 재심의 없이 사업을 강행하였습니다.

지난 98년 3월 29일, 준장, 대령 등 4명으로 구성된 국방부의 인수조사팀(Acceptance Inspection Team)이 프랑스로 파견되었습니다. 이때 프랑스 측은 생산 공정이나 생산 제품은 보여주지도 않고, 포장이 끝나 선적 대기중인 나무상자만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인수조사팀은 물건 검사는 하지도 못하고 관광과 향응만 즐기다가 귀국하였다고 합니다. 이들이 제출한 귀국 조사보고서는 이 “뜨거운 감자”를 서로 떠넘기는 내용으로 채워졌다고 합니다.

당시 인수조사팀은 계약서에 기재된 것과 규격과 외관이 다른 “성능 개량탄”이 도입될 것이라는 사실을 파악하고, 이를 조달본부에 정식으로 서면 통보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조달본부는 이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문일섭은 이러한 사실을 묵인하였습니다.

지난 98년 6월 28일, 3차 사업의 첫 선적 500기가 포항으로 들어 왔습니다. 이때 실무자들은 인수확인서에 서명하기를 거부하였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들어온 물건이 계약서상의 제품과 중량, 속도, 사거리, 시커 등에서 상이한 제품으로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97년 12월 작성된 계약서에는“모든 물건이 신제품이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만약 계약된 물건과 다른 물건일 경우, 2개월 전에 통보하고 허락을 얻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실무자들이 “당초 계약한 물건과 다른 물건이 들어 왔다.”고 항의했습니다. 이에 대해 프랑스 측은 “제품의 외형이 다른 것은 사실이지만, 오히려 디지털 전자 첨단 공학을 도입하여 성능을 향상시킨 것이다.”라는 어처구니 없는 사기 답변을 보내왔습니다.

또한, 프랑스 측은 “인수조사팀에게 이미 성능개량탄(미스트랄II) 이 갈 것이라는 사실을 설명했기 때문에, 프랑스가 계약상의 의무를 위반한 것은 아니다.”라는 억지 주장을 펼쳤다고 합니다.

주한 프랑스 대사와 무관은 뻔뻔스럽게도,“한국은 참 운이 좋은 나라다. 프랑스를 제외하고 한국만 유일하게 새로 개량된 미스트랄 II를 들여 왔다.”고 장단을 맞추었습니다. 천용택의 국방부는 이러한 사기극에 무대응으로 일관함으로써 이들을 방조하였습니다.

미스트랄 II는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 모델이었습니다. 마트라사의 연 생산능력은 약 2000기 정도로 알려져 있는데, 97년에는 업그레이드는 고사하고 단 1기의 생산 실적도 없었습니다. 실제로 3차 도입시 인수받은 미스트랄은 계약서 상의 설명서(Spec)와 다른 것이었습니다.

이때, 도입된 미스트랄의 제작 일련번호가 1991년 도입되었던 것과 순서가 일치하여 제고탄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제기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국내 기술력으로는 도입탄의 성능을 측정하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국방부는 도입탄이 신형탄인지 제고탄인지 확인하기 위해 1999년 9월, 재차 조사팀을 프랑스로 파견하였습니다. 당시 2발을 시험 사격하고 난 후 성능개량탄으로 인정하고 잔여분의 도입을 승인하였다고 합니다.

그 후 미 국가안보국(NSA)이 재고탄임을 확인해 주었다고 합니다. 나토국의 모든 항공기와 미사일에는 미 NSA의 피아식별(IFF) 코드가 부여된다고 합니다. 미 NSA의 확인에 의하면, “98년 도입된 미스트랄의 IFF 코드는 90년 말에 부여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더욱이, NSA는 “지난 97~ 98년에는 마트라사가 미스트랄을 전혀 생산하지 않았기 때문에 IFF 코드를 부여한 사실이 없다.”는 점도 확인해 주었다고 합니다. 프랑스 측의 주장이 거짓으로 판명된 것입니다.

이로써, 프랑스가 재고되어 있던 미스트랄의 제조일자와 제조번호를 조작하고 시커와 노즐 등 일부 부품을 교체한 후 업그레이드시킨 개량기종 미사일 (미스트랄II)이라고 사기를 친 사실이 확인된 것입니다.

그후 국회에서도 이 문제를 여러차례 다루었지만, 증거가 부족한데다 육군이 철저히 은폐로 일관함으로써 비리가 묻히게 되었습니다.

미스트랄의 추진체(Booster) 수명이 10년에서 12년 정도임을 감안하면, 현재 육, 해, 공군에 배치되어 있는 대다수의 미스트랄은 이미 수명이 다했거나 거의 끝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미스트랄의 추진체를 교체하는 데에는 기당 2~3,000만원이 소요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난해 국방부는「신궁」이라는 국산 미사일을 개발했다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국방부는 2004년부터 미스트랄의 추진체를 교체할런지, 아니면 아예 신궁으로 교체 배치할런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합니다. 어느쪽이든 당분간 우리 하늘은 거의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것입니다.

미스트랄과 한미동맹

권영해가 이렇게 “미친지랄”하듯이 미스트랄에 집착한 이유는, 프랑스와 비밀리에 합의한 막대한 중계수수료(커미션) 때문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국제 무기시장에서의 중계수수료는 사업비의 2% 내외 정도이고, 많아야 5% 이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당연히 규모가 큰 사업일수록 중계수수료의 비율은 낮아질 것입니다. 그러나, 미스트랄의 경우 중규모 이상의 사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커미션이 평상의 경우보다 거의 열 배 가량이나 높았다고 전해집니다.

참고로, 스팅어의 경우 FMS(Foreign Military Sale) 방식으로 도입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FMS의 경우, 커미션의 상한선은 5만불로 묶여 있으며, 중계 컨설팅료도 1 내지 2% 이내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미스트랄의 경우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소액인 것입니다.

한국 정부가 FMS 방식의 무기 도입을 거부할 때, 흔히 가격이나 미국 측의 까다로운 기술 이전조건 또는 무기 구입선 다변화 등의 구실을 내세우지만, 사실은 FMS 방식으로는 커미션을 거의 먹을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로 작용하고 있음이 공공연한 비밀인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다시 정리하면, 미스트랄 도입 사업은 부도덕한 프랑스의 국영 군수업체, 국내의 무기업자, 국방부의 관계자, 그리고 정책 결정자가 총체적으로 결탁한 전형적인 비리였습니다. 프랑스는 서방 선진국 가운데 가장 부패한 나라로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 개통된 프랑스산 고속철 도입 사업은 아직도 비리 의혹이 가시지 않고 있습니다. 동부지역 전자전 장비, 천마 레이다와 미사일, 군의 통신 장비체계인 스파이더, 해군 함정에 탑제된 각종 장비 등 프랑스산 장비와 무기에는 언제나 비리 의혹이 따라 다녔습니다.

마지막으로 지적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미스트랄 사건은 단순히 무기비리 차원을 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스트랄이 한미동맹 관계를 격추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은 한국 지도층의 부패와 타락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단순히 한국에 우수한 자국산 미사일을 배치하지 못해 유감이라는 수준을 넘어, 이 사건을 동맹의 배신으로 받아들이고, 동맹관계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지도층의 부패로 인해 우리 안보의 생명선이라 할 수 있는 한미동맹 관계가 회복할 수 없는 손상을 받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방위력을 증강하려던 사업이 오히려 우리의 방위력을 현저히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권영해를 처벌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는 전쟁기념관 앞에서 총살되어야 마땅합니다.


4) YS-DJ 정권의 비리 의혹 사업들

위에서 설명드린 미스트랄 도입 사건은 권영해가 저지른 무수한 무기도입 비리의 대표적인 한 예에 불과합니다. 권영해는 이미 노태우 정권에서 율곡사업을 추진하면서 여러가지 비리의혹을 남겼습니다.

권영해는 미스트랄 이외에도 김영삼 정권 말기에 몇 가지 무기 도입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하였습니다. 아마도 김영삼의 퇴임후 비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그렇게 서둘러 추진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다음에 설명드릴 8가지 무기도입 사업은 권영해에 의해 추진된 것으로서, 김대중 정권의 인수위에서 사업 추진을 중단시켰으나 천용택 국방장관과 문일섭 획득실장이 집행을 강행했던 사업들입니다.

1. Mistral 휴대용 대공 유도탄 도입 사업
2. 백두 통신감청 정찰기/금강 영상정보 수집 정찰기 도입 사업
3. M-270 다연장로켓(MLRS)/ATACMS 지대지 미사일 도입 사업
4. 이스라엘제 Surcher 무인항공기 도입 사업
5. CAP-10B 훈련용 경비행기 도입 사업
6. BO-105 경전투헬기 도입 사업
7. 동부지역 전자전 장비 도입 사업
8. 인도네시아산 CN-235-200M 수송기 도입 사업

이 사업들 가운데 미스트랄 도입 사업은 이미 자세히 설명드렸기에 제외하고, 나머지 사업들을 대강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백두 신호 감청기/금강 영상 정찰기 도입 사업

이 사업은 린다 김의 “몸로비” 보도로 인해 비교적 세간에 늘리 알려진 사건입니다. 백두는 감청장비를 탑재한 통신정보 수집 정찰기 도입 사업이고, 금강은 영상레이다(SAR, Synthetic Aperture Rader)를 탑제한 영상정보 수집 정찰기 획득 사업입니다.

당시 공군은 노후화하고 성능이 떨어진 RF-4C와 RF-5A 정찰기를 대체하고, 우리의 독자적인 정보획득 능력을 향상하기 위해 이 사업들을 추진하였습니다. 국방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백두 사업비는 2,400여억원이고, 금강 사업비는 2,800여억원이었습니다.

이 사업은 지난 1997년 11월 계약이 체결되었고, 97년 12월 대통령 선거 직전에 사업자가 선정되었습니다. 당시 야당 국회의원이던 천용택은 이 사업의 부당성을 지적하기도 했었지만, 자신이 국방장관이 되고난 98년 3월에는 이 사업의 집행을 승인하였습니다.

이제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백두사업에 쓰인 감청장비와 백두/금강에 사용된 비행기가 특히 문제가 많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당초 공군이 원한 기종은 감청장비는 독일제, 항공기는 프랑스제 팔콘50기 였습니다. 이들 장비와 항공기는 선정된 E-시스템사의 장비와 호커800xp기보다 성능이 우수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도입된 E-시스템 장비는 세계 어느나라에서도 사용되지 않는 장비라고 합니다. 우리가 주문 제작한 맞춤식 장비라는 것입니다. 그 많큼 기기의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당시 미국의 NSA는 국방부 사업단에게 8가지 심각한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공식적으로 “E-시스템 장비를 선정해서는 안된다.”는 권고 서한을 보내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양호와 권영해의 외압으로 인해 사업이 그대로 추진되었습니다.

린다 김은 “장비를 납품하는 회사가 항공기도 직접 선정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이다.”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E-시스템사의 모회사인 레이시온사가 제작하는 호커800xp기가 선정되도록 로비하였습니다.

호커 800xp는 개인용 소형 비행기로서, 군사 목적의 정찰기로 사용하기에는 근본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비행기는 크기가 너무 작고 출력이 낮아, 우리 공군이 요구하는 작전요구성능(ROC)에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비행기가 얼마나 작았든지 내부를 넓히기 위해 화장실을 뜯어 내고도 운용요원이 탑승할 공간이 부족했다고 합니다. 탑제하는 장비 무게가 비행기의 탑재허용 중량을 초과했다고도 합니다.

또한 이 비행기가 적의 미사일에 쉽게 격추될 정도로 비행고도가 낮았다고 합니다. 공군에서는 특히 이 문제에 대해 민감했습니다. 유사시 격추될 줄 뻔히 알면서 비행사를 내보낼 수 없다는 것이지요.

장비의 열을 냉각시키는 냉각기와, 전원을 공급하는 데에도 문제가 있다고 합니다. 공군에서는 4시간의 작전 성능을 요구하였는데, 이 비행기는 작전가능 시간이 1간여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네 대를 풀 가동하더라도 고작 한나절의 작전시간 밖에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점을 발견하고 난 후 미국측에 책임을 추궁하는 과정에서도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미국의 NSA가 이미 제품의 성능에 대해 우리 측에 공식으로 통보한 데다, FMS 방식으로 구매하였기 때문에 책임을 물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기종 선정 후, 비행기의 구매 방식을 FMS에서 상용으로 변경한 것도 의혹이 남는 부분입니다. 이미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FMS 방식으로는 떡고물이 떨어지지 않으니 상용으로 바꾼 것으로 보여집니다.

당시 이 문제가 세상에 알려졌을 때 해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김대중 정권은 결국 사건을 덮는 방향을 택했습니다. 사업단장인 양치규 준장은 사업을 종결하고 관련 서류들을 폐기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린다 김이란 여자에 대해 몇마디 언급하고 넘어 가겠습니다. 그녀는 동족이라고 부르기에도 부끄러운 인물이라고 합니다. 그녀가 그동안 신동아와의 인터뷰, 자서전 등을 통해 밝힌 내용들은 모두 한결같이 진한 립스틱빛 거짓말들이라고 합니다.

그녀는 미군부대에서 스트리퍼를 하던 양공주 출신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재벌 2세랑 어쩌구, 연예인 지망생이 저쩌구, 카쇼기가 어떻고, 박종규가 저떻고, 하는 얘기들은 모두 순도 100%의 거짓말들입니다. 몇 건을 했느니, 조풍언과의 관계가 어떠니 하는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녀는 지난 90년대 초 LA 폭동시, 헐값으로 변두리 호텔을 하나 인수하여 돈을 좀 모은 다음 무기 장사에 뛰어 들었다고 합니다. 몇몇 국회의원 할아버지들을 인터콘이나 하얏트로 모셔서 다양한 선진 몸로비 기술을 선보인 끝에 백두사업을 성공시켰다고 합니다.

저는 그녀도 곧 우리 국민을 우롱하고 국가신인도를 떨어뜨린 죄값을 받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조사에 의하면 린다 김은 우리나라 어린 여학생들이 가장 닮고 싶어 하는 이상형이라고 합니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본보기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처벌될 것으로 믿습니다.

M-270 다연장로켓(MLRS)/ATACMS 지대지 미사일 도입 사업

M-270 MLRS(Multiple Launch Rocket System)와 ATACMS 전술 지대지 유도 미사일은 미 육군의 가장 강력한 화력 장비라고 합니다. 한 대의 장비가 포병 수개 대대의 화력과 맞먹는다고 할 정도로 우수한 무기 체계라고 합니다. 김정일은 평양를 방문한 카터 전대통령에게 이 장비만은 한국에 판매하지 말라고 주문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지난1997년 7월 15일, 3억 3천6백만불 어치의 장비를 도입하기로 미국과 계약이 성사되었습니다. 그후 정권이 바뀌고 외환위기 상황에서 집행하기가 무리라는 점이 지적되어 김대중 정권 인수위가 사업을 중단시켰습니다. 그러나, 98년 4월 천용택 장관과 문일섭 획득실장이 사업집행을 지시, 총 사업비 4,700억이 지출되었습니다.

이 장비는 발사대인 M-270 MLRS, M26 로켓 Pod, 그리고 지대지 미사일인 ATACMS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당시 4,700억을 들여 우리가 도입한 장비를 살펴보면, M-270 MLRS 29문, M26 6연발 로켓포드 271대, ATACMS Block1 미사일 111기 및 기타 훈련장비와 차량 등입니다.

이 사업의 문제점은 간단합니다. 우수하기는 하나 너무 비싼 무기를 들여온 것입니다. 그것도 외환위기 상황에서 말입니다. 들인 비용에 비해 전술적 가치가 미미하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산악지형이 MRLS의 능력에 제한적인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271대의 M26 로켓 Pod는 개전시 6시간 동안 사용할 분량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계산할 때, 개전시 10일간의 탄약 값이 무려1조 6,000억이나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이 사업의 국내 에이젼트인 KCC사(사장:황선우)는 이 사업으로 막대한 커미션을 챙겼다고 합니다.

한편, 국방부는 2002년 약 5,000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2차 MLRS 도입 사업을 진행하였다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이 때 추가로 MLRS 발사대 29문과 사정거리가 300Km에 달하는 신형 ATACMS Block1A 미사일 110기 등을 도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무인정찰기 획득사업 및 이스라엘제 Surcher 무인항공기 도입 사업

무인정찰기(UAV) 획득사업이란 적 지역의 첩보 수집을 위해 정찰용 무인 항공기 7식(35대~40대)을 국내 개발/생산하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98년 현재 총 사업비는 1,500억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난93년 10월, 대우 중공업이 연구개발에 착수하여 “비조”라는 UAV 획득 사업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후 96~97년, ADD 주관하에 개발품에 대한 기술시험을 한 결과, 감지기의 성능, 항속거리, 탐지능력, 순항속도 등 주요 항목의 ROC에 미달하는 것으로 평가되었습니다.

그러나, 지난97년 9월 11일, 국방부는 작전요구성능(ROC) 수준을 미달된 UAV 수준으로 낮추어 줌으로써, 대우 중공업이 사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특혜를 부여했습니다. 이어서, 지난 97년11월 29일, 국방부는 278억원의 개발 예산을 승인하였다고 합니다.

이 사업과는 별도로 권영해 안기부장은 지난 96년 3월, 안기부 정보 전력화 사업 계획에 의거, 이스라엘제 Surcher 무인 정찰기 2식 10대를 도입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이 무인정찰기는 이종찬 원장 시절인99년 8월에 도입되어 1군단과 5군단 공중 정찰중대에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사업의 문제점은 국내 개발 중에 외국 제품을 도입하여 예산 낭비를 초래한 데 있습니다. 이스라엘로부터Surcher 정찰기를 도입할 당시에 이미 국내 개발품의 성능 미달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감사원은 1998년 감사에서 국내개발 장비와 해외 구매 장비의 동시 운영에 따른 운용 체계의 이원화 등 문제점을 지적하였지만, 국방부는 이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후에도 국내에서 개발한 무인정찰기는 낙하산 착륙방식의 문제점이 여전히 미해결된 상태로 남아 있었고, 카메라 초점의 고정유지 문제도 미완성 상태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편, 국방부 산하 국방과학연구소(ADD)는 2001년 8월30일 “지상 1~2㎞ 상공에서 밤낮으로 영상정보를 수집, 지상부대에 전해주는 저고도 정찰용 UAV를 10년간의 개발 끝에 시험평가까지 성공적으로 마쳤다.”며 “내년 중 실전 배치할 예정”이라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CAP-10B 훈련용 경비행기 도입 사업

이 사업은 공군사관학교 생도들의 훈련용으로 프랑스에서 CAP-10B라는 경비행기 4대를 도입한 사업입니다. 장비 자체는 별 것이 아니지만, 운용목적 등이 극비로 취급되고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이 비행기는 공사생들의 훈련이 아니라, 국정원이 대북 침투조 훈련용 또는 자폭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사업도 김대중 정권 인수위에서 중단시켰는데, 그 이유는 “안기부 예산으로 사와야 하는 것을 국방부 예산으로 사오는 것이 부당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업도 문일섭 실장이 재검토없이 집행하였습니다.

BO-105 경전투헬기 도입 사업

이 사업은 육군이 보유하고 있는 AH-1S/F 코브라헬기의 목표 획득용 정찰헬기 12대를 국내에서 기술 도입하여 생산한 것입니다. 국방부가 대우와 삼성의 로비전에 휘말려 대우 중공업에 특혜을 준 사업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대우 중공업은 2대를 직도입하고, 10대를 기술 도입하여 생산할 목적으로 생산라인을 설치하였지만, 결과적으로 예산만 낭비하고 기술 이전이나 축적은 전무했다고 합니다.

기종 결정후, 대우의 헬기가 작전요구성능(ROC)상의 계기 능력에 미달하는 것으로 판명되자, 형상(무장장착형태)의 임의변경을 허용하고 편법으로 GPS수신기를 탑재하는 선에서 적당히 처리하였다고 합니다.

이 사업도 권영해가 대우를 밀어주면서 무리하게 사업을 시작하였고, 김대중 정권 인수위에서 부당성을 제기한 것이었지만, 문일섭 획득실장이 재검토없이 집행하였던 것입니다.

동부지역 전자전 장비 도입 사업

이 사업은 권영해가 저지른 대표적인 무기도입 비리 사업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국방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총 사업비 규모가 700여억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당초 독일의 DASA사 제품이 우수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권영해의 강압으로 프랑스의 톰슨사 제품을 들여왔습니다. 처음 들여와 시험해 보니“불만 껌뻑이는”먹통을 들여온 것으로 밝혀졌다고 합니다. 결국 이 제품은 작전요구성능(ROC)의 50%에도 미치지 못하는 불량품이었습니다.

이 사업은 부산의 코메른사가 추진하였는데, 당시 이 회사는 스팅어 미사일 제조업체인 휴즈사의 에이젼트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코메른사는 스팅어를 포기하는 대가로 이 사업을 따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산 CN-235-200M 수송기 도입 사업

이 사업은 인도네시아로부터 수송기를 8대를 도입한 사업입니다. 국방부가 공개한 바로는 사업규모가 거의 2,000억원에 이릅니다. 이 사업도 대표적인 비리의혹 사업으로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도대체 한참 후진국인 인도네시아로부터 비행기를 구입한다는 것이 상식에 맞지 않는 일입니다. 참고로, 권영해는 그 이전에는 스페인으로부터 동종의 비행기를 도입한 적이 있습니다.


5) 김대중 정권의 무기도입 비리 의혹

김대중 정권에서 무기도입 비리가 줄어들었을 것으로 생각한다면 크나 큰 착각일 것입니다. 줄어 들기는커녕, 오히려 여러 놈들이 아귀처럼 달라들어 경쟁적으로 부스러기를 뜯어 먹었습니다.

물론, 두 말하면 잔소리겠지만, 큰 덩치는 김대중이 직접 챙겼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김대중의 평생 비밀 금고지기인 이수동이가 이러한 일에 개입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저는 이 글에서 김대중 정권 시절에 이루어진 여러가지 무기도입 비리를 자세히 설명드릴 준비가 안되었지만, 그 가운데 아직도 비리의혹이 가시지 않은 몇가지 사업들을 언급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차기 전투기 도입 사업

이 사업은 김대중 정권 시절 무기도입 사업중 가장 규모가 큰 것이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아는 바와 같이, 무수한 논란끝에 보잉사의 F-15K가 선정되었습니다.

김대중은 이 과정에서 보잉사로부터 엄청난 리베이트를 챙긴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또한, 보잉사의 아파치 헬기 에이젼트인 이영우가 김대중에게 거액을 바쳤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 사업에는 김홍업, 천용택 등 여럿이 개입하였다고 합니다. 결과적으로 F-15K가 승리하였지만, 권노갑과 박지원 등은 라팔 쪽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라팔쪽의 떡고물이 훨씬 더 컷기 때문일 것입니다. 조풍언의 후원을 등에 업은 일광공영 이규태라는 자가 라팔 쪽 업무를 대행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 사업은 당초 예산액이 4조 3000억 정도였는데, 아무런 설명 없이 5조 6000억으로 늘어나 의아심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차기 VHF 무전기 도입 사업과 불곰 사업

그외에 비리의혹이 있는 대표적인 사업으로는 차기 VHF 무전기 도입 사업과 러시아제 휴대용 대전자 유도 미사일 사업을 들 수 있습니다.

캐나다로부터 차기 VHF 무전기를 도입해 왔는데, 이 사업에는 권노갑이 개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사업은 사업비가 1조 1천억원에 이르는 대규모 사업이었다고 합니다.

러시아제 무기도입 사업(일명 불곰사업)은 애초에 러시아에 제공한 경협차관의 상환 조건으로 추진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업이 확대되면서 현금을 지급하고 들여온 경우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러시아제 휴대용 대전차 유도 미사일(METIS-M) 도입 사업은 사업비가 1조 3000억원에 이르는 대규모의 사업이었습니다. 이 사업에는 조풍언과 천용택이 개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조풍언을 대신하여 일광공영의 이규태가 전면에 나서 일을 처리하였다고 합니다.


6) 조풍언의 무기도입 비리 의혹

김대중 정권 아래에서 이루어진 수 많은 무기 도입 사업에는 조풍언이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비리의 실무는 천용택, 문일섭, 이원형 라인이 처리하였습니다.

다음의 6가지 사업은 김대중 정권에서 추진되었던 무기도입 사업 중 특히 조풍언이 관련되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사업들입니다.

1. 장거리 공대지 유도 미사일(AGM-142 Popeye) 도입 사업
2. AN/ALQ-165 ASPJ 대전자전 방어 및 교란 시스템 도입 사업
3. 전투기 레이다 경고 수신기(RWR) 교체 사업
4. 렙콘 항공기 착륙 유도용 항공관제 레이다 도입 사업
5. 공군 공지통신장비 도입 사업
6. 이스라엘제 Harpy 대레이다 공격용 무인정찰기(UAV) 도입 사업

장거리 공대지 유도 미사일(AGM-142 Popeye) 도입 사업

이 사업은 아군의 전투기가 적의 방공방 바깥에서 공격이 가능하도록 하는 장거리 미사일을 도입하는 것이었습니다. 국방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총 사업비가 1,6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사업은 1998년 말에 결정되어, 이스라엘 라파엘사와 미국의 록히드마틴사의 합작 제품인 AGM-142 Popeye 미사일 100기를 FMS 방식으로 도입하였습니다. 현재 우리 공군은 F4-E 전투기를 개조한 후, 이 미사일을 장착하여 운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참고로, 경쟁기종은 미국 Rockwell사(현재 보잉사로 합병)의 AGM-130였다고 합니다. 양 기종 가운데 AGM-142가 AGM-130보다 사거리가 더 긴 장점이 있는 데다, 우리보다 터키가 먼저 AGM-142를 구매한 적이 있어 분위기가 AGM-142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고 합니다.

조풍언은 전면에 나서지 않고, 승진(대표: 김상태 전 공군 참모총장)이라는 회사를 내세워 사업을 진행하였다고 합니다.

AN/ALQ-165 ASPJ 대전자전 방어 및 교란 시스템 도입 사업

이 사업은 KF-16에 탑재되는 ASPJ(Airborne Self Protection Jammer) 전자전 장비를 도입한 것입니다. ASPJ 전자전 장비란 전투기 스스로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적의 전자파를 교란시키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 공군이KF-16을 도입할 당시에는 아직 이 장비가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장비가 탑재되지 않은 상태로 도입되었다고 합니다. 지난 96년 장비 개발이 끝나 김영삼 정권시 대량 도입되었고, 김대중 정권 때인 99년도에도 추가로 도입되었습니다.

조풍언은 기흥물산이라는 회사를 설립, 직접 에이젼트를 맡아 이 사업을 처리하였고, 사업 종결후 회사를 정리하였습니다.

전투기 레이다 경고 수신기(RWR) 교체 사업

이 사업은 우리 공군의 F-4,F-5, F-16(초기도입모델)에 탑재되어 있던 구형 레이더 경고 수신기(RWR, Rader Warning Receiver)를 신형으로 교체하는 것이었습니다. 국방부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사업 규모는 약 650여억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난1999년 사업이 결정되어 이스라엘 EAISRA사의 SPS-2000이라는 장비를 도입하였습니다. 경쟁기종은 미국 록히드마틴사의 AN/ALR-56M으로, 이것은 KF-16 전투기에 탑재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 사업은 PSI사(대표:이달화 예비역 공군 준장)가 표면에 나섰지만, 실제 배후에서 모든 일을 조종한 사람은 조풍언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렙콘 항공기 착륙 유도용 항공관제 레이다 도입 사업

이 사업은 공군과 육군의 항공기 착륙 유도용 항공 관제 레이다를 도입한 사업입니다.

지난 96~97년, 공군은 미국 ITT(International Telephone and Telegraph)사로부터 렙콘 레이다 4대를 도입하면서 기존의 레이다를 아날로그에서 디지탈로 교체하는 절충교역을 했습니다. 또한, 육군도 2000년 동 회사의 이동식 레이다 2대를 도입하였습니다.

지난 2001년 12월 17일, 감사원 감사결과 동 레이다가 장비 결함으로 인해 오랫 동안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는 점이 밝혀졌습니다.

또한, 94년 1차 구매시 결함을 발견하고도 2차 구매 계약을 체결한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육군이 레이다를 구입할 당시, 공군측이 육군의 전투용으로는 부적절하다는 평가결과를 통보했음에도 국방부가 이를 무시하고 사업을 추진했던 사실도 적발되었습니다.

한편, 디지털로 기기를 교체하는 과정에서 레이다에 가끔 항적이 사라지는 현상이 발생하였으며, 육군의 이동식 렙콘 레이다 2대의 경우, 레이다간 일부 사각지대가 발생하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문제점은 그후 시정되어 현재는 정상 가동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조풍언 커낵션

조풍언은 지난 20여년간 우리나라 최고의 무기 브로커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김대중 정권 시절에는 김대중과의 개인적인 친분을 바탕으로 모든 무기도입 사업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합니다.

그는 대단히 치밀하고 노련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는 워낙 일을 완벽하게 처리했기 때문에 현재까지 위법사실이 전혀 포착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무기도입 분야에 관한한 그야말로 “천재”라고 합니다. 이 분야에서 그만한 자질을 보인 자가 전무후무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주로 에이젼트를 내세워 일을 처리했다고 합니다. 자국을 남기지 않기 위해 사업이 끝나면 회사를 정리해 버리는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는 주로 미국과 이스라엘 제품을 도입하는 사업에 관여했다고 합니다. 또한, 그는 감시의 시선이 상대적으로 덜 미치는 1천억 안팎 규모의 사업을 주로 취급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대로 조풍언은 러시아제 대전차 유도 미사일 도입 사업과 차기 전투기 도입 사업에서 일광공영 대표 이규태라는 자를 전면에 내세워 배후에서 조종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급 경찰관(경사) 출신에 불과한 이규태라는 자가 러시아제 무기도입 사업과 고철 및 비금속 수입 사업을 독점한 것은 미스터리입니다. 이러한 일들은 이규태 뒤에 조풍언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조풍언 뒤에는, 아직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보이지 않는 검은 그림자가 있었을 것입니다. 김대중의 비자금을 밝혀내기 위해 조풍언 커넥션부터 먼저 밝혀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조풍언과 이규태, 그리고 조풍언과 이수동과의 커넥션 고리가 밝혀져야 할 것입니다. 차기 잠수함 건조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조풍언이 개입한 의혹 또한 앞으로 밝혀져야 할 부분입니다.

제가 충분히 밝히지 못한 이러한 부분들은 차후에 국민 여러분들께서 직접 밝혀주시리라 믿습니다. (계속)



김대중 대통령 비자금



1982년 김대중은 미국망명 때 전두환에게 정치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서약하고 그 대가로 30만 달러
의 돈을 받았다.

1992년 대선 직전 그는 노태우로부터 20억원을 받았다.

전 평민당 창당자금으로 3백억원을 받았고, 6공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문제로 궁지에 몰렸던 노태우
에게 그것을 유보한다는 대가로 5백억원을 받았다.

노태우로부터 모두 1천2백여억원을 받았다.

60년대말 업자로부터 뇌물을 받고 코카콜라를 끌어들이게 하고는 그것이 문제시되자 재빨리 국회에
서 업자를 비판해 이에 분격한 업자로부터 멱살을 잡히고 뺨을 얻어맞은 바 있다.

미국에 망명했을 때 김대중은 미국교포들이 광주학살희생자 유족들에게 전해달라고 기탁한 15만 달
러와 한국민주화운동에 써달라고 모금해준 수백만 달러를 자기 주머니에 집어넣고 호화판생활을 해
교포사회의 지탄을 받았다.

구조조정을 한다는 명분으로 기업체들과 은행을 외국투자가들에게 매각하면서 또한 큰 돈벌이를 하
였다.

김대중은 미국의 에이에스회사가 한국화학의 발전사업을 헐값으로 매입할 수 있게 해준 대가로 5백
억원의 사례금을 받았고 한국의 유망 기간산업의 주식을 헐값으로 팔아 넘기기로 하고 사례금을 받
았다.

소로스에게 단기채권시장을 내주고 서울증권을 헐값으로 매입할 수 있게 해 대가로 4백억원의 사례
금을 받은 것을 비롯해서 외국투자가들에게 온갖 이권을 보장해준 대가로 지금까지 받아먹은 돈이 2
천억원이다.

인사는 곧 돈줄.

김대중의 인사를 통한 돈 사냥은 주로 장남 김홍일을 통해 벌였다.

김홍일은 아버지의 권세를 등에 업고 정치권은 물론 군과 검찰, 경찰의 인사권에까지 개입하여 돈벌
이를 톡톡히 하였다.

장성별 한 개의 공정가격이 1억원이라는 것은 공개된 비밀.

김대중 부자가 군과 경찰인사를 통해서만 착복한 돈이 6백억원은 넘는다.

김대중의 여섯째 처남 이성호는 해외여행업체인 「평화관광」을 경영하면서 김대중을 등대고 해외
특혜여행을 미끼로 여행자들로부터 막대한 자금을 걷어들이는 한편 유학시절 미국 에리모 대학과 조
지 워싱턴대학원에서 친교를 맺었던 인맥들과 짜고 미국현지에 진출한 한국재벌업체들에게 이권을
보장해 준다고 하면서 막대한 돈을 뜯어내 김대중의 금고를 채워주었다.

이형택과 이세작 등 처조카들까지 발동해 막대한 비자금을 긁어들였다.

김대중의 처조카인 동화은행 영업1본부장 이형택은 금융계에 손을 뻗쳐 신탁통치로 인해 생사기로
에 놓여있는 은행들과 종금사들을 살려주겠다는 담보로 수백억원의 비자금을 걷어들였다.

김대중의 처남 이경호의 차남인 이세작은 변호사의 간판을 걸고 각종 비리에 걸려든 정계와 재계의
거물들을 살려준 대가로 막대한 돈을 거두어 들였다.

김대중은 대통령후보 경선 당시 소유한 재산이 9억4천만원인 것으로 신고했고 대선 후의 재산공개
시에는 8억8천만원으로 6천 만원이 줄어든 것으로 공개했지만 지금 실제로 소유하고 있는 재산은 알
려진 것만 해도 1조원이 넘는다.

김대중은 온갖 부정한 방법으로 뜯어낸 돈을 스위스와 싱가포르를 비롯한 외국은행들에 있는 자기
의 비밀구좌에 입금시켜 놓았는데 그 규모는 10여억 달러에 달한다.

얼마전 김대중은 국비로 유럽여행을 했었다.

미국에 망명을 신청한 전직국정원직원 김기환씨는 김대중의 스위스 방문이 명목상으론 WHO 총회
참석이지만 실상은 비밀계좌 이체나 양도에 친필 서명이 필요 했기에 밤에 사인하러 갔던 거였다.

노무현 대통령 비자금



DJ의 뉴욕비자금 한국 오고 있다
한국 1백대 기업에 장기간 묻어둬라
[2007-03-14 18:14:12ㅣ조회:1693]








인사이드월드는 “D.J가 검은돈으로 신당을 만들고 있다는데…..?” 제목의 12일자 손충무 칼럼과 “거액의 D.J 뉴욕자금, 서울로 이동….신당 창당.선거용?” 13일자 특종기사를 통해 열린우리당과 탈당파들이 추진 중인 소위 통합신당의 주인이 사실상 김대중이라는 사실을 경고했다.

또 뉴욕에서 주간지로 발행되는 뉴스메이커 (발행인.강은주) 는 ‘김대중 뉴욕 비자금 다시 한국으로 보내지고 있다’ 는 최근 기사를 본사에 보내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D.J 미국 비자금을 취재했다.

매주 1만부를 발행하는 주간지 뉴스메이커의 편집인은 강은주 발행인의 부군이 되는 저스틴 림 (임종규) 씨이다. 특히 저스틴 림 편집인은 ‘뉴욕정의사회실천시민연합’ 위원장으로 ‘김대중 비자금 뉴욕유입 진상조사위원회’를 조직, 조사위원 2명과 함께 3억 달러를 찾아낸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는 손충무 본사 발행인과 함께 2006년 10월 미 연방 하원 조사위원회에 출두, 김대중의 비자금이 뉴욕과 미국에서 춤추고 있는 진상을 증언 한 바 있다. 그로인해 뉴욕의 김대중 측근들은 뉴스메이커 발행인-편집인인 저스틴 림씨와 강은주씨, 정실련 조사위원 3명과 손충무 본사 발행인을 뉴욕 퀸즈 법원에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 언론인들의 펜대를 꺾으려 하고 있다.

그러나 진실의 힘은 위대하다. 국민을 속이고 국부를 파괴하며 국제 악마 김정일을 돕고 있는 D.J의 친북반역 행각은 반드시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역사와 진실을 향한 이들 언론인들의 추적은 현재 진행형이며 그 어떤 탄압에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다음 뉴스메이커 기사를 2회에 걸쳐 나누어 보도한다. ----(편집자 주)


“뉴욕 부동산 매각자금 3천억∼1조원, 한국 1백대 기업에 장기간 묻어둬라”
“뉴욕 김대중 하수인들 법망 피하기 위해 묘안 짜내며 바쁜 나날 보냈을 것”

뉴욕의 김대중 하수인들이 D.J 비자금을 한국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지난 2001년을 전후해 수천억 원의 김대중 비자금이 뉴욕에 유입됐음을 적발한 정의사회실천시민연합은 지난 2006년 4월 연방수사국 (FBI), 연방검찰, 국무부, 재무부 4 곳에 뉴욕 김대중 하수인들을 고발한 바 있다.

고발장만 3백70 페이지 분량에 달했다. 그리고 2006년 6월 8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저스틴 림 대표가 <김대중 비자금 뉴욕 유입사건> 을 폭로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또 2006년 7월 1일에는 비자금이 담긴 돈가방을 나르며 뉴욕 차이나 타운에서 북한인들에게 돈을 전달한 코네티컷 거주 동포 양모 씨가 정실련 조사팀과 FBI 요원의 합동 조사를 받기도 했다.

이후 정실련은 이 문제를 연방하원 청문회로 끌고가기 위해 동포들을 상대로 청원서 서명받기 운동을 개최, 지금까지 2천여 장의 서명을 받았다.

드디어 2006년 10월. 저스틴 림 정실련 대표와 손충무 언론인 등이 워싱턴 연방의회에 출두, 김대중 비자금 유입 사건에 대해 진술, 이 사건은 탄력을 받았다.

그후 부시 대통령은 성명을 발표하고 “미국에 들어와 있는 세계 각국의 검은돈 (비자금) 은 해당국가로 다시 보내져야 하는 것이 미국의 정의” 라고 강조했다.

현재 정실련 임원들은 이 문제가 연방의회에서 청문회로 진행될 수 있도록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갖은 노력을 다하고 있다.

이처럼 이 사건이 숨가쁘게 진행되고 있는동안 뉴욕의 김대중 비자금 관리인으로 알려진 이의건 (미국명 몬테규 리·시민권자), 다니엘 리(한국명 이형영·시민권자), 홍성은(영주권자) 씨 등은 무엇을 하며 지냈을까?

이들이 겉으로는 태연한 척 서로의 관계를 부인하고 있으나 뉴욕에서는 이들이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

그들 가운데 미국 시민권자인 이의건, 다니엘 리 씨는 저스틴 림 정실련 대표 등을 비롯한 정실련 관계자들과 손충무 <인사이드월드> (워싱턴.D.C) 발행인 겸 편집인을 명예훼손 혐의로 뉴욕주 법원에 고소했다.

또한 영주권자인 홍성은, 조재환 (다니엘 리 씨의 부하직원) 씨는 이번 사건을 보도한 한국의 월간조선과 취재기자 송모 씨를 한국 법원에 고소했다. 동시다발식 양면 고소 작전에 나선 것이다.

시민권자들은 미국에서-영주권자들은 한국에서, 언론인들과 시민단체 관계자들을 조직적으로 고소하고 있다. 그들로서는 그같은 고소작전이 최선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실련과 미 연방수사국, 연방의회가 김대중 하수인들에 대한 조사 및 수사의 강도를 높여가고 있는 시점에서 과연 그들이 태연하게 조여오는 포위망을 바라보고만 있었을까? 결코 가만히 기다리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한 회의를 갖고 그 결과에 따른 모종의 실행이 진행중일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들의 회의결과는 무엇이었을까?
“뉴욕의 부동산을 매각한 후 매각자금을 서울로 보내라”-- 바로 이것이 그들이 내린 결론이었음이 최근 밝혀졌다.

김대중 비자금 뉴욕 관리인들은 과거 그들의 직업, 생활 형편 등을 놓고 볼 때 수억 달러라는 막대한 재산은 결코 형성할 수 없는 인물들이다.

지난 2001년을 전후해 뉴욕 등 미국에 들어온 김대중 비자금은 총 2천∼3천억원(약 2억∼3억 달러)으로 추정되고 있다. 물론 미국 수사당국이 기소해 밝히기 전까지는 정확히 얼마만큼의 돈이 뉴욕으로 유입됐는지 알 길은 없다.

다만 뉴욕의 김대중 비자금 관리인으로 알려진 이의건, 홍성은, 다니엘 리 씨 3인의 재산이 2006년 4월 현재 총 3억 5천만∼4억 달러인 것을 감안한다면 상당액의 돈이 뉴욕으로 흘러들어온 것만은 확실하다.

이들 3인은 과거 생선가게, 술집을 경영하거나 무직자 등의 생활을 했다. 예전 직업상 이 같은 큰 재산을 소유할 수 없는 위치의 인물들인 것이다.



▲ 미국서 발행되는 주간지 뉴스메이커의 보도 기사


그 점을 연방수사국 등의 미국 수사기관은 주목하고 있다. 결코 간과될수 없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美 수사기관의 한 관계자는 “이들은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방법으로 재산을 형성했다” 면서 “비상식적인 재산형성 과정이 궁금하다” 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만약 그들의 재산형성 과정에서 문제점이 발견된다면 아마 이들은 ▲ 탈세 ▲ 내부거래 ▲ 돈 세탁 등의 혐의로 기소될 가능성이 크다” 고 덧붙였다.

연방의회 관계자들도 “그들의 재산형성 과정이 도저히 납득되질 않는다” 며 “북한사람들에게 뉴욕 차이나타운에서 돈가방을 건넸다는 사실에도 우리는 매우 주목하고 있다” 고 말했다.

그렇다면 뉴욕의 김대중 하수인들은 자신들이 미국 법망을 빠져나가기 힘들 것이란 사실을 감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그런 경우에 처한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기소에 대비한 대책을 마련할 것이다.

검은돈과 관련된 미국 수사기관의 수사는 장기간에 걸쳐 이뤄진다는 사실을 그들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설사 기소가 된다해도 돈이 많은 그들은 일류 변호사를 선임, 재판을 지연시킬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해도 언젠가는 법망에 걸릴 것이라는 사실을 그들 스스로 잘 알고 있을 것이며 재산 또한 모두 압류 당한다는 사실도 알 것이다. "기소되더라도 돈(비자금) 만은 빼앗기지 말자" 이것이 그들이 내린 결론인 것으로 보인다.
.
김대중 뉴욕 비자금 사건이 터지고 나서 한동안 태연한 척 하던 이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2006년 10월 무렵 부터였다.

그 시기 저스틴 림 정실련 대표와 언론인 손충무씨가 연방의회에 나가 증언한 기사가 신문에 보도된 이후 부터 바빠진 것이다.

특히 김대중 뉴욕 비자금의 총책임 관리인인 이의건 씨는 2006년 말 서울을 방문, 비자금 빼돌리기를 직접 진두지휘 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서울 쪽의 책임자는 이 씨의 아들인 40대의 L 씨인 것으로 취재결과 밝혀졌다. 이들은 서울의 금융브로커들을 동원, 비자금을 한국내 1백대 기업에 장기간 묻어두려 시도하고 있다.

이미 현대, SK그룹과도 접촉을 시도했다가 “돈의 출처가 불확실하다” 는 이유로 기업들에게 거절당하기도 했다. 이들은 한국의 1백대 기업을 상대로 은행이자(6∼7%) 보다 싼 이자(3.5%) 로 돈을 빌려 갈 것을 권하고 있다. 구미가 당기는 조건인 것이다.

이들은 기업들에게 저리로 막대한 자금을 쓰게하는 조건을 다음과 같이 내걸고 있다.

“최소 3천억원에서 최고 1조원을 빌려야 한다. 돈을 빌리는 기간은 최저 10년에서 최고 30 년이다. 돈을 빌리는데는 기업대표 (회장) 의 친필대출요청서 (명함 뒤 작성도 무방) 와 밀봉된 제반 서류가 필요하다”


노무현 비자금 3천억원 조성!!!!!

노무현이가 4.15 총선용으로 받은 검은돈이 3천억원에 육박한답니다.
노무현과 권양숙이 직접 받은돈, 청와대 참모를 통해 받은
돈을 합산하면 3천억원이 넘는답니다.

그리고 KBS 와 MBC 는 내부 비리가 어마어마 한답니다.
노무현의 빽으로 방송국 내부비리가 가려졌는데

이제 노무현이가 대통령 권한정지가 된 틈을타고

노무현의 수천억대 비리와 방송국 내부비리가 터질수 있다는군요
KBS 와 MBC와 sbs 내부비리는 KBS 사장과 MBC 사장의 비자금이
어마어마한 정도라는군요

방송국 돈을 엄청 해먹었고 막강한 파워를 이용하여
대대적으로 이권에 개입하여 엄청난 뒷돈을 받아먹었답니다.
사장이 이렇게 비리를저지르니까, 기자들, 방송앵커, 피디,
방송진행 등등 직원들의 비리가 엄청나다는 군요.

노무현이가 헌재에서 파면되면 노무현이가 데리고있던
방송국 사장과 간부들이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고
검찰총장까지 바뀌면 그간에 저지른 엄청난비리가 탄로나니까
죽기 아니면 살기로 촛불시위, 한나라,민주당 폭파위협,
국회돌진 등 온갖방벙이 동원되고
위기감에 휩싸인 KBS 와 MBC 는 전국민이 탄핵을 반대하는
것처럼 방송내용을 조작하여 대대적으로 방송을 내보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기독교 종사자들은 부패한든 말든 그 나라 국가가 대한민국 남북한이 당할 어려울만큼보다는 적다

그러나 대한민국내에 미국 기독교 종사자들은 참새가 황새따라가다가 바지가랭이 찢어지듯이 자신이 처한 국가의 분수도 모르고 부패해온 대한민국 기독교 세력들이 정신차려라고 하는 소리이다

대한민국의 보수를 가장한 성령의 뜻을 제대로 실천하지않는 일부 부패해온 도덕적으로 타락해온 미국의 기독교를 우리의것으로 만들지못하고 그대로 수용해 오다보니 이러한 문제점을 야기된것이다

대통령 뽑는데 성인군자뽑는것이 아니라는 팔순잔치를 한 김영삼의 소인배의 정신 상태를 보아도 잘 말해주고 잇다
그리고 IMF를 터지게한 그만큼 종교의 도덕적 가치를 중요시하지않으니 국가의 부도를 낸 파렴치한 사형감이다

사형감인데도 분수도 모르고 성대하게 팔순잔치라 그리고 자신의 아들을 이번 총선에 국가를 부도낸 책임은 아직 다 묻지 않았으니 ..........

그대들이 진정으로 예수님이든 하나님이든 성령의 도덕적 가치를 절대적 믿음을 실천했다면

국가의 부도 사태는 나지않았고 그대들의 종교신앙정신은 어느 국가 종교 신앙자분들보다도 더 영적인 삶을 실천해주었다고 본다

그리고 세계 어느 기독교 종사자분들보다도 모범을 보여야만하는것을 그것이 너희들의 사명인것이다
왜 그러한줄아는가? 자신이 처한 국가의 아둔함을 죄를 사하기위해서는 그대들이 더욱 바르게 신앙 생활을 해야함을

믿습니까?믿습니까?믿습니까? 할레루야 ㅎㅎㅎㅎㅎ

모든 인류는 자신의 생명을 주심에 그것은 죄를 갚아라고 주신것이다

그런데 죄를 갚기는 커녕 죄를 더짓고 살아가는 인류의 생명들 항상 죄인의 심정으로 살아가도 죄를 평생 사하기란 부족한것이 우리 인류의 생명이다 이는 어느 종교를 구분하지않고 모든 생명체가 그러하다

그래서 이제는 인류를 향해서 반성과 참회 개과천선하지않으면 심판을 일단 인류에게 경고성 심판을 먼저 보여주실것이다

지금은 인류에 대한 집행의 시간입니다 아시겟습니까?

그만큼 죄를 짓었으면 사하도록 노력해야하는데 그렇게 하지않았기에 그러합니다 저는 그것을 미리 보앗습니다

지금도 소생은 마음이 아픕니다 그대들이 그렇게하지않기에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 wneswkcic님의 원글 내용입니다. ------------

>절대 도덕가치 흐려지는 미국기독교 설문 충격
>
>
>
>
>
>
>미국 바나리서치 ‘신앙-삶 연관성 설문’
>
>
>우리나라에 복음을 전해 준 미국기독교계가 갈수록 복음적 삶의 가치를 외면하고 있다는, 다소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기독교가치관을 최고의 덕목으로 강조해 온 미국사회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
>기독교 학문은 세계적인 수준을 유지하면서도 기독교인들은 세상의 불신자들과 비슷한 삶을 보여주는 것에 대해 미국교회는 이미 수년전부터 염려하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
>
>
>이같은 현상은 우리도 마찬가지여서 세계가 주목하는 성장과 부흥을 구가한 상황에서 조차 ‘성경적 삶의 개혁’에 대한 뚜렷한 청사진을 제시 못하는 어정쩡한 현실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
>
>
>이런 가운데 미국기독교계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바나리서치(Barna Research Group)가 지난 7월 한 달간 미국 성인 1,002명을 대상으로 ‘성경적 가치관’ ‘절대적 도덕가치’등을 제목으로 전화설문을 벌여 그 결과를 내놓았다.
>
>설문의 내용 중에는 생활 속에서 이루어지는 ‘가치판단의 기준’을 묻는 것도 있어 신앙과 삶의 문제가 중요하게 부각되는 한국기독교의 최근 상황에 어느 정도 참고가 될 만 하다.
>
>
>
>바나리서치가 유독 성경적 가치관을 대주제로 설문을 벌인 것은, 미국사회가 실제로 몸살을 앓는 부분들, 이를테면 줄기세포 연구라든가 테러와의 전쟁 및 장기화되는 이라크 전쟁, 동성연애와 결혼, 성직자들의 성적학대 파장 등이 사회적 갈등문제로 대두됐기 때문이다.
>
>
>
>이같은 상황을 성경적 가치관 소유여부로 판단한 바나리서치는 집계결과를 내놓고 ‘충격’이란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
>
>
>무려 65% 미국성인들 "절대도덕 가치 필요성 못느낀다"응답
>성경적 가치관 따라 사는 비율은 불과 5%안팎
>
>바나리서치의 설문 가운데 가장 주목을 끄는 부분은, 생활 속에서 반드시 해야 할 선택에서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따라 결정하는가’라는 것으로, 이에 대해 54%의 응답자가 자신의 종교적 원리나 기준을 따라 선택한다고 응답해 절반을 넘는 수가 긍정적인 답변을 보여 낙관했으나 이 가운데 불과 16%만이 ‘성경의 내용을 근거로 도덕적 결정’을 내린다고 답해 미국기독교인의 상황이 비성경적인 원리에 따라 가치판단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나타냈다.
>
>
>
>이같은 상황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또 하나 질문은 ‘절대적 도덕가치’에 대한 부분으로, 설문대상 자 중 35%만이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절대적인 절대적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고 응답한 반면 32%는 “상황에 따라서 가치설정이 다르다”고 응답했으며, 33%는 “절대적 상대적 도덕가치 존재 자체에 관심이 없다”고 응답했다는 것이다.
>
>
>
>이를 종합적으로 보면, 절대적인 도덕가치를 믿는 사람은 35%인 반면 나머지 65%는 절대적 도덕가치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그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반응을 보였다는 내용이다.
>
>
>
>참고로, 절대적 가치존재에 대해 미국의 주류교단인 복음주의 교인들은 70%가 믿고 있었고, 비복음주의 교단 교인들은 42%, 기독교인인 아닌 사람의 경우는 16%가 절대적 도덕 가치 존재를 믿고 있었다.
>
>
>
>바나리서치는 이번 설문에서 “단지 5%만이 흔들리지 않는 성경적 세계관을 확인할 수 있었다”면서 이에 대한 교회와 학계의 연구가 서둘러 진행돼야 할 현실임을 강조했다.
>
>
>
>설문결과를 놓고 바나리서치는 마지막부분에 결과분석지를 첨부하며 “미국 기독교 출판물의 부정적인 경향 시정과 교회지도자들의 영적분별력이 더욱 강화돼야 할 시기”라고 덧붙이고 있다.
>
>
>
>바나리서치가 이같이 지적한 이유는 최근 미국기독교계를 휩쓸고 있는 출판물 대부분이 성경적 정체성과 원리를 알려주는 대신 삶의 의미와 목적, 안전, 종말 등을 다루어 미국의 전통가치관인 프래그머티즘(실용주의)에 충실하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
>
>
>즉 서적 및 출판물에 의해 잘못된 정보를 습득한 교인들의 판단들이 혼란을 겪게됨으로써 적어도 성경적인 관점으로 볼 때 매우 위험한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바나리서치 설문결과에 따른 진단이다.
>
>
>
>이에따라 교회지도자들의 책임은 교인들이 잘못된 서적으로부터 혼란스런 판단을 하지 않도록 성경적인 기준점과 원칙들을 권위있게 그리고 강력하게 제시하는 부분으로 맞춰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심각한 질병을 앓는 상황인데도 교회지도자들이 내려주는 처방전은 너무나도 빈약하다는 것이다.
>
>
>
>바나리서치의 이번 설문은 미국이 처한 다양한 상황들에 대처하는 교회의 가치판단 기준 실상을 데이터로 증명한 것으로, 우리나라 기독교 역시 이미 이같은 상황에 직면한 점을 감안한다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검증되지 않은 서적 및 출판물들에 무방비로 노출된 교인들을 강력한 영적 메시지를 통해 성경적 판단기준을 소유하도록 목회자의 대응방안 마련이 절실하다.

wneswkcic27

[美정보통신誌] “美, 우주戰 전략 강화한다”



미국은 군사위성을 이용해 이미 우주전쟁을 수행하고 있다고 미국의 저널리스트 브루스 스털링(Sterling·48)이 정보통신전문잡지 ‘와이어드(Wired)’ 최신호에서 주장했다.

스털링은 “미국이 1991년 걸프전(戰)과 1999년 구(舊)유고 코소보 사태 때 ‘제1·2차 우주전쟁’을 치렀고, 9·11 테러 이후 ‘제3차 우주전쟁’을 수행하고 있다”며, “앞으로 세계는 워싱턴이라는 군사적 회전축에 의해 움직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과 다른 국가들의 군사위성기술 격차는 하루가 다르게 벌어지고 있다. 미군은 지휘(Command)·통제(Control)·통신(Communications)·컴퓨터(Computer)·정보(Intelligence)·사찰(Surveillance)·정찰(Reconnaissance)을 네트워크화(化)한 ‘통합 C4ISR’ 시스템으로 기존의 군사활동 개념을 완전히 뒤바꾸었다.

미국은 2만㎞ 상공에 6500만달러(약 850억원)짜리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위성 28기와 미사일 발사 및 핵폭발 감지 기능을 가진 ‘방위지원프로그램(DSP)’ 위성(5200억원) 23기를 이미 배치했다. ‘우주공간 레이더(SBR·대당 1300억원)’는 2010년까지 6~24기, 미사일 격추를 위한 ‘우주공간 레이저(SBL)’는 2012~2024년에 12~24기(예산총액 3조9000억원)가 배치될 계획이다. 알래스카에는 5년 내에 대기권 밖 요격무기인 EKV 5기가 설치되고, 2007년쯤엔 요격용 레이저 무기를 장착한 항공기가 실전에 투입된다.

스털링은 이어 2006년 한반도·2012년 콩고·2019년 콜롬비아를 가상(假想) 무대로 한 3개 전쟁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미국이 미사일방어(MD)체제를 구축해가면서 우주전쟁 분야를 장악해 1개 국가가 전 세계를 지배하는 사상 초유의 상황이 도래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그러나 불과 4년 뒤 한반도 가상 시나리오에서 북한이 한국과 미국 시애틀을 목표로 발사한 생화학·핵 탄두 장착 노동·대포동 미사일이 중도에 피격 또는 자체적 결함으로 추락한다고 가정(假定)하면서도, 막바지 북한의 지하 요새 진압(鎭壓)에 한국군과 중국 지상군이 함께 투입된다는 주장을 내세워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 尹熙榮기자 hyyoon@chosun.com )






1.첫째 내막 : 계획된 한반도 전쟁.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아마도 제 2차 대전의 말기인 1945년 2월 11일 미국(루즈벨트)ㆍ영국(처칠)ㆍ소련(스탈린)이 얄타(소련 크림반도)에서 세계2차대전의 전쟁완수 및 전후 처리, 국제 안전보장 기관의 창설과 일본의 패망으로 도주한 한반도에 38선 군사경계선을 그어 한반도를 양분시킨 얄타회담일 것이다. 그러나 이회담에서 중요한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2차대전 전후 처리외에 "한반도 전쟁"과 "향후 10~12년후 베트남전"등을 계획에 합의했다는 의혹이 제기 되었었다.
실질적으로 미국의 매카시의원이 있었는데 그는 자주 정부 조직안에 공산주의자들이 많다고 주장해 미국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든 인물인데 1950년 9월23일 어느 대중집회 연설에서 위와같은 전쟁계획을 주장한 인물이다. 그러나 이렇게 충격적인 비밀을 폭로한 매카시 의원은 매우 건강한 사람이었는데 1957, 5, 2. 미국의 베데스다 해군병원에서 "급성 간기능 장애"라는 병명으로 죽음을 당하였다.

2.두째 내막 : 남한의 지원금 차단.

양분된 한반도에서 북한은 소련의 속국이 되어 급속히 군비를 증강시켰고, 남한은 미국의 속국이 되어 미국 국무성의 남한이 북한을 침공치 못하도록 군사지원을 하지 않는 정책에 따라 아래 도표와 같이 공군,해군등의 장비는 전무한 상태에다 육군은 전차나 야포등의 중장비가 없는 경장비 뿐인 너무나 초라한 군대상태가 되어있었다.



한국의 해방후 미국의회는 남한에 독립국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1,000만 달러의 지원금을 전달되도록 되어 있지만, 그 지원금은 극히 일부금액만 한국에 전달되어 남한은 재정의 어려움과 정치적 혼란속에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중에 1950.6.25 소련의 지원하에 북한이 선제공격으로 남침을 시작하였다. 즉 미국의 근시안적인 정책으로 북한이 남한을 공격할 수 있도록 기회를 부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3.셋째 내막 : 소련의 한반도 유엔 파병지지.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자 UN 안전보장이사회에서 UN의 한국 지원에 대한 토의후 표결에서 5개 상임이사국(미국, 소련, 중국(자유중국), 영국, 프랑스)중 한 나라만 반대를 해도 UN한국 파병은 불가능한 상태이었다.

▶UN 안보리의 결의문◀

1. 적대행위의 즉각 중지를 요구하고 북한당국이 그들의 군대를 즉각 38도선으로 철수시킬 것을 촉구하고
2. UN한국위원단이
* 충분히 검토된 사태에 대한 보고를 가능한 한 지체 없이 보낼 것.
* 북한군의 38도선으로의 철수를 감시할 것.
*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 이 결의안의 집행에 대하여 계속 보고할 것.
3. 모든 회원국들은 유엔이 이 결의안을 집행하는 데 지원을 아끼지 말며 북한당국을 지원하는 것을 삼가도록 촉구한다. ---- 일부 내용 발췌 ----
그런데 소련이 1950년 1월부터 자유중국이 중국의 UN 대표권을 보유한데 대한 항의를 하며 중공을 상임이사국에 참석시켜야 한다는 엉뚱한 문제를 제기하고 논쟁을 벌이다가 퇴장하는 바람에 표결은 상임이사국의 만장일치와 비상임 이사국을 포함하여 찬성 9, 반대 0, 기권 1(유고) 로 가결되었다. 표결이 끝난후 소련의 UN대표인 Jacob Malik 은 회의 불참명분이 해소되지 않았는데도 다시 회의실로 돌아와 앉았다. 즉, 한반도전쟁에 UN의 파병이 성사되도록 소련이 일부러 자리를 피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국 한반도 전쟁은 첫째 내막대로 계획된 전쟁인고로 소련은 얄타회담의 합의를 준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4.넷째 내막 : 한반도 전쟁에 중국을 끌어들인 미국.

중국본토 회복에 기회를 보아오던 중국의 장개석 총통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자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생각을 하였다. 이러한 중국의 움직임에 대하여 미국의 트루먼대통령은 장개석총통의 의지를 단호하게 반해하였고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군사적 행동을 우려하여 미국의 7함대를 1950년 6월 대만해협에 배치까지 하였다. 이렇게 미국이 50만 중국의 군대가 중공을 침공하는 것을 막음으로서 중공은 본토의 중심을 지켜야하는 2개군을 안심하고 한반도로 빼돌려 한국전에 참전할 수 있는 조건이 되었다. 이러한 조치에 대하여 맥아더 장군은 "미국정부가 증공으로 하여금 한국전에 참전하도록 부추긴 것이나 다름이 없다" 라고 회고하고있다.

여기서 우리가 또 알아할 것은 중국(자유중국)은 UN의 상임이사국일정도인 UN회원국이며 그당시 반공투쟁이 강한 국가로서 당연히 한국전에 참가할 자격이 있었으나 미국을 이를 허락하지 않아 자유중국은 우리나라의 UN참전국 국가 명단에 없게 된 것이다.

5.다섯째 내막 : 중공군의 보급로를 보호한 미국.

맥아더 장군은 중공군의 참전을 이미 예견하고 압록강을 넘으면 원폭도 불사할정도의 전략을 준비하여 1950. 10 본국에 B-29폭격기로 압록강 교량 폭파할 것을 제안하였지만 미국 마샬 국무장관의 답변은 엉뚱한 답변이 하달되었다.

▶ 미 국무부의 하달 내용 ◀

* 북한과 만주국경으로부터 5마일 이내의 모든 목표에 대한 폭격을 보류할 것.

* 만주방향으로 도주하는 북한군에 대하여 모든 폭격이나 기총소사를 금지할 것.

* 소련의 군수물자 보급창인 나진의 군보급기지에 대한 폭격을 금지할 것.

이러한 국무장관의 내용이 하달된 이후 1950. 11. 25 중공군위 린 뱌오 총사령관은 전군에 압록강을 도강하여 북한으로 진군명령을 내리게 되었다. 후에 중공군 린 뱌오 사령관은 "만일 그 당시 미국에서 맥아더 장군에게 나의 보급로와 통신망에 대한 폭격 금지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면 아군의 생명을 위헝메 빠뜨리는 무모한 짓은 할 수 없었다" 라고 인정하였다.

이렇게 맥아더 장군은 중공군 참전 저지와 자유중국의 한국전 참전에 대한 반발등으로 미국 정부와 마찰이 잦아지자 트루먼 대통령은 "군인은 정치에 참여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하여 1951. 4. 10 맥아더 장군을 해임하고 만다.

이상 5가지 내막외에도 미국이 중공에 작전정보를 넘겨주었던 일도 계획적이고 매우 의아한 전쟁임을 알 수 있다.

참고 문헌 : 그림자 정부, 戰史 편찬위


sangdam sangdam http://blog.daum.net/wneswkcic Y 2008.01.08 18:38수정|답글|삭제절대적인 신은 묘하게도 우연치고는 전세계에 미국의 군사배치된 지역을 아시고는 그리고 친미국가들을 동시다발로 일망타진할수도 있음을 미국이나 친미국가들은 알고 있어야 할것이다
그것이 절대적인 천지신명님의 오만한 인류에게 그뜻을 보여주시는일이될것이다 모세의 기적을 미국은 아나

그리고 러시아 국가가 핵무기배치한 지도를 보면 참으로 기가막히게 선견지명있게 배치한것을 보면 놀랍다 굳이 아래 국가들이나 유럽 연합을 경계하지않드라도 선견지명있게 배치해놓은것이 놀랍다

미국 국가가 하기나름에 달려있다 즉 다시말해서 처신을 어덯게 하는냐에 따라서 비책을 알려주고 그 피해를 최소화 할수도 있으니 소생이 원하는것은 대한민국을 그동안 그릇된 자세로 개입해온것을 양보하시고 대한민국 저들 세력들을 바로잡는데 미국이 도와주어야 하고 또 미국은 지구촌 대세에 순응해서 따라오면서 보조를 맞추어주면 된다

무엇보다도 지금 대한민국을 지금 정치권 여,야 세력들이 바른길로 가지않고 미국의 끄나플노릇하면서 대한민국을 망치고 남북한을 망치는 세력들을 개과천선하지못하면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미국이 도와주지않으면 절대로 지금 미국이 그동안 해온 방식 그대로 밀고 가드라도 비책을 가르처주지않겠다

미국이 생각하는만큼 이익을 얻어가려는것보다도 더 큰 손실과 피해를 입게될것이다

소생은 천명을 그대로 지켜보고 그리고 세계 정세에 맞추어서 미국의 의지와 관게없이 진행해갈것이다

그리고 어느 국가든 소생의 말을 거역하면 이길수가 없다 지금 대한민국과 같은 아둔한 우를 범하지않는 국가라고본다 왜냐하면 그대들 국가의 역활도 막중하기에 이것을 잘 알고잇기에 소생은 이번 대한민국 을 바로세우는데 미국의 프리메이슨의 이유로 소생이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는데 역행하는짓은 더는 용납해줄수가 없다

대한민국에 맞는 역활이 잇고 대륙연합에 맞는 역할이 있고 미국에 맞는 역활이 잇음은 현실적으로 존재함을 잘 알기에 소생의 기대에 부응해주기를 바라는데 미국은 게속해서 소탐대실하면 미국 국가 정도도 얼마든지 이길수가 있다 아무리 화력이 막강하고 우주 정찰위성을 비행하든 소생은 분명하게 누구보다도 지금 지구 행성이 처한 상황을 다방면에서 잘알기에 앞으로 지구행성에 닥칠 난제들을 역시 지구촌모든국가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이 문제를 풀어가야하기에 그러나 그러한 분위기를 만들려고 하는것이 소생의 바램이다 그래야 공동의 주제를 놓고 지구행성을 위한 대책을 세울수가 잇기에 말이다

솔직히 내 한몸 어영부영 살다가 가면 그만이지만 이미 선택받은 몸종이기에 지구행성의 앞날을 위해서 그러한 뜻을 두고잇다

그러하지않으면 이렇게 불로그에 글을 올리지않는다 미국은 소생의 깊은 맘을 알지못하면 대한민국을 미국손아귀에 놀아나서 망치게하든 말든 그래도 미국을 이긴다

대한민국 그들의 개,노예 꼬봉 육신 세력들을 다 도축 해 버린다 전쟁론을 왜 공개언급한느지 소생의 뜻을 알고 있는가?

일단 미국의 의도를 대한민국 부패한 세력들의 의지를 막기위함의 명분용쌓기이다 즉 지들의 얼굴에 지들이 침뱉게만들려고하는것이다

그래야 죽어도 국제 사회에서나 국내에서도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할말이 없도록 만들기위함이다

그만큼 바볻가않인이상 미국 국가나 대한민국 부패한세력들이 정신을 차리지못하면 그렇게 집행한다
sangdam sangdam http://blog.daum.net/wneswkcic Y 2008.01.09 00:34수정|답글|삭제대한민국의 어두운 징조가 다가오는데도 뭐 대운하를 한다고 놀고들있네 한심한것들 그렇게 죽고 싶어서 환장하나 뿌리를 뽑아버린다 이승만정권 세력들처럼 그렇게 국가에 불행을 몰와놓고도 살수가잇었든 시절하고는 다르며 이제는 살려두지않는다 뿌리를 뽑아버린다
sangdam sangdam http://blog.daum.net/wneswkcic Y 2008.01.09 15:40수정|답글|삭제부시대통령은 한미FTA가 미국경제에 도움된다고하는데 부시대통령은 아직도 미국 경제의 맥을 못보고 있는것 같다 미국 경제의 침체는 대한민국이 미국과 FTA를체 결한들 미국경제 회생은 되지않는다

오히려 미국의 경체의 추락에 대한민국 경제가마저 그것을 체결하면 대한민국에 큰 타격이 된다 아울려 세계 경제의 흐름은 종전에 언급한대로 미국 스스로가 고강도의 구조조정을 국가 경제 회복에 대한 미국 재정적자에 대한 해결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그것이 한미FTA체결하는것보다도 급선무이고

물론 체결하면 중국은 그나름대로 대한민국을 향해서 경제 논리로 그것을 과거 조선시대한것처럼 역이용할수있는 명분을 가지고 적절하게 활용할것이기에

이제는 대한민국 남북한 경제도 자립경제 국가 안보도 자립국가 안보체제로 홀로서기를 해야만한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전경련에서 뭐라고 시부리고있는지 경제 속국의 근성은 아직도 붙어있는지 세계 경체의 미국의 추락이 충격을 덜받기위해서는 대한민국은 외환 시장에 이에 대한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놓고 나서 유럽연합과 미국모두 공평한 FTA를 체결해야 할것이다 그리고나서 중국과 일본과 FTA를체결하는 순으로 가야한다

대한민국이 무역시장에서 이미 세계경제는 한계에 봉착하고있기에 그래서 그러한 과정으로 가야하고 왜 이런 언급을 해주는지아는가? 기업인들의 경제논리와 비교가 되지않으니 기업인들은 자사의 멸망을 바라고 싶으면 헛소리 계속하고 살아남고 싶으면 한미FTA 에 대한 헛소리 하지마라

그대 기업들은 살아남는 기회는될수가 있으나 대한민국 80% 국민들이 타격을 받기에 그렇게 간단하게 볼문제가아니다 더욱이 국가안보와 직결해서 다루어야 하기에 말이다 위에 언급한 2012년전후로 해서 다가오는 먹구름도 존재하므로 알겠는가 기업 총수 영감 대가리들아!
sangdam sangdam http://blog.daum.net/wneswkcic Y 2008.01.09 23:29수정|답글|삭제 옥새(玉璽)와 구정(九鼎)

중국 왕조의 정통성은 흔히 옥새(玉璽)의 전승에 의해서 정당화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옥새는 선위(禪位)의 의식을 통해 다음 왕조로 넘어간다. 옥새는 모두 7 개가 한 조를 이룬다. 그 중 여섯개는 황제가 가지고 나머지 한개는 남전(藍田)에 항상 보관되어 있다. [옥편]에 의하면 "새(璽)"는 천자와 제후가 갖는 인장(印章)이다. [채옹독단]에 의하면 황제는 "육새(六璽)"를 갖는다. [후한서.여복지]에 의하면 황제가 갖는 여섯개의 옥새는, 황제행새, 황제지새, 황제신새, 천자행새, 천자지새, 천자신새 등 모두 여섯이다. 그 외에 "대남전옥새(大藍田玉璽)"가 있는데 그기에는 "수천지명(受天之命) 황제수창(皇帝壽昌)"이란 글이 세겨져 있다. "하늘의 명을 받았으니 황제는 수명이 창성할 지어다" 라는 뜻이다. 황제의 정통성을 인정하는 기능을 행하던 이 "옥새"는 진시황이 남전에서 나는 최상품의 옥으로 만든 것으로 한(漢)의 유방이 갖기 시작하여 수양제까지 꾸준히 전승되었다. 그러다 수양제가 양주에 새로 건설한 운하에서 유람하던중 피살되면서 그 옥새는 결국 잃어 버리고 만다. 그리하여 당고조는 급조한 가짜 옥새를 갖고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 그 후에 다시 옥새를 만들기는 했지만 진시황이 만들어 900년을 이어 오던 "남전옥새"는 영원히 찾지 못했다. 따라서 진시황이 만든 옥새는 900년 동안만 황제의 지위에 정통성을 부여하는 부절(符節)로 사용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진시황이 황제를 칭하고 전국의 통치권을 갖게 된 것은 이 옥새가 아니다. 하상주(夏商周)의 삼대는 "구정(九鼎)"을 가진 자라야 최고 통치권자의 지위에 정통성이 부여 되었다. "솥(鼎)"은 두 귀와 세 발이 있는 제사용의 솥이다. [황극경세서]에 따르면 기원전 255년에 진이 주를 멸하고 그 이듬해인 기원전 254년에 "秦이 周의 백성과 구정(九鼎)을 함양(咸陽)으로 옮겨 갔다." 함양은 진의 수도로 지금은 서안의 일부다. 장안(長安)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진이 천하의 통치권을 갖게 된 것은 이 "구정"을 가져가서 중요한 제사의식을 거행했기 때문이다. 옥새는 뒤에 만들어 진 것이다. 다시말해 전국을 통치할 수 있는 권한은 이 "구정"을 가지고 사방신과 그 외의 중요한 제사를 지낼 수 있었기 때문인 것이지 "옥새"를 가졌기 때문은 아니다.(진이 周의 천자가 행하던 제사를 하나 하나 훔쳐간 것은 양웅의 [법언]에 잘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진한(秦漢) 교체기에 "구정"을 가진 사람은 누구인가. 이밀(李密)은 수나라 말에 군웅이 난을 일으켰을 때 같이 난을 일으킨 사람중의 한 명으로 위징이 편찬한 [이밀묘지명]에 의하면 그는 고구려의 오부 중의 한 부(部)를 통괄했던 집안 출신이다. 이 [묘지명]의 첫 부분에서는 그의 선세를 말하고 있는데, 그 내용에 따르면 이밀은 기자와 주몽의 후예이다. 특히 주몽에 관한 부분에서 주몽은 "문정(問鼎)의 웅도(雄圖)를 갖고"란 표현이 있다. 진시황이 죽은 후 전국의 영웅호걸들이 그 정권을 탈취하고저 "사슴을 쫓는다(逐鹿)." 주몽도 뭇 호걸들과 다투어 "사슴을 쫓는다." 그러나 다른 영웅들과는 달리 주몽은 "사슴만 쫓을" 뿐 아니라, "문정(問鼎)"의 원대한 포부도 가졌다. [역림]에 의하면 주몽은 "사슴을 쫓다가 얻지를 못하고, 바닷가로 가서 바람을 맞으며, 술을 뿌리면서(灑酒), 스스로 부여왕이 되었다." [역림]의 또 다른 맥락에서는 주몽을 두고 "성공한 자는 물러가고(成功者退)"란 표현이 있다. "사슴을 쫓다가 얻지를 못했는데" "성공한 자"라고 표현한 것은, 주몽이 사슴을 얻는 것 보다 더 존귀한 "구정"을 손에 넣고 제사 의식을 거행했다는 것을 말한다.

[이밀묘지명]에서 주몽이 "문정의 웅도를 갖고"란 표현에서의 "문정(問鼎)"이란 말은 [좌전.선공3년]에 나오는 표현이다. 원문의 내용은 "초자왕(楚庄王)이 주정왕(周定王)에게 주정(周鼎)의 대소(大小)와 경중(輕重)을 물었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후에 이 "문정"은 인군의 지위를 찬탈하여 천하를 갖겠다는 의미를 비유적으로 사용한 것이다. 즉 "구정(九鼎)"을 탈취하여 천하를 소유하겠다는 뜻이다.(이육부 . 증정본[성어전고문선]상권, "문정편.") "정정(定鼎)"이란 용어도 같은 뜻으로 쓰인다.

당고조가 이 "구정"을 갖지 못한체 제위에 오른 것은 당시 아직 고구려가 망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왕조의 개창에 필요한 "구정"을 손에 넣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육부는 한나라 이후는 "구정" 대신에 "옥새"가 왕조의 정통성을 보장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직 고구려가 망하지 않은 상황에서 당이 "구정"을 손에 넣을 수도 없었고, 또 거의 천년 가까이 황제는 오로지 옥새만으로 천자의 지위가 보장되었기 때문에 옥새만으로 충분한 것 처럼 말하고 있을 뿐이다. 만약 후에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구정"을 손에 넣었다 하더라도 당이 그 때 부터 통치권을 정당하다고 한다면 당의 무덕 원년(서기 618)에서 부터 고구려가 망하는 당고종 총장 원년(서기 668)까지는 고구려가 정통이고 당이 찬역한 것으로 역사를 쓰야한다는 모순이 생긴다. 따라서 아예 한 이후는 옥새만이 왕조의 정통성을 보장한 것으로 역사를 기술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서도 명백해 지지만 한고조 유방은 황제의 지위를 고구려로 부터 봉건 받은 것이 확실해 진다. [이밀묘지명]에는 주몽이 "처음 초나라 항우가 패권을 가졌다고 들었지만 끝에는 한나라에게 황제의 기반을 부여했다"는 표현은 이 사실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그 후의 왕조들도 모두 마찬가지로 고구려의 봉건을 받아야 했다. 남조의 경우 "백사모"가 그 대표적인 표현이다.

앞서 본 바와 같이 "남전옥새" 한개는 황제가 갖지 못하고 항상 남전에만 있었다. 남전은 진의 수도인 함양의 바로 아래 있는 현(縣)이다. 그 옥새의 중요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평양의 위치부터 고증해야 한다. [수서.고려전]에 의하면 고구려의 수도는 "평양성(平壤城)이다. 또한 장안성(長安城)이라고도 한다. 동서 6리며, 산을 따라 굴곡되어 있으며, 남으로는 패수(浿水)에 임해 있다." 그런대 [한원.고려전]에서는 "오골산"과 관련하여 [고려기]를 인용한 주가 있다. 내용은 "오골산은 그 나라 서북에 있는데, 동이말로 지붕(屋山)이라 한다. 평양 서북 700리에 있다. 이 오골산에 관해서는 그 정확한 위치가 기술된 자료가 있다. 돈황출토의 단대에 필사본으로 쓰여진 [서주지잔권]에 의하면 돈황에서 멀지 낳은 곳에 있다. "西州"는 당태종이 고창국을 멸망시키고 설치한 주다.(나진옥. [나설당나선생전집]120권, passim.) 오골산이 평양 서북 700리라 했으니, 오골산에서는 동남 700리에 평양이 있다는 뜻이 된다. 오골산에서 동남 700리면 진의 함양, 당의 장안(長安)에 해당한다. 따라서 [수서]가 "평양성, 일명 장안성"이라고 한 것은 "장안성, 일명 평양성"과 같은 말이다. "남전'은 크게 보아 "장안성"의 일부다. 결국 일곱개의 옥새중 황제가 갖지 못하는 마지막 하나의 "대남전옥새"는 항상 고구려가 갖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고대사에서 항상 말썽이 믾던 "패수"의 위치를 알 수 있게 됐다. 玉으로 유명한 이 남전에는 "남전수(藍田水)"라는 강이 흐른다. [수서]의 표현대로 라면 이 남전수가 바로 "패수"란 뜻이다. 조선 고대사에서 말썽 많은 "위만(衛滿)"이 건넜다는 "패수(浿水)"는 바로 "남전수"인 것이다.

아랍인의 기록에는 장안(長安, 지금의 西安)을 항상 "쿰단(Kumdan)"이라고 표기한다. 왜 이런 명칭으로 불렸느냐에 관해 잠중면(岑仲勉)은 한자단어 "금전(金殿)"의 독법인 것으로 판단한다. 장안이 당의 수도였으니까 화려한 금으로 장식된 궁전으로 아랍인들은 보았다는 것이다.(잠중면. [금석논총]) 그러나 아랍인의 이 명칭은 고대 산스크리트어의 "쿠무다나"에서 유래한 것이다.(당 예언. [범어잡명]) 그렇다면 묹제는 "쿠무다나"는 어디서 왔는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지금은 "남(람)"으로 읽는 "藍"의 성부눈 "감(監)"이다. 고대의 한자 독법에서는 "가(歌)"의 운(韻)과 "고(高)"의 운은 서로 호용되기도 했다. "고"에는 물론 "구"운도 있었다. 그렇다면 "남전"은 "감전"으로도 읽었다는 뜻이 된다. 여기서 "쿠무다나"를 유추해 내기는 어렵지 않다. 고대 인도인이나 아랍인들에게 당의 수도인 장안은 곧 "람전(藍田)"을 의미했던 것이다. 이것은 옥새(玉璽)의 가장 중요했던 마지막 한개가 항상 남전에 있었던 사실에서, 당 이전부터 그렇게

중국의 지명은 대한민국에 있는 지명과 유사한 지명들이 매우 많다 위치도 그렇고 즉 중국의 축소판을 남북한에 옮겨놓은것이라는 추측이 매우 강하게 느껴진다

물론 아마도 과거 역사에서 중국 대륙영토에서 한족으로부터 쫓겨나온 삼국의 민족들이 중국영토에 거주시에 자신들의 과거 흔적을 기억하고자 역사대대로 점진적으로 복원한것이 지금 남북한의 영토이고 지명인것으로 본다 지금 이 시즘에 과거 동북아 역사를 논하기에는 시간이 아깝고 중국의 함양 그리고 대한민국 경남 지리산 함양 참으로 의미하는바가 크기에 중국의 함양이나 사천성을 가보고 싶다

다가오는 역사의 물결은 과거의 수많은 상처의 흔적을 지우고도 남기에 과거 역사의 논함이 무색함을 물론 그 이유를 모르시는분들은 과거 역사에 엌매이시는 분들도 계시기에 그렇게 소생은 생각하고 있다

수미산 순례 참으로 그래요 우리 인생사 지구촌의 성지들을 한번 보고 가기란 쉽지않은일인데 가셔서 무엇을 어더오셨는지요 오체 수행하시는분들을 보면 그 수행도 쉬운 수행길이 아니데 그러나 진정한 참수행은 성지 순례도 아닙니다 그역시 유상세계에 집착하는것이기에 즉 수미산도 다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며 수미산보다도 더한 올림푸스산도 다 자신의 내면세게에서 성스러운 영산을 성지를 만날수가 있지요

왜 소생이 이런글을 올리는가하면 소생의 깨달음을 통해서 보면 소생역시 설산에서 나오는 지하수의 지혜의 샘물을 마신자히수 약수가 지혜의 샘물인데 그 선몽 지금도 잊어지지않습니다 소생도 수미산을 한번 가보고 싶으나 수미산에 가는것보다도 더 중요한것은 깨달음의 특히나 육신으로온 인류인들에게는 지금의 지구 세상사의 일을 바르게 인도하도록 길을 안내해주는것이 깨달음의 수행의 최종목적입니다

지금 설사 부처님이 아니면 수많은 성인분들이 우리인간 육신으로 왔다라고 가정했을 경우에 무엇을 하실것 같아 보이나요역시 지구촌 삼라만상의 문제를 짚어보시고 지금의 인류가 처한 문제들을 그리고 인류의 개개인들의 삶의 모습들을 보시고는 역시 인류의 문제의 맥부터 먼저 짚어서 인도해주실것으로 보입니다성인분들은 인류를 위해서 길을 제시하시고 행동에 대한 선택은 다 인류가 각자 개개인이 선택여부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지는것을 그러니 지금 인류는 소생의 깨달음 측면에서보면 성인분들도 마냥 인류에게 당근만 드리지않습니다

부처님의 말슴에 책임지는 인간 육신이되어라하는 이유가 왜 언급하셨는지 짐승은 자신의 행동과 해위에 대해서 축생은 책임을 지는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육신들은 깨달음을 수행하시면서 책임이라는것을 곧 수행을 위한 발전을 위한 자신에게 묻는 채찍질입니다

그러나 인류는 그러한점에 그리고 개개인들의 삶에 책임을 소흘하게 다루고잇기에 인류나 세계 개개인들의 삶이 고달프고 고통을 받고 헤어나지못하고 있고 오체 하시는분들은 그나마 현생에서 책임을 지려고 그러한 고된수행을 하시는것 같습니다자신 스스로에게 육신으로 온 부분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있는지 이것은 자신의 육신의 생명과 절대적인 신과의 약속입니다

부처님역시 그러한 분이시고 자신의 육신으로오신 이유를 잘알기에 책임을 다하시고 인류에게 가르침을 남기고 가셨지요항상 우리에게 어두운길을 안내해주시는것은 외형에 있는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안에 있다라는 사실 그러기에 자신이 부처이고 예수이다라는 사실을 알게될것이고 발견을 하시게될것입니다

설사 자신이 부처가 아니라 예수가 아니드라도 부처님보다도 예수님보다도 더한 깨달음의 수행은 존재하고있기에 부디 설산에서 깨달음의 지혜의 샘물을 많이 얻어서오신것으로 믿으며 그야말로 모든것을 내려놓는 언제든지 떠날수있는 초유의 경지를 위해서 개달음의 수행에는 일반인들이 수천번이고 인간의 몸종으로와서 수행하지않으면 깨달음을 통달하기란 쉬운일이 아닙니다

현생의 인간의 몸종으로 이왕 오셨으니 부디 깨달음의 수행에 게을리하지마시고 누가보든 말든 자신의 맞는 업보에 맞는 깨달음을 귀중하게 여기면서 설사 목숨가지도 버리는 마음자세로 수행하시면 깨달음을 통달 해 가는데 더욱 더 다가갈수가 있습니다이것이 항상 자신과의 싸움이고 온갖 세상사 물질의 유상세계의 유혹에서 스스로 그 유혹을 물리치고 자신을 통제해가는 수행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왜 자신이 인간으로 와야만했는지 그 이유를 가르처줄것입니다 자신부터 알아야 다음 생에 와도 어두운 암흑에서 헤메지않고 윤회의 고통바다도 건너갈수가 있는것입니다인간의 몸종으로 오는것은 그리어려운일이 아니나 인간의몸종으로 골백번온들 깨달음의 수행을 게을리하면 갈수록 육신의 업은 고통의 윤회 바다에서 더욱 더 고통을 받게되기에 이 세상에서 이 우주에서 태양보다도 달보다도 별보다도 귀중한 인간 육신의 생명을 존귀한것은 오히려 수미산보다도 존귀한 인간의 육신이나 이역시 깨달음을 수행행만 그 존귀함을 보호받게되는것입니다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게되면 왜 인간의 생명이 존귀한지 그리고 평생 개달음의 수행을 밥먹는것보다도 귀중하게 다루어야하는지 아시게될것입니다아무쪼록 수미산 구경 잘했습니다 수미산이 바라는것도 아마도 소생이 지금 언급해드린뜻과 다르지않다고 봅니다소생의 지금 심정은 수미산에서 푹 잠수타면좋겠다라는 생각을 하네요

지금 대한민국 국내와 세계 정세를 다보고 살길을 가르처주었습니다 그러니 남은것은 저들이 무엇을 선택할것인지 지켜만 보면 되기에 그러나 절대적인 신은 인류에 대해서 책임을 묻는 시간이 집행해야만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있으니 깨달음을 수행하는데도 시간이 많이 남아있지않습니다

즉 앞으로는 미래에는 깨닫고싶어도 깨닫기가 어려운 환경에 직면하기에 그래도 다행히 지금이라도 부지런히 깨달음의 수행을 열심히 하셔서 복을 받아가시기를 바랍니다참으로 갑자기 소생의 부족한 견해가 길엇습니다 반갑습니다 그리고 방문해주셔서 감사하고요
sangdam sangdam http://blog.daum.net/wneswkcic Y 2008.01.09 23:40수정|답글|삭제2012년 4월 15일 김일성 탄생 100주년되는 해이다 북한에게 상당한 의미를 가진한해이고 미국은 이점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미국이 생각하고 있는 구상안하고 북한이 구상하고 있는안이 다르게 때로는 같이 접근하기에 무엇보다도 구심정은 남북한의 민족의 미래 장래의 발전을 위해서 자주 주체 민족으로 거듭태어나야 한다

물론 지금 대한민국도 역시 정세가 안정적이지못하고 있고 북한 정권 역시 불안정하기에 중국은 베이징 올림픽이 끝나면 무슨 태도로 나올지 물론 미국도 마찬가지이고 지금은 6자회담은 정체되어있지만 이것이 끝나면 미국 대선과 맞물려서 남북한에게 미치는 영향은 호락호락하지 않을것이다

미국 정부는 주한 미2사단을 ‘장기 주둔군’이 아닌 ‘순환 배치군’으로 운용할 계획인 것으로 밝혀졌다.

또 당초 2011년 말이나 2012년 초에 창설될 것으로 알려졌던 미군의 ‘한국사령부(KORCOM·코콤)’는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1년6개월 전인 2010년 10월14일 공식 출범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의 전략이 앞당겨지는이유는 그리고 지금 이명박 당선자에게 똥줄타게메달리는 이유와 무관하지않다

즉 미국의 전략의 속셈이 노출되어 있음을 미국이 잘알고있기에 그러니 모든것을 앞당기려는 전략 수정안이 들어간것 같다
sangdam sangdam http://blog.daum.net/wneswkcic Y 2008.01.10 19:45수정|답글|삭제헌재 "'당선인' 아닌 '당선자'가 맞다" 인수위에 일침



오늘 헌재의 판결에 정치적 판결보다는 또 앞으로 BBK특검법과 더불어서 이에 자신에게 주어진 본분과 책임 그리고 사명감이 이 대한민국에게 막중한 영향을 미치게되므로 자신의 명예에 공명정대하게 후세에 떳떳한 사람이되기위해서는 모든 수사를 자신있고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당당하게 조사를 해야할것이다

왜냐하면 불의에 굴하지말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봉사함에는 지금은 불의에 굴복하게되면 차후에 모든 관련자들은 그 댓가를 톡톡히 치루게 될것이다

오늘 현재의 결정에 물론 이명박 당선자의 되게된 배경은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고 헌재로써는 최선을 다한 판결임에는 분명하다

즉 그분들의 법의 존재와 살아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러면 특검법은 주어진 권한에서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수사를 해야만한다 만약에 검찰처럼 재량권 남용이나 최선을 다하지못하면

그분들을 비롯한 대한민국의 앞날에 불행에 대한 책임에서 회피할수가없다라는것이다

앞으로 대한민국이 어디로 가야하는지도 이미 다 알려졌고 그러므로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국민들이 알기에 대한민국을 살릴것인지 죽일것인지 마지막 그대들의 사명에 달려잇다

대한민국이나 남북한은 지금 우리가 피하고싶어도 피할수없는 숙명의 시간은 다가오고있기에 이것을 피하는자세보다는 더 적극적인 자세로 그것을 맞이할 자세가 더중요함을 대한민국 국민들이나 남북한 민족은 명심해야 하는것이다

특검법도 그것을 위한 첫걸음마인것을 명심해야할것입니다

소생이 수년간 말해왔지만 지금 전세계에 대한민국이나 남북한에 종속적인 패배주의 적인 운을 버리고 당당하게 적극적으로 운을 맞이하라는 천운이 왔기에 두려워하지말고 그렇게 해가라는 신이 주신 선물을 버리지말기를 바랍니다

아직도 감을 잡지못한 양반들이야 그렇게되지않기를 안주하는 세력들은 마지막 몸부림이기에 이미 알고 있습니다

새로운 역사와 국운이 우리를 지금 기다리고 있는데 무엇을 주저하나?

지금 대한민국 정치가 이렇게 뒤죽박죽해온것은 대한민국이 그동안 깨어나지못하고 깨닫지못하여 비롯된 인과응보입니다 이제는 그것을 바로잡는 운때가 왔기에 앞으로 세상이 그동안 대한민국 정치가 그렇게 살아온것을 용납하지않으니 그것을 위해서라도 지금부터 대한민국이 먼저 바른 정치 문화를 열어가게될것입니다

대변화와 대혁명이 지금 대한민국에서 이미 시작되었기에 하늘이주신 운을 받아들어서 미래에 새로운 역사를 열어가고 개척해가야 할것입니다 그것이 지금의 모순된 모든것을 정리하고 바로잡는 계기가 될것입니다

어떠한 대한민국에 고난이나 불행으로 몰아넣는다고해서 절대로 이번에 대한민국 남북한 수천년의 역사의 진수를 보여주는 계기가 삼아지고 그것으로인하여 남북한은 민족융성을 하게되고 대한민국 국운융성도하게되니 앞으로의 고난 그정도는 감내할수도있습니다 그리고 그다음에 기다리고있는것은 희망의 등불이 솟아오르는 모습이 훤한데 희망을 가지고 이 고난을 이겨내야만 우리민족이 원하는것을 얻어갈수가있습니다 그것을 절대적인 신은 지켜보고 있는것이고요

대한민국에는 좌파도 우파도없다 오로지 대한민국 국가와 남북한 민족을 망치는 세력대 구하는 세력만 존재한다
이명박 당선자의 발자취는 대한민국 박정희 대통령암살후부터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걸어온 모습들은 단적으로 보여주는 발자취의 대표적인 표본이다


지금대한민국 돌아가는 바둑판에 수를 두는일 하나하나가 얼마나 세계의 정세에 크게미치는지 알고 있는가
바둑판에 바둑 흑백 알을 어디에 어덯게 두느냐에 대한민국 남북한 세계 정세에 큰 파급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대한민국 국민들은 알고 있어야 할것이다

남북한 민족을 위하는일에는 박정희 대통령께서나 김일성 주석께서도 도와주실것으로 믿는다
그럴만한 선몽을 꾸었기에 그래서 남북한 그리고 어느 국가든 이 대업을 거부하면 그들 국가는 피해가 막대할것이다 즉 국가가 해낼수 없는 일을 절대적인 천지신명님게서 도와주시기에 그 피해 여부는 그들 국가들이 어덯게 처신하느냐에 달려있다

헌재 "'당선인' 아닌 '당선자'가 맞다" 인수위에 일침

[노컷뉴스] 2008년 01월 10일(목) 오후 04:44 가 가| 이메일| 프린트
헌법재판소가 10일 '대통령 당선인','대통령 당선자' 표현 논란과 관련해 당선자라는 표현이 맞다고 밝혀 언론에 당선인으로 표기해달라고 요청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입장이 난처하게 됐다.

김복기 헌법재판소 공보관은 이날 이른바 '이명박 특검법'에 대해 헌재 결정이 내려진뒤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헌법 68조 2항등을 보면 대통령 당선자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며 "가급적이면 특히 헌재 결정과 관련해서는 대통령 당선인보다는 헌법에서 규정하는 표현을 써달라"고 당부했다.

헌재가 근거로 제시한 헌법 67조는 '최고 득표자가 2인 이상인 때는 국회의 재적 의원 과반수가 출석한 공개회의에서 다수 표를 얻은 자를 당선자로 한다"고 돼 있고, 68조에는 '대통령 당선자가 사망하거나 판결 기타의 사유로 그 자격을 상실한 때에는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거한다'고 규정돼 있다.

앞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지난 1일 각 언론에 "당선자가 아니라 당선인으로 표현해 달라"고 요청했었다. 대통령직 인수에 관한 법,인사청문회법,공직선거법등에 모두 '당선인'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대통령직 인수에 관한 법에는 "대통령 당선인이라 함은…"라고 규정돼 있다.

인수위의 공식 요청에 따라 이전까지 당선자로 표현하던 주요 언론들도 2일,3일부터 당선인으로 바꿔 표기하고 있다.

헌재는 이에 대해 "헌법이 최상위법이므로 설사 다른 법률에 당선인이란 표현이 있더라도 ‘당선자’가 맞다”고 강조했다.

최고 법해석 기관인 헌법 재판소가 당선자가 맞다고 밝힘에 따라 인수위도 '당선인'을 고집할 근거가 약해진 것이다.


▣ '이명박 특검법' 위헌여부 헌법재판소 결정문(전문)

시작하겠다. 사건 2007 헌나 00000

한나라당 후보 이명박의 관한 특검에 대해.

청구인: 김백준 이상은 김재정 이상은 윤여덕 등

2007년 12월 18일 법률 한나라당 이명박의 주가조작 등 범죄혐의에 대한 법률이 청구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지 결정하는 것이다.

먼저 요지를 설명하겠다. 설명한 후 반대의견 별도의견 설명하겠다.

- 우선 이 사건 법2조에 대해서 본다.

특검의 수사대상을 규정하고 있다. 헌재는 오래전부터 판례로 특정법률이 처분적 법률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곧바로 헌법에 위반하는 것이 아니고 개인이나 대상에 대한 차별이 정당화된다는 입장이다. 이 법률이 처분적 법률이란 이유만으로 위헌이란 주장은 이유없다.

특검의 수사나 조사대상이 되므로서 일반 형사소송의 대상이 되는 일반 참고인과 차별을 받은 점은 인정되나, 국회의 결정권 과 제반사정을 폭넓게 고려해야

국회의 광법위한 재량이 인정되어야 한다. 국회의 결정은 명백히 자의적이거나 부당한 경우가 아니면 존중되어야 한다. 국회가 제2조의 사안들에 대해 특검 수사를 실시케 한것이 현저히 부당한 것으로 단정하기 어렵다. 평등권과 신체의 자유나 무죄추정의 원칙을 위반했다고 볼수 없다.

조대현의 반대의견

참고인들의 기본권은 부적합하다는 것이고

객관적 자료에 근거하고 있지않고 검찰의 중립성을 의심할 수 있는 근거도 찾을 수 없으므로 입법권 남용이다 분명하지 않은 표현이 있다.

- 제 3조에 대해

변호사 중에서 2명을 대법원장이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므로, 대통령이 2인중 1인을 임명한다고 하여 자기자신의 사건을 스스로 심판하는 구조라고 할 수는 없다. 특검의 취지를 볼때, 헌법기관끼리 권력을 분리하는 것이 적법 절차를 위반 하지 않았다.

조대현의 반대의견

참고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내용이 없으므로

김희옥 반대의견

대법원장이 사실상 임명한 것이므로 특별검사가 공소제기 한 것을 결정하는 것은 정치적 갈등의 소지가 있다.

- 제 6조 6항 7항 18조 2항의 동행명령에 대해

동행명령은 정당한 사유없이 거부하면 천만원이하의 벌금형. 참고인의 입장에서는 무엇이 정당한 사유인지 알 수 없고 참고인의 신체의 자유를 억압해 인치하는 것과 동일.

영장주의를 위반한 것이다.

현행 증인심문참고절차 형소법을 통해서 증인을 확보할 있으므로 과잉원칙에 위반해 참고인의 신체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이다.

반대의견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강제력이 아니므로 영장주의 위반이 문제될 수 없고 다만 과잉금지원칙의 위반으로 보아야 한다.

조대현의 반대의견

6.6 , 7항은 청구인의 기본권을 직접침해하는 것이 아니므로 부당

제 18조 2항이 참고인의 일반적 행동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 것이다.

반대의견

헌법상 영장주의는 아니고 과잉금지 원칙을 심사해야 되는데 특검은 극히 한시적 활동을 통해 조속히 수사해야 하는 한계가 있고

형소법상 증거보존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법익의 균형성에 어긋나지 않는다.

- 제10조는 가능한 신속하게 재판을 종결함으로써 국민적의혹을 조기에 해소하고 혼란을 수습하자는 것일뿐 피고인의 방어권행사나 적법절차를 보장하지 않은 채 재판이 종결되어야 한다는 취지는 아님. 따라서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나 평등권을 침해하지 않음.

불확실한 추측에 불과해 구체성을 담보하지도 않아도

수사대상을 규정한 임명방법을 10조를 따질 것도 없이 위헌을 해야한다.

결국 청구인들이 그중 18조 2항부분에 대해서 8인이 위헌이므로 나머지 조항은 재판관 6인의 찬성을 얻지 못했다.

- 주문

한나라당 이명박의 주가조작등 진상 규명을 위한 법률제정에 관련해

제 6조 6항 7항, 18조 2항은 위헌이다.

청구인들의 나머지 심판청구는 이유없다.

- 관련 가처분 사건의 결정

이 사건 가처분 신청은 본안 결정으로 보전의 필요성이 없어졌으므로 기각함




CBS정치부 김재덕 기자 jdeog@cbs.co.kr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측은 10일 헌법재판소 측에서 '당선자'라는 표현이 맞다고 지적한 데 대해 "우리는 '당선인'이라는 표현을 계속 쓰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대통령취임하기전에 그리고 당선의 실질 여부가 판가름나기전에 벌서부터 헌재의 판결을 존중하지않겠다라는 의지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벌써부터 예비 당선자와 예비 대통령당선자의 측근들이 그러한 발상을 하겠다라고하니 이제는 국민들이 어떻게 받아들어야하고 대응해야하는지 굳이 앞으로 5년을 지켜볼 이유가 없다라고 본다

이미 앞으로의 5년모습을 지금 측근들이 이미 보여주고있으니말이다


언론을 통해 본 이명박 후보의 범죄 기록 및 의혹들


1. 건축법위반 - 구속, 1972-06-19 (경향 7면)
매머드빌딩 불법건축 관련 공개 수배된 뒤 구속. 용산구 회사부지에 차고를 무허가로 건축한 혐의. (72.6.19 서울지검)



2. 건축법 위반 - 고발, 1990-01-07 (한국 14면)

울산 남구청, 무허가 건물 11동(연건평 2천5백평방미터)을 지어 사용해온 혐의로 고발. (90.1.6 부산지검 울산지청)



3. 도시공원법 도시계획법 위반 - 고발, 1990-09-05 (국민 14면)

전북 군산시, 아파트 공사하면서 인근 공원녹지 무단 훼손. (90.9.4 군산경찰서 고발조치)



4. 업무방해 및 폭력처벌법 위반 - 고소, 1990-12-06 (동아 15면)

현대건설 노조, 노조가 채용한 나기주(당시 30세) 노보편집위원의 노조사무실 출입을 현대건설 경비원과 청원경찰을 동원해 저지, 노조업무 수행 방해. 회사측은 나씨가 집단폭행 당했다고 주장. (90.12.6 종로경찰서에 고소)



5. 근로기준법 위반 - 불구속입건, 1991-06-14 (동아 14면)

부당하게 전직발령된 그룹통합홍보실 사보편집 담당직원인 김석기씨(당시 32세, 여)에 대한 노동부의 원직복직명령을 받고도 이를 이행하지 않은 혐의로 고발. (91.06.14 서울지방노동청)



6. 건축법위반 - 약식기소, 1992-08-23 (경향 23면)

91년 12월부터 92년 4월초까지 서울 서초구 서초동 법원청사 앞에 있는 자신 소유의 영포빌딩 2층과 5층을 허가용도인 근린시설과는 달리 사무실로 임대, 지하주차장 2백평도 창고로 용도변경 불법 사용. (92.7.8 서울지검 형사1부 韓武根검사)



7. 수뢰의혹, 1993-06-30 (연합)

검찰에 따르면 美林건설 대표 安씨는 지난 91년 당시 부산시 주택기획계장 朴昌範씨(40.구속.부산시의회 전문위원)에게 2천8백50만원, ㈜현대건설 부산지사장 金南鍾씨(48.구속.현대건설 총무이사)를 통해 부산시 주택기획과장 金性一씨(수배)에게 3천만원을 건넨 것 외에 부산시 柳모국장도 5백만원을 받은 혐의를 잡고 柳국장을 소환,조사키로 했다는 것.

검찰은 또 柳국장 등 고위 공무원들의 수뢰 근거로 지난 91년 6월 대표 安씨가 金이사에게 보낸 편지에서 "현대건설 사장 李明博씨 등 명의의 통장에 2억여원을 온라인으로 송금했고 아파트 사업승인을 받기 위해 부산시 주택국장,주택과장 등에 모두 15억원 상당의 로비자금을 뿌렸다"는 내용을 공개. (93.06.30 부산지검 동부지청)



8. 범인도피/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위반 - 불구속 기소, 1996-10-10 (경향 0면)

김유찬씨 해외도피 전날 이광철 비서관을 통해 도피자금조로 1천5백만원을 제공한 혐의.

4·11 총선기간동안 모두 1억7천9백만원을 선거비용으로 사용, 법정선거비용보다 8천4백만원을 초과 지출한 혐의. (96.10.9 서울지검 공안1부 金在琪 부장검사)



9. 선거법 위반 혐의 - 검찰 구형, 1997-07-26 (서울경제 23면)

4·11 총선 당시 법정선거비용 초과지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이명박 피고인에게 공직선거 및 부정선거방지법위반 혐의를 적용, 2년 구형. (97.7.25 서울지검 공안1부 주성영검사)



10. 선거법 위반 혐의 1심, 1997-09-11 (연합)

15대총선 당시 법정선거비용을 초과지출한 혐의 등으로 불구속기소돼 징역 2년이 구형된 신한국당 李明博의원에게 공직선거및 부정선거방지법위반죄를 적용,벌금 7백만원을 선고. 판결문에서 "총선당시 여론조사 비용과 홍보요원및 자원봉사자들에게 지급한 금품 등 일부 비용 지출은 증거가 없어 무죄이나 나머지 법정선거비용 초과 지출 부분과 범인은닉 등의 혐의는 모두 유죄로 인정"(97.9.11 서울지법 형사합의23부 재판장 崔世模부장판사)



11. 선거법 위반 혐의 항소심, 1998-04-28 (연합)

- 지난 96년 4.11 총선 당시 선거비용을 초과지출한 혐의 등으로 기소돼 1심에서 벌금 7백만원을 선고받은 한나라당 李明博 전의원에 대한 항소심에서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위반죄를 적용,벌금 4백만원을 선고

- 재판부는 이와는 별도로 李 전의원이 자신의 전 비서관 金裕瓚씨를 해외로 도피시킨 혐의에 대해 범인도피죄를 적용,벌금 3백만원을 선고 (1998.4.28 서울고법 형사10부 재판장 金大煥부장판사)

- 여론조사 비용을 형이 지출했다는 부분은 무죄



12. 선거법 위반 혐의 상고심, 1999-04-09 (연합)

지난 96년 4.11총선당시 선거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된 한나라당 이명박(李明博) 전 의원에 대한 상고심에서 벌금 4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총선당시 여론조사는 비록 이 전 의원의 형이 실시한 것이지만 이는 이 전 의원의 선거활동의 연장선상으로 선거비용 초과지출에 해당한다"며 "단지 이 전 의원의 형이 여론조사 비용을 지출했다는 점만으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의 판단은 잘못됐다"고 밝혔다. [ 대법원 형사2부 주심 이용훈(李容勳)대법관 ]

13. 선거법 위반 혐의 파기환송심, 1999-07-07 (연합)

한나라당 이명박(李明博) 전 의원에 대한 선거법 위반 사건 파기환송심에서 원심대로 벌금 4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총선 당시 여론조사는 비록 피고인의 형이 실시한 것이지만 이는 선거활동의 연장선상으로 선거비용 초과지출에 해당하는 만큼 유죄"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자원봉사자들에게 줄 식비를 식당 주인에게 교부한 부분은 유죄 입증 자료가 부족하므로 무죄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은 여론조사 및 자원봉사자 식비 부분과 관련한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으로 형량은 그대로 유지 [ 1999.7.7 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권남혁(權南赫)부장판사 ]



14. 사기혐의 - 고소, 2001-11-06 (서울경제)

심텍이 BBK투자자문에 맡긴 거액의 돈을 돌려받지 못했다며 이명박 전 의원과 김경준 전 사장을 사기혐의로 고소

15. 선거법 위반 - 불구속 기소, 2002-11-20 (문화 0면)

02년 1월 말 '절망이라지만 나는 희망이 보인다'는 저서에 대한 출편기념회를 가진 뒤 자신의 친필 서명이 인쇄된 홍보 유인물 9만1천부를 측근 통해 불법 배부한 혐의. 6차례 소환통보에 불응해 결국 불구속 기소 (02.11.22 서울지검 공안1부 박철준 부장검사)



16. 선거법 위반 - 고발, 2002-12-16 (연합)

이 시장이 행정수도 이전 공약에 반대 입장을 천명하고, 시정연구원을 통해 행정수도 이전에 최소 54조원이 소요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게 하는 등 대선에 개입.

이낙연(李洛淵) 대변인은 "이 시장은 본인이 직접 나서거나, 시정연구원이라는 단체를 시켜서 선거에 개입했다"며 "서울, 경기, 인천에서 시도의원과 광역자치단체 의원들이 행정수도 이전 반대에 동원됐고, 전국적으로 지방자치단체 조직이 선거에 동원되고 있다"고 말했다.(민주당)



17. 선거법 위반 - 검찰 2년 구형, 2003-09-02 (연합)

2일 작년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선거법을 위반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 사건에 대해 징역 2년 구형 (서울지검 공안1부오세헌 부장검사)



18. 선거법 위반 - 1심 무죄, 2003-10-07 (연합)

위 검찰의 구형에 대해 무죄선고 (서울지법 형사합의23부 재판장 김병운 부장판사)



19. 선거법 위반 - 항소심 무죄, 2004-02-03 (연합)

서울고법 형사10부 재판장 오세립 부장판사

20. 선거법 위반 - 상고심 무죄, 2004-10-15 (연합)

대법원 3부 주심 고현철 대법관



21. 무고 혐의 - 고소, 2007-03-12 (연합)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출생지 의혹을 제기하다 이 전 시장의 캠프로부터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를 당한 지만원(시스템클럽 소장)씨가 12일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상대로 맞고소. (07.3.12 서울중앙지검)



22. 명예훼손 혐의 - 고소, 2007-07-10 (한겨레)

- 열린우리당 김혁규 의원과 김종률 의원은 10일 명예훼손과 모욕 혐의로 한나라당의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이 전 시장 캠프의 박형준 의원을 검찰에 고소

- 김종률 의원 "자신들도 인정한 자료를 근거로 이 전 시장의 위장전입 사실을 밝혔을 뿐인데, 허위사실을 폭로했다고 공개석상에서 김혁규 의원의 인격을 모독하고 명예를 훼손했다" (07.7.10 서울중앙지검)



23. 이명박 사조직 희망세상21 산악회 회장 등 - 구속영장 청구, 2007-07-31 (연합)

김 씨 등은 지난해 6월∼올해 5월 전국 10여 개 지부, 200여 개 지회를 가진 산악회를 결성한 뒤 회비를 납부하는 '책임회원' 6만 명을 모집했으며, 이 전 시장 지지를 위해 사전선거운동을 한 혐의

24. 공직자윤리법위반 - 검찰 내사중, 2007-08-16 (머니투데이)

박근혜측 ㈜다스 주식과 관련, 김재정 씨와 이상은 씨를 통해 차명보유하면서 '백지신탁'(공직자가 재산 관리·처분을 제3자에게 맡기는 것) 규정을 이행하지 않았다고 주장 (서울중앙지검내사 중이라고 주장)

25. 명예훼손 혐의 - 고소, 2007-09-07 (연합)

한나라당이 국정원ㆍ국세청의 `이명박 후보 죽이기' 공작정치가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하며 배후로 청와대를 지목한데 대해 이 후보와 이재오 최고위원, 안상수 원내대표, 박계동 공작정치분쇄 범국민투쟁위원장을 명예훼손 및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 (07.09.07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



26. 증권거래법 위반 - 고발, 2007-11-05 (연합)

이 후보가 김경준씨와 함께 지난 2000년에 설립한 LKe뱅크와 BBK, 역외펀드인 MAF 등의 법인계좌 38개를 이용, 107회에 걸쳐 가장매매와 고가매수 등을 통해 옵셔널벤처스코리아 주가를 2천원에서 8천원으로 올려 막대한 시세차익을 거둔 혐의 (07.11.5 대검찰청)

27. 증여세 탈루 의혹 - 세무조사 및 검찰 고발 요구서, 2007-11-14 (연합)

이원영.강기정.이상경 의원 등 대통합민주신당 의원들은 이날 국세청을 방문, "이 후보 자녀의 위장취업 의혹과 관련해 이 후보 소유의 서초동 건물 관리회사에 대해 현장 조사한 결과, 지하 3층에 위치한 관리 사무실은 비좁고 열악해 이 후보의 자녀가 실제로 근무했을 가능성은 없었다", "이 후보가 자녀를 빌딩관리 직원으로 위장 채용한 것은 전형적인 증여세 탈루 수단"이라며 "국세청에 세무조사를 요청한다"



28. 수뢰/직권남용 - 고발, 2006-03-22

- 열린우리당 ①"이 시장은 전 서울시테니스협회장 선모씨와 서울시 체육회 부회장 이모씨로부터 2003년 3월부터 작년 말까지 주말 황금시간대에 50차례에 걸쳐 남산실내테니스장을 독점적으로 사용하는 부당 이익을 제공받은 뒤 선씨 등으로부터 청탁을 받은 혐의가 있다"고 주장했다.

②"이 시장은 또 이씨를 서울시 체육회 부회장으로 임명하고 올해 서울시 지원금을 작년에 비해 82억원을 늘린 173억원으로 책정하고, 서울시체육회에 운영권을 맡길 의도로 학교용지인 잠원동 일대에 실내테니스장을 건축하는 등 부정한 행위를 한 혐의도 있다"고 덧붙였다.

③"이 시장은 학교용지가 해제되지 않은 상태인데도 실내테니스장을 마치 가건축물인 것처럼 둔갑시켜 서초구청장에게 테니스장 건축을 허가하도록 하는 등 직권남용을 한 혐의도 있다"고 지적했다.

- 민노당 ①서울시당 등도 별도로 제출한 고발장에서 "이 시장이 잠원동 테니스장 운영권과 관련한 로비의혹을 받고 있는 선 전 협회장측으로부터 남산 테니스장 사용료 2천만원을 대납받았다는 의혹이 있다. 이런 의혹이 사실이라면 특가법상 뇌물죄에 해당하므로 조사를 통해 직무관련성이 있는지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②"서울시와 서초구가 세금 54억원을 투입해 잠원동 테니스장을 건립하는 과정에서 이 시장이 가설건축물 규정의 미비점을 이용, 학교 부지 해제절차를 피하도록 부하 직원들에게 부당한 명령을 함으로써 직권남용을 했거나 직무를 유기한 혐의도 있다"(서울중앙지검)



29. 성매매특별법 위반 - 여성단체 사퇴촉구 성명, 2007-11-21

- 전국여성연대는 "서울 서초구 양재동 이명박 후보 소유의 영일빌딩에서 여성 종업원을 고용한 유흥주점(섹시클럽)이 성업 중이며 관리업체인 대명통상 직원들이 여성 종업원들의 성매매를 협조하고 있는 것이 확인됐다", "성매매특별법에 따라 성매매 건물소유주나 토지주는 형사 처벌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 (※사퇴촉구 성명일뿐 아직 고소·고발하지 않았음)